삶이 묻어나는 문화예술교육 _ 김혜일 대표(문화공동체 아우름)
광주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
날짜 2017-12-07 조회수 1,290

이 묻어나는 문화예술교육(음악) 하기

 

문화공동체 아우름 김혜일 대표


들어가는 말  

  문화예술교육이 시작된지 도 세월이 꽤 흘렀다. 문화예술교육은 우리 사회 모든 사람들이 문화예술교육을 누릴 수 있도록 인적, 물적 자원을 제공하는 정책사업이다. 문화감성, 예술공감, 상생교육이 공존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목표이다. 그전에는 소수의 사람들만 향유하던 문화를 문화민주주의에 입각하여 사회구성원 모두 특히 사회적으로 문화적으로 취약한 구조에 처해 있는 계층(아동,청소년,노인,여성,장애인 등)까지 기회를 확대시켰다는 점에서 큰 의의를 부여할 수 있을 것이다. 다양한 곳에서 많은 사람들이 이 사회문화예술교육의 혜택을 받아왔다. 평생 전통시장에서 장사만 해 오던 시장 상인들이 예술가들과 만나 연극이라는 것을 처음 배우고 시나리오를 쓰고 연습해서 무대에 오르던 그날의 감동은 잊을 수 없을 것이다. 사회적으로 낙오자라고 낙인찍힌 재소자들이 화음을 맞추고 춤을 배워서 무대에 올라 마음껏 노래하는 순간 처음 느꼈노라고 고백하는 그 감정의 카타르시스는 문화예술교육이 할 수 있는 그리고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무대에 올라 마음껏 노래하는 순간 처음 느꼈노라고 고백하는 그 감정의 카타르시스는

문화예술교육이 할 수 있는 그리고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일상의 삶을 문화예술로 접촉하고 발화하게 하는 교육의 과정들을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왜? 우리가 이 일을 해야 하는 것인지를 다시 한 번 느끼고 돌아보게 된다. 이미 문화예술교육은 예술의 장르와 교육의 방법 그리고 다양한 대상과 현장의 경험치들을 통해서 성장하고 성숙해 왔다고 본다. 전국에서 다양한 분야의 예술 강사들이 다양한 장르와 대상을 만나 오늘도 열심히 문화예술교육의 꽃을 피우고 있다. 해년마다 많은 신규 강사들이 이 문화예술교육의 현장에 뛰어 들고 있으며 그들의 새로운 열정 또한 대단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문화예술교육 현장의 목소리에는 아쉬움이 묻어난다. 특히 다른 장르와는 달리 음악분야는 다시 한 번 자세히 스스로를 돌아보아야 할 전환점에 서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음악분야는 오로지 사회문화예술교육에서만 존재하고 있다. 공교육 안에서 이미 이루어지고 있는 음악교과 수업과 학원,교습소,개인 레슨 등과 같은 사교육 시장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교육의 현실 사이에 사회문화예술교육으로서의 음악교육의 위치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어떤 포지셔닝을 하고 있느냐에 따라 그 존재의 중요성은 달라질 것이며 존재감도 드러나게 될 것이다.

 

특히 음악분야는 다시 한 번 자세히 스스로를 돌아보아야 할 전환점에 서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음악분야는 오로지 사회문화예술교육에서만 존재하고 있다.

 

음악을 좋아하게 만드는 교육 
 문화예술교육의 매개체로서 음악이 가져야 할 최대의 지향점은 곧 배우는 이들이 즐거움을 만끽하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즐거움은 배우는 과정의 즐거움이기도 하며 결과의 성취감일수도 있을 것이다. 그동안 우리가 배우고 익힌 음악은 전혀 즐겁지가 못했다. 이 말은 배우는 과정 자체가 학습과 기능교육 위주였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또한 음악이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으로 전락했으며 함께하는 즐거움을 음악을 통해 느끼고 배운 사람들은 많지 않다. 음악을 통해 상대와 자유롭게 상호작용하며 능동적으로 자기 역할을 맡고 기다림을 체험할 수 만 있다면 우리가 잃어버린 인간성의 회복과 성장을 담보하는 중요한 교육적 가치를 회복할 수 있을 것이다. 다른 교과과목들이 할 수 없는 문화예술교육, 즉 음악을 매개로한 자유롭고 창의적인 교육이 더 많이 이루어져야 할 목적과 목표가 분명해지는 순간이다. 지금 사회문화예술교육은 바로 그런 중요한 전환점에 서 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지금 사회문화예술교육현장의 교육 방법과 지향점이 그곳을 향하고 있는가? 아직도 많은 사회문화예술교육(음악)현장에서는 기존의 교육방법들이 답습되고 있으며 문화예술교육이 지향하는 삶의 변화시키고 삶을 담보해 내는 교육으로서의 그릇이 되고 있지 못 하다는게 안타까운 현실이다.

    

무엇이 문제인가? 
 숲에서 나오니 비로서 숲이 보였다는 말처럼 어쩌면 우리가 보고 있는 음악이라는 숲이 일개 나무에 지나지 않을수도 있다는 생각에 다다르면 다양한 상상력이 우리 눈 앞에 펼쳐질 수 있을 것이다. 도구로서의 음악, 음악을 위한 교육이 아닌 음악을 통한 교육이라는 측면으로 문화예술교육을 접근한다면 가능성은 훨씬 더 열리게 될 것이다. 굳이 통합과 통섭의 개념을 사용하지 않더래도 말이다

 

나가는 말
 모든 교육은 결국 삶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 가르치는 그 자체를 넘어서서 가르치고 배우는 그 행위를 통해 서로가 자신의 삶을 들여다보고 더 나은 삶으로의 변화를 가져갈 수 있다면 교육은 행복하고 즐거운 행위인 것이다. 문화예술교육의 핵심이 바로 거기에 있다고 본다. 음악을 도구 혹은 매개로 하여 배우는이들로 하여금 자신의 삶과 연결된 이야기로 이끌어 낼 수 있다면 새로운 삶의 목표와 가치를 서로가 발견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가르치고 배우는 그 행위를 통해 서로가 자신의 삶을 들여다보고 더 나은 삶으로의 변화를 가져갈 수 있다면 교육은 행복하고 즐거운 행위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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