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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은 콘텐츠가 아니라 삶의 터전이고,
그곳에는 시간이 흐르고 있고 사람이 살고 있습니다.
지경(퍼포먼스 반지하)
저는 인천 동구 끝자락에서 살고 있습니다. 오래전 하역노동자들이 산동네에 초가집을 지은 오래된 동네입니다. 타 지역에서 와서 반평생 가정을 꾸리고 살아온 이들이 이제는 이 지역의 노인들이 되어 동네를 지키고 있습니다. 그리고 18년 전 이곳에 처음 왔던 저도 어느새 이곳에서 세월이 쌓여가고 있습니다.
1) 송림동에 처음 왔던 이유는 ‘집’을 기록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사람들과 함께 동네를 기록하고, 삶의 이야기를 나누며 글로 남겼습니다.
2) 그다음에는 그 ‘집’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 만나고 싶어 인근 청소년시설에 취직했습니다. 청소년들을 모집하여 행사를 기획하고 문화교육을 운영하고, 매일같이 컴퓨터 하러 오는 초등 아이들과 밀당하느라 정신이 없었지요.
3) 그곳을 그만둔 후(기관 변경으로 전원해고당함)에는 재개발이 임박한 인근 동네의 빈집에 들어가 활동 공간을 구성하여 아이들과 동네 사진을 찍고, 그리고 글을 쓰고, 동네의 사람과 집을 만들며 사라져가는 동네의 이야기들을 나누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4) 동네가 일부 재개발되어 아파트가 들어선 후, 그곳을 벗어난 인근 지역에 청소년들이 올 수 있는 공간을 차리고, 매일매일 방과 후 지역문화교육터를 운영했습니다. 아이들은 대부분이 한 부모 가정 내지는 조손가정이었습니다. 그렇게 모으려고 한 게 아니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그렇네요.
5) 아이들을 열심히 보듬어도 다시 도루묵인 현실 때문에 그 아랫동네에 집과 마을공간을 하나 더 얻었습니다. 그리고 아이들이 다니는 길과 마을을 좀 더 환하게 단장하는 활동을 한동안 하며 마을의 공동체적 환경이 되어주는 노인 분들의 이야기들을 듣고 아이들과 함께 만나며, 마을의 이야기를 벽화와 미디어로 기념하는 활동을 했었습니다.
6) 마을에서 노동을 하고, 이웃이 되어 살아가다 보니 마을을 공동체적으로 유지시키는 힘은 ‘노동’이라는 걸 배웠습니다. 노동을 통해 관계가 생겨났고, 사람들은 마음이 생겼을 때 바로 몸을 움직여 나누었습니다. 우리도 그렇게 하다 보니, 생활과 몸에 자연스레 남게 되었습니다.
7) 우리 안에 생겨난 생활 노동 문화는 더 많은 사람들을 먹이고 만나게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활동이 확장되자 문화를 자본적 가치로 보상받으려는 사람들과의 사고의 간극을 해결하지는 못했습니다. 결국은 활동의 의미만으로는 버티지 못하고 그곳에서의 정주를 접었습니다.
8) 그즈음 참여자였던 엄마들과 조합으로 단체의 성격을 바꾸고, 오래도록 비어있는 작은 한옥집을 얻어 건너 동네로 이사했습니다. 돌고 돌다 보니 처음에 왔던 송림동의 옆 동네입니다. 집은 송림동으로 이사하였는데 그쯤엔 첫아이가 태어나 오 년간 두 아이를 낳고 길러야 했습니다. 아이들과 함께 마을 살이를 하며, 송림동을 다시 만나갔습니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동화로 그렸습니다.
9) 그리고 큰아이가 여섯 살 되어 송림동의 경매로 나온 허름한 집을 얻어 그곳을 손수 고쳐 마당이 있는 작은 집에서 살게 되었어요. 우리가 ‘집’을 기록하던 이곳에 십 오년 만에 우리에게도 ‘집’이 생겼지요. 그리고 함께 작업을 하고 생태활동을 하던 엄마들과 우리 아이들의 교육을 이야기하며 한옥집을 생활학교로 열었습니다.
10) 뉴스테이 재개발로 다시 단체의 공간을 잃고 생활학교도 함께 다른 지역으로 이전하였지만, 집이 이곳에 남아있어서 다시 우리는 동네의 재개발을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17년 전 활동하던 그곳에는 아파트가 들어서고, 그 아파트에 살고 있는 아이들이 내 아이의 학교친구가 되어 살아가고 있고, 우리는 이곳에 학부모로, 주민으로, 생활자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 모든 과정은 걸어서 30분이면 다닐 수 있는 범위에 있는 지역 내에서 열여덟 해 동안 있었던 이야기입니다. 처음에는 그저 관찰자로 시작해서, 누군가의 배려로 공간을 얻어 하다가, 그다음엔 세를 얻어 살다가 결국은 집을 얻어 살게 되기까지의 과정이기도 하였고, 20대 중반에서 40대 초반을 살아오며 그저 그때의 그 상황에서, 그 처지에서 할 수 있는 것과 해야 하는 것들을 찾아온 과정이기도 합니다. 활동이 단체의 지향을 담은 주제성을 강하게 갖고 있었을 때도 있었고, 동네의 문제가 중심이 되어 이를 해결해가기 위한 교육과 활동이 있었던 적도 있었습니다. 지역의 내용들을 교육이라는 영역 안에 모두 쏟아부으려는 시기도 있었고, 그것만으로는 되지 않으니 그 안에서 더 밀착해서 노동하며 지역민들의 이야기와 역사를 기록하거나 배워서 다음 세대에게 전달하던 시기도 있었습니다.
아이를 낳고 기르면서는 이 과정은 더 일상이 되어 펼쳐졌습니다. 아이를 통해서 마을을 우주로 만났던 시기도 있었지요. 잡초 하나, 돌멩이 하나를 지나치지 못하는 아이와 함께 마을을 누비며 활동으로 정해진 관계가 아닌 그저 삶으로만 만나게 되는 다양한 관계도 생겨나고, 육아와 생활 노동을 교육의 중심영역으로 다시 사고해가기도 하고, 교육을 나가는 지역아동센터의 아이들과 중첩된 정체성으로(아는 아이의 엄마이면서, 동네 아줌마이기도 하고, 아는 선생님이기도 한)만나는 경험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저와 처음부터 이 모든 과정을 함께 해온 아이아빠는 요즘 동네의 재개발 문제로 인하여 마을의 아저씨, 할아버지들과 모임을 하고 있고요. 이번 주에는 아이의 학교에서 요청하는 마을교육 자문과 아이들 교실 앞 복도에 나무로 책 읽는 공간을 만드는 작업도 도와주어야 합니다.
‘지역특성화 문화예술교육’이 어떻게 생겨났는지는 잘 모릅니다. ‘지역’이라는 말이 문화예술교육에서 회자되기 전부터 마을활동과 문화교육을 해왔던 입장에서 ‘지역’이라는 말이 중심이 되면서 과연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그 변화가 지역에 선 기능을 했는지 의문이 들기는 합니다. 그저 나에게 처음의 출발은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이 문화적 소통을 통해 공동의 문화를 형성하고, 그 문화가 그들이 살아가는 현실의 땅에 어떤 변화를 일으키지 않을까 하는, 그 변화가 우리가 문제라 느끼는 것들을 조금씩 스스로 해결해 갈 수 있는 힘이 되어 그만큼의 세상이 변화되지 않을까 하는 꿈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아이들의 교육을 하다 보니 아이들 교육만으로는 바뀌지 않는 지역의 환경과 어른들의 삶 때문에 지역 환경을 변화시켜가는 작업과 공동체적 삶의 가치를 살려가는 미디어활동과 성인교육과 엄마모임을 시작하게 되었지요. 이와 함께 20대였던 나의 나이도 30대, 40대가 넘어가며 만나가는 사람들의 삶과 함께 생애과정을 겪어가고, 엄마들과 만나 아이들의 육아와 교육, 생태적 실천에 대한 이야기가 주를 이루면서 삶을 이루는 근본적인 생활노동의 의미를 되살리는 생활작업으로 이어져왔습니다.
그때 그때의 바람으로 관계 맺어왔던 중학생, 고등학생들은 어느덧 함께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이 되어 다시 만나고, 십 년여 전 함께 이야기를 나누었던 할머님들은 돌아가시고 그 이야기들은 우리의 삶에 몸으로 각인되었습니다. 누구보다도 ‘먼저’ 움직였던 사람들, 먼저 나누었던 사람들의 그 이야기들이 이제 우리의 삶이 되어 생활인문학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참여자로 왔던 엄마들은 십 년이 지나 이제는 참여자가 아닌 생활교육운동의 중심에서, 혹은 자신의 특기를 살려 지역에서 함께 활동하고 있습니다. 이들이 함께 열었던 생활학교는 이제 그다음의 사람들을 위한 교육의 산실이 되어 다양한 연령이 함께 배우고 배운 것을 실천하는 노동으로 다시 일상에서, 현장에서 교육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지난 이 년간 광주문화예술교육의 심사를 진행하면서 짧은 시간 동안 여러 단체들의 활동을 잠시 엿보는 시간을 가졌었습니다. 그것도 실제로 본 것도 아니고 종이상으로만 말이죠. 제가 있는 이곳에서는 어떤 ‘정치적 성향’을 드러내는 것이 늘 경계를 수반하는데 비해, 광주에 갔을 때에는 그런 부담감이 없이 있을 수 있는 편안함이 있어서 참으로 생경했습니다.
너무나 잠깐 보았던 광주문화예술교육-지역특성화 기획서라 그저 몇 가지의 궁금증을 갖고 보았던 것만 말씀드리려 합니다.
하나는, 교육을 운영하는 주체가 ‘어디에 서있는가’입니다. 이는 ‘무엇을 위해 이 교육을 하려고 하는가’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이는 교육의 주체가 과거에 있는가, 현재에 있는가, 일어나지 않은 미래에 있는가에 대한 것이기도 하고, 삶의 맥락에서 어떤 연유로 그곳에 서있는가에 대한 질문이 될 수도 있습니다. 자신이 서있는 그곳의 맥락이 무엇을 하려는지를 분명히 하고, 그것이 교육과 활동으로 구체화되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는, 교육을 운영하는 주체가 ‘교육의 대상을 어떻게 이해하는가’입니다. 만나고자 하는 교육대상에 대한 이해의 정도, 단순 교육의 대상으로 바라보고 있는지, 아니라면 몇 해 정도 만날 관계로 보고 있는지, 등 대상과 나와의 삶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하고 있는지 궁금했습니다. 단체의 입장에서는 교육을 하고 있지만, 뒤집어보면 교육을 통해 만나러 와주는 사람들과 소통을 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교육을 받으러 다니는 사람들은 다양한 교육에 참여하여 만나고 헤어지며 교육공동체를 살아있게 합니다. 이렇듯 교육자와 피교육자와의 관계는 유기적입니다. 그의 삶이 나의 삶에 영향을 미칠 것이고, 만나는 시간이 지속될수록 공통된 삶의 영역이 늘어가기 때문입니다. 또한 특정 대상이 있는 경우에는 그의 삶의 방식 혹은 생활과 관련한 내용들을 교육에서 어떻게 반영하고 있는가 - 교육의 대상을 생활과 생애의 관점으로 이해하는 것은 교육의 내용과 활동을 보다 자율적이고 역동적으로 만들어 줄 수 있습니다.
세 번째는, 활동을 통해 이루고자 하는 궁극적인 지향이 무엇인가 하는 점입니다. 프로그램 하나로 사실 생계가 어려운 활동 속에서, 여러 가지를 병행해가며 하는 다른 활동들과 어떤 관계를 맺어가며 활동해가고 있는지, 그리고 이 모든 활동을 통해 이루고자 하는 이상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입니다. 어떤 특정지역을 주제로 한 활동은 지역을 변화시키고자 하는 것인지, 아니면 그 지역성 자체를 드러내어 이루고자 하는 기대는 무엇인지, 사업취지에는 지역의 문제와 지역의 변화를 이야기하면서 그러한 생각들을 교육 및 교육 외 활동에 어떻게 반영해갈 것인지 궁금해지는 기획서들이 더러 있었습니다.
우리는 모두 처음의 길을 갑니다. 그래서 사실 이 길을 가야 다음의 길이 보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또한 이 길을 가다가 갑자기 다른 길을 갈 수는 없습니다. 같은 길을 계속 왔다 갔다 하는 것도 큰 의미는 없어 보이고요. 하나의 길을 왔다면 그 길을 오는 동안 보았던 것, 만났던 것, 생각했던 것들을 잘 기록하여 다음의 길을 갈 때 좀 더 풍요로운 길을 갈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지경
퍼포먼스 반지하 공동설립, 활동가
생활학교 <언덕을 오르는 바닷길> 운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