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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을 통한 트라우마치료
이미경(광주트라우마센터 음악치료 전문가)
언제부터인지 우리사회에서 ‘트라우마’라는 단어가 익숙하게 사용되어지고 있다. 살면서 누구나 한번쯤 겪을 수 있는 작은 것에서부터 일생을 벗어나지 못하는 아픔을 안고 살아가는 것까지 어쩌면 사는 것 자체가 트라우마의 생산이 아닌가 생각할 때가 있다.
트라우마(trauma)는 의학용어로는 '외상(外傷)', 심리학에서는 '정신적인 외상'을 말한다. 과거에 겪은 고통이나 정신적인 충격 때문에 유사한 상황이 나타났을 때 불안해지는 증상이 나타난다. 음악치료를 하면서 집단성폭행, 따돌림, 폭행등의 피해로 정신적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는 사람들을 만나면서 일시적으로 봉합되었다가 다시 무너져 내리는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2012년 광주에 국가폭력에 의한 트라우마를 치료하기 위한 센터가 생겼다는 소식을 접하고 음악이 많은 도움이 될텐데 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부센터장과 치료팀장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면서 장소를 물색하고 원예치료, 미술치료, 몸동작치료등을 거친 분들과 시작하기로 하였다. 센터 건물의 특성상 소리를 내는 것이 원활하지 않다고 하여 근처 무진교회에서 진행하게 되었다. 광주에서 나고 자라 80년대에 대학을 나온 사람으로 오월민주화운동에 대해 어느정도 알고 있다고 자부해 왔는데 내담자선생님들을 만나 음악치유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진실로 부끄러움을 느꼈다.
장단에 맞춰 노래하는 것, 크게 웃는 것조차도 죄스럽게 생각하고 살아온 삶 속에서 속시원하게 소리를 내고 표현하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를 알게되었다. 먼저 간 사람을 생각하며 작품을 만들고 서로 나누는 시간들은 이루 말할 수 없는 행복감을 주었다고 한다. 가슴속 깊은 곳에 간직한 이야기들을 노래로 풀어내면서 내 인생에 이런날이 올 줄 몰랐다고 하신다. 진심으로 그 분들의 마음을 이해하고 공감해주면서 어느 새 절반의 또 외치면서 가슴을 치셨다. 자식을 가슴에 묻고 남편을 먼저 보내고 진실을 위해 싸워온 38년의 세월이 무상하지만 혈육의 정보다 더 끈끈한 가족애를 가진 분들은 서로를 위로 하면서 트라우마를 이겨내고성공이 이루어졌다. ‘솔아솔아 푸르른 솔아’를 배우면서 한없이 흘러내리는 눈물을 주체하기 어려웠고 ‘님을 위한 행진곡’을 마음 놓고 부르지 못하는 한 때문에 목이 터져라 외치고 계신다.
1년 동안 다양한 문화예술 프로그램을 통해 치유받고 행복해 하시던 때에 세월호가 침몰하였다. 일반인들은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함께 침몰하여 지켜보는 이들을 안타깝게 하였다. 약을 한주먹씩 털어 넣으시면서도 진도로 달려가 유족을 위로하고 보듬어 주신다. 세월호 유가족들이 5.18전야제에 함께하여 ‘천개의 바람이 되어’를 노래할 때 그 누구 보다 아픈 마음을 이해하고 가슴으로 하나가 되었다.
이제는 80의 노구를 이끌고 나의 고통을 음악으로 승화시킬 수 있는 방법을 찾아 다니고 있다. 언론에 너무 많이 노출되어 대인기피증까지 앓고 있던 정00선생님은 5.18전야제에서 아들의 사진을 바라보며 자심감을 가지고 노래하셨다. 이제는 사람들 앞에 당당히 나서서 노래도 하고 이겨내고자 하신다. UN 고문생존자 지원의날, 세계인권선언의 날, 촛불집회, 세월호 유족들을 위로하는 자리에서 손을 맞잡고 음악으로 희망을 노래한다. 올해에는 전통문화관에서 열린 오월위로음악제에서 무등산의 정기를 느끼며 시민과 하나 되어 노래를 부르고 기뻐하시는 모습들이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다고 한다. 시청에는 데모만 하러 다니시는 줄 알았던 분들이 가슴으로 부르는 노래로 800여 공무원들을 감동시켰다.
지난 25일 UN 고문생존자 지원의날을 맞아 김근태치유센터 ‘숨’이 주최하는 기념행사에 오월소나무합창단이 참여하였다. 참으로 다양한 트라우마를 가진 많은 사람들이 모여 서로를 위로하고 격려하는 자리였다. 첫 번째 공연팀으로 나선 오월소나무합창단은 무대에 서는 것만으로도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안겨주었EK. 2013년 처음 공연할 때 의자를 2개 사용하였는데 세월이 흐르면서 의자를 8개 사용하게 되었다. 모든 분들이 의자에 앉을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되어도 의지를 가지고 사명감을 가지고 광주정신을 노래로 알리고자 한다.
감탄을 줄 수 있는 음악보다 감동을 주는 음악으로 아픈 사람들을 위로하고 힘을 싫어주는 귀한 분들이기에 모든 사람들이 한마음으로 응원하고 박수쳐주었다. ‘광야에서’, ‘솔아솔아 푸르른 솔아’를 부르면서 눈물을 흘리는 분이 계시고 ‘님을 위한 행진곡’을 손을 맞잡고 부를때엔 관객들이 모두 기립하여 함께 노래해주었다. 군부독재에 맞서고 진상규명을 위해 뛰어다니면서 몸은 병들고 지쳤지만 정신력 하나로 버텨 오신 분들은 노래로 하나 되는 자리에서 더 이상 죽어도 여한이 없다고 한다. 김근태치유센터에서 함께 치유받고 있는 ‘길음판소리’팀의 공연 또한 감동이었다. 자신들의 생각을 가사로 만들어 부르는 창작 판소리를 통해 소통하고 치유 받고 있었다. 고통의 세월을 이제는 문화예술로 풀어내고 더 힘든 곳을 다니면서 힘이 되어주고 있다.
오월유공자 고김영철선생님의 따님인 김연우님은 한국무용을 통해 자신의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아름다운 아리랑과 함께 춤을 추었다. 말로다 할 수 없는 정신적, 신체적 고통은 언어적, 비언어적 표현인 문화예술을 통해 승화되고 있다. 자존감의 추락으로 사람들과 원만한 관계를 갖지 못하던 사람들이 자신이 만들어낸 작품을 전시하고 공연을 하면서 서로의 고통을 공감하고 행복해 지고 있다. 김00선생님은 자신의 이야기로 만들어낸 연극을 보면서 처음으로 내가 잘 살아왔구나 생각했다고 한다. 내가 직접 무대에 서지는 못하지만 내 이야기를 들어주고 있는 것에 만족감을 가지고 이제야 내 남편의 한을 풀 수 있는 것에 감사한다고 하였다.
다양한 문화예술 활동은 이렇게 트라우마를 가진 사람들에게 매우 용이하게 접근이 된다. 말 한마디 안하고 자해를 일삼는 정서.품행장애 청소년이 그림으로 악기연주로 연극으로 자신의 삶을 변화시키는 경우가 많다. 자신이 알지 못했던 자신의 능력을 발견하고 동기유발이 되어 제2의 인생을 계획하고 열심히 살아가는 청소년들에게 보다 많은 기회가 제공되는 것이 필요하겠다. 집단 프로그램을 통해 집단의식을 고취하고 하나가 되는 경험은 세상에서 고립되어 자기 안에 갖혀 있고 트라우마를 이겨내지 못하는 많은 이에게 도움이 될 것이다.
또한 문화부적응과 언어능력 저하로 올바른 의사소통을 하지 못해 스트레스에 노출되어 있는 이주여성들에게도 문화예술은 의미 있는 작업이다. 노래를 통해 언어와 문화를 이해하고 아이들과 소통할 수 있는 시간이 즐겁고 행복하다고 한다.
트라우마로 인해 정상적인 대인관계와 일상생활이 어려운 많은 이들에게 문화예술 프로그램을 권하고 싶다. 스스로 통찰하고 자신을 이겨 낼 수 있는 힘이 예술과 함께 승화되어 깊은 아픔에서 깨어나게 됨을 알게 될 것이다. 더욱 중요한 것은 함께하는 것이다. 너, 나, 우리 함께하는 삶이 아픈이들에게는 가장 큰 치료제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