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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청자는 딱 두명
조을정 / 리드앤씽(주) 대표
장애 · 비장애 어린이가 함께하는 기획은, 내 현실의 이야기
올해 들어 가장 더웠던 유월의 어느 날, 문화예술교육 기획자이자 강사로서 그동안의 이야기를 털어놓기 위해 책상 앞에 앉았다. 이름하여 ‘뜬구름 편지’. 진짜 뜬구름 잡는 이야기만 하다가 끝날 수도 있지만, 어딘가에는 고개를 끄덕일 누군가가 있지 않을까 기대하며 편지를 쓴다.
사 년 전, ‘LH 소셜벤처’에 선정되어 발달 장애 아동을 위한 통합 예술놀이 키트를 개발하면서 ‘리드앤씽’이라는 이름으로 창업했다. 재작년에는 장애·비장애 어린이가 함께하는 통합예술교육을 하겠다는 목표로 ‘토요문화학교’ 인큐베이팅에 참여했고 올해 ‘예술시민배움터’까지 하고 있으니 딱 삼 년 차 예술단체다.
2023년 예술시민배움터 《작가님이 오십니다》에서 '베리어 프리'를 주제로 어린이들과 동요와 그림책을 만들었다
토요문화학교에서는 장애·비장애 어린이가 느림과 빠름에 상관없이 서로의 속도를 존중하며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하자는 주제로 동요 그림책을 만들었다. 다음 해엔 차이를 존중하고 차별을 없애자는 슬로건 아래 배리어프리를 주제로 동요 그림책을 엮었다. 그리고 올해는 장애 형제를 둔 비장애 아이들의 이야기를 뮤지컬로 만들어보려고 했다. 집에서 이 아이들은 ‘엄마에게 슬픔을 보태지 않아야 하고 뭐든지 잘해야만 하는 덜 아픈 손가락’으로 존재하기 때문에 그들이 주인공이 되길 바랐다, 문화예술을 통해서.
나는 기획을 할 때마다 ‘장애’라는 두 글자를 빼놓지 않는다. 바로 내가 장애 어린이의 엄마이기 때문이다. 아들은 경증이지만 태어나면서부터 지금까지 재활치료를 하며 아픈 아이들 속에 있어야 했고, 장애 있는 아이들의 가정이 어떤 모습인지 너무나 잘 알기 때문이다. 나의 기획은 모두 내 이야기에서 시작한 것이다. 쌍둥이 아들들에게 필요한 것들을 떠올리며 계획하곤 했다. 작년까지는 장애가 있는 둘째 아들을 위해서, 학년이 높아진 올해는 첫째 아들의 존재가 크게 다가왔기에 그 애 이야기를 기획서에 썼다. 내 기획은 현실이다. 막연히 ‘그럴 것이다’가 아니라, 직접 보고 겪은 일에서 출발했으니 오늘을 사는 누군가의 진짜 이야기가 될 수 있으리라 믿었다.
좋은 기획이라고 칭찬받았으나, 참여자 모집에 실패
올해 《‘그냥’의 나를 찾습니다》를 기획해 선정되었을 때까지는 신이 났다. 왜? 칭찬을 많이 받았으니까! “꼭 필요한 좋은 프로그램”이라는 말을 들을 때까지만 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을 줄 알았다. 하지만 오산이었다.
2024년 예술시민배움터 《‘그냥’의 나를 찾습니다》 포스터
비장애 형제·자매를 만나기 위해 재활치료를 하는 광주 신가병원과 희망병원에 찾아가 치료사 선생님들을 만나 홍보자료를 전하고 포스터를 붙였고 서구·동구·광산구 장애인 복지관에도 갔다. 사설 치료센터 일곱 군데에도 포스터와 안내지를 놔두었고 광주 초등학교 특수교육 선생님들의 커뮤니티에도 알렸다. 협력 기관이자 교육 장소인 이야기꽃 도서관과 선운지구 커뮤니티에도 당연히 말했다. 느린 아이를 키우는 부모들의 온라인 카페에 글을 올리고 싶었지만, 포스터 하나만 게시해도 삼십만 원을 달라기에 한발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그 어떤 때보다 많이 알렸건만, 시작 이틀 전까지 딱 두 명 신청했다. (정원은 열다섯 명) 그것도 우리 아이의 재활 동기 어머니들에게 빌고 빌어서 말이다. 무엇이 잘못되었을까. ‘아니…. 필요한 일이고 좋은 프로그램이라면서 왜 신청을 안 하지. 이게 뭐지?’ 싶었다. 얼마 후 부모들의 진짜 마음을 들을 수 있었다.
첫 번째 이유. “장애 아이를 돌보는 것만으로도 벅차다. 토요일까지 치료 일정이 잡혀있기 때문에 비장애 자녀를 위해 십 주 동안 시간 맞춰 데려다주고 데리고 오는 일은 불가능하다.” 이래서 복지관에서도 하루짜리 소풍을 다녀오는가 보다. 그리고 두 번째 이유. “좋은 프로그램인 건 알지만 마주하기가 두렵다. 그동안 애써 묻어놓았던 진실을 꺼낸 후의 일상이 두렵다. 후폭풍을 감당할 에너지가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