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이하는 사람들 ‘2015 흥놀이 프로젝트’ No.1 십분 (00:10)
글 - 사지혜

“ 십분만 기다려줘” “ 딱! 십분만 더 있었더라면”
일상에서 당신에게 십분은 어떤 의미인가? 그냥 지나쳐 갈 수 있는 십분! 이 순간에 대한 고찰을 놓치지 않은 희곡 수업이 있다. 이 곳에서 십분은 한 편의 작품이 되며 배우들의 인생을 엿볼 수 있는 삶의 한 단면이 되기도 한다. 그냥 지나쳐가는 십 분이 아닌 마음을 울리고 공감을 잇고 사람과 사람 사이를 엮는 십 분이 된다.
지난 9월 10일, 문화예술작은도서관 2층에서 매주 목요일마다 수업 중인 ‘흥놀이 프로젝트 no.1 십분’ 놀이하는 사람들을 만나고 왔다.
“앙이고오 으짝꼬오 - 어따, 바윗돌같은 냥반아! 꽁꽁 맥혀 말이 들어갈 틈도 없는 냥반아.
그래, 그래 그렇게도 사람 속을 몰라줘? 이고오- 꽁꽁 맥힌 냥반 같으니”
그래도 저것이 주둥이를 놀려? 엉? 니가 참말...
이 곰같은 놈아. 뭇둑을 터진다 터져! 다 터지게 된단 말이여.
문화예술 작은 도서관 2층에 위치한 ‘흥놀이 프로젝트’ 교실 안으로 들어섰다. 교실문과 창문이 활짝 열려져 있다. 열어 놓은 창문 사이로 제법 선선한 가을바람이 불어온다. 놀이하는 사람들은 동그랗게 앉아 초가을의 바람을 맞으며 희곡 대본을 리딩 중이다. 선생님이 나눠주신 프린트의 앞 페이지를 살짝 펼쳐 보았다. 천승세의 ‘봇물은 터졌어라우’ 라는 희곡 작품이다. 작품의 장소가 전라남도에 있는 어느 농촌으로 되어 있다. 그래서인지 대본을 리딩 중인 놀이하는 사람들의 대사가 구수 허다. “간단히 리딩해 볼게요” 하고 시작된 수업인데 학생들은 이미 자신의 배역에 몰입되어 있다. 내 맘도 몰라주는 곰 같은 남자 때문에 속이 타는지 꼼실네 역을 맡은 학생의 목소리가 날카롭다. 돈술 역을 맡은 학생은 대사를 칠 때마다 몸이 움찔 거린다. 분하고 억울해서 당장이라도 손이 올라갈 것 같은 자세다. 처음 읽는 사투리 대사체임에도 불구하고 상대 배역과의 호흡이 극을 맛깔나게 살려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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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에 학생들이 직접 쓴 짧은 희곡 작품도 즉석에서 올려졌다. ‘가족’이라는 큰 틀을 정하고 네 명의 학생이 각자 가족 구성원역을 맡아 대사를 썼다. 이 가족은 아버지, 어머니, 큰아들과 딸로 구성된 4인 가족이다.
아버지
“가족을 위해 삼십년을 일했는데, 그런 나보고 삼식이라고”
아버지는 대기업 금융회사에서 일하다 세 달 전에 퇴직했다. 삼십년 넘게 가족들을 위해 일해 왔다. 직장에서는 실력을 인정받은 부장님 이였고 연봉도 괜찮았다. 따르는 직원들도 많았으리라. 한눈팔지 않고 직장생활을 한 덕분에 서울에 38평대 아파트를 장만했다. 결혼 안한 아들, 딸이 있지만 대학 교육을 시켜놨고 모두 직장도 잡았다. 이제 어울리는 짝을 만나 결혼만 시키면 될 일이다. 그런 그가 세 달 전 퇴직을 했다. 퇴직을 하고 나니, 마땅히 갈 곳이 없다. 회사 밖에서 만날 친구도 없다. 사실 소속감이 없어지자 누군가를 만나고 싶지도 나가고 싶지도 않다. 하루 종일 집에만 있는 그에게 아내는 제발 좀! 나가라고 한다. 아이들도 왠지 평소보다 늦게 들어오는 꼴이 아버지의 존재가 부담스러운 듯하다. 집에만 있다 보니 배는 왜 자꾸 고파지는지. 부엌 주위를 어슬렁거리는 그를 보고 아내가 버럭 소리를 지른다. 삼십년 동안 일만 한 그를 보고 ‘삼식이’란다. 퇴직 세 달 만에 삼식이가 된 아버지는 서글프다. 인생의 낙이 없다.
어머니
“나는 일하면서 애들까지 키웠어. 이젠 내 삶을 살아야겠어”
어머니는 초등학교 교사 일을 하면서 아이들을 살뜰히 보살폈다. 덕분에 아들도 딸도 좋은 대학을 나와 좋은 직장에 취직했다. 젊은 시절 남편은 집안일은 도통 모른 채 해왔다. 그는 하루가 멀다 하고 새벽녘에 들어 왔다. 이 모든 게 승진을 위한 길이며 가족을 위해 길이라고 말했다. 당연히 아이들 교육과 집안일은 모두 어머니의 몫 이였다. 똑같이 돈을 벌지만 집안일은 똑같이 나누어지지 않았다. 얼마 전 어머니도 퇴직을 했다. 학교생활을 열심히 했기에 초등학교 교감 선생님으로 퇴직을 했다. 퇴직 후 제 2의 인생이 펼쳐졌다. 그동안 너무 바빠서 하지 못했던 취미 생활을 하기에도 시간은 부족하다. 나는 이야기 할머니 과정을 배워 어린이집에 봉사활동을 나가고 있다. 색소폰 연주도 배우고 있고 틈틈이 공예도 배운다. 친구들과 만나 맛집을 다니기를 좋아한다. 아이들도 다 커서 더 이상 나의 손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매달 나오는 연금으로 생활은 풍족하다. 단 하나, 눈에 가시라면 세 달 전 퇴직한 영감이다. 이 인간은 세상 돌아가는 이치도 모른 채, 나에게 세끼를 차려 달라고 한다. 내가 늦게 오는 날이면 거실을 일부러 어두컴컴하게 해 놓고 기다렸다는 듯이 “시간이 몇 시냐?”고 호통질이다. 젊은 시절 매일같이 새벽에 들어오던 지 생각을 전혀 못하나보다. 망할 영감! 퇴직 후 자꾸 내 뒤만 따라다니려고 한다.
아들
“남들이 모두 부러워하는 대기업에 들어왔는데 난 행복하지 않아”
이 집의 아들은 좋은 대학을 졸업 하고 대기업에 입사했다. 가족들은 아들을 자랑스러워했다. 집안의 장손이자 자랑 이였다. 그런 큰 아들이 매일같이 술을 먹고 들어온다. 일이 맞지 않는다고 한다. 회사 생활이 힘들다고 한다. 지금이라도 자신의 꿈을 위해 회사를 그만 두겠다 한다. 카메라를 한 대 사서 세계를 떠돌아다니고 싶다고 한다. 삼십년 동안 가족을 위해 일한 아버지는 적성을 찾아 회사를 그만 두겠다는 아들의 말이 이해가 되질 않는다.
딸
“가족이라도 각자의 행복이 있는 거야”
이집의 딸은 애교가 많고 활발하다. 가족이 모일 때면 딸은 언제나 분위기 메이커가 되어 주었다. 자기 일을 똑 소리 나게 해 왔기 때문에 부모님은 딸에 대한 걱정이 없었다. 다만 아버지 퇴직 전에 결혼을 시키고 싶었으나 딸은 결혼을 하지 않고 자유롭게 혼자 살고 싶어 한다. 그냥 하는 말이겠지 넘겼는데 갈수록 꼬락서니가 심상치 않다.

네 명의 학생들이 만든 4인 가족의 캐릭터를 한 데 모았다. 따로 만든 캐릭터가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한 편의 희곡으로 완성되었다. 개인의 삶이 담겨진 캐릭터는 페이퍼 속에만 있지 않다. 생생한 성격이 살아 있는 한 사람, 한 장면으로 존재 한다. 이렇게 만들어진 대본으로 즉흥 연기가 시작되었다. 교실은 무대가 된다. 전형적인 틀이 없다. 내가 만든 캐릭터를 대변하듯 참가자들의 대사가 터져 나온다. 가족들로부터 공격적인 말을 듣던 아버지 역할의 참가자가 “어유 답답해” 라고 가슴을 친다. 아버지의 입장이 그녀에게 이입된 순간이다.
수업은 시종일관 자유롭게 진행되었다. 특별한 형식이 없으니, 참가자들이 이야기를 하면서 틀을 만들어 갔다. 그들의 이야기는 쏟아져 나왔고 선생님은 그것들 중 쓸 만한 것들을 슬쩍모아주었다. 그러자 십 분짜리! 한 편의 인생 이야기가 만들어졌다.
놀이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다가오는 12월, 빛고을 아트센터 소극장에서 연극으로 올려 질 예정이다. 참여자들이 직접 대본도 쓰고 연기도 한다. 전경화 예술강사는 무대 위에 올려 지는 순간 비로소 그들의 드라마가 완성될 것이라 했다. 20대에서 60대의 참가자들이 함께 만들어가는 드라마는 어떤 내용일지, 어떤 삶을 담아낼지 궁금해진다.
전경화 예술강사 인터뷰
“관습에 얽매이지 않고 숨겨진 ‘흥’을 끌어내는 수업을 만들고 싶다.
적어도 이 수업에서만큼은 본인의 감정을 솔직하게
끄집어내고 소통하고 치유할 수 있는 시간이 되기를 바란다.”
Q: ‘흥놀이’ 제목부터 심상치 않다. 제목이 어떻게 지어졌는지 궁금하다.
전경화: 우리 민족은 ‘한 오백년’을 부르다가 ‘태평가’를 부르는 민족이다. ‘한’이라는 조상님들로부터 물려받은 유전자가 있다. 이것은 ‘한’이 되었다가 ‘흥’이 되기도 한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이런 유전적 요소를 가지고 일상에서 ‘흥’을 찾는 프로그램을 만들고 싶었다.
Q: 희곡작품을 감상하고 읽어보는데 그치지 않고 학생들이 직접 희곡을 쓰고 연기를 하고 무대에 오르는 수업이 흥미롭다. 어떤 기획의도를 가지고 만들었는가?
전경화: 수상한 세상에서 점점 퇴화되어가는 인간, 그 안에서 우리는 우리가 만든 제도와 틀에 갇혀 산다. 마음의 감기를 앓고 있는 사람들이 많고 실상을 뛰어 넘는 일들이 벌어진다. 이런 순간, 예술이 우리에게 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그 무엇에 대한 고민이 프로그램을 기획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Q: 마지막 수업 때 작품 전시회처럼 학생들이 직접 쓴 작품을 공연장에서 올린다고 했다. 어떤 식으로 진행될 예정인가?
전경화: 각각의 파트가 나누어져 있지만 창작극과 퍼포먼스의 결합이 된 공연을 올릴 예정이다. 중요한 것은 그 과정에서 최대한 자유롭고 창조적으로 만들어 가려고 한다. 부제를 ‘십분’이라고 한 것은 인생을 길게 봤을 때 아쉽거나 미련이 남거나 후회스러운 것들을 지금 이 순간 무대 위에서 끄집어내는 것을 목적으로 하기 때문이다. 공연하는 그 순간에 작품이 완성될 것이다.
Q: 앞으로 어떤 계획이 있는가?
전경화: ‘문화집단 열혈지구’는 문학, 연극, 영화, 사진, 미술, 미디어아트 등등 각 분야의 예술가들이 콜라보 작업을 하거나 협력 프로젝트를 함께 한다. 이러한 연대의식을 시민들과 함께 할 수 있는 문화예술교육 기획과 현장에서의 강의를 통해 나누고 싶다. 소외받는 계층이 엄연히 있다. 그런 대상자들이 늘 관심사다. 또한 문화민주주의의 이념을 바탕으로 다수의 대중이 예술 창작에 직접 참여하여 예술가와의 상호교류(interaction)를 통한 쌍방형 소통을 지향하는 대안예술운동인 커뮤니티 아트를 놓고 싶진 않다. 고급예술, 엘리트주의라는 우월주의를 벗어나 예술의 일상화가 모토다. 자본주의에서 계층의 양극화가 극대화되고 있다. 삶이 힘들다. 이런 힘든 삶, 블랙코미디겠지만, 웃픈 현실에도 “놀이하는 사람”들이 되어 한도 흥나게 치환시켰으면 좋겠다. 그 화두를 잘 풀어보는 게 앞으로의 가야할 방향이 아닐까 싶다.
현장 인터뷰

<박형자 참가자>
Q: 리딩시간에 돈술이 역이 인상적 이였다. 전에 연기해 본 경험이 있는가?
박형자: 전혀 없다. 이런 수업을 접할 기회조차 없었다. ‘가족’이라는 우리가 직접 쓴 희곡의 어머니 역할이 나의 이야기와 비슷한 부분이 많다. 실제로 얼마 전에 교감으로 학교를 퇴직했다. 퇴직 후 그동안 배우고 싶었던 것들을 배우고 있다. ‘흥놀이 프로젝트’도 인터넷에서 보고 신청하게 되었다.
Q: 직접 쓴 글을 본인이 연기해 보니 어떤가?
박형자: 관객이 돼서 다른 사람 역할을 볼 때는 그 사람의 감정이 느껴진다. 그런데 그 무엇보다 나의 감정을 읽고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이 되어서 좋다. 대사처럼 뱉고 나면 후련해진다.
<이소우 참가자>
Q: 꼼실네 역할을 맡았다. 목소리 톤뿐만 아니라 얼굴 표정까지 연기하더라. 나이가 짐작이 가지 않는다. 연세가 어떻게 되는지 물어봐도 되나? 이 프로그램은 어떻게 참여하게 되었나?
이소우: 딸이 서울에 있는 한예종 연기과에 다니고 있다. 나의 어릴 적 꿈도 연기자였다. 딸의 모습을 보면서 대리만족도 느꼈지만 그것으로 부족했다. “나도 해보고 싶다”라는 열망이 컸다. 우연한 기회에 무대에 오를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부족한 부분이 많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지만 무대 위에서 관객과 소통할 수 있는 연극의 매력에 푹 빠지게 되었다. 오십이 넘은 나이지만 여전히 꿈이 많다. 조금씩 연습해 가면서 꿈을 이루고 싶다. 딸도 나를 응원해 주고 있다.
<기효선 참가자>
Q: 혼자 퍼포먼스하는 장면이 무척 인상적이였다.
즉흥적으로 춤을 추었다. 사람들이 많이 지켜보고 있는데 어색하지 않았나?
기효선: 선생님 말씀대로 이 수업에서만큼은 틀을 깨고 싶다. 그냥 마음가는대로 몸을 움직였다. 춤추는 것을 좋아한다. 집에 있을 때 혼자 음악을 틀어 놓고 추기도 한다. 사람들 앞이라 민망하기도 했지만 또 언제 이렇게 해 보겠는가? 일반인이 무대에 설 수 있는 기회가 얼마나 있겠는가? 무대 위에서 내 모습이 어떨지 나도 궁금하다.
Q: 흥놀이 프로젝트 놀이하는 사람들 중 가장 어리다. 20대부터 60대까지 수강생 연령층이 매우 넓다. 어르신들과 수업 하는데 어렵진 않은가?
기효선: 오히려 어르신들과의 대화 속에서 삶의 지혜를 배워간다. 어르신들 이야기 나누는 것만 듣고 있어도 배워 가는 것이 많다. 마치 드라마 한편을 보는 듯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