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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을 닮은 식물은 무엇인가요
지금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지 묻고픈 사오십 대에게
글 : 오솔비 / SOAP 스튜디오 작가
엄마와의 산책은 식물로 시작해 식물로 끝난다. 항상 그 자리에 있었겠지만 내가 무심히 지나쳤던 풀과 꽃들의 이름을 알고 계신다. 걸음을 멈추고 향을 맡아보며 그녀의 주름진 얼굴에는 소녀처럼 수줍은 미소가 번진다. 흙을 고르고, 씨를 심고, 싹을 틔우고, 꽃을 피우고, 향기를 내는 식물의 시간은 마치 인간의 삶 같기도 하다. 땅속에서 조용히 견디는 시간, 천천히 가지를 뻗는 시간, 꽃을 피우는 순간의 기쁨까지. 그 모든 과정이 엄마의 삶이었을까. 프로필 사진이 꽃인 이유도 알 것만 같다.
자연을 더 가까이 느끼는 7월, 생애 전환기를 맞이한 중장년 · 노년 여성들이 〈두려움을 묻어주는, 여기는 식물 그림 학교입니다〉(이하 식물 그림 학교)라는 문화예술교육을 하고 있다. 긴 세월 동안 무언가를 심고, 키워, 세상에 날려 보낸 이들이 두려움을 묻고 다시 싹을 틔운다. ‘식물 그림 학교’를 기획 운영하는 작가, ‘더일러스트앤아트’ 최지연 대표를 만났다. 자신을 생애 전환기를 지나는 사람이라고 소개한 그녀의 이야기를 들었다.

생애 전환기를 맞이한 중장년 · 노년 여성들을 대상으로 〈두려움을 묻어주는, 여기는 식물 그림 학교입니다〉를 운영하고 있는 최지연 대표 ⓒ청춘기획라이브온
25년여 동안 작가로 활동하면서 교육과 여러 시도를 했다. 보태니컬 아트를 시작한 계기는.
처음에는 주로 작가 활동과 그림 기법 위주의 강의를 했어요. 그러다 어느 날, 한 워크숍에 참석하게 되었죠. 전문가 입장에서 보기에는 저렴한 미술 재료로 자화상을 그리는 수업이었어요. ‘이런 재료로 작품이 가능할까?’ 고민하며 망설였지만 막상 참여해 보니 너무 재밌더라고요. 생각과 실제 경험의 차이를 크게 느꼈죠. 그 후, 제가 가진 선입견과 일반인들의 눈높이 사이에서 어떻게 균형을 잡을 수 있을까를 오랫동안 고민하게 되었고, 그 눈높이를 조정해 가며 수업을 구성해왔어요. 이번 ‘식물 그림 학교’도 연장선에 있습니다.
칠 년 동안 육아한 뒤에 다시 붓을 들었을 때, 대학에서 전공했던 서양화보다 작은 화지에서 섬세하게 표현할 수 있는 보태니컬 아트가 매력적으로 다가왔어요. 그렇게 ‘보태니컬 페인터’라는 이름으로 활동을 시작했고 작가로서의 현실적인 어려움도 마주하게 되었죠. 경험을 바탕으로 작가들이 단순히 창작에 머물지 않고 경제활동을 이어갈 수 있도록 돕고 싶다는 생각에 ‘더일러스트앤아트’라는 회사를 열었습니다. 작가들의 원화를 기반으로 출판물과 굿즈, 교육 프로그램 등을 기획하고 제작하면서 활동 영역을 넓히는 데 주력하고 있어요. 저도 매년 전시에 참여하고 있고 다양한 재료를 활용해 그림책 작업도 하고 있습니다.
식물을 주제로 한 교육에 집중하게 된 이유가 궁금하다.
보태니컬 아트는 유럽에서 삼백 년 넘은 역사지만, 우리나라에 도입된 지는 17년 정도예요. 그래서 더 많은 사람에게 알리고 싶은 욕심이 있어요. 사실 사업계획서를 제대로 써본 적이 없었는데 사업에 참여하게 되면서 방향과 체계를 논리적으로 배울 수 있었어요. 사업을 하다 보니 교육에는 소홀했는데, 그때 ‘예술시민 문화예술교육 지원사업’을 보게 되었어요. 식물 그림과 삶을 비교하는 프로그램은 없으리란 확신이 들었고, 보태니컬 아트를 주제로 전문 교육을 하고 싶다는 욕구가 강하게 생겼죠. 기법 중심의 수업에는 한계를 느끼고 있어서 문화예술교육으로 차별화하면 제가 성장할 수 있겠다고 확신했어요.


식물 그림과 삶을 비교하는 프로그램은 없으리란 확신이 들었고, 보태니컬 아트를 주제로 전문 교육을 하고 싶다는 욕구가 강하게 생겼죠. ⓒ최지연
문화예술교육을 통해서 중장년과 노년을 만나는 까닭은.
삼십 대와 오륙십 대 수강생 25명과 수업한 적이 있어요. 세대가 다르니 목적과 분위기가 확연히 달랐죠. 삼십 대는 실력 향상과 기법에 관심이 많았다면 오륙십 대는 대화하고 즐기며 그림 그리는 것을 목표로 했어요. 같은 공간 안에서 서로 다른 목적을 가진 이들을 지도하기가 쉽지 않았어요. 입시 학원에서는 목표가 명확하니 수업이 수월했지만 중장년은 즐기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보니 내 방식이 통하지 않았어요. 그래서 기법 중심에서 벗어나 즐겁게 할 수 있는 수업을 고민했고 대상을 바꾸어 기획했죠.
문화예술교육이 주는 효과는 이미 검증되어 있잖아요. 공적 자원의 65%는 아동·청소년, 20%는 노년에게 집중되어 있어요. 저는 그 사이에 있는 중장년에게 책임감을 느껴서 생애 전환기를 맞은 분들을 중점해 만나고 있습니다. 중장년과 노년이 효과를 체감할 수 있기를 바라고 있어요.


여성은 결혼, 출산, 육아로 나를 잃는 시기를 겪잖아요. 이 시기에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깊이 고민하는 대상에게 초점을 맞췄습니다. ⓒ최지연
‘식물 그림 학교’에 신청자가 많았다고 들었다. 어떤 것에 끌렸을까.
경쟁률이 이 대 일이었어요. 식물은 많은 사람에게 친숙한 소재예요. 특히 중년 여성에게요. 그림은 어렵게 느낄 수 있지만 식물을 주제로 한다면 모두가 부담 없이 접근할 수 있어요. “두려움을 묻어두는”이라는 말이 주는 힘도 크다고 생각합니다. 두 가지 포인트에서 문의가 많았어요. 열망이 가득한 전화를 받으며는 방향과 필요가 통했다고 생각했습니다.
신청서에 생애 전환기에 겪는 두려움과 환경에 대해 자세히 적어달라고 요청했어요. 눈물 나고 공감되는 글들이 많았죠. 특히 여성은 결혼, 출산, 육아를 겪으며 나를 잃는 시기를 겪잖아요. 저도 그랬고요. ‘이 시기에 내가 지금 무엇을 할 수 있을까?’라고 깊이 고민하는 대상에게 초점을 맞췄습니다.
참여자가 어떻게 달라지길 바라는지.
첫 수업에서 자기소개했는데 다들 부끄러워하더라고요. 그런데 만족도 조사를 해보니 첫 시간이 가장 인상 깊었다고들 해요. 사람은 자기 이야기를 해야 하는 존재라는 걸 새삼 느꼈어요. 두려움을 묻어둔다는 건 감추는 게 아니라 꺼내고 발산한 후 찌꺼기 없는 양분을 주자는 의미예요. 저도 두렵습니다. 나이 든다는 것에 대해서는 누구나 그렇죠. 겉모습이 늙는 것 말고도 눈이 침침해지거나 회복이 느려진다고 느낄 때 슬프죠.
나이 듦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연습을 해야 하는데 그걸 ‘식물 그림 학교’에서 해볼 수 있으면 좋겠어요. 식물과 자신의 삶을 비교하면서 삶을 어떻게 이끌어 나갈지 목표를 정하도록 돕고자 해요. 이곳에서 커뮤니티도 꾸려서 꾸준히 이어나갔으면 좋겠어요.
식물과 자신을 연결해 특별한 의미를 발견한 참여자가 있는지.
튤립 원산지를 네덜란드라고 알고 있지만 사실은 척박한 히말라야 고지대예요. 화려한 외형 뒤에 숨겨진 강인한 생명력과 그리고 네덜란드 국화가 된 이야기를 알게 된 분이 자신이 튤립과 닮았다고 말했어요. 평범해 보이지만 험한 환경에서도 꿋꿋이 버티고 피어난다는 점에서 자신을 떠올렸다고 해요. 그리고 선인장은 사막에서 살아남기 위해 잎을 좁게 만들고 골이 깊어 물을 머금을 수 있고 상처를 스스로 치유하는 지혜까지 가진 식물이에요. 겉모습은 가시로 가득해 까칠해 보일 수 있지만 실은 환경에 잘 적응하고 스스로를 돌보는 똑똑한 존재라며 닮은 점을 찾은 참여자도 있어요.

식물과 자신의 삶을 비교하면서 삶을 어떻게 이끌어 나갈지 목표를 정하도록 돕고자 해요. ⓒ청춘기획라이브온
문화예술교육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미술사든 예술이론이든, 공부는 늘 어렵죠. 하지만 결국 작품은 작가의 인생을 이야기하는 것이잖아요. 사람이 태어나고, 자라고, 전환점을 지나고, 언젠가는 사라지는… 그 지속과 소멸의 리듬을 들여다보는 일이 바로 문화예술교육이라고 생각해요.
특히 생애전환기의 사람들에게 문화예술교육은, 지금까지 걸어온 길을 되짚고 앞으로의 시간을 준비할 수 있는 도구예요. 삶의 변화 앞에서 불안을 느끼기보다는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자신을 이해하며 순응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제가 추구하는 교육 방향이고요. 예술은 우리가 이미 가진 것들을 더 좋은 방향으로 쓰는 힘이라고 생각해요. 그 힘이 마음을 움직여 삶을 다시 사랑하도록 돕길 바라며 계속 걸어가고 있습니다.
앞으로의 길, 그리고 바라는 모습은.
농업과 예술을 함께할 수 있는 텃밭 프로젝트를 준비하고 있어요. 동구청에서 빈집을 철거해 텃밭을 만들었거든요. 지금은 노동력과 기술력, 동기가 모두 부족하지만 문화예술교육이 해답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공공자산을 잘 쓰기 위해 예술로 동기를 부여하려고 해요. 경제학자들과도 함께하고 있고요. 자연과 예술과 결합하면 어떤 시너지를 낼 수 있는지, 어디까지 확장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고 싶어요. 또한 중장년 남성이 관심을 가질만한 프로젝트도 준비하고 있어요.
작가를 계속하면서 좋은 교육도 하고 싶어요. 식물이 주는 안정감과 즐거움을 함께 나누고 싶어요. 잘 모르지만 즐겁게 할 수 있다면, 그것도 훌륭한 문화예술교육이라고 생각해요. 전문성도 물론 필요하지만 그저 맘 놓고 즐길 수 있는 장을 만드는 것이 더 중요하니까요. 균형 잃지 않으면서 나아가고 싶습니다. 편견을 깨고 다양한 분야에 도전했던 사람, 혁신적인 프로그램을 만든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어요.
아직은 더 넓은 곳으로 홀씨를 날려 보내고 싶은데 나에게도 나이 듦이 두려움이 아닌 기대가 되어줄까. 젊음이라는 계절이 지나고, 멈춘 듯한 시간 속에서도 우리는 말 없는 식물에게 배운다. 나이 듦을 품는 자세, 아름답게 시드는 법, 두려움을 안는 용기, 기다리는 지혜, 그리고 다시 피어날 것이라는 믿음까지.
한 번 진 꽃은 또 피어난다. 가지는 가지대로, 잎은 잎대로 자신의 때를 기다리는 것뿐이다. 꽃의 시간은 직선이 아니라 순환으로 이어진다. 이제, 새로운 씨앗을 심을 시간이다. 봄은 언제나 그렇게, 다시 찾아온다.
당신을 닮은 식물은 무엇인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