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올드 오크
공동체의 희망적인 연대를 꿈꾸며
글 : 이세진 / 영화 프로듀서
마지막 지면을 구상하면서 어떤 영화로 마무리할지, 어떤 이야기를 해야 할지, 어떤 영화를 봤었는지 등의 정리되지 않는 생각만 길게 늘어뜨리며 많은 시간을 보냈다. 결국 2024년 첫 영화로 기록해 놓은 (2024, 켄 로치 감독)로 마무리하기로 한다. 작년 겨울, 서울에서 지내며 숙소 근처 극장에 갔는데 마침 영화 후 이야기 자리까지 있어 특별하게 기억하는 작품이다.
영화의 제목이기도 한 ‘올드 오크’는 주인공 TJ가 운영하는 펍 이름이다. 1980년대, 영국 북동부 폐광촌에 있는 이 가게는 간판에 붙은 알파벳의 위치가 제자리를 찾지 못할 만큼 오래된 곳이다. 영화는 사진작가를 꿈꾸는 야라의 사진으로 시작되고, 뒤에서 들리는 이웃들의 말소리는 불만에 가득 차있다. 내전 중인 시리아를 떠나온 야라의 가족은 마을 사람 모두에게 환대받지 못하고 있었다. 폐광 이후 광부 2세들이 이룬 공동체에 이주해 온 난민들을 다들 못마땅해했고, 어떤 주민 때문에 야라의 카메라가 부서진다. 그리고, 아버지에게 선물 받은 카메라를 ‘올드 오크’의 TJ가 고쳐주면서 둘의 우정은 시작된다. 카메라는 마을 사람과 야라 그리고 폐광촌의 아버지 세대와 현재 세대를 연결하는 중요한 매개체가 된다.

아버지에게 선물 받은 카메라를 ‘올드 오크’의 TJ가 고쳐주면서 둘의 우정은 시작된다. ⓒ영화사 진진
야라는 TJ에게 고마운 마음으로 차를 대접하면서 자신이 품고 있는 희망을 이야기한다. 야라는 그 마음으로 자신과 가족들에게 향하는 혐오와 차별을 이겨내고 그들을 이해하려고 한다. 하지만 야라와 가족들이 노력하고 TJ가 침묵하여도 증오는 여전했다. 펍에 모인 주민들은 약한 난민을 희생양 삼아 공동체가 그들 때문에 쇠퇴한다며 날 선 소리만 뱉어댄다. 부정적인 말들은 스크린을 넘어 관객에게 날카롭게 다가오지만, 그들을 덮어두고 나무랄 수 없어 씁쓸하다. 삶의 고됨을 누군가에게 떠넘기고 싶을 정도로 그들은 힘들게 살고 있기 때문이다.
펍의 단골들은 이민자를 몰아내야 마을과 자기 문제가 해결될 듯 생각하고 행동했다. 그들은 공청회를 펍에서 열고 싶어 했지만 ‘올드 오크’는 그들의 공간이 되어주지 않았다. 야라 가족에게 친절하고 이주민을 위해 구호품을 배달하는 TJ가 시설이 낡았다며 단호하게 거절하니 의아했다. 이후 미용실에서 사진을 찍어주며 마을 여성들의 이야기를 듣게 된 야라는 TJ에게 ‘올드 오크’를 공유식당으로 운영하자고 제안한다. 한때 가족을 챙기지 못할 정도로 마을 돌보기에 앞장섰던 TJ지만, 야라의 마음에 동의하지 못하고 그녀에게 화를 낸다. 그러던 중 TJ가 아끼던 강아지 마라가 사고를 당한다. 상심한 TJ는 야라의 음식으로 위로를 받고 마음의 빗장을 풀게 된다.
When you eat together, you stick together
함께 먹을 때 더 단단해진다
에서 음식은 아주 큰 힘을 지닌다. 쇠락하기 전에 찍었던 마을 사람들 사진 아래에 적힌 “When you eat together, you stick together : 우리는 함께 먹을 때 더 단단해진다”라는 한 마디는 그곳의 연대 의지를 자연스럽게 드러낸다. 영화의 주요 장소인 ‘올드 오크’도 음료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는 동네의 커뮤니티 공간이며 야라의 가족들은 음식이 말보다 큰 위로가 됨을 보여준다. 야라에게 받은 위로 덕분에 TJ는 오래된 공간을 정비하고 뜻을 함께하는 사람들에게 식재료를 기증받아 어려운 마을 주민과 난민에게 따뜻한 음식을 나눈다. ‘올드 오크’에서는 마음이 담긴 음식을 나누며 이민자와 주민이 식구(食口)가 되어 간다.

영화 밖 현실. 얼마 전 아는 시민단체에서 방학한 아이들과 점심을 먹는 자리를 열었고,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일하는 부모 대신에 아이들 점심을 챙겨 먹이는 것은 시민단체가 지역과 연대하려는 마음이고 실천이다. 그리고 인구소멸지역에 사는 1인 가구 노인들이 마을 회관에서 같이 식사를 해결한다는 이야기도 비슷한 맥락일 테고 ‘오월의 주먹밥’은 이미 따숩고 힘 있는 연대의 상징임을 누구도 부인하기 어렵다. 아무런 대가 없이 서로를 지지하며 응원하는 마음으로 음식을 나누는 모습은 연대 그 자체다.
첫 장편 영화로 유쾌한 연대를 꿈꾸는
의 긴 퍼레이드에 이어, 한국 독립영화를 덧붙이려고 한다. 은 올해 7월에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 처음 공개된 이유진 감독의 첫 장편 연출작으로 아직 개봉하진 않았다. ‘서울국제여성영화제’를 시작으로 여러 지역 여성영화제에서 초청해 상영되고 있고 가깝게는 10월에 ‘남도영화제 시즌2 : 광양의 경쟁작’에서 볼 수 있다.
영화는 중년 레즈비언 만옥이 오래도록 운영해 온 퀴어바를 정리하고 고향 ‘이반리’로 귀향하면서 시작된다. 어릴 적에 등 떠밀리듯 고향을 떠난 만옥은 오랜만에 온 ‘이반리’에서 환영받지 못한다. 하지만 만옥은 배타적이고 편견 가득한 주민들에게 등을 보이지 않는다. 전 남편에 맞서 마을 이장선거에 나서게 되는 것이다. 영화에서는 만옥을 지지하고 사랑하는 사람들이 어떻게 연대하는지 보여주는데, 판타지처럼 보이지만 시종일관 유쾌하게 극을 이끌고 간다. 만옥의 퀴어바 ‘레인보우’와 만옥의 고향 ‘이반리’에 있는 다양한 세대, 성별, 지역 사람들이 보여주는 하모니는 주인공과 두 공동체를 변하게 한다. 의 알록달록한 에너지를 극장에서 너도나도 느낄 수 있기를 바란다.

영화에서는 만옥을 지지하고 사랑하는 사람들이 어떻게 연대하는지 보여주는데, 판타지처럼 보이지만 시종일관 유쾌하게 극을 이끌고 간다. ⓒ이유진
옳고 그름을 떠나서 나와는 달라 이해할 수 없는 생각, 이해할 수 없는 사람,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가 우리 주변엔 늘 있다. 그래서 좋다. 영화를 만드는 나는, 사람들이 모두 같지 않다는 사실이 얼마나 좋은지 모른다. 그래야 그들로부터 오만가지 이야기가 생겨날 테고 그것은 마침내 다채로운 시선을 담은 예술로 표현될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예술의 힘 덕분에 우리는 고유하고 독특한 자기 취향을 결국 찾아내고 만다. 〈글로 적는 영화〉를 갈무리한다. 나의 몇 글자가 극장을 찾게 한다면, 줄줄이 앉아 영화 한 편 보는 감칠맛을 떠올리게 했다면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하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