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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엔 처음이란 게
글 : 추소현 / 광주문화재단 문화예술교육팀 팀원
피할 수 없으면…
시사프로그램의 막내 작가로 근무하던 사 년 전, 제작한 다큐멘터리로 수상을 한 적이 있었다. 시상대 위에선 긴장 탓인지 내 심장 소리가 사회자 마이크 소리보다 더 크게 들리는 경험을 했다. 첫 수상의 순간이었다. 나에게 처음은 늘 그랬다. 처음을 마주할 때, 즐기기보다는 긴장과 떨림으로 잔뜩 겁부터 먹곤 했다. 쿵쿵쿵- 긴장이 멀미로 이어질 때쯤 들려온 취재기자의 수상소감.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는 동안 방송도 문화예술의 일환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모든 과정을 시청자의 문화예술 향유라고 생각하며 임했습니다.”
“문화예술의 향유.” 당시 나에겐 꽤 낯선 단어였다. 그러나 이 말은 이상하게도 이후로 쭉 내 마음에 깊이 남았다. 우리의 기획이 어떤 이에겐 소중한 경험이 될 수 있다니.
피할 수 없다면 즐겨…?
올해 나는 광주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에서 ‘어린이 문화예술교육 프로젝트’ 실무를 담당하게 되었다. 광주 시민들이 문화예술을 누리는 데 이바지하고 싶다는 일념으로 입사를 준비했다. 진행 보조로서 〈어린이 목수축제〉를 한번 경험하기도 했지만, 실무자로 임하려니 달랐다. 시간이 흘러도 내게 처음은 긴장 그 자체, 최대한 마주하고 싶지 않은 순간이었다. 게다가 이번 ‘처음’은 내겐 특히 더 어려웠다. 입사 후 모든 일엔 전부 같은 전제조건이 붙었다.
“장애가 생긴 이후 처음”
전 직장을 퇴사할 무렵 나는 시각장애인이 되었다. ‘이전의 나’는 능숙하게 했던 일들도 고장 난 텔레비전 화면처럼 지지직거리는 시야로 해내려니 여러 번 헤매고 서툴렀다. 정신없이 적응하기 바빴던 내게 〈어린이 목수축제〉는 조금은 두려운, 그러나 아주 재밌을 것만 같은 퀘스트와 같았다.
개막이 얼마 남지 않았을 무렵부터는 다시 처음에 대한 공포감이 엄습해 왔다. ‘내가 잘할 수 있을까? 놓친 게 있으면 어떡하지?’ 이런 생각들이 먹구름처럼 머리를 에워쌌다. 그렇게 디데이는 한 발 한 발 걱정과 함께 다가왔다.

정신없이 적응하기 바빴던 내게 〈어린이 목수축제〉는 조금은 두려운, 그러나 아주 재밌을 것만 같은 퀘스트와 같았다. ⓒ청춘기획라이브온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
대망의 목수축제 개막일, 허둥지둥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하고 축제 현장을 살피던 중, 한 친구가 손을 높이 든 채 운영본부로 찾아왔다. 못질하다 손을 다쳤다고 했다. 깜짝 놀라 얼른 응급처치해 주고 걱정스레 물어보았다. 망치질이 처음인데 무섭지 않았냐고, 손가락을 다쳐서 많이 속상하겠다고. 돌아온 대답은 당찼다.
“아니요! 왜 무서워요? 다쳐도 약 바르고 다시 하면 되는데!”
어린이 목수의 대답에 마치 못이 된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어린이 목수의 망치 같은 각오가 내 머리를 콩 때린 것이다. 그리고 그 말에 이유 모를 용기가 생기기도 했다. 처음이라 서툴 수 있고 그렇기에 실수할 수도 있지만, 그것을 두려워하지 않아야 처음이라는 순간도 피하지 않고 즐길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 그 후 축제를 진행하는 동안 처음 마주하는 상황들에 전 보다 겁내지 않고 마주 설 수 있었다. 꼬마 멘토 어린이 목수에게 큰 교훈을 얻은 셈이다.

축제 마지막 날, 어린이 목수와 선배 목수들이 예술가와 함께 지어 올린 작품을 학부모들이 감상하는 네트워크 파티를 열었다. 어린이 목수가 작품을 소개하며 뿌듯해하는 모습을 보니 나도 덩달아 어깨가 한껏 올라갔다. 끝날 때쯤 학부모 한 분이 옆에 와 감사하다는 말씀을 건넸다. 듣기만 해도 준비하며 쌓인 피로가 다 사라지는 듯했다. 그리고 대화 마지막, 나에게 건넨 한 마디.
“우리 아이 꿈이 바뀌었어요, 선생님. 이젠 장래 희망이 목수래요. 커서 목수가 될 거래요.”
들었을 때는 마냥 기쁘기만 했던 이 말이, 축제가 끝난 후에도 계속 머리에 맴돌았다.
문화예술 향유. 문화예술을 누리고 가지다. 기자의 수상소감에서 그 의미에 고개를 끄덕였고, 목수축제에서 얻은 값진 경험들을 통해 그것에 점차 가까워지고 있다. 내가 조금씩 성장하는 동안, 축제 참여자인 어린이들은 처음의 설렘을 느끼거나 소중한 꿈을 갖기도 했다. 〈어린이 목수축제〉는 나와 어린이 목수 모두에게 향유의 장이 되었다.
처음엔 ‘처음’이란 게 참 쉽지 않은, 그래서 피할 수 있다면 피하고만 싶었던 순간이었다. 이제 나에게 처음이란, 조금 설레는 것이다. 또다시 올 처음엔 대일밴드를 꼭꼭 어루만지며 첫 못질에 눈을 반짝이던 어린이 목수를 떠올리지 않을까, 이 다짐과 함께.

“피할 수 없다면 즐기자!”
〈어린이 목수축제〉는 언젠가 다시 출발선 앞에 서게 될 그날의 예고편. 본편에선 더없이 즐겨볼 작정이다. 첫 발표, 처음 가보는 길, 첫 업무, 첫 문장. 각양각색의 처음이 나를 기다린다. 괜찮다. 초행길에선 어떤 풍경이 나를 반길지 모르기에 두근거리고, 첫 업무에서 실수해도 기죽지 않고 성장할 나를 기대할 수 있다. 도전을 주저하지 않을 거니까. 그리고 오늘의 처음도 나름 즐겼다 자부하며 앞으로의 첫 순간들을 상상해 본다. ‘아뜨르릉’에 기고한 첫 글. 글을 쓰는 동안 내내 설렜고, 작은 바람과 함께 첫 기고를 마무리한다. 나의 처음을 읽고서, 누군가도 그의 처음을 더는 무서워하지 않기를. 이 글 역시 〈어린이 목수축제〉처럼 누리는 장이 될 수 있기를 희망한다.

나의 처음을 읽고서, 누군가도 그의 처음을 더는 무서워하지 않기를. ⓒ청춘기획라이브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