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6호] 다정한 네트워크가 우리에게 필요한 이유 / 김옥진
광주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
날짜 2023-10-24 조회수 277


다정한 네트워크가 우리에게 필요한 이유


김옥진(마음놀이터 대표)

 


 2시에 시작된 회의가 창밖이 어둑어둑해지는 시간까지 이어진다. 네트워크의 필요성에 대한 원고를 써야 하는데 오늘 같은 날은 혼자 하는 것이 더 편하겠다는 생각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어느새 바람의 온도는 차가워지고 가로등에 비친 나뭇잎들이 붉게 물들 채비를 하고 있다. 요 근래 나무에 대해 여러 자료를 찾다 우드와이드맵이라는 뿌리를 통한 나무들의 네트워크에 대해 알게 되었다. 홀로 살아가는 줄 알았던 나무들이 뿌리의 연결망을 통해 정확히는 땅속의 균류를 통해 정보를 주고받고 영양분을 나누며 살아가는 공동체 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럼 광주의 문화예술생태계는 어떻게 연결되고 서로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며 유지되고 있을까? 몇 년 전 십여 년을 지속하던 문화예술교육 현장을 떠나리라 마음먹은 적이 있었다. 네트워크 없는 각자도생, 단체 간 경쟁 구도와 지속성을 담보하지 못하는 지원사업의 구조가 견디기 어려웠다. 그렇게 떠나리라 맘먹었던 문화예술교육현장에 다시 발을 내딛게 한 것은 창의예술학교라는 네트워크형 사업이다. 네 개 혹은 다섯 개 정도의 단체가 컨소시엄으로 사업에 참여하여 각 단체의 개별사업을 진행하면서 창의예술학교라는 울타리에 모여 입학식, 운동회, 소풍, 졸업식 등의 여러 행사도 공동으로 기획하고 진행하는 형태이다. 개별단체가 운영하는 사업구조 속에서는 구현하기 어려운 세대, 예술장르, 지역의 다양성을 여러 학교가 유기적으로 연결되며 가능 해진다. 단체들 간에는 월례회, 워크숍, 연구모임 등이 진행되어 문화예술교육을 하며 만나게 되는 어려움, 답답함, 궁금증 그리고 잘하고 있는지? 어디로 가야 하는지? 묻고 나누고 풀어낼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된다. 이렇게 창의예술학교를 시작으로 창의예술교육랩, 예술로 같은 사업구조나 목적은 다르지만 여러 사람들과 공동으로 미션 혹은 과업을 수행하는 일에 참여하게 되었다. 창의예술학교가 단체들 간의 성장과 상생을 위한 구조라면 창의예술교육랩은 또 다른 성격의 네트워크를 경험할 수 있는 기회였다. 만날 수 없는 조합으로 만나게 된 7명의 예술가가 모여 다른 생명체의 시선으로 도시보기라는 주제를 가지고 예술실험을 진행하는 과정은 이전에 경험하지 못했던 새로운 방식이었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한다는 과업 중심의 프로젝트가 아닌 과정과 결과 모두 알아서 하라는 방목형 프로젝트에 우리는 당황했고 길을 잃었다. 결국 건강동아리가 되어 다른 생명체를 만나기 위해 도시를 떠도는 것을 시작으로 우리의 길을 만들어 나가게 되었다. 문화예술교육 현장에서 늘 만나던 사람들과 비슷한 구조가 아닌 뜻밖의 만남과 특이한 구조는 유연한 사고와 네트워크의 확장을 가져왔다.



   

▲ 창의예술교육랩 다른 생명체의 시선으로 도시보기' 연구진과 예술실험



늦은 밤까지 거듭되는 회의에 진이 빠지면서도 나무들의 연대를 떠올리는 이유는 뭘까? 어느 날 나중에 우리 이런 거 한번 해보자고 했던 작당모의가 현실이 되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창의예술학교를 하며 너무 자주 너무 많이 만나던 어느 날, 우리 재밌는 워크숍 콘텐츠로 여기저기 놀러도 다니고 돈도 벌자며 장난처럼 시작했었다. 그때도 오늘처럼 뇌를 쓸 때는 먹어줘야 한다며 각종 간식이 수북했고 자꾸 옆길로 새서 결국 시간 대비 딱히 정리된 것이 없는 것도 비슷하다. 문화예술교육 5년 차 이상의 기획자, 강사를 대상으로 하는 워크숍을 준비하며 나누고 싶은 이야기는 우리가 알고 싶었던, 우리가 묻고 싶었던, 우리가 만나고 싶었던, 우리가 듣고 싶었던 이야기다. 네트워크 없이 각자고생하며 언제든 떠날 채비를 하던 그날의 나와 우리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다.




 ▲ 창의예술학교 '삶과예술학교' 운영단체



서로에 대한 경쟁의식보다는 활발한 네트워크를 통해 동반성장을 해야만 전체 생태계가 어느 정도 균일한 단계의 수준에 도달할 수 있다. 그래야만 더 많은 시민들에게 문화예술교육의 가치를 전달하고 공감받을 수 있을 것이다. 가보지 않은 길을 가고 더 많은 이들이 연결되는 다정한 네트워크를 통해 부유하던 뿌리를 내리고 보이지 않게 연결된 서로를 의지해 함께 성장하길 바라며 늦은 밤 머리를 맞대고 있는 것이다.

익숙하고 편한 것에 머물다 보면 나도 모르게 정형화되고 우물 안에 갇혀 있는지 조차 나 스스로 인식하지 못하게 된다. 당연하게 진행되는 프로그램 중심의 기획, 대상에 대한 충분한 사전리서치 없이 그럴 것이다라고 일반화하고 미리 재단하기도 한다. 특별히 열심히 하지 않거나 무능한 기획자나 강사라서 그런 것이 아니다. 다만 혼자만 열심히 하기 때문이다. 다양한 경험과 자극이 있어야 다른 상상력이 생겨난다. 숲 속에 있으면서 숲을 보지 못하는 것처럼 익숙하고 당연한 것들에 머물지 말고 다양한 사람들과 다른 장르, 다른 교육현장을 들여다 봐야 한다. 언젠가 우리 프로그램에 참여했던 어르신이 이 문턱을 넘기가 그렇게 힘들었다고 말씀하신 적이 있다. 가보라고 해서 가보자고 맘은 먹었는데 안 해 본일을 하자니 막상 용기도 필요하고 하루 이틀 미루다 보니 이제야 시작하게 되었다고 하셨다. 우리에게도 그런 용기와 시간이 필요하다. 가던 길을 잠시 멈추고 샛길로 새서 모르는 누군가에게 다정하게 말을 건넬 용기가 필요하다. 그렇게 함께 여러 갈래의 길을 만들고 펼쳐야 문화예술교육 생태계가 다채롭고 생생하게 살아날 수 있다. 하향 평준화되어 획일적인 프로그램으로 고착화되고 있는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심폐소생술은 네트워크를 통한 동반성장이다.

땅속에서 서로를 돌보고 정보를 교환하며 상생하는 나무들처럼...... 우리도 같이

 





김옥진

마음놀이터 대표

광주문화예술교육계의 대표 고인물. 지속적인 맑은 물 투입을 위해 읽고 쓰고 만나고 춤추고 그리고 이야기 하며 살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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