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미집
박문종(화가)
※ 승유의 리어카 초보를 위한 6가지 수칙
1. 리어카 손잡이를 든다.
2. 너무 높게 들지 않는다.
3. 너무 빨리 가지 않는다.
4. 내리막에선 빨리 구르게 되는데 이럴 땐 바로 손잡이를 내린다.
5. 딴전 피우면 리어카가 다른 데로 갈 때가 많다. 그럴 때는 재빨리 반대로 돌린다.
6. 너무 다른 곳으로 갔을 때는 뒤로 뺀다.
이 글은 김승유 학생(북구문화의집 바퀴달린학교 땅과예술반 초등2학년)의 단골 리어카맨을 하면서 갈파한 노하우를 2학년짜리가 1학년짜리에게 일러준 것을 받아 적은 것이다.
(북구문화의집 바퀴달린학교 ‘땅과예술’ 수업 중. 2015)
대개 미술학습은 농업용 리어카를 끌며 하천 길을 따라 가면서 시작하는데 말이 미술학습이지 자연학습에 가까워 농촌마을, 논과 밭을 만나고 물을 만지고 바람, 공기, 산과 들 등등 마을은 잠시 자연학습장이 된다.
아이들은 작은 것을 잘 본다. 그 시선을 따라가다 보면 거기에는 풀벌레나 개미들을 만나게 되는데 아이들은 금방 찾아내는 재주를 갖고 있다.
개미는 주 관찰 대상이 되기 마련인데 한참 들여다보다가는 짓궂은 아이들은 개미집을 뭉개 버리고 만다. 개미들은 혼비백산 흩어지고 웬만히 뭉개도 한참 후에는 재건한다는 것을 아이는 아는지 모르는지 도화지에 개미 한 마리를 올리더니 개미 움직임 따라 크레파스로 선을 그어가고 있었다. 개미는 종이 위에서 빙빙 도는데 잠시 후에 다시 보니 무수한 선이 종이에는 얽히고 섥혀 마치 개미집처럼 되었다.
(북구문화의집 바퀴달린학교 ‘땅과예술’ 박새론(수북초 2)의 그림. 2016)
그림이 그려지고 아이는 거의 무아의 재미에 빠졌다. 작은 벌레 한 마리도 도시 아파트에서 마주쳤다면 기겁 했을 텐데 시골마을 풀섶에서라면 이내 친해지게 되는데 학습의 방해가 될 정도로 작은 움직임에 대한 한눈팔기가 되곤 한다.
이번 수업은 아이들 한눈팔기를 따라가 보기로 했다. 미세한 움직임, 점, 꾸물거림을 쫓다보니 아이들의 작은 세계에 당도할 수 있었다.
마침 비가 왔다. 먼지를 걷어갈 정도지만 낮은 곳에서는 물웅덩이가 생겨 널찍한 종이를 땅에 깔았더니 종이는 바로 반응한다. 축축해지는 것이다.
붓을 쥐어주는 대신 주변에서 뾰쪽한 것을 찾아보자 했더니 나뭇가지나 갈대, 대나무 가지 등이 동원되고 나중에는 아이들의 손가락까지 쓰게 되는데
작은 점을 주문했음으로 아이들은 안달한다. 작게, 더 작게, 더 더 작게....
(내리는 비와 ‘땅과예술’ 아이들이 함께 그린 수묵화. 2016)
먹물을 제공했으나 그것을 쓰는 아이와 안 쓰고 종이를 찔러보는 아이, 종이에는 흙물이 번지고 그것을 즐기는 아이도 있다. 그렇게 점찍기가 된 것이다.
먹번짐, 흙번짐, 아이들은 놀이삼아 장난삼아 점찍기가 반복되는데 순간 집중도가 높아지는 걸 느낀다.
선 긋지 말고 점만 찍기. 주문이 이어진다. 그래도 점 안에서 어떤 형태를 느꼈을까? 반복되는 행위 속에서 모종의 형상이 드러내는 것이었다.
번짐이 심하기 때문에 결코 작은 점은 쉽지 않은데 마치 좀 전에 벌레의 움직임처럼 점은 여름날 증식하는 곰팡이처럼 스멀스멀 살아 번지는데 아이들도 나도 이제 말릴 수가 없게 되었다.
때맞춰 바람이 일든지 볕이 쨍하고 나든지 종이가 완전히 마를 때 까지는 어떤 그림이 될지 아무도 모른다. 아마 날씨 하는 걸로 봐서는 아이들이 돌아가고 나서도 그림은 살아 있을 것이다.
(방학캠프 어린이놀이도시2. ‘짚풀놀이터’ 짚풀침대. 2016)
아이들의 여름캠프가 시청 안에서 열린다니 희한하지만 그 역발상이 신선하다. 방학이라고 아이들을 요란스레 밖으로 내모는 마당에 시청 안이라니, 그것도 도시의 핵심 상징적 공간을 점령해 소란스럽게 하겠다니 야무지다 해야 할까?
우리반 (9개 구역으로 나뉜다.)은 자연소재 말이 좋아 자연소재지 볏짚처럼 거칠기 짝이 없고 가공되지 않은 소재여서 그 거친 걸로 무얼 하라고? 짚 – 지푸라기 – 검불은 도시인들이 반기지 않을 좋아하지 않는 짓만 골라하게 생겼으니 볼멘소리다. 그래도 포지션이 이러하니 어쩔 수 없이 추켜들었다. 농촌생활 그림을 그린다는 이유로 흙무더기를 생각하게 되고 볏단이 생각나게 되고 담양에 산다는 이유로 대나무가 생각나게 되고 사정상 흙은 들이지 못했지만 볏짚과 대는 들일 수 있었다.
나는 아이들에게 그림은 이렇게 그린다고 제시하지는 않는다. 다만 체험을 통한, 표현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는 정도다. 여기에서도 예외 없이 원단을 내던지듯 부려놓고 그 다음은 꾸려 나가는 것은 아이들 차지인데 단순하지만 톱질하고 묶고 감고 세우는 개미군단의 그것처럼 말이다. 그렇다고 일사불란한 걸 바라는 건 아니다. 일사불란하지는 않지만 막히면 토론도 하고 진행과정에서 생기는 아이디어는 덤이다. 간략한 도면을 제시했는데 큰 의미는 없다. 그러니 어떤 형상으로 완성되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아이들의 질문이 많을 수밖에...... 비밀이라고 연막은 쳤지만 나도 못하나 칠 수 없는 환경에서 진화하고 있었으므로 쉬 답을 낼 수가 없었다. 한동안 공간은 잘못 건드려 놓은 개미집처럼 어수선하기 짝이 없더니 하루가 꼬박 지나고 나서야 진정되는 것이어서 랩을 이용해 거친 것은 싸고 장대는 엮고 스태프와 아이들 조막손이 더해지더니 빠르게 정리되고 있었다.
(방학캠프 어린이놀이도시2. ‘짚풀놀이터’ 짚풀해적선. 2016)
볏단은 잘 빚어놓은 찰떡처럼 포장되어 의자가 되고 줄지어 울타리가 되고 여러 개로 붙여 설치했더니 침대가 되고 침대는 엉덩이 접촉감이 뛰어났다. 딱딱하지도 무르지도 않으니 색색의 보자기로 치장을 했더니 이국적인 정취가 물씬 난다. 아이들이나 나나 낯선 환경에서도 편한 잠을 잘 수 있었다. 또 원형을 비틀어 농구골대는 삼각형이고 한 아이가 새끼줄을 공처럼 감았길래 농구공인가 했더니 볼링 공굴리기를 신나게 하고 있었다. 물 담는 페트병을 넘어뜨리는 방식인데 새끼줄로 라인을 설치해서 영락없는 맞춤형 볼링장이 아이들의 머릿속에서 튀어나온 것이다.
공간은 침대 농구대 볼링장 향후 조성된 쉼터까지 서로 유기적인 관계를 유지하며 놀이공간이라는 거칠지만 아이들의 세계가 구현된 것이다. 뒤틀리고 구부러지고 점점 무뎌지고 어른이 되면 보이지 않는 것들 아이들만의 작은 세상이 열린 것이다. 마치 개미집처럼 말이다.
시골마을에서 미술학습 때 흙더미를 오르내리며 집도 짓고 계단도 만들과 노는 중에 한 아이가 “우리 아프리카 어린이 같다.”했다. 불쑥 튀어나온 말 나는 어릴 적 생각이 나서 푸하하 웃고 말았다. 스스로 꼬물꼬물 토닥토닥 만들어 노는 우리네 방식 말이다.
(방학캠프 어린이놀이도시2. ‘짚풀놀이터’ 수업 중. 2016)
과정을 중시했으니 놀이공간은 누릴 새 없이 끝났다. 작업의 완성도는 어떤 것일까 마지막에서야 답을 낼 수 있었다. 뒤집기였다. 지붕형태의 구조물을 뒤집고 보니 얼추 배 모양이나 소꾸리 형 알자리가 되었다. 거기에 볏단 뭉치를 올렸더니 비로소 쉼터가 된 것이다. 아이들은 만화책을 들고 뒹굴뒹굴하고 사람들은 올라가 낮잠도 청하고 담소도 나누고 마지막으로 깃발을 꼽고 진수식?때는 아이들은 해적선이라 명명했고 나는 알자리 같다 했다.
글쓴이 _ 박문종(화가)
황토 흙을 물감 삼아 그림을 그리는 그림 농사꾼.
2001-2003 모내기프로젝트, 2010 논밭갤러리 등 다수 개인전 및 단체전을 진행하였고
현 담양 수북면에서 자연과 벗 삼아 농사와 그림을 짓고 있다.
2012년부터 5년째 바퀴달린학교 ‘땅과예술’ 수업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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