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예술교육에서의 '예술'이란_김허경(2016 국제여성미술제 전시 큐레이터/전 아시아문화원 부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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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16-12-09 조회수 2,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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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교육에서의 예술이란

 

 

김허경(2016 국제여성미술제 전시 큐레이터)

 

 

예술이 무얼 일까를 곰곰 생각해본다. 예술은 문자보다도 더 오래 전에 존재했다. 그 점을 생각하면 사람살이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는 것이 분명하다. 정말 그렇다. 삶 속에 예술이 있었다. 선사시대를 생각해보라. 기우제와 천신제를 지낼 때 가무는 기본이었다. 구석기시대 동굴벽화도 예술의 긴 역사성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다. 하늘을 기쁘게 할 요량으로 춤추고 비는 행위가 예술임을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알지 않는가. 삼국지위지 동이전에 보면 한민족은 음주가무를 즐겼던 민족이다. DNA상으로 신명이 넘쳐나는 인자를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사느라고 바빠서 삶과 등위를 이뤘던 예술이 뒷전으로 쳐져 여유 있는 계급의 전유물로 한정되어 버린 지 오래되었다. 그러나 연원을 살펴보면 예술은 삶 가운데 있었다. 삶 굽이굽이에서 중요한 버팀목이었음을 지나간 역사가 말해준다.

 

최근 문화예술교육이 화두다. 우리 아이들에게 행복한 삶을 주기 위해선 문화예술교육을 해야 한다고 한다. 아이들 뿐 아니라 어른들에게도 문화예술교육의 훈향을 맡게 해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온 국민이 문화예술교육을 통해 행복으로 한 발자국 더 가까이 다가가야 한다.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이 설립된 지 11년이다. 문화예술교육의 체계가 나름대로 잡히고 있고 정책으로 사업으로 펼쳐지고 있는 중이다. 그럼에도 문화예술교육이 뭐고 어떻게 진행되어가고 있는지에 대해선 전문가, 현장 활동가, 해당기관 담당자, 그리고 소수의 시민들만이 알고 있다. 시민들은 그나마 얇게, 해봤다는 정도에 그치고 있는 실정이다. 경험해본 이들마저 그게 문화예술교육인지 모르는 경우가 태반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투입된 자원에 비해 산출되는 결과가 미미하게 느껴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귀결이다. 이를 더욱 명확하게 알리지 못하는 그럴만한 사정이 있긴 하다. 문화예술교육을 실행해온 지난 세월 동안 문화예술교육이라 하면서 문화와 예술 사이에서 문화예술교육이 공전한 측면이 없지 않아 있다.

 

여기서 짚어볼 것이 있다. 문화예술교육에서 예술이 무엇인가 하는 점이다. 예술교육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예술을 위한 교육’ ‘예술을 통한 교육이 그것이다. ‘예술을 위한 교육은 예술 자체의 전문성을 추구하는 교육이고, ‘예술을 통한 교육은 예술을 통해 정서와 인성을 함양하는 교육이다. 전자는 예술 자체가 목적으로 행해지고 후자는 예술이 수단이나 매개로 역할 한다. 예술의 쓰임새가 완전히 달라진다. 문화예술교육에서의 예술은 전자와 후자 모두가 함께 쓰이기도 하지만 일반적으로 후자를 일컫는다. 예술을 매개로 해서 시민들의 정서와 인성을 두텁게 함으로써 행복한 인생을 살게 하는 게 문화예술교육이 지향하는 바다. 그리하여, 현장에서 두루두루 지향하는 바가 통합교육이고 장르간 융합교육이다. 자칫 장르교육이나 기능교육에 치우치는 것을 우려해 통합교육을 통해 예술을 통한 교육의 가치를 실현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그 흐름은 시대적으로 맞는 양상이다. 그렇게 가야 한다. 예술교육이 기능에 머무른다면 전문 실기자를 배출하는 것으로 예술의 울타리가 좁아지고 만다. 그렇게 되면 예술이 여유 있는 이들을 위한 전유물에 그치는 고답적인 도식에 갇히게 된다. 더불어 예술이 지닌 고유의 감성, 인성, 창의력, 상상력 등을 폭넓게 활용할 기회가 없어지게 된다. 그러그러한 이유로 문화예술교육에 있어서 예술교육은 통합과 융복합을 지향하고 문화와 자연스럽게 연결되어 우리네 삶 속에 엉클어지게 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그게 현장에서 움직이고 있는 문화예술교육 활동가들이 가열차게 추구하고 있는 바다.

 

문화예술교육의 방향성은 그렇게 가야 하는 것이 적절하다. 그러나 뭔가 아쉬운 점이 있다. 예술교육에서 자꾸 예술자체의 진정성이 희석되고 마는 느낌이 강하게 휘몰아친다. 예술을 양념으로 한 문화교육이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의문이 자꾸만 들어서다. 문화예술교육에 있어서 예술이 통합교육이고 장르간 융·복합이고 단순히 예술의 기능에 머무르지 않고 삶에 버무려져야 할 것이긴 하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예술의 진핵이 흐트러지고 희미해진다면, 예술의 영역이 무너져 버린다면 굳이 문화예술교육이라고 할 필요가 있을까. ‘예술을 통한 교육을 지향하되 예술의 고유한 진정성은 보호되고 지켜져야 한다는 생각이다. 말로는 문화예술교육이되 찬찬히 들여다보면 예술은 없는, 아니면 예술의 겉껍데기만 가져오는 형태로 진행되는 경우가 적잖다. 예술이 기능교육, 장르교육으로 영역을 좁히는 것만큼이나 바람직스럽지 못한 행태가 아닐까 걱정이 앞선다.

 

문화예술교육에 있어서 예술은 예술을 통한 교육의 위치를 점하되 예술 고유의 본질적 가치와 정수가 보존되는 방식이 문화예술교육의 여러 산맥중 하나로 가져가면 좋겠다. 그러저러한 이유에 의해 예술의 정수가 훼손되거나 고귀한 바탕이 흐트러지는 일이 없어야 한다. 결코 예술을 흉내 내는 것으로 문화예술교육이라고 치부해버리는 우가 있어선 안 된다. 문화예술교육이 예술의 창성을 돕는 지원군이 아니라 오히려 예술의 싹을 꺾어버리는 방해꾼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예술의 가치가 폄하되고 예술이 우습게 여겨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빛나는 예술정신의 훼손, 평가절하가 잘못하면 문화예술교육으로 인해 생길 수 있다는 점을 잊지 않아야 한다.

 

예술이란 무엇일까. 많은 이들의 정의가 있지만 독일 뮌헨대학의 볼프강 울리히교수는 알 수 없는 그 무엇’ ‘고귀한 단순함과 조용한 위대함’ ‘즐거움과 유익함이라고 설명했다. 뭔지 알 수는 없으며, 단순하게 보이면서도 위대하고, 우리에게 즐거움과 유익함을 주는 것이 예술이 아닌가라는 게 그의 정리다. 예술은 정말 알 수 없다. 그 알 수 없는 경지를 신의 경지로까지 끌어올리기도 한다. 예술이 고귀하고 신성시 여겨지는 영역 확장의 근거가 거기에 있다. 그러는 중에도 예술은 즐거움이 있고 유익함이 있다. 알 수 없으니 어렵게 느껴진다. 그렇지만 우리네 퍽퍽한 삶에 즐거움을 주고 유익함을 던져주는 효용성으로 인해 이 시대 우리가 지향하는 문화예술교육에 예술을 통한 교육이란 방식을 빌려 예술이 한 가운데 자리를 잡고 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문화와 예술 사이에서 예술이 자칫 설 자리를 잃어버리고 우왕좌왕할 수 있는 소지가 높다. 예술가들의 진정성 넘치는 작업 태도를 보는 것만으로 시민들에게 문화예술교육이 될 수 있는 여지가 있다. 그보다도 더 확장된 문화예술교육을 위해서 예술의 중추적 역할을 포기해선 안 된다. 예술이 장르교육의 대상으로 머무르지 않아야 하듯이 예술이 흉내 내는 것으로 그쳐서 안 될 일이다. 거기서 중도를 잘 잡아내야 한다. 왜 예술교육이어야 하느냐, 그리고 왜 예술가여야 하느냐는 질문에 누군가는 이렇게 답했다. ‘예술적 창의성이라고. 예술적 창의성은 예술을 흉내 내는 것으로는 절대 안 된다. 흉내가 아닌 예술의 진정성 넘치는 태도와 자세, 그리고 본질적 가치를 보유해야만 예술에서 창의성이 퐁퐁 솟아날 것이다. 그 점을 간과해선 안 된다. 문화예술교육에서 삶이 대변하는 문화가 중요하듯이 예술역시 놓쳐선 안 될 중요한 요소이고 우리가 지켜내야 할 소중한 것이기 때문이다. 예술을 바탕으로 한 문화예술교육이 더 번성해야 한다. 그리고 거기서 예술가들이 해야 할 일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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