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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어린이놀이도시3
<어린이목수축제>
“나는 목수다!”
정민룡(북구문화의집 관장)
돌잡이 풍경_
“돌잔치 돌상 위에 작업실에서 꺼내온 연장을 진열했습니다. 드릴, 망치, 먹줄 등을 놓았더니 아이가 망치를 잡았습니다.
이 광경을 보고 어르신이 나무랐습니다. 아들도 목수 시킬 거냐고?
이 아이가 자라서 큰 학자가 되어도 좋고 백 년 장수를 해도 좋겠지만, 진짜 망치를 잡는 목수나 장인이 되어도 좋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조화로운 인간이 되길 원합니다. 사물의 이치와 노동의 가치를 몸소 부닥쳐 깨닫고 이해하는 조화로운 인간이길 바랍니다.”
염정태 저, 2009, 『물건의 재구성』, 리더스하우스, p30
어린이들이 목수일 한다고?
몇 해 전 읽은 『물건의 재구성』이라는 책 속 한 구절이다. 목수의 돌잡이 풍경에 대한 묘사가 매우 흥미롭다. 글에 나와 있는 것처럼 ‘격물의 지혜를 깨닫고 실천하는’ 전인교육까지는 아니더라도 어린이들에게 목수로서 예술체험의 기회가 생긴다면 모험 감 있고 흥미로운 노작 경험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러한 계획을 주변의 몇몇 사람들에게 알리고 나서 돌아온 반응은 대부분 색다른 경험이지만 걱정이 먼저 앞선다는 것이었다. 다치지는 않을까? 더운 날씨에 아이들의 체력이 그만큼 따라줄까? 집을 만드는 대목장의 일이 아이들의 수준에는 어렵지 않을까?
어쨌든 기대와 우려를 안고 10명의 예술가가 함께 머리를 맞대면 하나하나 해결해 나갈 수 있을 거라는 막연한 기대로 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되었다.
먼저 어린이 목수축제에 참여하는 아이들에게 각자 집에 있는 망치와 줄자를 가져오게 했다. 창고나 신발장, 서랍에 묵혀 있었던 집안의 연장이 모처럼 빛을 발할 기회가 온 것이다. 하지만 제대로 꼴을 갖춘 망치가 있는 반면에(그것도 대부분 급히 사온 망치)연장으로 쓰기에 민망한 도구(뿅 망치, 고무망치 등)들도 함께 딸려오는 모습에 저절로 피식하고 웃음이 나왔다. 요즘 아파트 주거공간에서는 망치를 쓸 일이 거의 없으니 이해할 만하다.
제법 있어 보이는 망치를 들고 못질, 톱질을 제법 잘하는 친구에게 말을 건넸다. 아버지가 목수란다. 자랑스럽게 아버지의 직업을 말하는 모습이 기특해 보였다. 어떤 아이는 ‘노래하는 목수’가 꿈이라고도 한다. 일부 어른들에게 목수일은 막노동하는 직업으로 업신여기는 편견이 있지만 아이들에게 목수일은 마치 게임계의 레고, 실사버전의 마인크래프트와 같은 놀이로 생각할 수도 있다.
이번 어린이 목수축제 기획의 주된 방향은 여기로부터 출발한다. 어린이들에게 목수일이 땀 흘리는 희열을 맛보는 즐거운 노동이자 놀이로 인식되기를 바랬다. 아무것도 없는 빈 땅에 아지트 공간을 만들고 모험 놀이터로서 유저의 상상력을 실현하는 스릴 있는 경험이 바로 어린이 목수축제다.
꼬마 장인, 어린이 목수
리처드 세넷의 『장인』에서는 “만드는 일이 곧 생각의 과정”이라고 정의하면서 만드는 일은 육체적인 기능만이 아니라 도구와 작업장, 의식이 서로 통합되는 경험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장인이 되어가는 과정을 ‘기술-기능-일’로 노작의 단계를 나누어 설명하고 있다.
손과 기술, 기능의 숙달과정이 2박3일의 짧은 시간에 가장 집중적으로 이루어지고 그 결과로서 집이 만들어져 가는 것, 즉 일이 되어가는 과정을 경험하게 하는 것이 어린이 목수축제의 전체 프로세서다.
망치, 드릴, 나무재료가 진열되어 있는 ‘뚝딱소굴’이라 불리는 도구창고, 넓다란 시립미술관 앞 공원 잔디밭과 나무 그늘이 작업장이다. 그리고 뚝딱소굴을 지키는 대장 목수와 담임이 되는 예술가 목수(측간목수), 이들과 함께 일하는 어린이 목수가 축제의 주인공들이다.
10명의 예술가 목수와 80여명의 어린이목수가 함께 나무집 아지트를 생각(상상)하고 팔레트를 쌓아 올려 집의 꼴을 만들어 낸다. 그리고 완성된 아지트에서 놀이를 즐기는 방식이다.
2박 3일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도구를 다루는 기본 테크닉을 배우고 반복함으로써 도구를 다루는 요령이 몸에 체화되어 간다. 재료를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는 자신감을 토대로 아지트 집이라는 결과물을 만들어 낼 수 있었다. 우리는 손을 자유자재로 쓰는 장인을 아이들이 조금이라도 닮아가기를 바랐다.
어린이 목수축제, 노작 활동에서 몰입하는 이유
선뜻 이해하기 어려운 광경이 있었다. 그렇게 더운 날씨에도 온종일 쉬지도 않고 이상하리만큼 열심히 일하는 모습이 그랬다. 어디에서 그러한 힘이 나올 수 있는지에 대해 궁금했다. 보통 집중과 몰입의 경험은 단순히 재미만 있다고 해서 얻어지는 것은 아니다. 몰입과 창의성에 대한 상관관계를 밝혀주는 많은 연구가 있었지만, 예술교육에서 그런 생생한 현장을 보기란 그리 쉽지 않다. 더군다나 노동이 가미된 노작 활동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어린이 목수들이 몰입할 수 있었던 것은 무엇을 완성해야 한다는 서로 공유된 명확한 목표의식이 있었기 때문이다. 생각과 몸을 멈추지 않아야 하고 끈질기게 도전해야만 자기들의 손때가 묻은 멋진 아지트를 완성해 내는 명확한 보상을 얻을 수 있다는 뚜렷한 동기부여가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자기들이 하는 일이 매우 중요하고 어디에서도 완성해 보지 못한 생경하고 새로움에 대한 기대가 있었기 때문이다.
노작의 과정에서 아이들은 몰입하는 경험, 몰입의 결과, 대가와 보상, 이로부터 느껴지는 희열감을 맛보았기 때문에 그렇게 열심히 망치질과 톱질을 해대는 것이 아니었나 생각해 본다.
안전한 모험을 배우는 장
어린이 목수축제에 함께 참여했던 예술가들과 총괄기획을 맡았던 필자, 광주문화재단의 관계자들 모두가 가장 걱정했던 것이 바로 안전에 관한 문제였다. 어른들의 시선에서는 다루는 도구와 재료들이 온통 위험한 것들이었기에 더욱더 신경이 쓰이는 부분이었다. 솔직히 걱정이 앞섰던 것은 사실이었지만 어느 정도 노출된 위험 요소는 모험심을 불러일으키고 오히려 안전을 학습하는 장이 될 수 있다(물론 세심한 안전관리가 전제이다.)
4층 높이로 성의 망루를 만들었던 모둠의 경우 일부러 난간을 설치하지 않았다. 어설프게 설치한 난간이 오히려 위험시설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아예 난간이 없을 때 위험을 인지하고 조심하게 된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높은 곳에서 안전하게 노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이처럼 극복이 가능한 약간의 위험요소는 모험을 즐기는 좋은 장치가 될 수 있다.
아이들이 높은 곳에 올라가는 행위는 짜릿한 경험을 준다. 나무에 올라가거나 높은 곳에서 뛰어내리는 행동을 선호하는 이유다. 이와 같은 행동을 억제하는 것이 아니라 안전하게 뛰어내리거나 나무에 올라가는 법을 배우고 즐기는 모험이 이번 어린이 목수축제의 전 과정에서 빈번하게 벌어졌다. 하지만 크게 다치는 경우는 없었다.
안전에 대한 과도한 집착이 오히려 더 위험할 수도 있다. 어떤 것도 완벽하게 안전한 상태로 존재하지 않는다. 문제는 어떻게 하면 위험에 대처하면서도 모험을 즐길 수 있을 것인가? 즉, 안전한 모험을 즐길 수 있어야 한다.
나가며
이번 어린이 목수축제는 어린이 놀이 도시 세 번째 시즌으로 진행되었다. 2015년 어린이놀이도시 첫 번째 시즌이 종이로 집을 지어 어린이가 주인이 되는 가상의 테마 마을을 형성하는 것이었다면 2016년 2탄은 아이들이 시청 로비를 놀이터로 변화시키는 프로젝트다. 흙 놀이터, 풍선놀이터, 장난감 놀이터, 빛 놀이터 등 놀이시설에 좀 더 집중하였다.
이번 2017년에는 노작 활동에 좀 더 집중하여 그동안 쌓아온 놀이 공간 만들기 노하우를 바탕으로 마치 톰소여의 아지트와 같이 독창적인 건축물(‘Age of empires’, 바람이 드나드는 아지트, 나무를 둘러싼 형태의 나무를 아래에서 바라볼 수 있는 ‘그늘아래’, 테라스가 있는 두 채의 안락한 스위트홈 ‘우리 집’, 레고 모양으로 쌓은 구조로 만든 물건을 파는 공간인 ‘핫플레이스’, 움직일 수 있고 숨바꼭질을 할 수 있는 ‘놀이터 집’, 여러 가지 재료로 자연물을 그대로 이용한 ‘박쥐 집’, 나무집 속에 나무가 있는 ‘가지 곁집’)을 만들어냈다.
하나의 멋진 그림을 위해 하나의 점을 찍고 수많은 반복과 시행착오를 거쳐야 하는 것처럼 그들이 만든 멋진 아지트는 아이디어나 작은 모형에 머물러 있었다면 불가능한 미션이었을 것이다. 아이디어에 머무르지 않고 실제로 구현하면서 나타나는 많은 문제를 서로 협력하여 해결하는 과정에서 얻어지는 시행착오의 결과물이다.
아이들은 2박 3일 동안 단순해 보일 수 있는 망치질과 톱질만으로 불가능해 보였던 실제 집을 뚝딱 만들었다. 그리고 마지막 시설물을 철거하는 것도 끝까지 아이들과 함께 했다. 건설과 해체(생성과 소멸)의 전 과정을 경험했다 할 수 있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자신들이 만든 결과물이 오랫동안 온전히 유지되는 것을 바랬다.
하지만 어떻게 해체되고 소멸되는지, 원상태로 돌리는 것이 만드는 일보다 더 어려울 수 있다는 것, 자원이 재활용, 순환되는 것이 어떠한 의미를 갖고 있는지를 배우는 것도 중요하다. 나무 재료들이 쓰레기로 버려지는 것이 아니라 다시 원상태 그대로 재활용된다는 사실을 알게했다.(실제 어린이 목수축제에 쓰인 팔레트는 다시 수거하여 재활용)
중외공원(광주시립미술관 앞뜰)이라는 뜻밖의 장소, 못과 망치질이라는 뜻밖의 위험한 일들, 조그마한 모형 정도로 생각했는데 진짜 집을 지어버리는 뜻밖의 미션에 어린이 스스로 놀라는 짜릿한 경험이었다. 목수의 노동은 어린이들이 즐기는 멋진 놀이가 될 수 있다. 목수축제에 참여한 한 어린이의 꿈이 ‘노래하는 목수’가 되는 것처럼 일과 놀이는 상충적인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 경계가 무너지고 있다. 이번 일로 '일과 놀이 그리고 예술교육’에 대한 고민이 많아졌다. 이렇게 ‘어린이 목수’라는 ‘경험 라이센스’를 하나씩 얻어가는 것으로 2박 3일 과정은 끝이 났다.
총괄기획: 정민룡
매니저: 고영준, 노여운
참여 예술가: 신양호, 박문종, 이재호, 이재문, 김동준, 박성완, 정다운, 배수민, 박용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