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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시대, 광주문화예술의 일상을 엿보다
김은영(광주시립미술관 교육창작지원과장)
코로나19바이러스로 시작했던 올 한해가 벌써 막바지에 이르렀다. 유례없는 바이러스 침공으로 유행의 정점을 예측할 수 없이 끝이 보이지 않아 코로나 유행의 확산만 지속되는 것 같은 긴장의 나날이다. 오죽하면 중앙방역대책에서는 “코로나와 함께 안전하게 살아가기, 위드(with) 코로나를 정착시키기 위해 사회 각 분야에서 환경, 문화, 제도 등을 개선해나가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을까.
바야흐로 코로나 백신이 상용되기 전까지는 위드 코로나, 코로나와 함께 살아가기가 화두가 될 것 같다. 위기의 시대에는 당장의 ‘밥벌이’가 아니어서 가장 먼저 위축이 되는 분야가 예술이기에 이 시대의 문화예술의 현주소가 참으로 위태롭기 때문이다. 코로나의 확산으로 우리나라는 물론 세계 주요 미술관들의 올해 전시는 사실상 개점휴업인 상태가 많았다. 개관과 휴관이 반복되면서 보다 안전하게 미술을 감상할 수 있도록 ‘가상의 미술관’이라 할 수 있는 온라인 전시가 대세가 되었던 것도 그 맥락이다. 코로나가 길어질수록 ‘코로나 블루’라고 하는 마음의 그림자도 길어져 더욱 예술로써의 치유가 필요한 상황이라 무엇이든 돌파구를 찾아야 하는 것도 그 이유에서이다.
‘가상의 미술관’이라 할 온라인미술관이 새롭게 부상되니 ‘상상의 박물관’이라는 개념으로 새시대를 열었던 앙드레 말로가 떠오른다. 프랑스의 지성으로 문화부장관을 역임하기도 했던 앙드레 말로(1901~1976)는 일찍이 인류가 남긴 방대한 예술작품을 간직해 온 박물관에 크게 주목했다.
실제 박물관에 들어올 수 있는 예술작품은 한정적일 수밖에 없는데 사진 복제기술의 발달로 도록이라는 인쇄물을 통해 박물관에서보다 더 많은 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다는 점에서 앙드레 말로는 ‘상상의 박물관’이라는 열린 개념을 제시하기도 했다. 이 박물관은 실제 모든 예술품들을 수용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박물관들에 없는 온갖 장르의 다른 작품들도 관람객들에게 감상의 즐거움을 선사했던 것이다.
이러한 ‘가상의 미술관’은 ‘사회적 거리두기’로 꼭 그 자리에서 감상해야 했던 작품들을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전시형태로서 최근 다시 등장한 것 같다.
아직 우리나라의 문화적 분위기와 여러 상황과는 거리가 있지만 뉴욕 모마(The Museum of Modern Art)에서는 관람객들이 미술관을 직접 방문하지 않고도 집에서 큐레이터, 디렉터, 아티스트와 직접 교류하고 소통하는 프로그램을 개설했는가 하면, 미술관의 컬렉션을 보고 참가자들끼리 토론하는 시간을 온라인 어플리케이션 소프트웨어인 Zoom을 통해 진행하고 있다.
뉴욕의 구겐하임미술관에서는 멀리 있는 친척 가족들과 집에서 미술관을 관람하듯 대화식 투어프로그램을 마련해서 가족 친화적인 분위기로 진행하기도 했다. 폴 게티 미술관은 가장 좋아하는 미술작품을 선택한 후 집안에 있는 아이템으로 작품을 재창조하고 인증사진을 올리는 명화패러디도 제안해 인기를 끌기도 했다.
이밖에도 세계의 여러 미술관에서도 미술관 소장품을 클로즈업해서 살펴보고, 작품에 관한 역사 및 제작과정, 작품 속의 숨은 의미, 상징들을 자세히 알아볼 수 있는 프로그램을 진행하거나 미술품 소장품에 연계된 아트 메이킹, 색칠 공부 자료, 퍼즐 등 아이들이 집에서 미술활동을 할 수 있도록 자료를 제공하는 곳이 많았다.
광주시립미술관은 지난 가을 문화체육관광부와 예술경영지원센터가 진행하는 ‘2020미술주간 챌린지-창의로운 미술생활’의 일환으로 소장품 중 세 작품이 챌린지 대상작품으로 선정되어 참여자들이 창의적으로 재해석한 작품들을 출품하기도 했다.
▲ 강숙자 작 ‘그대는 아직도 ▲이강하 작 '바다로 가는 길'(1998) ▲황적후 작 '과일'(2020)
꿈꾸고 있는가’(2003)
광주시립미술관 챌린지 대상 작품은 광주여성화단의 맥을 잇고 있는 꽃과 여인의 화가 강숙자작가의 ‘그대는 아직도 꿈꾸고 있는가’(2003년 작)와 5‧18광주민주화운동 당시 시민군으로 참여했고 한국 전통의 색과 문양을 통해 고향에서 살아가는 이들의 삶의 모습을 담아낸 고(故)이강하작가의 ‘바다로 가는 길’(1998년 작), 과일과 사물을 합성해 새로운 꽃과 나무, 과일 등을 만들어 낸 후 다시 사진으로 재창조하는 작업을 해오고 있는 황정후작가의 ‘과일’(2020년 작)을 선정했다.
▲강숙자작가 작품 변주 ▲이강하작가작품 변주 ▲황정후 작가 작품 변주
많은 참여자들이 이들 소장작품을 패러디한 작품들로 새로운 미술활동을 펼침으로써 코로나시대의 집콕하는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안겼다. 강숙자작가의 작품 ‘그대 아직도 꿈꾸고 있는가’는 몽환적인 표정을 짓고있는 여인의 옆모습을 다양한 색채로 변주해 원작과
비교하는 재미를 주는가 하면, 멀리 바다가 보이는 길을 향하고 있는 아이 업은 엄마의 뒷모습을 그린 이강하작가의 ‘바다로 가는 길’은 실제 포대기에 아이를 업은 자신의 사진을 콜라주하기도 하면서 기량을 펼쳤다. 파프리카의 내부에 오렌지가 결합된 이미지인 황정후작가의 ‘과일’은 키위 속에 체리, 호박 속의 쌀, 사과 내부를 파서 오렌지를 뒤섞어 재치 있는 작품들이 패러디됐다.
예술적 활동 못지않게 중요한 예술적 경험이나 체험이 코로나바이러스 앞에서 멈춰서버린 상황에서 이렇듯 새로운 미술활동이 펼쳐지게 된 것이다. 그동안 아무 제약 없이 미술관에서 작품을 관람하곤 했던 일상이 이제는 특별한 활동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이러한 직접적인 예술참여활동 외에도 온라인 전시 관람이 인기다. 유례없는 상황도 계절이 바뀌면서 점차 적응되어가는 듯 모든 전시는 온라인 전시를 동반하고, 온‧오프라인 전시가 동시에 발전해나가는 양상을 보이는 것도 특징적이다.
내 손 안에 전시를 편리하게 보는 즐거움과 현장의 감동과 전율을 맛보기 위해 전시장을 찾는 수고가 더욱 값지게 느껴지는 것이 요즘의 풍속이기도 하다.
“폭풍은 지나갈 것이고 인류는 살아남을 테지만 그러나 우리는 다른 세상에 살 것이다”고 했던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호모 데우스’의 저자 유발 하라리의 말처럼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대비하여 심리적 방역, 즉 예술 활동에 더욱 마음을 써야 할 때인 것 같다.
| 글쓴이 김은영은 광주시립미술관에서 학예연구관으로 일하며 교육프로그램과 작가들의 창작지원 업무를 맡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