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람을 위한 문화예술교육 _‘별이’로부터 - 김주희((재)전주문화재단 예술놀이팀장)
광주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
날짜 2021-07-22 조회수 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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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을 위한 문화예술교육

- ‘별이’로부터

 

김주희​((재)전주문화재단 예술놀이팀장)

 

 

“프로그램에 참여한 아이들에게 어떤 변화가 있었나?”

문화예술교육 업무를 시작한 뒤로 나에게 가장 어렵고, 또 가장 불편한 질문이었다. 문화예술교육이 왜 필요한지, 왜 중요한지를 설명하는 데에 있어서, 비타민처럼 기호와 함량을 따져 딱 맞아 떨어지게 설명할 수도 없고, 그저 관계와 공동체적 키워드를 들먹이며 긍정적 결론에 이르도록 한다. 문화예술교육이 종교나 도덕과목도 아닌데, 우리는 너무 아름다운 것만을 설명하려 했던 것은 아닌지, 혹은 내가 문화예술교육의 활성화를 위해서 얼마나 수고하고 있는지를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은 아닌지 고민하게 된다. 

 

 만일 문화예술교육을 경험한 아이들이 모두 사회가 원하는 바른 인성과 관계를 형성할 수 있다고 한다면, 그런 프로그램을 기획하는 필자나, 필자의 자녀들은 사회생활과 관계에 있어서 아무런 문제없이 살아가고 있어야 할 것이다. 의사나 의사의 자녀들은 아프지 않을 것이라는 말과 동일한 오류다. 그렇다면 문화예술교육은 정말, 왜 필요한 걸까? 특히나 요즘 같은 펜데믹 상황에서 문화예술교육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   

  

 약 10년 전 처음 이런 고민을 시작했을 때는 문화예술교육이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눈’이라고 생각했다. 걷다가 발끝에 차이는 돌멩이마저도 무언가 특별하고 의미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예술조차도 꼭 아름다운 것만을 담지는 않는다. 사회의 어두운 이면을 이야기해야 할 때도 있고, 인간의 끔찍한 내면을 작품으로 만들어내기도 한다. 다만, 왜 그런 이야기를 했는지, 작품을 통해 그런 이야기를 하는 작가는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이해하고 공감하려고 하는 그 시도가 중요한 것이었다. 

 

 따라서 문화예술교육의 효과나 영향에 대한 판단을 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몇 해의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링거를 맞거나 감기약을 먹듯이 단기간에 어떤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 ‘치료’가 아니기 때문이다. 누군가에게는 살면서 일상적인 힘이 될 수도 있지만, 또 누군가에게는 가장 필요한 순간에 효과를 발휘할 수도 있다. 극단적인 예를 들자면, 삶을 포기하고 싶을 때, 그 위기를 잘 극복하고 일상을 되찾을 수 있도록 나를 다스리는 힘일 수도 있고, 그런 누군가에게 보내줄 수 있는 위로일 수도 있겠다는 것이다. 

 

 코로나 19라는 혼란 속에서도 사회는 새로운 질서와 문화를 만들고 있고, 그 약속과 규칙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서로를 위해 지키고자 애쓰고 있다. 대면만이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다고 믿었던 문화예술교육도 ‘만나지 않고 만나는’ 다양한 방식들을 생각해내고 있다. 대다수의 공공기관에서는 수치적으로 효율성이 극히 떨어진다는 이유로 허용되지 못했던‘한 사람을 위한 문화예술교육’ 도, 집합 인원수 제한 덕분에 다시 주목받고 있긴 하지만, 그 한 사람이 결국은 ‘모두’일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있기도 하다. 

 

전주문화재단의 경우, 그간 중앙의 정책으로 확산되어 온 생애주기별 문화예술교육 역시, 과연 모든 이의 생애주기를 고려했는지를 고민하고 있다. 그 첫 번째 시도로 ‘장애・비장애 통합 문화예술교육의 과제와 실천 방안’을 연구하고자 한다. 고민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이렇다. 어느 날 별이(가명, 9세)라는 아이의 아빠로부터 한 통의 이메일을 받았다. 전주문화재단이 운영하고 있는 팔복예술공장의 유아예술놀이 전용공간은 7세 이하의 아이들이 이용하는 공간인데, 별이는 발달장애가 있어 7세라는 규정이 사실상 너무나 큰 장벽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9살이지만, 6~7세 정도의 발달 수준을 갖고 있는 별이는, 7세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없는 것일까? 장애인과 여성을 차별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회사들이, 채용 조건으로 ‘군필자, 신체 건강한 성인’이라고 제시하는 걸 보는 느낌이었다는 별이 아빠의 표현에 심장이 쿵, 머리가 띵, 했다.

 

 몇 번의 이메일이 오고가는 동안에, 죄책감과 미안함에 마음이 이글거렸다. 언젠가 강의에서 들었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장애인이 편안하게 이용할 수 있는 시설은, 일반인 역시 편리할 수밖에 없다.’는 것. 일상의 많은 부분들을 대하는 방식들이 장애인의 입장에서 고려되어지고 있고, 예술교육 역시 장애의 특수성만 고려하기 보다는 장애‧비장애인의 통합교육을 통해 서로가 안전망이 되어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별이 아빠는 이렇게 이야기 했다. 장애아이의 부모들, 특히 영유아 부모들은 비장애 아이들과 함께하는 교육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는 있지만, 그 안에서 비교군이 되는 데에 대한 심리적 저항도 존재하고 있다고. 그렇기 때문에 그런 부모들에 대한 심리상태도 이해해야 하고, 인식의 변화를 이끌어낼 필요도 있다고….

 

 모르는 것이 너무 많았다. 부끄럽고 창피했다. 가장 먼저 할 수 있는 약속은, 종사자들부터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아 공부하고 대안을 찾겠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매개자 교육을 계획하게 되었다. 별이라는 아이를 통해 한 사람의 특별한 생애주기를 알게 되었고, 그 한 사람을 위한 문화예술교육을 시작해보고자 한다. 별이 뿐만 아니라, 모든 국민들이 각자의 생애주기에 맞는 문화예술교육을 경험할 수 있는 날이 앞당겨지도록, 필자와 같은 매개자의 역할이 더욱 중요한 때라고 생각한다. 지금은 쉬어가는 시기가 아니라, 부단히 더욱 움직여야 할 때라는 걸, 우리는 모두 알고 있으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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