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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자연, 문화예술교육을 잇다 - 우리의 소중한 유산 지키기
-토요문화학교 <가성비 짱! (가족 성장 비밀 프로젝트)>-
취재 : 이소영(제13기 모담지기)
인터뷰이 : 정유담(큰나무공동체 기획자)
광주 서구의 ‘세동마을’ 이라는 장소를 들어본 구독자가 얼마나 있을지 궁금하다. 광주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은 어렴풋이 들어봤을 지도 모르겠다. 타지에서 광주로 온 지 어언 8년, 이 지역 출신은 아니지만 어디 가서 ‘나 광주 시민이야’라고 말할 수 있을 무언의 자격이 주어졌다 여겨왔는데, 이번 인터뷰를 통해 세동마을이라는 곳을 처음 알게 되고 나서는 잠시 그 자격을 유예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러 역사 유적지가 많은 광주라지만 이런 마을이 있었다니 참 놀라웠다. 토요문화학교 <가성비 짱!(가족 성장 비밀 프로젝트)> 프로그램의 무대가 되는 곳이 바로 세동마을이다. 그리고 이 프로그램을 기획한 정유담 선생님을 만나 세동마을의 역사를 비롯한 여러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간단한 소개를 부탁드린다.
큰나무공동체에서 토요문화학교 기획을 맡고 있다. 큰나무공동체는 문화예술교육프로그램을 꾸준히 운영하여 왔고, 나는 최근에 기획자로서 합류하게 되었다.
문화예술교육프로그램의 기획자로서 활동하게 된 계기가 있는지
이전까지 문화예술교육프로그램의 보조강사로서 일을 했었는데, 부수적인 일들만 주로 하다 보니 일의 보람을 느끼기가 어려워 아쉬움이 컸다. 그러던 중 큰나무공동체의 대표님께 나의 역량을 펼칠 수 있는 기회를 달라 요청했다(웃음). 이번 토요문화학교 프로그램은 처음부터 끝까지 기획을 도맡아 했는데, 보조강사 선생님들의 역할을 크게 늘렸다. 주강사 선생님들이 주로 프로그램을 이끌어 가시지만, 각자가 특화된 부분에 맞게 역할을 조정했다. 주강사 선생님이 미술 쪽에 조예가 있다면, 나는 마을 역사 탐방을 이끌어 간다거나 하는 식으로 말이다. 각자의 영역을 살려 적극적으로 프로그램에 모든 사람들이 투입될 수 있도록 노력했다.
나는 광주 토박이가 아니여서, 프로그램의 주 무대가 되는 ‘세동마을’이라는 곳을 처음 들어보았다.
역사가 이 프로그램의 주요한 컨텐츠 중 하나이지 않나.
사람들이 조선시대 율곡 이이 선생님에 대해서는 많이들 안다. 이이 선생님과 동시대를 살았던 ‘김세근’ 의병장이라는 분이 있다. 세동마을의 ‘세’는 김세근 의병장님의 이름의 ‘세’에서 따온 것이다. 김세근 의병장은 이율곡 선생과 함께 십만양병론을 주장했다. 그러나 조정대신들은 태평시대에 군사를 키워야 한다는 양병론은 민심을 소란케 한다며 묵살했다. 눈앞의 이익만 챙길뿐 나라의 운명을 걱정하지 않는 간신배들이 가득찬 조정의 모습에 실망한 김세근 은 낙향을 결심하게 된다. 그리고 세동마을로 돌아와 백마산에 연병장을 마련하고 뜻을 같이 하는 장정들과 함께 4년여동안 무술연마에 힘쓴다. 1592년 4월13일 임진왜란이 일어났고, 김세근 의병장은 고경명 의병장과 함께 금산전투에서 왜군과 싸우다 1592년 7월10일 와평들에서 순절했다. 1958년 김세근 의병장의 위패를 봉안하고 제사를 지내는 학산사를 지었다. 이처럼 세동마을에는 조선시대 때부터 이어져온 역사와 이와 얽힌 유적지가 많다. 이 마을을 공부한지는 5년정도 되었는데, 그것이 내 자원이 되었고 이를 문화예술교육프로그램을 통해 참여자들에게 자연스레 전달해주고 싶었다.

▲김세근 의병장이 세동마을에 터를 잡은 것을 기념하며 지어진 ‘세동각(細洞閣)’ 앞에서 줄넘기를 하는 아이들(제공: 큰나무공동체)

▲’만귀정(晩歸亭)’ 앞에서 휴식하는 부모와 아이들(제공: 큰나무공동체)
지역민들이 애향심을 가지며 역사에 관심을 가지고 들여다보는 것이 왜 중요하다고 생각하나?
역사가 없으면 우리가 이 자리에 없지 않나. 조상들의 땀과 수고가 있었기에 오늘 우리가 이 자리에 있는 것이고, 감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임금은 피난을 갔어도 마을을 지켰던 의병장들이 있었다. 소중하고 지켜야할 역사다. 이러한 역사를 어렸을 때부터 아이들이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은 하루 아침에 형성되는 것이 아니기에. 그 역사의 한 뿌리를 건드려주는 역할을 하고 싶다.
역사와 마을을 사랑하시는 게 느껴진다. 광주에 그런 유서 깊은 장소가 있는지 몰랐다.
지방 사람들이 점점 수도권으로 빠져나가는 추세가 날이 갈수록 증가하고 있다. 광주 시민들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
그렇다.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그와는 반대로, 외부에서 광주로 들어온 사람이다.
학교 때문에 처음 광주에 오게 됐지만, 무언가 아픈 손가락과 같은 감정이 든달까
맞다. 그렇기에 이럴수록 시민들이 지역의 소중함을 알았으면 하는 마음이 크다. 나도 강원도 출신이다. 광주라는 지역이 참 좋다. 제2의 고향이 되어버렸다. 무엇보다 5.18 민주화 운동이라는 아픈 역사가 있는 도시 아닌가. 의로움의 광주, 올곧음의 광주. 자랑스럽게 여겨야 한다.

▲제공: 큰나무공동체
프로그램에서 주요한 키워드 세 가지를 꼽자면, ‘역사’, ‘자연’, ‘예술’이라고 생각한다.
이 세 가지를 하나로 결합한 프로그램이라고 생각되는데.
그렇다. 프로그램의 활동을 보면, 새총으로 꽃이나 집에서 썩어가는 곡물들을 새에게 준다던지, 자연물을 활용하여 작품을 만드는 과정이 많다. 하지만 안타까운 것은 산 속에서 하는 활동들을 많이 하고 싶었는데, 세동마을 뒤쪽에 있는 백마산이 개발이 되어버렸다. 강진(완도)까지 이어지는 고속도로를 만들기 위한 개발이 시작된 거다. 사업 계획을 제출할 때만 해도 공사가 진행이 되지 않았는데…
많이 안타까우셨겠다.
주민들이 반대도 했지만, 공사 속도가 무서울 정도로 빠르더라. 어느 날엔가 공사 때문에 안으로 들어가지 못한다고 하기에, 할 수 없이 진입할 수 있는 앞쪽에서만 체험을 하고 돌아와야 했다. 도로가 나버리니 더 이상 다가설 수가 없었다. 하는 수 없이 실내에서 할 수 있는 다른 활동 방안들을 모색해야 했다. 참여자들에게 양해를 구할 수밖에 없었다. 자연에서 돌을 주워다 작품을 만드려고 했는데, 결국 돌을 별도로 구입해야 했다. 너무 무거워서 혼났다(웃음).

▲정유담 선생님을 힘들게 했던 문제의 그 돌(?) (제공: 큰나무공동체)
작은 크기의 돌이 아니었나?
작업할 때 썼던 돌이 매우 컸다. 그렇기에 미술작품으로 만들기에는 보기에도 좋고 예쁜데, 사실 요즘에는 조금 후회가 되기도 한다. 왜냐하면 최근 기후 문제에 관심을 가지게 되면서 공부를 하다보니, 환경에 무지하지는 않았나 싶은 거다. 초창기에는 작품의 결과물이 마냥 아름답게 보이는 것에만 집중을 했던 것이 아닌가 싶어서. 그래서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쓰이는 재료도 최대한 친환경적인 소재들로 바꾸어 보려 노력 중이다. 작품을 묶는 끈을 종이 노끈으로 바꾼다던지, 작품을 꾸미는 데에 드는 인공적인 재료들을 생략한다던지 하는 식으로 말이다. 아이들에게도, 결과물을 예쁘게 만드는 것보다는 기후 위기를 비롯한 환경 문제를 고려하는 시야를 넓혀보자고 말하곤 한다.
선생님도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변화하는 과정 속에 계신 것 같다.
맞다. 나도 변화하는 과정 중에 있다.
한 사람의 애향심이 역사 공부라는 개인의 자원으로 이어졌고, 그러한 자원은 문화예술교육프로그램을 통해 많은 사람들에게 전달되었다.
역사와 자연은 후대 사람들이 지켜내야만 할 유산이라는 공통점을 가졌다. 정유담 선생님과의 인터뷰 이후, 우리의 소중한 유산을 지켜내고자 하는 마음들이 모인다면 그 유산은 미래의 우리에게 반드시 응답해올 것이라는 기대와 희망을 가지게 되었다. 그 기대는 아마도, 역사-자연-문화예술을 적극적으로 매개하고 잇는 정유담 선생님의 뜨거운 열정을 보았기에 내 안에서 자연스레 피어난 희망일 것이다. 구독자 여러분에게도 그 기대와 희망이 가닿길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