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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희 씨의 나이테
인터뷰이 : 이금희(나무창작소 협동조합 실장)
취 재 : 조중현 모담지기
미리 일러준 주소로 도착하니 길 한쪽에 세로로 된 현판이 보였다.
'나무창작소 협동조합'
유리 현관문을 지나 좁은 계단을 내려가다 보니 밖으로 풍겨 나오는 나무 냄새에 잘 찾아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무향이 참 좋아요”라고 간단히 인사를 건네며 안쪽에 들어섰다.
중앙에는 작업 테이블이 세 개, 왼쪽 벽면에는 드릴, 톱, 클램프공구와 이름 모를 장비들이 있었다. 깨끗한 공간과 잘 정돈된 공구들이 인상적이었다.

그곳에서 이금희 실장을 처음 만났다. 짧은 커트머리. 무채색 상의. 투박한 배낭.
공방의 모습과 그녀는 매우 닮았다. 마치 군더더기 없이 딱 먹을 것만 자신 있게 내어주는 그런 식당의 주인 같았다. 금희 씨는 오른쪽 사무실로 보이는 곳으로 나를 안내했다. 일종의 쇼룸이란다.우리는 큰 나무 탁자를 사이에 두고 마주 앉았다. 아메리카노 대신 믹스커피를 즐겨한다는 그녀는 커피포트의 전원을 켜놓고 명함 한 장을 건넸다. 명함에는 '실장 이금희'라고 적혀있었다.
금희 씨가 나무창작소 대표 아니었나요?
저희는 협동조합이에요. 권한이 한쪽으로 몰리면 안 되기 때문에 역할을 배분해 놓았어요. 조합원을 비롯해 저는 한해 운영방향을 제시하고, 선정된 사업이나 자체 프로그램을 진행해요. 여러 가지 안건에 대해서는 이사회에서 결정하고 있어요.
어떻게 협동조합을 만들게 되었나요?
처음에는 취미로 시작을 했어요. 생활목공으로 시작해서 5년 정도 *취목활동을 했어요. 그 후 공방을 운영할 마음으로 사업자 등록을 했고 우연한 기회로 '가치키움 사회적 협동조합' 상생샵에서 도마를 팔게 되었어요. 계림동 홈플러스에서요. 그런데 상생샵에서 판매를 하려면 개인 사업자가 아니라 협동조합이나 사회적 기업이어야 했어요. 그래서 협동조합을 만들었죠.
*취목 : 취미로 하는 목공을 줄인 말.
상생샵에서 도마 팔았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일주일 동안 조합원끼리 돌아가면서 홈플러스로 출퇴근을 했어요.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조합원들이 팔아야 한다고 부담을 느낄 것 같았어요. 애써 시간 내어 매장을 지켜주는데 그런 짐까지 지우기는 싫었어요. 그래서 “하루에 딱 한 개만 팔자”라고 말했습니다. 단지 도마를 만드는 것이 좋았기 때문에 적게 팔아도 다시 만들 수 있으면 됐거든요. 그때 도마 원 없이 만들었습니다. 그래서인지 이제 도마는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아요.
목공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궁금해요.
아이들을 키울 때는 리본공예, 종이접기, 퀼트공예를 했어요. 아이들을 돌봐야 하기 때문에 집에서 할 수 있는 공예를 주로 했었죠. 목공은 아이들이 유치원에 다닐 무렵, 2011년부터 취미로 하기 시작했어요. 처음 배운 곳이 운천저수지 쪽에 있는 '나무풍경'이라는 곳이에요. 생활목공이라고 해서 가구를 주로 만드는 곳이죠. 처음에는 운동할 겸 공방까지 걸어 다니다가 빨리 가서 만들고 싶은 마음에 버스를 탔고, 결국 택시로 다녔어요.


대화 내내 금희 씨 눈이 반짝거렸다. 마치 오랜만에 만난 친구가 학창 시절 이야기를 늘어놓는 것 같았다. 11년 전 취미로 목공을 시작한 이야기부터 협동조합을 만들기까지의 이야기.
목공이야기와 더불어 시시콜콜한 가족 이야기까지 털어놓는 그녀는 진솔했다.
나무창작소는 협동조합 설립을 발판 삼아 22년 하반기에는 '토요문화학교 인큐베이팅' 사업에 참여했고 올해는 '예술시민 배움터'를 하고 있다.
작년부터 올해까지 이어진 '가족이 함께하는 목공'에 관해 듣고 싶어요.
작년 ‘토요문화학교 인큐베이팅’은 지인이 추천해 지원하게 되었어요. 목공과 문화예술교육을 연관 짓다가 가족과 유대감이라는 두 단어가 생각났죠. 과정은 간단해요. 집집마다 원하는 가구를 협동해서 만들어요. 대부분 아이들이 원하는 작은 가구를 만들어요. 디자인해서 완성하기까지 가족 스스로 해결합니다.

아이들이랑 함께하는 작업이라 쉽지 않겠어요.
첫날에 항상 이야기합니다.
"이곳은 나무를 가지고 노는 놀이터입니다. 목공에 대한 생각은 싹 지워주세요. 가족끼리 머리를 맞대고 대화하고 고민하는 게 목적입니다."
하지만 많은 부모들이 결과를 중요하게 생각해요. 가구를 만드는 데에만 열중하곤하죠. 그러다보면 아이들은 만들기에서 자꾸 멀어지게 되요. 흥미를 잃게 되고요. 모든 게 아이가 중심이 되어야 해요. 먼저 아이가 원하는 걸 만들게 해줘야 하고요. 아이가 작업할 수 있게 해야 해요. 예를 들면 나사못을 박을 때 아이한테 드릴을 잡아보라고 하고 엄마 아빠는 살짝 힘만 넣어요. 때로는 가벼운 물건도 무겁다고 하면서 도움을 청하기도 하고요. 그럴 때 아이는 어깨를 으쓱하며 보람을 느껴요. 그게 자긍심으로 이어지고요.
가족이 화합한다는 면에서 보람이 남다를 것 같아요.
어떤 아버지가 초등학교 1학년과 4학년 아들 둘을 데려왔어요. 원하는 가구를 정해오라고 했을 때 재봉틀 테이블을 구상해 왔어요. 당연히 아이들이 쓸 물건이 아니었죠. 아이들은 강력하게 반대하며 자기가 쓸 탁자를 만들고 싶어 했어요. 저도 합세해서 설득을 했죠. 결국은 탁자를 두 개 만들었고 집에 있던 다섯 살짜리 막내 것까지 추가로 만들어서 집에 가져갔어요. 저를 비롯해 아이들과 부모 모두 만족했습니다. 서로 의견을 나누고 그것이 좋은 결과로 이어지면 기분이 좋아져요. 그래서 처음에 가족끼리 잘 소통이 되지 않더라도 할 수 있겠다 싶고요.
가족과 만나다 보면 여러가지 일이 있잖아요. 올해는 어떤가요?
아쉽게도 중간에 그만둔 집이 있어요. 아이를 중심으로 가족이 함께 해야 한다는 취지가 중요해서, 그럴 수 밖에 없었어요. 아이는 자신이 동물 장난감을 만들고 싶어했지만 그렇게 되지 않았어요. 아이는 흥미를 잃었고 부모는 아이를 달래는 데만 급급했어요 그래서 단호하게 중단시킨 후 아이가 원하는 걸로 새로 시작해 보자고 했습니다만, 결국 그만두게 되었어요. 아쉽지만 잘한 결정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게 저의 역할이고 책임이라고 생각해요.

▲나무창작소 협동조합 실장 이금희
어떤 이들이 나무창작소에 왔으면 좋겠어요?
“학교 밖 청소년들이 몸 두고 마음 쉬러 왔으면 좋겠어요.”라며 요즘 공방에 오는 한 청소년에 대해 들려주었고, 그가 마음을 열길 기다리고 있다고 했다. 한 겹 한 겹 만들어진 금희 씨의 나이테에 지금은 아이들에 대한 애정이 겹겹이 붙어있나 보다.
인터뷰를 마치고 가는 나에게 금희 씨는 나무로 만든 주걱과 작은 접시를 선물로 주었다. 받은 선물을 그냥 손에 들고 가려고 하자 “그렇게 갖고 가면 하찮은 물건이 돼요.” 라며 종이봉투에 담아 건넸다.
이곳에서 벌어질 일을 잠시 상상해 본다. 평범한 가족이 막내딸의 작은 의자를 만들고 퇴직한 선생이 서재에서 쓸 책장을 만든다. 그 사이를 이리저리 바쁘게 움직이는 금희 씨가 보인다. 나무가 서로 부딪히는 둔탁한 소리 사이로 피아노 경음악이 흐르면 비로소 이 장면이 완성된다. 이곳이 동네의 놀이터가 되면 좋겠다는 그녀의 작은 바람은 머지않아 이루어질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