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4호] 누군가를 만나는 진실한 마음에 대하여
광주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
날짜 2023-08-29 조회수 166

 

누군가를 만나는 진실한 마음에 대하여

 2023 생애전환문화예술교육지원사업 선정 기획자 윤선목 인터뷰

 

 

문화예술교육팀_정윤정

 

 

 

이번 인터뷰는 윤선목 기획자가 보내준 카톡 사진에서 시작됐다.

윤선목 기획자가 생애전환문화예술교육지원사업 지영씨의 인생부록-두개의 방첫 번째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나서 나에게 사진을 전송해주었다.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녹초가 된 강사들이 쓰러져 자고 있다면서, 내가 생각났다면서. 

 

 

  

  △ 담당자 카카오톡 캡쳐



그리고 한 문장이 떠올랐다. ‘누군가를 만나는 진실한 마음에 대하여.’ 그녀를 설명하는 수많은 말들이 있겠지만 문화예술교육 기획자로서 그녀를 설명하는 말 중에 이 말보다 어울리는 것은 없으리라. 순간 아, 인터뷰를 해야겠다, 글로 남겨야한다 라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인터뷰를 하기로 한 810일은 태풍의 영향으로 비가 내렸고 하늘은 내내 잿빛이었다. 우리는 그녀가 대표로 있는 단체 의 사무실에서 만나기로 했다. 키 큰 아파트들이 우뚝우뚝 서있고 새로운 아파트 공사가 한창인 주택단지 사이, 작은 상가 건물들이 모여 골목을 이룬 곳에 품의 사무실이 있었다. 한 상가 건물 2층에 자리한 사무실에 들어서니 품이라는 말 뜻 때문인가, 작은 공간이 아늑하고 푸근했다.

 

윤선목 기획자가 벽 한쪽 커튼으로 가려둔 높다란 선반을 가리키며 저 커튼 열면 우리 재료가 꽉 차있어요.” 한다. 그리고 품 멤버들이 와서 이야기도 하고 밥도 먹고 잠도 자고 가는 공간이라 설명했다. 그곳에서 우리는 차와 생과일주스를 연거푸 마시며 3시간을 꼼짝도 하지 않고 이야기를 나눴다.

 

 

인터뷰 내용은 각 문단의 주요내용에 맞춰 편집했다.

인터뷰 당시 조현정 강사도 함께 자리해서 그녀의 이야기도 조금 담겨있다.




참여자들과 맺은 인연의 무게

윤정   : 지영씨와 인생부록Ⅴ – 두개의 방(이하 지영씨)이 끝 난지 얼마 안 되셨지요. 끝나고 난 뒤에도 참여자들과 네트워크를 지속하시는 걸로 알고 있어요.

 

선목   : '지영씨'에 참여한 조현정 선생님이 남구 문예회관에서 성인 발레반을 열었는데 지영씨했던 참여자들이 많이 오셨어요. ‘지영씨랑 다른 프로그램이니까 그 느낌으로 오면 안 된다고, 친한 척하지 말라고 했어요.ㅎㅎ 9월에 정모도 가져요. 이 공간에서 만나기로 했어요. 예전에 만나보니까 카페는 시끄럽고 불편해서 안 되겠더라고요. 여행도 가보려고 했는데 아무래도 쉽지는 않을 것 같아요.

 

윤정   : 참여자들을 만나고 프로그램이 끝난 후에도 관계를 지속하는 것이 힘들지 않으세요?

 

선목   : 계속 담고 가는 것 같아요. 날씨가 바뀌면 한 번쯤 연락해보고. 너무 자주 연락하면 불편하실까 봐 조심스럽긴 하지만요. 참여자들과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쉽지 않아요. 하지만 끝날 때 마다 쇼 한 번 하고, 살짝 느끼게 해주고, 막 부추겨놓고 모르는 척 하는 느낌이에요. 우리 프로그램 하려고 무대 위에 착 세워놓고 끝났으니까 이제 안녕, 돈 없어요, 못 만나요. 이게 너무 싫었어요. 이거는 내게도 안 맞고 함께한 강사진하고도 안 맞아

그렇다고 그들과 연결을 지속하고 질척거리면 누군가는 불편할 수도 있지요. 함께 한 강사들도 괴롭히는 일일 수도 있고요. 그래서 지영씨프로그램 더 안하고 싶다는 생각도 했어요.

 

윤정   : 제가 이 인터뷰를 시작한 계기이기도 한데, 선생님을 생각하면 누군가를 진실로 대하는 그런 마음이 떠올라요.

 

현정   : 어제 한 멤버가 그러더라고요. 몰랐는데 내 일을 하는 것보다 다른 사람을 도와줌으로써 오는 희열이 더 크다고. 그래서 내가 그랬죠. “우리 다 그래.”

 

선목   : 그게 우리 공통점이지. 내가 성장하는 걸 누가 인정해 줄 때 좋기도 하지만 뭔가 불편함이 있어요. 그것이 크게 원동력이 되지 않아요. 그런데 나로 인해 누군가가 달라지는 걸 보면 잠을 못 자게 좋아요. 거기서 엄청 크게 느껴져요.

 

문화예술교육, 한 편의 쇼가 되지 않기 위해

윤정   : 무용으로 하는 문화예술교육이 많지는 않아요. 프로그램을 기획할 때 어떤 부분에 초점을 맞추세요?(윤선목 기획자는 무용전공자이고 품 멤버 대부분 무용전공자들로 이루어졌다.)

 

선목   : 무용 프로그램을 기획할 때 가장 1번으로 생각하는 게 장소, 거울이 없는 곳을 찾아요. 참여자들이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도록요. 그렇게 부끄러움을 없애고, 춤으로 바로 시작하는 것보다 움직임으로 먼저 시작하려고 해요. 

그리고 춤을 통해 내가 그렇게 나쁘지 않아. 괜찮아.”를 느낄 수 있기를 바라요. 그런데 실제로 해보면 내가 생각하는 변화보다 훨씬 더 큰 변화가 있더라고요. 예를 들어 가정주부들은 일을 시작하기도 하고요. 애들 같은 경우에는 붙었던 겨드랑이가 떠지고요. 자신감이 붙는 거겠죠.

프로그램 운영할 때 낯가리는 아이들, 어색해 하는 참여자들을 위해 당황하지 않도록 수업 내용을 사전에 알려줘요

다음 수업은 비밀입니다. 하면 이게 누군가한테는 진짜 불편한 일인 거예요. 즉흥적인 것이 때로는 참여자들을 골탕 먹이는 것 같아요. 놀라는 모습, 우는 모습으로 감동을 만들어 낼 때 우리가 만든 쇼를 시키는 것 같을 때도 있고요.

이번에 지영씨할 때도 참여자들을 괴롭히지 말자고 생각했어요. 내일은 뭐에 대한 질문을 할 거고, 어떤 이야기를 할 거다. 그러니 한 번쯤 다 생각해보자. 갑자기 하면 당황스러우니까 그런 것들을 조심했어요.

 

윤정   : 쇼 이야기 하시니까 저도 고민했던 것이 생각나요. 센터에서 기획 사업을 하다보면 내가 만든 무대에 사람을 세우는 느낌이 드는 거예요. 뭔가 정답을 말하길 기다리는 것 같고요. 내가 원하는 변화 혹은 내가 생각한 정답을 말해주기를 기다리는 거예요.


선목   : 그렇게 안 나오면 뭔가 잘못한 것 같고 실패한 것 같고. 그렇죠? 그런데 어느 누군가는 그 변화를 일부러 꺼내지 않은 사람도 분명히 있거든요. 그전에 지영씨프로그램을 진행할 때 참여자들이 표현을 잘 안하시고, 변화가 늦으셔서 힘들었던 부분이 있었어요.

올해 지영씨시작할 때 작년에 참여하셨던 분에게서 연락이 왔어요. 작년에는 말이 별로 없으셨던 분인데, 이번에 와서 이야기해 주더라고요. 자신에게 너무 큰 변화가 있었다고. 가장 큰 변화는 일을 시작했다는 거예요. 함께 했던 참여자들이 전부 박수 쳐줬어요. 그러면서 생각했죠. 내가 놓치고 있었구나. 말로 표현하는 것이 다가 아닌데. 

그렇게 내가 생각하는 무용으로써 변화는 나를 사랑하고, 아끼고 한 걸음 나아가는 것이었지만 실제로 참여자들을 만나보면 그것보다 훨씬 더 큰 변화가 있었던 거죠. 원래는 문화예술 교육으로 사람은 바뀔 수 없다, 사람은 안 바뀐다고 생각했는데 약간씩 스며들다 변화가 오는 거예요. 너무 놀랐어요.

 

윤정   : 윤선목 선생님과 품이라는 단체가 요즘 보기 드문 기획자, 단체라는 생각이 들어요. ‘내가 혹시 쇼한 거 아닐까, 참여자들을 무대에 세워놓은 거 아닐까’ 생각하는 것 역시 차원이 다른 고민 같아요.

 

선목   : 다들 그러지 않을까요. 아닌가, 그러면 문화예술교육 못 할까. ㅎㅎ

이번에 지영씨프로그램 중에 발레 수업에서 몸으로 자기 이름쓰기를 했어요. 이때 이후로 참여자들이 자기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어요. 개인적인 이야기라 걱정이 되기도 했는데, 참여자 중 한 분의 이혼 이야기가 나왔어요. 본인 혼자서 아이 키우고 있는데 내가 여기서 이렇게까지 자신을 드러낼 줄 몰랐다. 그 말에 참여자들 모두 너무나 따뜻하게 공감해주시고, 열심히 살자고 다독여줬어요. 나를 통하지 않고 참여자들끼리도 마음으로 응원하고 그러더라고요.

 

 

  △ 올해 <지영씨의 인생부록> 참여자들의 자화상

 

 
 

그렇게 까지 해야 돼요?

선목   : 누구든 저한테 그렇게 말해요. 그렇게까지 해야 되냐.  프로그램 하면서 제일 많이 듣는 말이에요. 꼭 그렇게까지 해야 돼요? 그렇게까지 꼭?

이번 지영씨프로그램 하면서는 15명 모두가 다른 색깔의 튜튜(발레용 스커트)를 입고 춤을 춰야 하는데 2개가 모자라 미리 주문을 했어요. 부산(업체)에서 보냈다고 했는데 잊어버리고 안 보낸 거예요. 프로그램은 곧 인데, 참여자들이 직접 맘에 드는 튜튜를 골라 입고 좋아하는 모습까지 다 계획에 있는데, 이게 어그러지니까 너무 스트레스를 받았어요.

무용복 하는 가게 한 곳에 연락을 했어요. 여기가 통화가 잘 안 되고 여차하면 문을 닫는 곳이거든요. 혹시나 하는 마음에 전화를 했는데 딱 빨간 튜튜가 2개 있다는 거예요. 튜튜를 가지러 차를 빌려 타고 가서 어렵게 구했어요. 그날 튜튜 때문에 천당과 지옥을 왔다 갔다 했는데 프로그램 진행 했을 때 찍은 사진을 보니 빨간 튜튜를 입고 발레하는 두 명이 너무 예쁜 거예요.
...내가 저 모습을 보려고 이 고생을 했구나 싶었죠.

 

윤정   : 저는 그렇게까지 해야 돼 라는 그 말이 너무 와 닿아요. 그게 다른 프로그램과 차이를 만들어내는 부분이라고 생각해요.

 

 


 

  △ 윤석목 기획자와 조현정 강사

 

모두의 성장을 위한 고민

윤정   : 사람을 생각하는 그 마음이 남다르신 것 같아요. 그래서 품이라는 단체 이름도 어울려요. 품 멤버들이 끈끈하시잖아요. 추진력도 좋으시고요.

 

선목   : 우리가 이름을 만들 때 내가 뭔가 엄마처럼 평온을 느끼게 하는 뜻이면 좋겠다 하다가 이라는 이름이 나왔어요. 딱 그 뜻이었어요. 그렇게 가자 했지요.

우리는 애초에 일을 하려고 만난 게 아니에요. 돈 많이 들여 무용 공부한 후배들이 적은 돈 받고 공연하고, 몇 백만 원짜리 의상 입고 무대에 서도 드라이크리닝 값도 못 받아요. 현장에서는 말 못하고 돈을 못 받아 올 때도 있고요. 그런데 우리가 같이 싸워줄 명분이 없잖아요.

그냥 뭔가가 있으면 힘이 조금 생기겠다 했어요. 지원 사업을 하겠다 이런 생각은 전혀 없었고 연구모임 정도? 우리끼리 성장해보자 이런 뜻이었어요. 지원 사업하는 건 꿈이었죠. 그런데 이렇게 좋은 인력들이 함께 하니까 기관에 계신 분들이 지원사업도 해봐라 하시는 거예요. 100번 떨어지면 한 번은 될 거니까. 분명히 알아봐주는 사람 있을 테니. 그렇게 지원 사업도 시작하게 되었어요.


그런데 함께 하다 보니 결국에는 개인 개인이 성장을 해야 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요즘은 품 멤버들이 각자 자신이 대표로 할 수 있는 것을 하도록 유도하고 있어요. 멤버들이 앞에 나서는 걸 불편해해요. 하지만 각자 이렇게 해야 모두 성장할 수 있거든요. 내가 안 될 때 다른 멤버들 덕분에 끌어 올라가고 내가 여유가 될 때 다른 멤버를 도와주고. 그렇게 서로를 보완해 주는 거예요.

  

 

기획자 윤선목으로서

윤정   : 앞으로 기획자로서 하고 싶은 프로그램이라던가, 기획자로서 어떤 목표가 있으실까요?

 

선목   : 계속해서 새로운 대상을 만나고 싶어요. 남성분들과 프로그램을 해본 일이 별로 없는데, 경비 아저씨나 택배 기사를 위한 프로그램도 생각해봤어요. 그리고 우리한테 없는 타 분야와 작업해보고 싶어요. 아직 못 해본 연극, 미디어 이런 분야도 해보고 싶고요.  어떤 자극이 분명히 있을 것 같아요.

 

윤정   : 어느 날 문득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을 참여자 수 같은 것으로 판단할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을 했어요. 참여자는 한 명이지만 그 한 명이 바뀌면 가족이 바뀔 수 있잖아요. 그리고 가족이 바뀌면 또 다른 누군가에게 영향을 줄 것이고요. 단순히 한 명의 변화가 아닌 거예요. 참여자 한 명으로 인해 좋은 영향이 퍼지고 또 퍼지고. 그렇게 생각하니 문화예술교육의 가치를 수로 환산할 수가 없는 거예요.

 

선목   : 예전에 예술 강사 면접 때 했던 말이 그거였어요. 수업하는 아이들 중에 맨날 혼만 나고 공부도 잘 못하던 아이가 있다고 해봐요. 그런데 이 아이가 예술 교육에서는 잘 한다 칭찬 받고 인정받는 거죠. 자신감이 생기는 거예요. 수업을 한 날 저녁에 아이가 밥상에 앉아 엄마, 무용 시간에 내가 최고로 잘했다고 칭찬받았다.” 라고 전하면 어떨까. “선생님이 내 춤이 아름답다고 했어.” 이렇게 말하면 그날 엄마 아빠는 어떤 기분일까. 아마도 행복해지겠죠.

그럼 그 다음 날 아빠는 회사 가서 더 즐겁게 일할 수 있을 거예요. 엄마도 행복한 기분으로 하루를 시작할거예요. 내가 생각하는 예술 교육은 이런 거라고 이야기했어요. 그 생각은 확고해요. 지금도 마찬가지죠.

  

인터뷰를 마치고 나오니 비는 그치고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 <지영씨의 인생부록>19년도 센터 자체사업으로 시작됐다. 30~40대 출산과 육아를 경험한 여성들을 대상으로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응원하고자 기획운영된 프로그램이다. 20년도 코로나로 어려운 시절에 비대면으로 새판을 짜준 이가 바로 윤선목 기획자다. 그리고 생애전환문화예술교육지원사업을 통해 그 명맥을 이어 주고 있다. 14년도 <경자씨와 재봉틀>이라는 프로그램에 보조로 참여하며 문화예술교육에 첫 발을 디딘 나는 윤선목 기획자가 진행하는 지영씨를 보며 그때의 감동을 오랜만에 다시 느꼈다.

 

인터뷰 중에 그녀는 지원 사업의 지원서 작성과 심사과정이 녹록치 않다고 했다. 기획한 프로그램에 대해 글과 말로 잘 녹이고 싶은데 충분치 않다며. 그리고는 좋은데 뭐가 좋은지 말을 못해, 돌침대여?” 했다는 컨설턴트 이야기에 함께 배꼽을 잡고 웃었다

하지만 돌이켜보니 그렇다. 단체 스스로 정체성과 장점을 잘 설명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센터 역시 좋은 문화예술교육 현장을 찾아 의미를 읽어내고 더 많은 이들에게, 더 적극적으로 전해야할 의무가 있지 않은가. 그 의무를 꽤 오랫동안 등한시 한 것도 같다.

 

그래서 감히 적어본다. 윤선목 기획자가 하는 모든 일에는 사람과 이야기가 있다고, 그녀는 진짜 마음을 다하는 흔치 않은 기획자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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