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7호] 유아예술공연을 만들어 주세요! / 정윤정
광주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
날짜 2023-11-29 조회수 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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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아예술공연을 만들어 주세요!


문화예술교육팀 정윤정



모든 일의 시작은 작년 10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작년 10월 서울문화재단에서 유아문화예술교육 축제 예술로 감각하는 아이와 어른을 진행했다. 사업 담당자인 나는 서울문화재단 유아행사는 어떻게 진행되나 궁금해서 직접 찾아 갔다. 행사는 공연, 강의,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으로 구성 되어있었다. 그중 내 마음을 사로잡은 것은 !마이라이프 무브먼트 씨어터의 참여형 유아공연 '과일, 악기, 그림책'이었다.

 

과일과 악기, 그림책과 함께 보낸 시간 속에서 피어난 상상과 춤의 조각들을 모아 담았다는 넌버벌(대사 없이 비언어적인 요소로 무대를 구성한 퍼포먼스를 일컫는 용어) 무용 공연이었다. 과일, 악기를 소품으로 무용수들의 장난스런 표정과 아름답고 낯선 몸짓이 아이들과 어른들의 눈을 사로잡았다. 스토리가 없어도, 대사가 없어도 집중하고 반응하는 아이들 모습이 신기했다. 그리고 어른인 나도 참 재밌었다.

 

공연이 끝난 뒤에는 장재키 선생님의 강연을 들었다. 장재키 선생님(JMI 신경과학예술원장)은 예술경험이 유아기 뇌 발달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신경심리학으로 설명해주었다. 1년이 지난 지금, 강의의 자세한 내용은 생각나지 않는다. 그저 예술’, ‘유아’, ‘라는 단어의 조합만으로 엄마인 내 마음을 홀렸다는 것만 생각날 뿐


 

△ 서울문화재단에서 진행한 '과일, 악기, 그림책' 공연, 장재키 강연 현장



그렇다, 그날을 돌이켜 보면 홀렸다라는 말이 떠오른다.

단단히 홀렸다. 광주로 오는 길 내내 공연에 대해 생각했다. 내가 본 공연을 아이들에게도 보여주고 싶었다. 연말에 진행할 유아행사에 그 공연을 초대하고 싶었다. 서울문화재단에 전화를 걸어 공연에 대해 문의했다. 연출가 연락처까지 손에 쥐었지만, 끝내 초대는 못했다. 초대할 예산과 무대가 마땅치 않았고, 극단이 움직이는데 드는 품이 만만치 않았다.

 

그러다 생각했다. 이럴 바엔 우리가 공연을 만들면 어떨까. 우리가 추구하는 사업의 방향성을 시민들에게 전하려면 공연만큼 좋은 게 있을까. 타 지역에서 만든 공연을 보러가거나 모셔오는 것도 좋지만, 우리가 직접 만든다면 여러 면에서 더 좋을 것 같은데. 이런 생각과 논의가 꼬리에 꼬리를 물었고, 그렇게 정말로 유아예술공연을 만들게 되었다.

 

올해 5, 유아문화예술교육지원사업을 오래 동안 진행한 놀이요 점빵 이보미 대표를 만났고, 최민 연출가, 문경미 작곡가, 이다정 음악가를 만났다. 지역의 전문가들을 모셨지만 무엇을 해야 할지,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했다. 이런 저런 이야기들을 나누었지만 꽤 오랫동안 지지부진한 시간이 흘렀다. 공연의 자도 모르는 나는 그저 예술적인 공연을 요청 드렸다. 예술적인 공연이 무엇이냐는 질문이 돌아왔다.

 

...만화 캐릭터 공연 같은 거 말고요, 진짜 예술가들만이 보여줄 수 있는 것을 보여주는 공연이요. 유아사업의 목표가 예술과 놀이인데요, 이걸 제대로 보여줄 수 있는 공연이면 좋겠어요.”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니 너무 추상적이고 뜬구름 잡는 소리다. 그렇지만 정말 그랬다. 유아들에게 가장 익숙한 공연은 캐릭터가 나오는 뮤지컬 극이다. 물론 아이가 좋아하는 텔레비전 속 캐릭터가 실제로 춤추고 노래하니 공연에 대한 만족도가 높다. 하지만 그런 공연이 예술적인가? 하고 묻는다면 고개를 갸웃거리게 된다. 아이를 데리고 그런 공연에 몇 번 갔었는데 캐릭터 팬클럽 모임(?) 같은 느낌이랄까... 금액적인 부분도 무시할 수 없다. 보통 1인당 티켓 값이 4~5만원정도 한다. 아이들 혼자 공연장에 들어갈 수 없으니 부모 1인과 유아 1인을 하면 기본으로 8~10만원정도 소요된다. 많은 아이들에게 다가갈 수 없는 공연이고, 예술적으로 확장될 수 없는 공연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공연을 통해 유아와 예술가가 만나는 고리를 만들고, 아이들이 평상시에 보지 못한 몸짓, 목소리, 음악소리를 듣게 해주고 싶었다. 일단 그것이 시작이라 생각한다. 유아문화예술교육지원사업도 같은 목표를 가지고 있다. 예술단체들이 유아교육기관을 찾을 때 가장 먼저 보여줘야 하는 것, 가장 돋보여야 하는 것은 예술가이다. 예술가의 창의적 시선, 표현방법을 아이들과 공유하는데 중점을 둔다. 기존의 기능위주, 결과물 위주 예술교육과 차별화되는 지점이다.

 

더 이상 미룰 수 없을 만큼 시간을 보내고, 몇 번의 회의 끝에 놀이요 점빵에서 올해 프로그램 주제로 삼은 무엇이든 담을 수 있는 그릇을 공연의 모티프로 결정 했다. 형식은? 옴니버스 형식으로 가보자. 3개 이야기 정도는 있어야 안정적일 것 같다. 그릇에 무얼 담아볼까? ? 음식? 사람? 빨래? 등등 아이디어가 쏟아졌다. 순식간에 시나리오가 완성됐고, 4개의 주제곡이 만들어졌다. 배우, 연주자, 무용수가 모여 밤마다 연습했고, 나는 연습 장면을 몰래 훔쳐보며 와...역시 예술가는 다르다 라며 감탄했다.

 

그렇게 숨 가쁜 준비기간을 보내고 드디어 114()에 문화예술교육 축제 아트날라리에 맞춰 쇼케이스를 올렸다. 모두 15가족을 초청했고, 유아부터 부모님, 조부모님 등 다양한 연령대의 관객이 모였다. 쇼케이스라 러닝타임은 30, 짧은 시간이었지만 보는 내내 가슴 졸이고 관객들의 표정을 살폈던 내게는 일분일초가 더디게 흘렀다.


공연 '그릇을 만들어 주세요'7살 세인이의 눈으로 바라본 그릇의 다양한 쓰임과 상상, 그 과정 속에서 세인의 성장을 다룬 유아극이다. 연극, 무용, 국악이 융합된 장르로 지역의 예술가들이 이야기와 음악을 만들고 연출한 창작극이다. 옴니버스 형태로 꽃을 담는 그릇, 밥을 담는 그릇, 마음을 담는 그릇, 3개의 이야기가 이어져있다. 단순히 배경 음악이 아니라 곡 자체가 드라마가 될 수 있게 작곡된 곡과 무용이 함께할 때 아름다웠고, 흔히 접할 수 없는 국악기 라이브 연주는 눈과 귀를 사로잡았다. 배우들의 담백한 연기가 좋았고 그릇을 만드는데 필요한 물, , 흙을 무용으로 표현한 것도 반짝이는 지점이었다



△'그릇을 만들어 주세요' 쇼케이스 현장



공연 이후 다양한 반응들이 전해졌다. 한 어머니의 후기를 전하자면, 본인은 무용수들이 표현하는 것이 무엇인지 몰랐는데 아이가 ? 그거 물, , 흙이잖아. 그래서 그릇을 만드는 거잖아.”라고 했다며, 오히려 아이가 공연을 더 잘 이해하고 있더란다. 공연 시간이 짧아서 아쉬웠다고, 다음에 더 길게 보고 싶다는 후기가 많았다. 아직 다듬어야 할 것들이 많지만 후기를 들으니 우리 공연이 꽤 괜찮았던 것 같아 흐뭇했다.

 

지난 주말 아이와 유아극 한 편을 보고 왔다. 라이브 음악과 동화가 어우러진 공연이었는데, 낯선 곡의 연주가 계속되니 아이가 내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

심심해.”

 

아이의 이런 반응에 어떻게 대답해야 할까 고민하다 말했다.

. 그럴 수 있어. 음악이 낯설고 이야기도 조금 어려워서 그럴 거야. 근데 이 공연을 그런 공연인거야. 이런 공연 저런 공연 다 봐 보자. 그래야 네가 무얼 좋아하는지 알게 되지.”

 

아이들이 공연을 보다 집중력이 흐트러지거나 심심해하면 어른들은 조급증이 일어난다. 재미가 없나? 공연을 잘 못 골랐나? 그런데 가만 생각해보면 어른들도 그렇지 않나, 공연을 보는 내내 집중할 수 없고, 재밌기도 하고 별로일 때도 있다. 그리고 내 취향이 아니라고 생각했던 것이 어느 날 갑자기 좋아지기도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일단 많이 경험하고 느껴야한다. 뿌린 것 없이 어떻게 거둘 수 있을까. 좋은 취향도, 예술을 즐기는 것도, 감각과 감정을 아는 것도 일순간에 키워낼 수 없다. 씨 뿌리고 싹 틔우고, 물주고 햇볕 주며 오랜 시간 가꿔야 한다. 아이를 키우는 것처럼 말이다.

 

'그릇을 만들어 주세요'는 그 씨앗이 되고 싶다. 이제 막 만들어진 공연이니 여러 번 손을 봐야 한다. 빼어난 공연이라고는 말할 수 없지만 아이들 마음 텃밭에 뿌려진, 이름 모를 작은 예술씨앗은 되지 않을까. 그 씨앗이 땅속에서 몽글몽글 해지다 빼꼼! 땅 밖으로 싹을 밀어낸다면, 우리 공연은 제 몫을 충분히 한 것이리라. 마지막으로 뇌과학자가 말하는 우리가 예술을 하는 이유, 예술의 중요성을 전하며 마무리할까 한다.

 


 인간이 음악이나 예술에 열정을 쏟는 이유는 사람들 사이의 소통을 위해서입니다.

이런 경험들은 우리가 자신과 세상을 더 깊이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죠,

예술에 참여하는 것은 인간이 가진 핵심시스템이라고 봅니다.

예술을 통해 인간은 감정을 느끼고 세상을 이해하는 기쁨을 얻기 때문입니다.”

뇌과학자 에드워드 베슬

EBS 다큐프라임 뇌로 보는 인간 예술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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