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3호] 도시기록자의모임 체험 수기
광주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
날짜 2023-07-25 조회수 144


도시기록자의 모임 체험 수기

걷고, 기록하기 

 

                                                                                                                                                                   


                                                                                                                                               문화예술교육팀_박수현, 김민상



▲ 도시 기록을 위한 준비(노트, 연필, 마스킹테이프)

 


순간을 기억하기 위해 기록한다. 단순히 현장을 전달하는 기록도 있겠지만 내 감정과 취향 그리고 그때의 분위기까지 고스란히 담겨 있는 기록도 있다.

 

기록한 걸 그대로 두었을 땐 추억이 되지만, 분류작업을 통해 정리하면 쓸모 있는 아카이브 자료가 되어 하나의 역사가 될 수 있다.

 

아시아문화전당에서 기획한 도시기록자의 모임워크숍은 도시를 걸으며 보이지 않는 동네 곳곳을 관찰하고, 나만의 방식으로 해석하는 힘을 찾아보는 자리였다. 조대현 광주대 사진영상학과 교수, 이경민 서울 수집가의 특강은 워크숍 초반에 갈피를 못 잡는 25명의 참여자에게 도시기록의 중요함을 일깨워주었다.

 

단순 촬영에 그치지 않고 결과물로서 기록되고 보존되려면 기록물들이 밖으로 나와야 의미가 있어요. 나의 일상을 기록하는 작업을 소홀히 하지 말아요

 

내가 살아가는 도시를 바라보는 나만의 시선을 갖는 건 중요해요. 결국 안다는 건 나 자신에게 돌아오거든요. 또한, 걷기를 통해 명확한 답을 찾기보다 초반에는 헤매면서 나만의 길을 찾는 시행착오를 겪어야 해요

 

 

▲ 도시 기록자의 모임 홍보물

워크숍 참여자로 6월 30()부터 7월 1() 전당 일대에서 진행한 도시기록자의 모임후기를 서로 묻고 답하며 그때 그 순간을 기록해보자 한다.

민상 : 현재 전당에서는 걷기 워크숍 뿐만 아니라 [걷기, 헤매기]전시도 진행되고 있다. 전시를 먼저 보고, 워크숍에 참여하게 됐는데 단순히 걷는다는 행위에서 확장하여 나의 걸음에 어떤 의미를 담아볼 수 있을까 하는 질문과 그에 대한 답을 찾으려고 노력했다.

 

수현 : ‘걷기라는 주제를 가지고 정말 다양한 형태로 표현하고 전달 가능하다는 걸 알게 됐다. 현재 사라져 가는 내 주변의 모든 것을 나만의 방식으로 기록하고, 가치화하기 위한 방법을 알아가는 과정이었다.

 

[걷기, 헤매기] 전시에서 기억 남는 작품은 벨기에 출신 프란시스 알리스 작가 우리는 사는 대로 꿈꾸곤 한다&우리는 꿈꾸는 대로 살곤 한다영상이다. 작가는 9시간 동안 얼음덩어리를 밀면서 거리를 돌아다니는데 큰 덩어리 얼음이 결국 다 녹아 작은 덩어리가 된다. 작가는 영상작품을 통해 아무런 보상 없는 힘겨운 노동의 과정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한다. 이 작품을 통해서 걷기는 단순히 한 장소에서 다른 장소로 이동하기 위한 몸의 움직임을 넘어서는 의미가 깃들어 있다는 걸 다시금 깨닫게 됐다.

[걷기, 헤매기]전시: 23.4.27.~9.3. / 문화창조원 복합전시 3관 및 복합전시 4

 

 




                                                                                                             ▲ 내 걸음, 내 기준으로 '광주 읽기'

 

 

수현 : 워크숍 둘째 날, 전당 주변 5개 구역(궁동·동명동·서남동·서석동·장동)을 나눠 도시기록 현장실습을 했는데 그때를 회상해보며 떠오르는 느낌은 덩그러니 나 혼자”, “갈 곳을 잃은”, “도대체 어떻게”, “너무 덥다등 이었다정해진 1개 구역을 혼자서 90분간 도시기록을 하라고 했으니 정말 막막했다. 더군다나 결과물로 인상 깊은 장소 사진 5장을 찍어 제출하라니.... 내가 뽑은 장소는 워낙 핫플로 유명한 동명동이었다. 발길이 많이 닿지 않은 동명동 가장자리부터 걷기를 시작했다. 막막했지만 걷다 보니 40분이 지났고, 상점들 간판과 곳곳에 써진 문구가 눈에 들어와 사진을 찍었다. 자주 방문한 동명동에 이런 문구가 써진 곳이 있구나! 라는 생각하면서 문구에 위로받기도 하고, 때론 웃기도 했다. 90분간 현장실습을 마치고, 사진 5장에 제목을 붙였다

 

 

동명동이 전하는 메시지

걷다 보면 지칠 때도 있습니다. 쉬어야 할 때도 있습니다(음식점 간판)”

준비되어있는 사람은 기회를 놓치지 않습니다(작명소 간판)”

“(금연) 지성인이 됩시다(전봇대)”

커피는 악마와 같이 검고, 지옥처럼 뜨겁고, 천사와 같이 순수하고, 키스처럼 달콤하다(동명동 카페거리 바닥) 


▲ 현장실습 기록(동명동)

 


민상 : 내가 뽑은 장소는 서남동(인쇄의 거리) 이었다. 6개월 차 광주시민에게는 낯선 공간이라 설레었다. 서남동 거리에 들어선 느낌은 도로 하나를 두고 동명동은 북적거리는 반면 서남동은 조용하고 정감 있는 동네구나였다서남동 분위기를 전혀 모르니 나에게 주어진 90분 동안 무엇을 찍겠다는 생각보다는 내 눈에 들어오는 공간들을 무조건 찍기 시작했다. 그러고 나서 내가 찍은 사진들을 살펴보니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내가 찾은 공통점은 시간의 흔적이 남은 건물사이()’ 이었다시간의 흔적이 남은 건물을 보며 지금의 시점에서 발견할 수 있는 과거의 흔적을 확인할 수 있었고 촬영한 사진 속의 건물들은 이미 기능하지 못하거나 뼈대가 드러난 건물들이 대부분이었다사이()’에서는 주로 골목이나 건물과 건물 사이의 좁은 틈에 눈길이 많이 갔다. 주의 깊게 관심을 갖고 둘러보아야 보이는 사이들을 발견할 때면 숨겨진 곳을 발견한 듯 설레는 기분이 들었고 골목의 끝 너머로 보이는 풍경이 마치 이야기의 끝자락이자 새로운 이야기의 출발점이 되는듯하여 흥미로웠다.

 

 

  
                                                                                                             ▲ 현장실습 기록(서남동)

  

 


민상 : 현장실습을 통해 나만의 기준으로 기록하며, 이런 생각이 들었다. “같은 공간을 기록해도 정말 다양한 결과물이 나오는구나이렇게 다른 결과물이 나오는 건 기록하는 사람의 의도가 다르기 때문이며, 특히, 도시를 볼 때 어떤 부분에 집중 하고 어디에 관심 있어 하는지에 대한 그 기준이 에서부터 출발했기 때문이라고 본다그런데 한 가지 의문이 생겼다. “나만의 기준으로 기록한 자료는 객관성 있는 자료가 될 수 있을까?”

 

수현 : 나만의 기준으로 기록한 자료라고 할지라도 어떻게 분류하느냐에 따라 객관성 있는 자료가 될 수 있다고 본다. 조대현 교수가 얘기한 것처럼 특정 피사체를 찍으려 했지만 향후에 전혀 다른 걸 발견할 수도 있기도 하고, 기록이라는 행위를 하고 싶을 때 그 주관적 의미를 공부하고, 찾아서 의미를 부여해야 객관적, 역사적 의미가 있다그냥 우리는 내가 흥미 있는 것을 찍고, 당시의 느낌도 같이 메모해 두며 부지런히 기록하고, 정리 그리고 공부하면 언젠가 객관성 있는 자료가 될 수 있을 거라고 본다.

 

민상 : 20년간 쭉 한 지역에서 지내다 보니 다른 도시가 궁금했다. 광주살이 6개월 차, 세 지역(대구, 제주, 부산)을 거쳐 왔다. 도시 결정은 학업과 직장에 따라 정해졌지만 나에게 그 도시가 얼마나 매력적인 가에 따라 크게 좌우되었다여행과 다르게 직접 살아보고 피부로 느끼며 보이지 않던 것들을 하나둘씩 알게 될 때 비로소 그 지역에 대한 애정과 호기심이 샘솟았다. 지역의 보편적인 이미지를 생각하고 왔지만 의외의 곳에서 발견되는 것들이 더 흥미로웠고 지역성이 짙은 도시일수록 살아가면서 반전 매력을 더 많이 느낄 수 있었다

광주 또한 그런 도시 중 하나였다. 번화가 한복판 총탄 자국과 여러 추모비가 일상과 공존하고 있는 모습이 이질감 들면서도 우리의 일상과 묘하게 잘 어우러져 있는 것 같아 인상 깊었다. 앞으로 더 다양한 광주의 모습을 찾아보고 싶다.

 

수현 : 다른 도시를 돌아다니며 온전히 그 도시의 특색을 경험하는 것을 두려워 하지 않는 것이 대단해 보인다. 20년 넘게 광주에서 살고 있어서 다른 지역에 가서 활동하는 것이 두렵다. 익숙한 걸 벗어나 새로운 걸 맞이한다는 건 설렘 반, 두려움 반 이다. 2년 전 담당한 책자 제작사업(*광주에서 문화를 한다는 것/ 2021)으로 타지역 출신이지만 광주에서 활동하고 있는 스무명의 문화예술가를 기록한 작업을 한 적이 있다. 그 중 임현채 작가가 기억에 남는다. 임 작가는 순천 출신으로 광주에서 활동한 지 10년이 넘었고, 광주가 지닌 문화적 특이성에 대해 이야기했다. “광주가 해낸 시대적 역할에 감사하는 마음이 깊다. 그래도 광주니까, 더 넓어질 수 있으니까. 울타리를 깨고 외연을 넓혔으면 하는 마음이 있다광주에 대해 이야기했지만 새로운 걸 도전할 때 가져야 할 자세에 대해 말하는 것 같았다. 좋은 기회가 온다면 두려움이라는 울타리를 깨고 밖으로 나가봐야겠다.

 

수현 : ‘걷기주제와 관련해 전당에서는 전시·워크숍·퍼포먼스 등 다양한 형태로 엮어 대형 프로젝트로 기획했다는 게 놀라웠다. 연간 사업을 계획할 때 세부 프로그램을 다채로운 방식으로 시도해 보고 세부 프로그램이 자연스럽게 연결되도록 진행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느꼈다.

앞으로도 다양한 형태의 워크숍에 참여해 내가 관심 가는 주제를 차곡차곡 모으다 보면 언젠가 서로 연결이 되고, 확장될 수 있지 않을까

 

민상 : 전시만 봤을 때보다 워크숍을 통해 전시의 의미가 확장되고 나의 삶과 나로부터 시작하는 것에 대해 고민하게 되었다. 아직은 다양한 자극들이 연결되지 못하고 부유하는 느낌이지만 저도 언젠가 연결되고 확장할 수 있는 날이 올 것이라 믿는다. 

 사업을 운영할 때도 담당자의 시선에서 비롯된 사업 방향이 참여자들에게 더욱 진심으로 다가오지 않을까. 우리가 마주하는 단체들도 본인의 삶과 일상 속에서 문화예술교육을 고민해 볼 수 있는 순간을 경험한다면 또 다른 시너지가 생길 수 있지 않을까.

 

 

  

 

   ▲ 도시 기록자가 되기 위한 참고 도서


 


민상 : 워크숍 참여 후 일상의 변화가 왔다. 평소보다 내 주변에 더 눈길이 가게 됐다. 수십 번 다닌 길에 이런 가게가 있었다니 새삼 놀라면서 동네를 찍기 시작했다. 익숙한 곳에서 새로운 발견을 하는 게 재밌다. 목적지가 아닌 의미를 담은 걸음은 꽤 재미있구나 하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수현 : 나를 기록하는 것을 다시 시작 했다. 3년 전까지만 해도 나를 다스리는 일기를 썼다. 일기를 보면 그때 왜 그렇게 힘들었던지. 지금 보니 웃음이 나왔다. 일기를 안 쓰는 지금은 예전보다 더 불평과 불만이 늘어났다(웃음). 이번계기로 일기를 다시 쓰기 시작하며 순간을 소중히 여기고 내일을 맞이할 용기와 힘이 생겼다. 나를 조금은 덜 미워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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