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3호] 유아라는 아름답고 모호한 세계로의 탐험
광주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
날짜 2023-07-25 조회수 189

 

유아라는 아름답고 모호한 세계로의 탐험

 2023 유아문화예술교육지원사업 역량강화워크숍 후기 

 

​문화예술교육팀_정윤정 



유아문화예술교육지원사업이 올해로 5년차에 접어들었다. 2019년 사업이 전국에 이양 됐을 때만 해도 유아라는 대상도, 사업의 방식도 낯설어 이거 될까? 싶었는데 벌써 5년차라니.

사업 초기 개정 누리과정, 유아발달과정 등 알아야 할 것이 많고, 문화예술시설과의 협업, 키트 개발 등 수행해야 할 미션도 많아 담당자에겐 참으로 버거운 사업이었다. 게다가 유아에 대해 아무리 ​배우고 공부해도 사업의 방향은 명료해지지 않았고, 유아교육과 예술의 생각은 자주 엇갈렸으며 후에는 정체성마저 모호해져갔다.

작년 유아문화예술교육지원사업이 지자체 예산으로 온전히 이양되면서 재단장을 했다. 지역에 맞지 않는 겉치레를 떼고 유아라는 대상에 집중하니 명료해지는 것은 결국 예술과 놀이었다. 그리고 예술가와 유아가 만나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우리가 유아와 만났을 때 줄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예술을 통한 놀이, 놀이를 통한 예술은 무엇일까를 더욱 세심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지난 617일 토요일, 올해 선정된 유아문화예술교육지원사업 운영단체와 예술과 놀이에 대해 고민하고 사업의 방향성을 공유하고자 역량강화워크숍 유아탐구생활: 감각되찾기를 진행했다. 운이 맞았는지 서울에서 활동하시는 양혜정 선생님이 아시아문화전당에서 영유아 대상 공연을 한다는 것을 알게 되어 공연과 연계한 워크숍을 기획할 수 있었다. 양혜정 선생님이 연출한 공연을 보고 강연도 듣고, 현재 유아사업 컨설턴트인 조재경 선생님과 놀이워크숍도 함께 하기로 했다.

섭외와 계획이 완료되고 단체 대표님들께 연락을 돌렸다.

 

꼭 참석 하셔야 해요, 강사님들도 시간 되시는 분들은 전부 모시고 오셔요, 이런 워크숍 흔치 않습니다!”

 

 

 푹 하고 들어갔다가 푸 하고 솟아오르는 

워크숍 시작 전 운영단체 몇 분과 함께 양혜정 선생님이 연출한 푹 하고 들어갔다가 푸 하고 솟아오르는을 관람했다(모두 관람할 수 있었다면 좋았겠지만 소수인원을 대상으로 하는 공연이라 각 단체 당 1명씩만 관람할 수 있었다). 제목도 특이한 이 공연은 10개월에서 18개월 아이들을 대상으로 하는데, 과연 아이들이 공연을 관람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앞섰다. 적막한 공연장을 울리는 아기 울음소리, 아이들을 달래느라 정신없는 엄마 아빠의 모습만 자꾸 떠올랐다.

 

조심스레 공연장을 들어가 보니 객석과 무대의 경계를 없애 관객들은 무대에 방석을 깔고 앉아 있었다. 배우들은 공연 시작 전 아이들과 라포 형성을 위해 무대 위에 엎드려 다정한 표정으로 아이들과 눈 맞춤을 하고, 호기심 많은 아이들은 이미 무대 위로 진출해 활보하고 있었다.

 

공연은 가랑비가 내리는 여름 한 낮의 일상이 꿈처럼 열리는 순간을 모티브로 한다. 이야기나 배우의 대사 없이 움직임, 표정, 소리, 빛 등의 감각들로 채워진 무대로 일상에서 찾아 낸 태곳적 감각 같은 것들이 무대 위에서 푹 하고 들어갔다가 푸 하고 솟아오르기를 반복했다.

 

미디어를 사용하지 않고 배우의 움직임과 라이브 음악으로 무대를 꽉 채워 유아들이 감각적인 경험을 할 수 있고 온 몸으로 공연을 느낄 수 있도록 했다. 그리고 이 초라한 귀로도 알 수 있는 훌륭한 기타 연주까지 더해졌다. 아이들이 기타리스트 옆을 맴돌며 보면대를 만지는 모습은 한 번도 상상한 적 없는 무대였다. 아이들이 무대를 접수(?)하고 간간이 울음소리가 들려왔지만 공연팀은 끄떡없었다. 배우도, 연주팀도, 스텝들도 그 모든 준비되지 않은 상황에 맞춰 관객과 소통했다. 생애 첫 공연이 이렇게 훌륭한 공연이라니. 관객으로 온 아이들이 부러웠다.

 

 


 

 

공연이 끝나고 본격적인 워크숍을 진행하기 위해 컬쳐호텔 람으로 자리를 옮겼다. 기다리고 있던 참여자들을 위해 숨 돌릴 새도 없이 양혜정 선생님의 강연이 시작되었다. 양혜정 선생님은 유아문화예술교육에서 감각의 중요성과 아이들을 만날 때 예술가의 태도에 대해 이야기 해주었다.

 

 

 지금 내 감각은 무엇에 목마를까

코로나 이후에 제한된 감각들, 우리는 제한된 감각들을 어떻게 해소하고 있을까? 양혜정 선생님은 ASMR, 먹방 등의 현상에서 안정, 허기짐, 소통에 대한 기갈을 이야기 했다. 기술이 발전하지만 인간의 발달은 여전히 감각을 요구하고 갈망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시대에 예술은 어떤 일들을 하는 것일까? 예술가들의 지능적인 부분은 어디에 있을까?

 

 

 라이브와 미디어의 차이 

공연을 유튜브로 보는 것과 라이브로 보는 것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 물었다. 직접적인 소통, 현장성 등에 대한 이야기들이 나왔다. 양혜정 선생님은 감각의 편집이라는 측면에서 바라봤는데 미디어는 편집의 미학이고 편집을 통해서 관객이 무엇을 봐야할 지 결정해준다, 그러나 라이브 예술은 누군가 감각을 결정해주지 않고 무엇을 봐야할지 스스로 결정해야 하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살아가며 나의 선택이 충분치 않을 때 생각과 결정에 혼돈이 오고, 계속해서 결정을 유보하게 될 수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예술은 주체적으로 판단하면서 자기한테 충만한 삶을 찾아가게 해주는 이정표가 될 수 있지 않을까.

 

 

 당신이 영원히 언어를 찾지 못하길 바래요

강연 중에 인상 깊은 이야기가 있었다. 양혜정 선생님이 가르쳤던 학생에 대한 이야기였다. 항상 눈을 반짝 거리며 수업에 참여했던 학생이었는데, 어느 날 물었단다. 이제 곧 졸업해 사회에 나가야 하는데 자신과 자신의 작업에 대해 말과 글로 설명을 잘 못해 걱정이라고 말이다. 그래서 이렇게 대답해 주었다고 한다.

 

당신이 영원히 언어를 찾지 못하길 바래요.”

 

양혜정 선생님은 예술은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어떤 것이라며, 언어가 없어서 더듬더듬 찾아가는 것이며 느낌으로 충분한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물었다. 예술은 무엇일까, 우리(예술가)를 떨리게 했던 순간은 무엇일까? 우리를 예술로 이끌었던 최초의 감각은 무엇이었을까?

 

예술가가 가진 전문성은 늘 마음을 뺏길 준비를 한다는 것에 있으며, 흔들리고 모호한 감각을 따라가야 한다고 했다. 세계의 모호성을 어떻게 껴안을 수 있을까를 고민하고, 감각과 감성과 느낌의 세계에서 끊임없이 소통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예술의 본질이라고 했다.

 


 

강연을 들으며 자꾸 어린 시절을 돌아보았다. 어린 시절 나는 말 할 수 없는 감정, 감각들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몰라 그저 막막했던 것 같다. 어른들은 내 이야기나 감정을 세밀하게 살필 만큼 한가롭지 않았다. 그래서 그림도 그리고 시도 쓰고 춤도 추고 노래도 불렀다. 말로 다 할 수 없는 어떤 것들이 예술이라는 폼 안에서 분투했고 그런 것들로 허기진 정서를 채웠던 것 같다. 강연을 들은 참여자들도 크게 공감하는 모습이었는데 예술가로서 시작, 감각의 세계에서 살던 자신의 모습을 다시 들여다봤기 때문이 아닐까.

 

 

강연 이후 조재경 선생님의 놀이 워크숍이 이어졌다. 선생님은 이렇다 할 시작 멘트도 없이 참가자들에게 색실을 나눠주었다. 그리고 갑자기 실뜨기 놀이가 시작되었다. 워크숍 참가자들이 실뜨기에 정신없는 사이, 슬며시 이야기를 꺼냈다.

 

 

 아이들을 만나는 방법에 대해 

아이들을 만날 때 늘 하던 대로 프로그램 소개, 선생님 소개부터가 아니라 갑자기 놀이부터 시작해보는 건 어떨까, 아이들을 만날 때 감각적인 모습으로 다가가보기를 제안하며 내 모습 그대로, 예술가의 모습으로 아이와 주고받음이 있으면 좋겠다.

이 사업이 역동적으로 선순환 되기 위해서는 참여하는 예술강사(예술가)들이 현장에서 마음껏 펼쳐내야 하는데, 현장에서 아이들에게 가르쳐준다고 생각하기보다 아이들과 함께 하며 아이들로부터 배운다고 생각하고 아이들이 가르쳐준 것을 다른 현장의 아이들에게 전달해주는 순환 구조를 생각하길 바란다. 그렇게 강사들에게 데이터가 쌓이는 것이고 그것이 확산되는 것이다.

 

그리고 갑자기 비닐봉지를 나눠주며 바람을 잡아보라고 했다. 참여자들이 비닐봉지로 바람을 잡느라 정신없는 사이 조재경 선생님의 이야기가 이어졌다.

 

 

 예술놀이? 진짜 놀이를 찾아서 

요즘은 모든 교육현장에서 놀이라는 말을 사용한다. 그 중에 예술놀이가 가장 어색하다, 예술을 놀이처럼? 놀이를 예술처럼? 놀이로 예술을 할까? 예술을 놀이로 할까? 놀이와 예술에 대한 철학이 정리되지 않은 채 놀이라는 명사만 여기저기 붙여 활용하는 상황이다. 기획자와 강사들이 수없이 많은 논의들 중에 자기만의 철학을 찾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

 

예술의 기술성은 훈련과 반복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고, 놀이는 자유로운 것인데 이 둘이 어떻게 만나야 할까. 아이들이 예술을 보는 순간 즐겁고 하고 싶은 감정이 일어났으면 좋겠다. 그래서 예술을 놀이로 만들고, 아이들이 노는 모습을 보면 예술가들은 예술로 번역하는 거다. 활동의 주도권을 아이들에게 주고, 아이들의 이야기를 기록하고 다시 현장에서 녹아낼 수 있는 구조가 필요하다.

아이들이 주는 영감을 만끽하길 바라며,

 

잘 놉시다, 우리가 놉시다!” 로 워크숍이 마무리 되었다.

 

 


 

 

19년도 당시 센터에서 유일한 엄마였던 내가 이 사업의 담당자가 되었다. 사업을 시작할 때는 아이가 한 명이었는데 지금은 두 명이 되었다. 5년이라는 시간 동안 사업의 담당자로서 뿐만 아니라 한 명의 엄마로서 전문가들의 이야기를 아로새기고, 수 많은 프로그램 현장을 쫓아 다녔다. 그렇게 안 될 것 같다고 고개를 저었던 사업에 차곡차곡 애정이 쌓였다. 그리고 요즘은 자신만만하게 말한다. 유아문화예술교육이 정말 중요하다고.

 

기후위기, 바이러스, 전쟁 등. 우리 아이들이 살아갈 미래에 대한 암울한 상상은 너무나 쉽다. 언론에서는 출생률이 사상 최저 수준이라고 매일같이 떠들고 유치원, 어린이집은 하룻밤 새에 문을 닫는다. 이런 시절에 유아문화예술교육은 왜 필요한 것일까,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을까.

 

사심이라는 말이 부정적으로 비칠 수 있지만, 유아문화예술교육지원사업에 대해 생각할 때 마다 나는 사심 가득한 엄마 마음이 된다. 내 아이가 접할 프로그램, 내 아이가 만날 예술가라는 생각으로 사업을 살핀다. 그렇게 세상에 오는 새로운 사람들을 생각하며 이 사업의 의미를 찾는다. 사심 가득한 마음으로 유아문화예술교육과 함께하는 이들의 성장을, 더불어 아이들이 살아갈 좋은 미래를 상상한다.

아이를 둘이나 낳았으니 어찌 희망을 상상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번 워크숍을 통해 예술가, 기획자, 강사분들도 이런 질문들과 희망이 마음속에 떠올랐으리라. 당장 유아문화예술교육에 대해, 예술과 놀이에 대해 명확한 정답을 내놓기보다 프로그램을 꾸리고 아이들을 만나며 그 답을 더듬더듬 찾아가셨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것이 앞으로 우리가 끌어안을 유아문화예술교육이라는 아름답고 모호한 세계의 해답이 되길 바란다.

 

 



이달의 울림 게시글 상세 폼
top 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