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뜬구름 편지] 예술가와 관객, 작품과 눈빛을 나누는 문화예술교육
광OO
날짜 2024-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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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와 관객, 작품과 눈빛을 나누는 미술관 문화예술교육

나의 일터, 이강하미술관의 문화예술교육



이가애 / 이강하미술관 학예인턴




    미술관 그 공간 안에서 예술가, 학예연구사, 관람객은 연결되어 있다

- 빈 캔버스를 멍하니 바라보는 예술가가 있다. 그는 캔버스를 어떻게 채울지 고민한 후 붓을 들었고 작업실은 이내 유화 냄새로 가득해졌다. 얼마 뒤 미술관에서 전시회를 제안했고, 미술관 벽에는 작품과 함께 그의 이름과 작품 제목이 걸렸다.

- 아침 아홉 시 반이면 학예연구사는 미술관을 돌아다니며 불을 켜고 온도와 습도를 확인하고 작품 하나하나를 살핀다. 전시 안내원이 도착할 즈음엔 모든 준비가 끝난다. 첫 관람객이 문을 밀고 들어와 안내문을 하나 챙기고 작품을 바라본다.

예술가, 학예연구사, 관람객은 작품을 가운데에 두고 연결되어 있다. 그런 점에서 이어진 듯 보이지만 실상 세 주체가 한 자리에서 제대로 만나긴 어렵다. 아티스트 토크나 도슨트 프로그램이 열리긴 해도 좀 더 가까이 눈을 맞추고 말을 섞고픈 갈망에 미술관에선 문화예술교육을 한다.




    예술가의 폐교, ‘한대리 미술학교’가 문화예술교육의 시원이었다

나는 작년부터 ‘이강하미술관’(광주광역시 남구 양림동 소재)에서 학예 인턴으로 일하고 있다. 전시와 교육을 위한 행정을 하고 자원봉사자를 관리한다. 이곳은 2018 년 2월에 개관한 공립미술관으로, 이강하 작가(1953~2008년)가 남긴 작품을 이정덕 명예 관장이 남구청에 기증하면서 건립되었다.

오늘 나는, 이선 학예연구사와 전시장 한가운데에 마주 앉았다. 첫해부터 ‘이강하미술관’을 가꿔온 사람이자 나의 동료인 그녀와 미술관의 문화예술교육에 관해 이야기했다. 미술관에서는 육 년 동안 쉰세 번의 문화예술교육을 했고, 이번 여름에 〈어린이 북극 탐험대〉를 연다.
이야기는 한 장의 사진을 떠올리며 시작되었다. 시골 폐교 앞에서 이강하 작가와 그의 아내 이정덕 관장이 ‘한대리 미술학교’라고 쓴 현수막을 들고 아이들과 환하게 웃고 있는 사진에 대해 이선 씨는 설명했다. 그리고 ‘이강하미술관’ 문화예술교육의 시원을 짐작할 수 있었다.

예술가, 학예연구사, 관람객은 작품을 가운데에 두고 더 가까이 연결하기 위해 미술관에선 문화예술교육을 한다. ⓒ이강하미술관


“이강하 작가, 그러니까 아버지의 마지막 작업실이 폐교였어요. 아버지는 방학이면 마을 어린이들에게 수채화와 데생을 가르쳤고요. 그때 어머니, 저와 동생이 현수막을 만들었죠. 문 닫힌 학교에 화가가 들어오면서 새로운 학교가 열린 셈인데요.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에도 그 마음을 잇고 싶어서 ‘양림어린이예술학교’를 열었고 그게 미술관 첫 프로그램이었어요. 동네 아이들이 미술관에 와서 놀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시작했지요.” 



이선 학예연구사, "'양림어린이예술학교'는 동네 아이들이 미술관에 와서 놀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시작했지요." ⓒ조수현


‘양림어린이예술학교’는 매년, 방학마다 열린다. 작년에는《묵찍묵찍! 꼬마예술가》와〈몸짓몸짓, 꼬마예술가〉를 했는데, 나는 묵을 찍는 붓을 ‘묵찍묵찍’이라는 글자 뒤에 넣고 ‘몸짓몸짓’에는 흔들거리는 북극곰을 넣어 포스터를 만들었다. 일로 경험한 첫 문화예술교육이었다. 그 외에도 미술관에서는 꿈다락 문화예술학교, 남구학교, 청소년주도프로젝트를 통해 문화예술교육을 하고 있다. 


2023~2024년 이강하미술관 문화예술교육프로그램


    예술가의 작품 속 이야기를 담아 문화예술교육을 기획하다

작년에 ‘아시아예술놀이터’라는 이름으로 〈Asia 챠챠! Asia 빠체〉를 열었다. 놀이터가 된 미술관에서 어린이들과 열 번을 만나면서 빨랫줄에 무언가 걸려있는 것처럼 생긴 그림 같은 글자 ‘힌디어’가 쓰여 있는 하늘색 옷을 입기도 했고, 인도 예술가 Ajay와 전통놀이 ‘루도’를 하고 커리를 만들기도 했다.

이들은 다른 언어, 다른 인종, 다른 음식을 알게 되고 다른 놀이를 하며 달라서 새로웠으리라. ‘다름’은 우리의 마음을 여는 중요한 열쇠였다. 어린이들을 바라보던 Ajay의 눈빛을 잊을 수 없다. 내 곁에 있는 사람을 깊고 다정하게 들여다보던 눈빛. 누가 묻는다면 문화예술교육은 “사랑을 닮아 있는 어떤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또한, 예술가의 이야기를 듣고 관심을 쏟아야 하는 우리의 일도 알고 보면 문화예술교육과 닮았다.

또한, 지난해 봄에 한국-캐나다 수교 60주년과 제14회 광주비엔날레에 맞춰 〈신화, 현실이 되다〉라는 전시를 열었고 캐나다 원주민인 이누이트 예술가 서른두 명의 작품 아흔 점을 소개했다. 그들의 예술과 삶을 확인하고 싶었던 이선 씨는 비행기를 몇 번이나 갈아타며 이누이트 예술가 협동조합이 있는 누나부트준주 킨가이트(Kinngait, Nunavut)에 갔다. 그리고 올봄에는 〈북극의 신화, 소멸의 저항〉이라는 이름으로 결과보고 전시를 했다.

오랜 세월 지배받고 차별당한 이누이트의 역사에서 광주를 느꼈고, 자연과 뗄 수 없는 그들의 예술생활에 감응한 까닭에 그녀는 부지런히 중매를 서는 중이다. 한 달 전에 또 한 번 찾아가서 이누이트 예술가들과 이곳의 예술가들이 공동 창작을 하기로 약속했다. 팔월엔 북극을 다녀온 예술가와 함께 기획한, 생태와 예술을 이야기하는 문화예술교육 〈어린이 북극 탐험대〉를 앞두고 있다.

“미술관의 기획 의도가 중요한 윤곽이긴 하지만 그 안을 구성하고 채우는 일은 예술가와 저의 동료들이 함께해야 해요. 그래야 더 다양하고 단단해지니까요. 종이 한 장에 다 담을 수 없는 예술가의 이야기가 우리 미술관 문화예술교육의 주요 모티브입니다.”

“누군가에게 내 생각과 예술가의 단상을 다음 세대에 전할 수 있다면 가장 큰 성과겠죠. 어떻게 하면 더 잘 전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요. 특히 현대미술이 익혀서 견주어야 하는 기술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벽을 허무는 이야기면 좋겠어요. 현대미술은 그냥 우리 이야기라고 사람들에게 말해주고 싶어요.”

누가 묻는다면 우리가 하는 일은, 그리고 미술관 문화예술교육은 ‘중매’ 같다. 예술가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는 공간과 시간을 마련해 제 짝을 만나게 하는 일.


미술관 문화예술교육은 예술가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는 공간과 시간을 마련해 제 짝을 만나게 하는 '중매'같다 ⓒ조수현
전시 중인 이강하미술관에서 만난 이선과 이가애, 그리고 뜬구름편지 편집위원


     미술관에서 경험한 나의 이야기로 새로운 기획을 늘 궁리하고 있다

사업계획서를 써봤다. 제목은 〈눈이 보이지 않는 친구와 전시를 보러 가다〉이고 응모하진 못했다. 시각에 의존하지 않는 전시와 예술을 이야기하고 싶었다. “눈이 보이지 않는 친구”는 시각장애인을 칭하는 말이 아니다. 안경을 집에 놓고 온 친구, 노안이 온 60대, 미술관에 한 번도 와본 적 없는 사람도 보이지 않는 친구다.

이들이 미술관을 낯설어하지 않고 설레며 찾아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내내 하고 있다. 그리고 누구에게나, 몸이든 마음이든 불편한 구석이 있으니 나와 남의 차이를 알고 이해하고 배려하며 살았으면 좋겠다고 말하고 싶다. 내 두 가지 바람이 미술관에서, 예술가의 작품을 통해 이야기될 수 있지 않을까.

내가 일하는 미술관은 보여주기만 하는 곳이 아니다. 한 사람의 예술을 우리의 예술로 이야기하고 싶은 마음이 모이고 모이다 보니 만나고 배우는 공간이 되었다. 예술가를 존중하고 그의 작업을 좋아하기에 철마다 작품을 걸고, 말 없는 작품이 어린이의 마음속에서 천 개의 이야기로 태어날 수 있도록 우리는 전시를 열고 문화예술교육을 준비한다. 아홉 시 반이다. 어서 미술관 문을 열어야겠다.





이가애 / 이강하미술관 학예인턴
2023년부터 광주광역시 이강하미술관에서 학예인턴으로 재직 중이다. 전시, 교육, 관광 사업 등의 일을 하고 있다.
‘춤추고 노래하며 살자’가 29년을 살며 결정한 나의 꿈. 자음과 모음을 움직여 글자를 만들어가는 나는 어쩌면 손가락춤이 천직이 아닐까 싶다가도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며 사용하는 언어, 톤, 발음, 속도가 달라져 여러 목소리로 이야기하는 나는 어쩌면 노래가 천직이 아닐까 키득키득 재미있는 상상을 하곤 한다. 글씨를 쓰며 자음과 모음을 춤추게 하는, 다양한 사람과 이야기하며 노래하는 가수이자 댄서를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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