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뜬구름 편지] 현장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_연관짓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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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24-0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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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획을 계획하기 - ③

현장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_ 연관 짓기


민병은 / 지혜로운 봄 대표



연관 짓기는 기획 단계의 모호함을 의미를 찾은 현실 언어로 구축하는 것이다

내 안에서 올라오는 느낌을 뭐라 설명하지 못해 오금이 저릿해진 적이 있을 것이다. 말 너머의 것들을 어떻게 끌어올까. 이럴 때 집어 드는 것이 시집이었다. 현실은 모호함으로 그득하다. 이것을 언어로 드러내는 것이 기획자의 아주 중요한 역량이라고 생각한다. 읽고 듣기에서 쓰고 말하기로 무게가 옮겨지는 단계라고 할까. 사실이 그러하다는 것을 대부분의 사람들이 수긍하는 보편적 언어로 뒷받침했다면, 이제는 연관 지점을 찾아 나의 현장에 구체적으로 짓는 것이다.


공간에 따라, 특정 시간에 따라 참여자들이 달라진다. 지리 환경에 따라 생기는 어찌할 수 없는 조건은 누구나 이해하는 보편성으로 이해하기 어렵다. 문화예술은 태생이 주관적이다. 개인적으론 세상에 객관이란 없다고 말하고 싶다. 기획자가 현장을 해석하는 역량은 새로운 관점과 경계를 흔드는 출발점이 된다.


명확하게 인식되는 사실은 누구나 이해하기 쉽지만, 이미 아는 지식의 틀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경계에 있는 애매모호를 담아내기 어렵다. ‘누구든 들으면 명확히 떠오르는 확실한 그것’이라는 ‘객관성’을 행정은 요구한다. 그러나 누구나 다 아는 언어로 설명하다 보면 어느새 어디서나 누구에게나 비슷하게 느끼는 현장이 늘어날 뿐이다. 명확하지 않은 현실의 애매모호와 정확을 요구하는 행정 사이에 나의 생각을 설명하는 것이 기획자이며 기획자의 생각을 설명(득)하는 문서가 기획서다. 때문에 구체적이고 작지만 한 발 더 들어간 현장 중심의 관점이야말로, 객관성을 넘어 설 수 있다.




리서치에 근거하여 문화예술교육 기획의 연관성을 설명해야한다

문화예술교육 사업 초창기에 아주 작은 지역에서 요가 프로그램을 중심으로 기획한 지원서가 자주 등장하곤 했었다. 실제 농촌지역 산골마을에서는 농사가 생업인 노년층 주민이 많다. 이들에게 요가는 일상에 꼭 필요한 활동일 수 있다. 요가는 보편적으로 생활체육 범주로 보았다. 문화예술교육이라는 지원사업의 제목을 달고 설명력 있는 기획안을 작성하려면 왜 하필 요가인지, 요가가 일상에 꼭 필요한 문화가 될 수 있는지에 대한 설명이 있어야 한다. 필요한 모든 활동이 문화예술교육으로 적합한 활동이라고 할 수 없다. 결국, 기획자의 생각을 담은 언어에 달려있다. 이는 앞서 연결하기에 해당하는 리서치를 근거 데이터로 유의미성을 확보하고, 요가의 의미가 문화예술교육 관점과 연관이 있다고 설명해야 한다.


기획 의도에 맞춰 지향하는 방식을 설명하는 것이 기획 방향이다. 세부 계획 아이디어가 논의될 때쯤이면 기획 콘셉트가 드러난다. 콘셉트는 내 기획을 한마디로 설명하는 한 줄, 한 문장 카피라고 해도 큰 무리는 없다. 콘셉트가 정해지면 세부계획을 짜는데 자유로워진다. 현장을 좁게도, 세밀하게도 들여다보고, 제기된 문제를 정책 차원으로 넓혀 고민하더라도 기획 방향을 벗어나지 않는 가이드가 되어 준다. 아이디어 회의는 이 시점에 최적화된다. 또 최종 세부계획까지 기획안이 구체화될 때 콘셉트를 잘 다듬으면 꽤 괜찮은 사업명이 만들어지기도 한다.



 콘셉트는 내 기획을 한마디로 설명하는 한 줄, 한 문장 카피라고 해도 큰 무리는 없다. 콘셉트가 정해지면 세부계획을 짜는데 자유로워진다.

2023년 순천문화재단 교육예술가 양성과정 기획워크숍 과정 ⓒ천윤희



연관 짓기에는 판단을 유보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다 이유가 있을 거야’라고 생각하면 마음도 편해진다. 괜히 가슴도 넓어지는 것 같다. 판단하지 않고 애매함을, 간질간질함을 유지하고 바라보는 것, 그동안과 다른 이상한 것을 받아들이는 태도다. 기존의 지식이 담지 못하는 현상을 바라보는 것인데, 이를 뭐라고 설명하는, 이름 짓는 난해함이 요구된다. 자기 언어로 설명해야 하고 때에 따라 주장도 필요하다. 설명하기 어려운 것을 나름의 언어로 표현할 때 경계가 확장된다. 기획자가 빛나는 순간이다.



판단 유보가 필요한 것은 동네라는 사람 사는 곳에서 작용하는 복잡성 때문이기도 하다

별책부록에나 실릴만한 내용이겠지만, 별책부록이 있어 본론의 이해가 깊어지는 경우처럼 지역을 이해하는 데는 보이지 않는 흐름 파악도 중요하다. 지역도 사람 사는 곳이다 보니 권력이 형성된다. 동네에 작동하는 힘의 관계가 있다. 동네의 관습과 관례처럼 공과 사의 경계를 왔다 갔다 하는 힘이 작동한다는 것을 눈치채기 바란다. 단언컨대 눈치코치도 엄연한 언어다. 물론 감정추론은 멀리해야 한다. 눈치 언어가 공식적으로 언급하기 적절하지 않을 수 있으나, 들여다봐야 할 체크포인트가 있다. 예를 들면 모르는 지역에서 사업을 해야 할 때 관계된 사람 혹은 공간을 섭외해야 할 경우 학연, 지연, 혈연 같은 출신이 작동한다거나, 특정 모임에 속하는 인맥이나 뒷배가 되는 가족의 경력 그리고 정치적 입장에 따라 형성되는 특정 신념도 긴밀히 작동할 때가 있다. 지원사업으로 운영되는 문화예술 활동은 예산을 받아 집행하는 비영리 영역이다. 예산의 작동이 행정에 의해 결정되는 것은 이미 아는 사실이지만, 예산을 움직이는 비공식 특수 관계가 있다는 것도 알아두었으면 한다.


문화공간을 처음 개소하면서 어떤 내용의 프로그램을 기획해야 할까 고민했던 내 경험을 얘기해보자. 강좌를 하지 않고 프로젝트만 하겠노라 선언(해야)했다. 주변에 문화공간이 너무 많았다. 끼어들 틈도 없었거니와 아름다운 뒷산을 배경으로 한 새로 생긴 공간은 충분히 경쟁 대상이 될 만했다. 심지어 아래층에도 오랜 세월을 자랑하는 문화기관이 있었으니 기존의 강좌형식과 수강방식을 더 보탤 필요가 없었다. 아무튼, 이 동네는 어떤 사람들이 사는지 가구 구성 형태를 알아보고, 어떤 활동을 원하는지를 조사하면서 취학 전 연령대의 아동이 참여할 수 있는 활동에 수요가 아주 높았으나 어디에도 아이들 참여 프로그램이 전혀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의 첫 기획은 예닐곱 살 아이들과 노는 단기 프로젝트였다.



설명하기 어려운 것을 나름의 자기 언어로 표현할 때, 기획자가 빛나는 순간이다. ⓒ천윤희


일상의 경험에서 기획을 구상하고 현장과 연관짓고, 사람을 연결하다
이 기획을 구상할 때 영감을 준 것은 시어머님과 막내가 요리하던 풍경이었다. 어머니는 싱크대 위에서 요리하시고, 아이는 싱크대 아래에서 요리(놀이)했다. 싱크대 하부장에 보관되어 있던 냄비가 아이에게 장난감이 되어 준 것이다. 아이들은 작은 플라스틱 모형의 소꿉놀이 장난감 보다 실제 그릇을 더 좋아한다. 아이들의 호기심은 엄마나 아빠, 어른들의 것에 향해있다. 그러나 모든 집에서 실제의 물건들을 장난감으로 내놓기 어렵다. 이 프로젝트는 ‘누구나 할 수 있으나 아무 데서나 하기 어려운’ 놀이가 콘셉트가 되었다. 구하기 쉬운 재료와 자주 보던 도구이지만 집에서는 꺼려지는 활동, 예컨대 비가 오면 한 번쯤 해보던 진흙탕 놀이를 하는 것인데, 다리 사이로 흐르는 개울을 만들고 웅덩이를 만들어 보는 식이다. 아이들이 오는 날은 공간을 비우고 바닥에 방수포부터 깐다. 다행히 문화예술 활동을 오래했던 지인으로부터 좋은 강사님을 소개받았다. 이 시점이 프로젝트가 풀린 첫 열쇠였다.

연결의 힘이다. 나에게 좋은 강사란 기획 의도를 충분히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기획에 맞는 강사를 의미한다. 개인적 능력의 출중함은 다른 문제다. 이 프로젝트가 다행히 인기가 높아지면서 동네 아이 엄마가 선생님이 되어주셨다. 동네에서 아줌마로 불리다 선생님으로 불린다는 것, 그냥 어린아이에서 내 활동에 참여하는, 선생님이라고 부르는 아이는 사뭇 의미가 다르다. 어떤 기획자가 말한 “아이를 바라보는 동공의 깊이가 다르다”라는 것을 실감했다. 삼 년쯤 진행하다 이분이 이민 가면서 끝났다. 참여했던 아이들이 자라면서 초등학생 버전으로 이어졌고 아래층 문화공간으로 연계했다.



땅에 발 디딘 기획이 생명력을 갖는다
기획안이 설명력을 가지려면 행정을 설득하는 보편적 근거와 지역이 필요하다는 것, 나의 기획이 이러한 필요를 살핀 것임을 구체적으로 드러내는 변별성이 있어야 한다. 연결하기가 보편성에 해당한다면 현장에 맞닿은 의미 있는 나의 언어를 개발하는 것이 연관 짓기라고 말할 수 있겠다. 연결하기가 읽고 듣기에 좀 더 충실함을 요구한다면, 연관 짓기는 말하고 쓰기라는 창발 행위에 좀 더 가깝다 하겠다. 물론 두 가지 영역이 딱 구분되는 것은 아니다. 기획하기는 이 두 영역이 맞물려 순환하는 과정이라고 하겠다.
땅地은 흙土이 물池을 품은 형상이라고 한다. 물을 만났을 때 흙은 생명력을 갖는다. 리서치가 현장 중심의 사실에 기인하는 것이라면 콘셉트를 찾은 이후의 과정은 기획자가 현장에 필요하다고 생각한 것들을 구체적인 언어로 담아내는 의미 찾기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핵심은 땅에 발 디딘 기획이어야 한다는 점이다.








민병은 / 지혜로운봄 대표

정책사업을 실현하는 문화예술교육 현장에서 일을 시작했다. 

문화공간을 운영하며 문화예술이 법, 행정과 무관하지 않음을, 복잡하고 다층적이며 미묘하기까지 한 지역과 끈끈하게 이어져 있음을 배웠다. 

지금은 컨설턴트로, 프로젝트 기획자로, 강사로, 가끔은 연구자의 모습으로 현장을 만나고 있으며 적당히 아름답게 상호의존 할 줄 아는 노년의 삶을 고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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