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롱나무에 북실북실하게 핫핑크 꽃이 폈다. 시골 어른이 "저게 세 번 피고 지면 쌀밥 먹을 수 있제"라고 했던 말이 꽃을 볼 때마다 무조건 반사로 떠오른다. 세 번째로 핀 꽃이 질 때와 추수 때가 들어맞는다는 뜻이다. 밥을 부르는 꽃이라니, 현실과 낭만이 찰떡같이 들러붙어있다. 그림농사꾼과 타샤가 만났다. 담양 수북면에 살면서 그림을 그리고, 〈땅과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사람들과 땅에서 놀며 쉬며 그려보자 북돋우는 그림농사꾼 박문종 화가를 김수옥 작가가 만났다. 그녀는 정원을 가꾸고 동화를 그렸던 '타샤 튜더'처럼 살고 싶어서 고향인 장성 동화면에서 〈꼬마마녀 앤과 바람의 아이들〉로 어린이들을 꾸준히 맞이하고 있다. 땅과 생명에서 점 선 면과 아름다움을 찾아 세상에 알리는 둘도 배롱나무 꽃을 닮았다.
'식물 그림 학교'에 찾아갔다. 두려움이 설렘을 압도하는 나이인 마흔과 쉰을 지나는 여성들과 나를 닮은 식물을 그리는 최지연 대표는 "사람이 태어나고 자라고 전환점을 지나고 언젠가 사라지는 지속과 소멸의 리듬을 들여다보는 일이 문화예술교육"이라고 말했다. 나를 살피고 살리는 예술을 염원하는 그녀도 저 꽃을 닮았다.
그리고 이세진 프로듀서가 추천한 첫 영화 〈절해고도〉를 보았다. 인테리어 업자로 살고 있는 조각가 아빠와 붓을 놓고 스님이 된 화가 지망생 딸의 복잡한 듯 고요한 이야기다. 밥과 꽃, 생계와 꿈, 삶과 예술은 징하게도 딱 붙어있다는 진리를 눈치챈 예술가들을 기꺼이 소개한다. 그리고 아마 요걸 읽고 있는 당신도 배롱나무 꽃을 쏙 빼닮았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