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서 들어봤거나 어쩌면 해봤을지도 모르는 말이죠. 나로선 도저히 너를 이해할 수 없을 때, 주로 부모·자식처럼 가까운 사이에서 우아하게 내리꽂는 표현입니다. 어찌 보면 삶이란, 내 앞에 있는 사람을 인정하고 받아들이기 위해 관찰하고 대화하고 공부하는 몇십 년짜리 연구 프로젝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알아내야, 아니 아는 척이라도 해야 그런대로 어울려 생존할 수 있으니 그렇겠죠.
그런데 여기, 딱히 말 붙일 까닭이 없는 이웃까지 연구대상으로 삼은 이들이 있습니다. “스무 살이 된 발달장애 청년에겐 뭣이 필요할까.” “아파서 못 나가거나, 배우자를 돌봐야 하는 칠팔십 대 부부는 하루를 어떻게 보낼까.” “동네 슈퍼에 자리 깔고 종일 홀짝이는 아저씨들에게 술 말고 예술은 어떨까.” 이렇게 궁리를 거듭하며 ‘생애전환 문화예술교육’이라는 이름을 걸고 송선미 님은 음악으로 발달장애 청년과 노년 부부를, 임보현 님은 영화로 중년 남성을 만나고 있습니다.
이들은 전지전능한 기획자 자리를 떠나, 질문거리를 찾고 답을 구하는 연구자가 되어 가설을 세우고 자료를 뒤지고 인터뷰를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발달장애 청년과 술에 의존하는 아저씨들은 자기 몸과 공간을 정돈하는, 오래 산 부부는 서로를 응시하는 힘부터 길러야 한다고 결론지었다고 해요. 사람을 문젯거리가 아닌 연구대상으로 삼으면 문화예술교육이 한낱 판타지는 아니겠다 싶습니다.
마치 짠 것처럼 이세진 프로듀서가 추천하는 영화 두 편 또한 너무도 다른 상대방을 이해하는 여정을 담고 있습니다. 싱그럽고 쿰쿰한 냄새와 후끈한 기운이 화면 밖으로 터져 나오는 영화 〈여름정원〉과 〈럭키, 아파트〉를 스윽 내밀어봅니다.
그나저나…… 누구보다, 나 자신이 제일 큰 연구대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