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로 즐기는 유쾌한 노후를 꿈꾸며
양산동에 ‘문화예술공동체 평상’을 깔았다
소 라 / 문화예술공동체 평상 대표
“새로운 단체를 만들어야것어”
‘마음놀이터’라는 단체에서 십여 년간 함께 활동해 오던 김옥진 선생님이 어느 날 갑작스레 제안했다. 작년에 양산동 엄마들과 프로그램을 마치고 나서도 동아리를 만들고 버킷리스트를 핑계 삼아 몰려다니던 우리를 보며, 이웃들이 오며 가며 편하게 드나들 수 있는 단체를 만들면 좋겠다는 마음을 나에게 내비쳤다. 문득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 참여자로 ‘마음놀이터’에 첫발을 내디뎠던 오래전 그때가 떠올랐다.
“프로그램에 참가하소!”
무심코 툭 날아온 그 한마디는 단비와 같았다. 아이들 키우느라 닳아 없어질 위기에 몰린 내 삶이 그때부터 달라지기 시작했다. 문화예술교육 〈우리 동네 엄마들의 행복 찾기〉는 예술로 즐기는 삶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게 해 주었고, 더 나아가 강사와 기획자 역할을 하면서 단체를 만들고 대표까지 맡은 계기가 되었다.

문화예술교육 〈우리 동네 엄마들의 행복 찾기〉는 예술로 즐기는 삶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게 해 주었고, 더 나아가 강사와 기획자 역할을 하면서 단체를 만들고 대표까지 맡은 계기가 되었다. ⓒ소라
“지금이 젤로 좋을때제”
노년이라는 삶에 들어선 우리들. 여기저기서 부고 소식이 시시때때로 들려오고, 모였다 하면 늘 각종 영양제 이야기가 빠지지 않는다. 그렇잖아도 소극적인 내 삶, 별다른 일 없이 지나가길 바라는 마음으로 재미는 없겠지만 안전한 공간에 넣어두기 딱 좋은 핑계를 대고 싶던 차에 작년에 〈예술로 어울림 : 그림으로 짓는 책〉에서 강사를 하며 복지관에 가서 노인분들을 만났다. 평균 나이 여든! 지금까지 삶 중에서 어느 때가 가장 좋았냐는 질문에 “지금이 젤로 좋을때제. 자식들 키우고 일하느라 언제 이라고 나 하고 싶은 일을 해봤것소!”라고 그들은 힘주어 말했다. 쉬는 시간도 반납하고 중간에 화장실 가는 시간도 아껴가며 그림 그리기에 몰두하던 열정에 진심으로 존경이 우러나왔다. 어디를 가던 윗사람 대접(?)을 받았던 내가 여기선 어린 취급을 받을 수 있었고, 무엇보다 노년에 대한 우중충한 시선이 긍정적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귀한 경험이었다.
“나도 눈 오리 만들어보고 싶어”
앞으로 어떻게 우리의 노년을 살아가야 할까? 50대인 나는 삶의 시간 중 아마도 세 시 언저리에 와있을 것이다. 어디로 향할지는 아직 모르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기엔 너무 이른 시간임은 분명하다.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을 통해서 만나 함께 책을 읽고 그림을 그리고 노래를 부르며 예술이 이어준 이웃, 양산동 엄마들과 동아리 활동을 하며 자연스레 버킷리스트에 관한 이야기꽃을 피운 적이 있었다.
해마다 눈 오는 날이면 아이들이 만들어 놓은 귀여운 눈 오리를 보며 “나도 만들어보고 싶다”라고 지나가듯 말하곤 했다. 그런데 작년에 애매하게 첫눈이 오는데도 우리의 단톡방은 번개 미팅을 하자며 난리가 났다. 양산호수공원에 집결한 우리는 공수해 온 다양한 틀로 한가득 눈 오리를 찍어냈다. 동네 꼬마와 산책 나온 가족들까지 어느새 합세하여 눈 오리, 눈사람, 눈 거북을 만들었고 공원은 순간 조각공원이 되었다.

양산동 엄마들과 버킷리스트 이야기를 나누었고, 첫눈이 내린 날 번개 모임으로 양산호수공원에 모여 함께 눈오리를 찍어냈다. 공원은 순간 조각공원이 되었다. ⓒ소라
〈삶과 이분의 일〉을 풀어내다
우리들의 시간은 문화예술교육을 통해 켜켜이 쌓이고 있다. 그리고 문화예술교육은 내 앞의 노년을 비추는 등대처럼 우리 앞에 서 있다. 예술로 서로의 삶을 찬찬히 들여다보며 마을에서 만나온 시간이 늘어가니, 혈연이나 공공의 돌봄이 채울 수 없는 공백이 채워지면서 정서적으로 지지하고 돌보는 이웃이 되었다. 같이 재밌게 살아가려 한다. 젊은 세대 전유물인 ‘방탈출’도 해봤다, 규칙을 이해하지 못해 두 번째 방에서 끌려 나오긴 했지만. 한바탕 웃고 다음을 기약하자고 의지를 불태우는 그런 삶을 살고 싶다. 일상에서 예술하며 살아가는 취향공동체로서 이어져 응원하는 사이가 될 수 있다고 믿으며 우리 사이에 평상을 놓았다. 올해 꾸린 단체 ‘문화예술공동체 평상’은 ‘예술시민 문화예술교육 지원사업’에 도전해 광주 양산동에서 동네 중년여성들과 〈삶과 이분의 일〉이라는 이름으로 매주 만나고 있다.
쉽지만은 않다. 특히 사람 모으는 일이 그랬다. 최선을 다했지만 지인 소개로 가까스로 모집했고, 우리 숙제로 남았다. 경험해 보면, 우리 또래 여성들은 문화예술 공간에 들어서는 것부터 두려워한다. 그래서 그들이 무엇에 흥미를 느끼는지 알고, 어떻게 예술과 이어지게 할지 고민하고 있다. 일상에서 특별하게 느낀 시간이나 소중한 기억을 그림이나 글로 기록하면서, 좋아하는 천 바느질과 재봉으로 재미를 더하고, 여행하며 낯설고 특별한 감각을 깨워서 일상을 좀 다르게 보내려고 한다. 누구나 편하게 다가와서 하고 싶은 일들을 벌이며 삶을 지지해주는 공동체가 되길 바란다.

올해 꾸린 단체 ‘문화예술공동체 평상’은 ‘예술시민 문화예술교육 지원사업’으로 양산동에서 동네 중년여성들과 〈삶과 이분의 일〉이라는 이름으로 매주 만나고 있다. ⓒ소라
그러나, 도망가고 싶다
문화예술로 만난 귀한 이들과 노년을 재미있고 의미 있게 함께하고 싶다는 마음 하나로 별 고민 없이 옥진 샘의 꼬임에 넘어가 ‘문화예술공동체 평상’을 만드는 과정에서 가끔 “도망가자”라는 노래를 되뇌었다. 심사를 받느라 덜덜 떨리던 심장을 부여잡느라, 은행 서류며 정산시스템 습득하느라, 원천징수 세금을 제하지 않고 강사비를 보낼 뻔하다가……. ‘창의적으로 활동하라면서 예산집행은 왜 그리 예술스럽지 않고 융통성 없이 빡빡한가. 강사로 활동할 땐 주어진 일만 열심히 하면 됐었는데.’ 온갖 잡일과 잡생각이 머릿속을 어지럽게 만든다. 곁에서 세심하게 챙겨주는 ‘마음놀이터’와 ‘평상’ 동료들이 없었더라면 아마도 매일 한숨 푹푹 내쉬며 후회하고 있겠지.
마을 골목에 놓인 평상에 오가는 누구나 털썩 앉아 소통할 수 있듯,
문화예술교육이 마을 깊숙이 자연스럽게 스며들기 바라며 만든 ‘문화예술공동체 평상’!
‘평상’이라는 이름처럼 문턱을 낮추는 노력도 필요하다. 특히 예술을 어려워하는 분들에게 진입장벽을 최대한 낮춰 누구나 편하게 예술을 경험하고 창작하며 성장하면 좋겠다. 삶과 죽음에 대해 생각해 볼 수밖에 없는 시기에 어떤 태도로 살아가야 할지, 그것을 위해 어떤 감각을 깨우면 좋을지 고민하고 실천하면 좋겠다.
문화예술을 즐길 줄 아는 삶이 인생을 얼마나 의미 있고 풍요로운지, 더 많은 이들이 경험했으면 좋겠다. 지난주에 ‘평상’에서 첫 여행을 다녀왔다. 소녀처럼 한껏 들떠 떠난 여행! 상상도 안 해본 야외 스케치를 하면서 생전 처음 새롭게 자극을 받고 지나던 구경꾼의 칭찬에 뿌듯해 행복했다고들 한다. 파란 하늘과 바다를 보며 그림을 그리던 우리 뒤편에는 노부부가 캠핑 중이었는데 그들이 틀어놓은 음악까지 어우러져 귀한 추억을 만들었다. 정년퇴직 후 여기저기에서 캠핑하는 그들을 보며 ‘노후에 어떻게 살까’라는 질문이 새삼스레 선명해진 여행길이었다. 우리가 선택해 함께 걸어가는 길, 노후를 걷는 각자의 길이 설레는 경험과 다채로운 이야기로 가득하길 바란다.
소 라 / 문화예술공동체 평상 대표
십여 년간 문화예술교육 활동을 해 왔습니다.
소극적인 성격에, 혼자서는 엄두도 내지 못할 일들을 고맙게도 함께라서 지금껏 묻어 묻어 지탱해오지 않았나 싶습니다.
새로운 도전을 겁내하는 저에게 문화예술공동체 평상은 혼자가 아닌 ‘함께’라는 힘으로 용기를 내게 합니다.
예술로 노는 것이 재밌는 나는, 서툴지만 그렇게 한 발자국 더 나아가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