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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의 삶이 조금씩 바뀔 때
블루 아저씨와 영화 찍는 임보현 씨에게 물었다
글 : 홍참빛 / 팀 투라이트 대표·작가
“생애전환”이란 무엇일까? 누군가의 삶이 문화예술교육으로 바뀔 수 있는가를 묻는다면 나는 주저 없이 그렇다고 답하겠지만, 생애 전환기를 정돈된 하나의 문화예술교육 사업으로 풀어내는 작업은 다양하고 깊은 고민 없이는 이룰 수 없다.
좋은 기회를 얻어 중장년 남성 대상 생애전환 문화예술교육을 진행하는 ‘협동조합 어감’ 임보현 대표를 만날 수 있었다. 〈블루 아저씨의 명랑 느와르 필름로그〉 프로그램 이름이 풍기는 독특한 인상에 설레는 마음을 안고 금요일 오전에 두암3동에 있는 ‘청년공작소’에 갔다.
조금 일찍 도착했는데 강의실에는 이미 참여자들이 빈자리 없이 앉아 있었다. 중장년 남성들로만 가득한 공간에 생기와 활력이 넘쳤다. 서로 장난치고 크게 웃고, 마치 소년들이 모여있는 것 같았다. 참여자 중 한 사람인 최승국 님을 쉬는 시간에 잠깐 만났다.

서로 장난치고 크게 웃고, 마치 소년들이 모여있는 것 같았다. ⓒ청춘기획라이브온
“내가 걸어 다니고 지각 능력 있을 때까지는 계속 이곳에 나올 것 같아… 예전에는, 혼자 이 아파트 살다 보니까 옛날 생각나잖아요. 아는 사람도 없고, 알기도 싫었고. 담배 피우고 그냥 술 사다 먹고, 옛날 생각에 젖어있고. 그런데 여기 와서 숙제도 하고 사람들하고 같이 웃고 놀면 답답했던 게 잊혀요. 수업 끝나고 집에 가서 가만히 담배 한 대 피우고 있으면 흐뭇해요. 내가 어디 돌아다니는 것은 아니지만, 오늘 나는 이렇게 의미 있게 불금 보냈구나. 마치 해수욕장이나 산림욕장 가 있는 것처럼 기분이 좋아.”
그의 말에서 애정이 가득 묻어났다. 어찌 이렇게 될 수 있었을까. 〈블루 아저씨의 명랑 느와르 필름로그〉 프로그램 기획자이자 주강사인 임보현 대표를 만났다.
프로그램 이름이 독특하다. 어떤 의미가 있나?
제목을 정할 때 저만의 법칙이 있는데 대상자와 장르 그리고 결과물이나 내용을 다 담으려고 해요. 이번에는 “블루 아저씨”가 대상이에요. 우리나라에서는 파란색이 긍정적이고 좋은 의미지만 사실 영어로는 우울하단 의미잖아요. ‘우울한 아저씨’라고 하기보다 한국적 의미 ‘블루’를 담아 중의적 의미로 대상을 뜻하고 싶었어요. “명랑 느와르”도 느와르 장르 특유의 새드 엔딩과 어두운 내용을 넘어 우리가 명랑하게 재해석하길 바랐어요. 그리고 영상 제작 문화예술교육이라서 이렇게 함축해 봤어요.

〈블루 아저씨의 명랑 느와르 필름로그〉 기획자이자 주강사인 임보현 씨 ⓒ청춘기획라이브온
남성 중장년이 높은 참석률로 즐겁게 참여하니 많이 놀랐다.
이들과 어떻게 만나게 됐는지부터 함께하는 과정이 궁금하다.
제가 너무 보편적으로 살았기에 예술을 하기엔 극악의 조건이라고 봤어요. 해결책은 저와 다른 삶을 사는 사람들, 일상에서 호기심이 생기는 이들을 관찰하고 고민하면서 시작됐어요. 이곳으로 사무실을 옮겼을 때 주택관리공단 주거복지사님이 찾아와 “알코올 대상자 아시죠?”라며 프로그램을 해보자고 먼저 제안하셨어요. 근처 슈퍼 앞에서 늘 술 마시는 분들이 있었거든요. 사무실 오가면서 항상 봐왔고, 마침 궁금해하던 분들이라 바로 좋다고 했어요.
작년에 처음 만나서는 가볍고 즐거운, 재미난 프로그램을 했어요. 중장년 남성이 평소 접해보지 못했을, 새로운 감각을 쓸 수 있는 것들로요. 댄스 챌린지, 슬라임 만지기, 숨은 그림 찾기, 유행하는 노래와 랩 개사해서 부르기.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참여자들이 조금씩 달라지는 게 보였어요. 그런데 의미 있고 깊이 있게 만나고 싶어서 팀원들과 논의해 생애전환 문화예술교육 지원사업을 하게 됐습니다. 올해 광주광역시 공모 사업에도 선정돼서, 작년부터 지금까지 금요일마다 이분들과 쭉 만나고 있어요.
서로 관계가 무척 좋아 보였다. 참여자들이 진행자를 신뢰하고 있더라.
참여자와 친밀한 정도가 프로그램 성패를 결정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살갑게 다가가고 애정을 쏟는 편인데 이번 분들에겐 더 그래요. 제겐 너무 어려운 대상이라 많이 걱정하면서 시작했거든요. 그런데 마음을 확 열어주셔서 고마운 마음이 정말 커요. 고마움을 느끼는 사이라서 더 가까워졌나 봐요. 서로 항상 고맙다고 말해요. 그리고 주거복지사님도 수업에 적극적으로 함께하고 행정복지센터에서도 여러 도움을 주고 있어서 부담을 덜어낼 수 있었어요.


고마움을 느끼는 사이라서 더 가까워졌나 봐요. 서로 항상 고맙다고 말해요. ⓒ청춘기획라이브온
말씀대로 협업을 잘하고 있다고 들었는데, 협업방향과 과정, 성과가 궁금하다.
몇 년 전에도 중장년 남성들과 생애전환 문화예술교육 했어요. 그때는 홀로 했는데 정말 쉽지 않았어요. ‘협동조합 어감’ 사무실을 두암3동으로 옮겼고 주거복지사님을 만나면서 협업을 시작했죠. 여기는 지역사회 보장협의체에 행정복지센터와 주택관리공단이 들어가 있어요. 이미 만들어져 있던 지역 네트워크에 저희가 들어갔어요. 생애전환 문화예술교육 사전 연구를 할 때는 북구 중독관리센터와 협약해서 참여자들이 정신 건강 설문을 하고 검사와 상담을 받았는데요. 프로그램 중간과 마지막에도 하니까 어떤 지표를 볼 수도 있겠죠.
기관과 단체가 손잡을 때 역할 분담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주거복지사님은 출석과 개인 사정을 파악하고 있어요. 행정복지센터는 복지 지원을 담당하고요. 저희는 양쪽에서 알려주는 내용을 바탕으로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운영합니다. 그 과정에서 참여자들을 깊이 이해하게 됐어요. 결국 사람 대 사람으로 만나는 거니까요. 함께 하는 강점이 많아요.
우리가 잘 짜둔 촘촘한 판에서 참여자들과 재미있게 논다, 그런 생각이 들어요. 그동안 신뢰를 쌓았기 때문에 네트워킹이 잘 이뤄질 수 있는 것 같아요. 전엔 이렇다 할 결과가 나오지 않았지만, 성실하고 정직하게 하다 보니 맞물려서 잘 된 때가 바로 지금인가 싶고요.
생애전환 문화예술교육을 하다 보면 만나는 사람들의 삶에 좋은 영향을 주고 싶어진다.
기획자로, 두 해째 만날 때 무엇을 고민했는지.
작년 목표엔 금요일 오전을 재밌게 노는 시간으로 인식하길 바랐어요. 반면 올해는 정말로 이분들 인생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싶어요. 올해 프로그램 컨설팅에서 의미 있는 질문을 받았어요.
“매주 와서 함께 시간 보내는 것은 정말 좋아요. 하지만 금요일 오전은 판타지일 뿐이고 돌아가면 똑같은 일상에서 우울하게 지낼 텐데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제가 이분들을 치유할 수는 없어요. 그래도 컨설턴트는 어떤 노력을 해야 한다고 하면서 일상생활에서 프로그램이 영향을 줄 수 있도록 설계해야 한다고 했어요. 그래서 좀 수정했죠. 우리가 헤어진 뒤에 집에서도 프로그램이 이어질 수 있도록 말이에요. 그런 약간 특별한 방해, 친절한 방해는 어떨까. 집에서도 계속 프로그램 시간이 연장되도록 그분들의 공간이 조금씩 공유될 수 있도록 하는 중이에요. 이런 장치를 두면 점점 깊어질 수 있을 듯해요.


우리가 헤어진 뒤에 집에서도 프로그램이 이어질 수 있도록 말이에요. 그런 약간 특별한 방해, 친절한 방해는 어떨까. ⓒ청춘기획라이브온
내년이면 이들과 삼 년째다. 계획이 있다면.
이번에 만들 단편 영화는 완성도를 기대하고 있지는 않아요. 제작에 모두 참여하고 화면에 얼굴이 나오는 정도. 그래도 시사회를 열어서 이분들이 마을에서 새로운 역할을 찾았다 느끼게 하고 싶어요. 웰메이드보다는 성취감을 먼저 느꼈으면 해요. 왠지 내년에는 진짜 진지한 단편 영화를 만들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이미 그렇게 말씀드리기도 했고요. 문화예술교육 사업이 될지 어떤 형태의 사업이 될지 아직은 알 수 없지만요. 내년에도 당연히 이분들과 함께하리라 생각해요. 좀 더 완성도를 높이고, 인문학적 작업을 하고 싶어요.
찾아갔던 날, 참여자들은 휴대전화 카메라를 들고 자신의 현재를 프레임에 담았다. 함께 수업을 듣는 동료의 얼굴이 그 안에 담겼다. 나는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울림을 느꼈다. 사연 없이 이 자리에 있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문제에 매몰된 시선을 조금씩 돌려서 다른 방향으로도 볼 수 있도록 돕는 것, 그것이 문화예술교육의 힘 아닐까. 시간을 조금씩 쌓다 보면 누군가의 생이 전환되는 광경을 볼 수 있게 되는 것 아닐까. 적당히 거리를 두되 함께하며, 서로의 성장을 돕는 일. 단순한 교수자와 학습자의 관계를 넘어서 사람 대 사람으로 서로를 마주하고 함께 하는 일. 그 일을 곁에서 살펴보는 행운을 얻은 나는 이 아름다움을 오래도록 기억하게 될 것 같다.


ⓒ최승국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