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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움을 자르니 마음이 자라났어
〈여름정원〉 그리고 〈럭키, 아파트〉
글 : 이세진 / 영화 프로듀서
마음이 자라나는 여름방학
무더위와 폭우로 점점 길어지는 여름이 지나가는 것처럼 느껴졌으나 기대가 무색하게 계절은 여전히 제자리다. 학생들의 방학도 언제 시작했나 싶더니 어느새 아이들의 대부분은 새 학기를 보내고 있으니 절기만큼 아이들의 시간도 정확하다. 학교에 가는 시간에서 학원에 가는 시간으로 변경된 학생들의 방학은 어쩔 수 없는 것인가 싶으면서도 측은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잠자리채를 들고 곤충 채집을 가기는 어렵더라도 가끔은 디지털 기기나 과제에서 벗어난 자연의 시간을 선물해 주고 싶다.
이번 달 초에 극장에서 개봉한 일본 영화 〈여름정원〉(소마이 신지 감독, 1994)에는 세 명의 소년이 등장한다. 한 친구가 할머니 장례식에 참여하느라 며칠 동안 결석을 하고 학교에 돌아오게 되자 친구들은 죽음이라는 것이 궁금해진다. 그래서 방학을 맞이한 세 친구는 수풀이 우거진 집에서 사는 괴짜 할아버지를 관찰하게 된다. 할아버지가 외출할 때는 편의점을 뒤쫓아 가고 할아버지가 집에서 머무를 때는 아이들도 그 집의 벽에서 그를 관찰하며 여름을 보낸다.
영화가 시작되면서 할아버지의 죽음을 지켜보겠다는 아이들의 결심은 무모하고 철없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호기심에서 시작된 그들의 자발적인 방학 숙제는 의도치 않게 흘러간다. 매일같이 할아버지의 집을 드나들며 그 집 빨랫줄을 치는 것부터 시작해서 마당을 덮고 있는 온갖 잡초를 뽑아내고 집안의 먼지를 걷어내며 집수리와 페인트칠을 돕는다. 가끔은 화면 속 아이들이 힘겨워 보이기도 하고 정말 이상한 할아버지가 아닌가 의심이 들기도 하지만 어느새 놀이처럼 노동을 즐거워하는 아이들을 만나게 된다.

할아버지의 죽음을 지켜보겠다는 아이들의 자발적인 방학 숙제는 의도치 않게 흘러간다 / 〈여름정원〉 스틸컷 ⓒ에이유앤씨
십 대의 불안과 성장을 다루었던 ‘소마이 신지’ 감독
〈여름정원〉은 1994년에 일본에서 개봉했던 작품인데 작년에 개봉한 〈태풍 클럽〉(1985)을 시작으로 ‘소마이 신지’ 감독(1948-2001)의 작품들이 국내에서 정식 개봉하면서 극장에서 볼 수 있게 되었다. 〈태풍 클럽〉에 이어 7월 말에 개봉한 〈이사〉(1993)는 자신에게 묻지도 않고 이혼을 결정한 부모로 인해 혼란스러운 시간을 보내는 6학년 소녀 렌코의 시간을 담고 있다. 〈이사〉는 개봉한 지 두 달이 되어가지만, 여전히 관객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현재도 연기자로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는 아역 배우 ‘타바타 토모코’(렌코 역)의 놀라운 연기는 자연스럽게 〈여름정원〉의 개봉을 기다리게 만들었다.
‘소마이 신지’의 영화들은 1990년대까지 일본의 문화가 한국에서 전면적으로 개방되지 않았던 배경으로 늦게서야 디지털 리마스터링되어 국내에 개봉했는데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깊은 울림을 주는 명작들이다. 비슷한 시기에 〈이사〉와 〈여름정원〉이 개봉한 것이 ‘소마이 신지’ 감독을 알게 되고 그의 영화가 궁금한 이들에게 큰 선물이 되고 있다. 필자 역시 늦은 개봉 덕분에 ‘소마이 신지’의 이 영화들을 한꺼번에 보게 되었고 지면에 소개할 수 있게 되었다.

세대를 넘는 우정, 시대를 담다
다시 세 친구가 여름방학을 보내는 할아버지의 집으로 가보자. 잡초에 둘러싸여 있던 할아버지의 집이 점점 제 모습을 찾아가면서 그들의 이야기는 하나둘씩 자라난다. 할아버지로 인해 ‘스모 선수, 안경잡이, 말라깽이’라는 새 별명을 갖게 된 친구들은 급기야 할아버지가 자신들의 곁을 떠나지 않기를 바라게 된다.
만약 영화 속 아이들이 할아버지를 낯설어하고 그의 집을 불편해했다면 어땠을까? 아마 그런 설정으로는 영화 속 이야기가 시작되지도 않았을 것이다. 세대 간의 갈등과 혐오가 만연한 우리 사회에 〈여름정원〉의 우정은 판타지처럼 보인다. 세대를 넘어서는 우정은 정말 현실 불가능한 아름다운 동화일까? 아이들과 함께 영화를 보러 가면 어떨까 하다가도 아이들이 따라나서지 않아서 상처가 될까 괜한 걱정이 앞선다.
그리고 영화 속 아이들이 현재에 살고 있다면 할아버지를 궁금해하고 관계를 맺게 되었을까? 아마도 불가능하지 않았을까? 세 친구의 손에는 휴대폰이 없다. 어디까지나 가정이지만 어쩌면 영화가 제작될 시기에 아이들이 휴대폰이 없어서 아이들과 할아버지가 친구가 된 것이 아닐까? 물론 이것은 영화를 보며 생각한 가정이다. 역시 영화는 각자의 상황과 위치에서 생각과 고민을 하게 된다.
그런데 영화에 나오는 녹색 정원 속 신비로운 우물처럼 할아버지에겐 숨겨놓은 과거가 있었다. 할아버지가 젊은 시절에 태평양 전쟁에 참여하면서 전우들과 했던 일들은 할아버지를 과거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게 했다. 아이들에게 무서움과 놀라움을 준 그 이야기는 감독이 할아버지를 통해 일본의 역사를 직시하고 반성하는 모습으로 보여준다. 아이들과 할아버지의 아름다운 이야기는 과거에서 멈춘 할아버지에서 아이들의 시간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그것은 영화를 보는 현재의 우리에게 전해진다. 이것은 ‘소마이 신지’ 감독이 연출한 〈여름정원〉의 힘으로 느껴진다.


이들과 할아버지의 아름다운 이야기는 과거에서 멈춘 할아버지에서 아이들의 시간으로 이어진다 / 〈여름정원〉 스틸컷 ⓒ에이유앤씨
혐오를 극복하는 관심과 사랑
작년에 개봉한 강유가람 감독의 〈럭키, 아파트〉를 마무리 이야기로 이어 본다. 커플인 선우와 희서는 영혼을 끌어모아 장만한 아파트에서 나는 악취의 원인을 찾다가 아래층에서 할머니의 고독사를 접하게 된다. 선우는 냄새로 자신 주변을 떠도는 할머니의 처지가 남의 일 같지 않아서 할머니의 지인을 찾아내기에 이른다. 그런 과정에서 아파트 주민들은 두 커플을 혐오의 대상으로 몰아가고 그 영향으로 희서와 선우의 관계도 삐걱거리게 된다.

아파트 주민들이 할머니의 죽음을 불편해할 때 선우는 할머니의 삶에 관심을 두고, 선우와 희서 커플이 주민 단톡방에서 공공의 적이 될 때 이웃인 중학생 은주는 그들을 편향되지 않는 시선으로 대한다. 선입견 없는 은주는 선우와 길고양이 밥 주는 것을 함께 하기도 한다. 그리고 선우의 진심을 알게 된 희서는 돌아가신 할머니를 함께 추도하며 둘의 관계를 다독인다.
〈여름정원〉과 〈럭키, 아파트〉는 전혀 다른 전개와 시작점을 가지고 있지만, 관심 · 관계 · 세대 · 혐오 등의 단어들을 동일하게 떠올리게 한다. 〈이사〉까지 포함해 뜨거운 여름 영화로 기억될 이 작품들이 문화와 예술을 통해 다양한 세대와 관계를 맺게 되는 독자들에게 어려움을 느슨하게 만드는 작은 씨앗이 되면 좋겠다. 그리고 그 씨앗으로 주변의 작은 이야기들이 소외되지 않도록 문화예술교육이 쓰이기를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