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뜨르릉] 농-담(農-談): 월계초와 함께 짓고 나눈 농(農)한 이야기
광주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
날짜 2026-0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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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담(農-談): 월계초와 함께 짓고 나눈 농(農)한 이야기


글 : 김진아 / 문화학 박사


2024년 6월 3일, 월계초등학교에 구들장 논이 탄생했다

따르릉, 따르릉, 전화벨이 울렸다.

“여보세요?”

“응, 진아~ 언니야. 혹시 남는 책 있어? 월계초 교장 선생님이 ‘굳이백배미’ 책을 꼭 읽어보고 싶다네. 구할 수 있냐고 물으시더라. 그리고 한번 만나고 싶대.”

봄기운에 공기가 제법 부드러워진 어느 날, 이산 작가와 나는 『농하고 사회로운 예술실험 쌀-밥 짓기』라는 책을 들고 월계초등학교를 찾았다. 교정에 들어서자 아이보리빛 머리카락에 소녀 같은 얼굴의 송경애 교장 선생님이 우리를 반갑게 맞았다. 그녀는 들뜬 얼굴로 이곳에 부임하기 전부터 품어온 논농사에 대한 애정을 이야기했다. 이전 학교에서도 고무통에 흙을 채워 토종벼농사를 지었더랬다. 학교에 논이 있다는 사실이 학생들에게 얼마나 큰 잠재적 교육 효과를 주는지 확신하고 계신 분이었다.

“5학년 부장 선생님이 ‘창의랩’ 결과발표를 끝까지 보고 왔거든요. 거기서 구들장 논 만드는 팀을 봤는데 우리 학교 생각이 많이 났다 하더라고요. 어떻게 그런 멋진 발상을 하셨어요.”

우리는 멋쩍게 웃었다.

“그럼 이번엔 구들장 논에 벼농사를 지어보고 싶으신 거예요?”

“그렇긴 한데…. 예산이 전혀 없어서….”

“큰돈이 들지는 않아요. 구들장을 놓을 땅, 돌, 흙. 세 가지만 있으면 충분해요.”

“그래요? 그럼 대략 얼마나….”

“돌이랑 흙을 사는 방법도 있지만, 그것보다 주변에 필요하다고 소문을 내는 게 더 나은 방법이에요. 분명 있을 거거든요. 내어줄 수 있는 사람들이요.”

재료를 구할 수 있을지 미지수였지만, 월계초에 구들장 논을 만든다면 어디가 좋을지 둘러보기로 했다. 아이들이 공을 뻥뻥 차는 운동장은 마땅치 않았고, 정문 화단은 크기가 작거나 햇볕이 들지 않아 벼가 제대로 자라기 어려워 보였다. 눈에 띈 곳은 병설유치원 놀이터에 있는 화단. 빗물 저금통을 설치하기에도 좋고, 배수도 해결할 수 있는 곳이라 더없이 알맞았다.

“놓는다면 여기가 좋겠는데요. 돌이랑 흙만 구해놓으시면 저희가 와서 같이 만들어볼게요.”

그렇게 우리는 첫 만남에 돌과 흙을 구해놓으라는 숙제를 드린 채 헤어졌다. 한동안 아무 연락이 없어, ‘못 만들려나?’ 하는 생각이 들 때쯤. 교장 선생님이 연락했다.

“저희, 돌이랑 흙 다 구했어요!”

소문내서 구해보라고 한 우리나, 그렇게 하란다고 만나는 사람마다 돌 타령, 흙 타령을 해서 구해놓은 교장 선생님이나 도긴개긴이다. 돈으로 사면 쉽지만 굳이 이렇게 하는 까닭은 마음이 모여 만들어진 것에는 소중함이 깃들기 때문이다.

드디어 구들장 논을 만드는 날. 월계초에 도착하니 교장 · 교감 선생님을 비롯해 선생님들과 학부모님들까지 나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니, 왜….’


드디어 구들장 논 만드는 날. 월계초에 도착하니 교장 · 교감 선생님을 비롯해 선생님들과 학부모님들까지 나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김진아

알고 보니 한 학부모가 구들장 논 소식을 듣고 해남 친가에 있는 돌담을 떠올렸고, 뜻 맞는 학부모들과 땀 뻘뻘 흘려 돌 한 트럭을 학교로 옮겨왔다는 것이다. 선생님들은 그사이에 광주광역시교육청에서 주는 시민참여예산을 확보했다고 했다.

교장 선생님과 동료 선생님들, 학부모님들이 꾸었던 꿈에 우리들의 마음까지 소복소복 쌓여, 2024년 6월 3일에 월계초등학교에는 구들장 논이 탄생했다.


 

교장선생님과 동료 선생님들, 학부모님들의 꿈꾸는 마음에 우리들의 마음까지 소복소복 쌓여, 2024년 6월 3일. 월계초등학교의 구들장 논이 탄생했다.

ⓒ김진아

아이들 몸에 새겨진 농(農)한 감각

드디어 월계초 모내기 날. 5학년 네 개 반 아이들 일흔 세 명이 구들장 논에 모여들었다. 아이들은 한 명 한 명, 자신이 심을 모 한 포기를 받아 차례를 기다렸다. 발이 푹푹 빠지는 논을 만나자 아이들은 저마다 다른 반응을 보였다. 깔깔 웃으며 뛰어드는 아이, 발을 빼지 못해 당황하는 아이, 논에 들어가기 전부터 한참을 망설이다가 조심스레 발을 내딛는 아이. 태어나 처음으로 밟아보는 미끄럽고 시원한 흙에 들어간 아이들은 재밌고 신기하고 좋았다고 했다.

 
 


발이 푹푹 빠지는 논을 만나자 아이들은 저마다 다른 반응을 보였다. 깔깔 웃으며 뛰어드는 아이, 발을 빼지 못해 당황하는 아이, 논에 들어가기 전부터 한참을 망설이다가 조심스레 발을 내딛는 아이. ⓒ김진아

“오늘 처음 구들장 논을 심었다. 심은 논의 이름은 ‘멧돼지찰’이다. 5학년 친구들과 같이 심은 거여서 재밌었고 신기했고 좋았다. 내가 심은 ‘멧돼지찰’이 나중에는 더 길게 커서 5학년 3반이랑 맛있는 가래떡을 뽑아서 먹고 싶다. 내가 심은 벼야 많이 많이 커서 만나자!”

‘모를 심었다’는 말이 ‘논을 심었다’로 뒤바뀌었지만, 오늘 친구들과 같이 앞으로 ‘쌀’이 될 무언가를 심었고, 그것이 무럭무럭 자라 친구들과 나눌 날을 기다리게 되었다는 것이 중요했다.

아이들은 수업을 마치고 구들장 논을 둘러보았을까? 자기가 심은 모가 잘 자라는지 달려가 확인했을까? 교실 창밖으로 논을 기웃거리며 벼가 얼마나 컸는지 친구와 이야기했을까? 모를 일이지만, 확실한 것은 학교 경비 선생님이 아이들의 기대가 무너지지 않도록 구들장 논을 알뜰살뜰 돌봐주셨다는 사실이다. 논에 물이 마를 것 같으면 물을 채워주고, 피가 보이면 뽑아주고, 쓰러질 것 같으면 끈으로 묶어도 주고. 아이들이 심은 벼가 혹시나 잘 자라지 못할까 봐 그 누구보다 구들장 논을 열심히 돌봐주셨다고 했다. 그 덕에 월계초의 벼는 아이들의 고대만큼 쑥쑥 자랐고, 우리는 가을볕 좋은 날 “풍년이다!”를 외칠 수 있었다.


그 덕에 월계초의 벼는 아이들의 고대만큼 쑥쑥 자랐고 우리는 가을볕 좋은 날 “풍년이다!”를 외칠 수 있었다. ⓒ김진아

추수날. 우리는 월계초 선생님들의 마음에 또 한 번 감탄했다. 농기구와 학교 책상을 개조해 ‘월계초표 홀태’를 발명해 두었기 때문이다. 학생들이 탈곡까지 온전히 경험해 보길 바라는 마음이었단다. 덕분에 아이들은 자신이 수확한 벼를 그 어디에도 없는 ‘월계초표 홀태’로 탈곡할 수 있었다.


농기구와 학교 책상을 개조해 만든 ‘월계초표 홀태’ ⓒ김진아

우수수 떨어지는 낱알 소리에 아이들의 웃음과 감탄도 “우수수, 우와아, 우하하”했다. 기대했던 모가 진짜로 쌀이 되어 떨어지니 어찌나 신나 하던지. 수업시간에 배운 민요를 노동요 삼아 떼창하기도 했다. 기뻐하는 아이들의 모습에 우리도 신이 났지만, 학생들을 생각하며 홀태를 직접 만들어 놓은 선생님들은 얼마나 기분이 좋았을까. 무더운 여름 내내 구들장 논을 돌봐준 경비 선생님은 또 어떻고.

 


‘월계초표 홀태’로 하는 탈곡 ⓒ김진아

연말에는 수확한 쌀을 도정해 가래떡을 뽑았다. 길게 늘어진 하얀 떡 위에 아이들이 농사지은 토종쌀이 콕콕 박힌 특별한 모습이었다. 교실마다 뛰어다니며 우리가 농사지은 쌀로 만들었다고 뿌듯하게 전달했을 아이들 모습이 눈에 그려진다. 아이들이 전교생과 나눈 떡 한 조각은, 논을 만들고, 모내기하고, 추수하고 탈곡하며 지어온 경험을 통째로 담은 상징이었을 테다.

모든 과정에 담긴 마음들, 함께 느낀 감정과 떠올린 생각들을 무엇이라 부를 수 있을까. ‘굳이백배미’가 펴낸 『농하고 사회로운 예술실험 쌀-밥 짓기』에서 이하영 작가는 이를 “농(農)하다”라고 표현했다. “농(農)한 것은 농사를 지을 때 활성화되는 감각이며, 몸으로 배워 삶으로 이어지는 태도와 가깝다”라고 했다.

생각해 보면 월계초에서 보낸 우리의 시간은 하나하나가 농(農)한 순간들이었다.

송경애 선생님이 품었던 바람, 학부모님들이 정성껏 옮겨온 돌담, 경비 선생님의 살뜰한 돌봄, 선생님들이 만든 신개념 홀태까지. 어른들의 마음이 겹겹이 쌓였기에 아이들은 구들장 논을 만들고 모내기에서 가래떡까지의 여정을 몸으로 경험할 수 있었다.

그 속에서 아이들은 단순한 체험이 아닌 농(農)한 감각을 배웠을 것이다. 함께 만들고, 함께 심고, 함께 거두고, 함께 나누는 기쁨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 감각은 아이들만의 것이 아니었다. 무언가를 간절히 바라고, 문제를 풀어나가고, 서로 협력하며 아이들의 환경을 만들어간 어른들의 마음이 빚어낸 수확이기도 했다.

예술 실험으로 시작한 도심 속 구들장 논, 이름은 ‘굳이백배미’

월계초에 구들장 논이 생길 수 있었던 까닭은 202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22년 광주문화재단 광주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 ‘창의예술교육랩(lab)’에서 “예술이 도시를 바꿀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던졌고, 나는 〈요리와 이야기〉 랩장을 맡아 다양한 이들을 모았다. 농부, 퍼포먼스 예술가, 철학가, 사진가, 드러머….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이들이 모여 음식에 관한 예술 실험 과제를 받았다. 우리는 도심 한가운데 작은 논을 만들고 토종쌀농사를 지으며 과정을 놀이와 예술로 풀어내는 작업을 했다. 2022년 10월에 시작된 사업은 2024년 2월 결과발표회를 마지막으로 끝났고, 우리에겐 실험하며 만들어 놓은 구들장 논이 고스란히 남았다.

논이라는 것이 요물인 게, 일단 만들었기 때문에 지속적인 돌봄을 요구했다. 마치 논이 “올해도 모내기할 거지?, 같이 농사짓고 밥 해 먹을 거지?”라고 말을 거는 것 같았다. 사업이 끝나 더 이상 지원받지 않아도, 계속 이어가자는 약속을 하진 않았어도, 구들장 논을 함께 돌보는 일은 마치 당연하다는 듯이 이루어졌다. 때가 되면 모내기를 어떻게 할지 의논하고, 이번 추수는 또 어떻게 재밌게 해 볼지 궁리했다.

이건 정말 “농(農)하다”라고밖에 설명하지 못하겠다. 우리가 논을 실험의 매개로 삼지 않았다면, 광주의 주먹밥이나, 상추튀김, 한정식 같은 것을 주제 삼아 이야기를 시작했다면 지금처럼 당연하게 작업을 이어 나가고 있었을까?

이 감각은 농(農)이 주는 감각, 같이 땀 흘리며 흙과 돌을 다지고 모를 심고 보살피며 함께 수확해서 먹는 모든 과정에서 활성화되는 복합적인 감각일 것이다. 그것을 ‘공동체’, ‘협력’, ‘유대감’, ‘신뢰’ 같은 언어로 표현할 수도 있겠지만, 그 모든 것을 아우르는 언어는 “농(農)하다”이다. 어쩌면 돌과 흙, 그 땅이 주는 묵직한 중량감 속에서 우리가 이어지고, 그 속에서 농(農)함이 빚어지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굳이백배미’ 작업을 이어가면서 여러 가지 질문을 받아왔다. 그중 하나는 “어떻게 그렇게 계속하냐”는 질문이다. 이에 정강 작가는 이렇게 답했다.

“우리는 하나의 목적을 위해 모인 팀이라기보다, ‘굳이백배미’ 작업을 함께 하면서 새로운 감각들을 계속 찾아내고 그걸 나누는 과정 자체가 작업을 이어가게 하는 힘이 되는 것 같아요. ‘굳이백배미’의 구들장 논은 혼자 십 분이면 할 일을 몇 시간에 걸쳐서 논의하고 며칠을 걸쳐서 준비하는데, 어쩌면 그 순간들이 우리가 잊고 지냈던 감각을 소환해 내고 그 경험이 우리에게 너무나 값지다고 여기기 때문에 멈출 수 없는 거죠. 소중한 감각을 점점 더 많은 사람과 공유하고픈 마음이 모여, 삼 년 동안 벌써 세 개의 논이 만들어진 것 같습니다.”

 


2023년 사용자공유공간 planC(맨 위), 2024년 월계초등학교(아래 왼쪽), 2025년 팔복예술공장에 놓인 구들장 논(아래 오른쪽) ⓒ김진아

우리의 팀의 이름은 ‘굳이백배미’이지만, 언젠가부터 우리 마음속에서 ‘굳이’는 ‘기꺼이’로 읽히기 시작했다.

굳이 도심 한 복판에

굳이 백 명의 사람들과

굳이 1인 1모내기하며 토종쌀을 심고 기르는 일이

‘기꺼이’ 하고 싶은 일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기꺼이 마음을 내어 이어가다 보니,

어느새 학교 교육과 지역 공동체, 예술 공간을 잇는 확장된 예술 실험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들의 작업이 언제까지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다만 분명한 것은, ‘굳이백배미’의 ‘굳이’가 ‘기꺼이’로 읽히는 순간들이 계속되는 한, 우리는 굳이백배미를 돌보고 함께 심고 함께 거두어 나눌 것이다. 억지로가 아니라, 자연스레 싹트는 그 마음이 이어지는 한 말이다.




김진아 | 문화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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