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0호] 여기서 음식을 배우고 끝이 아니고, 삶의 방식이 바뀐다는 게 좋아요(김진아 라라의 정원 대표)
광주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
날짜 2022-12-12 조회수 314
첨부파일

여기서 음식을 배우고 끝이 아니고,

삶의 방식이 바뀐다는 게 좋아요

 김진아(라라의 정원 대표)



 


 


 

 

한 학기의 수업이 끝나갈 무렵, 참여자로부터 이런 후기를 받았다.

여기서 음식을 배우고 끝이 아니고, 앞으로 살 방식이 바뀐다는 게 좋아요.”

-<철학이 있는 밀키트> 참여자 수업 후기 22.11.30 -

 

 

 

나는 왜 좋은 음식에 대한 질문을 하게 되었나

수업의 첫 시간은 질문으로 연다. “좋은 음식이란 어떤 음식이라 생각하나요?”.

좋은이라는 형용사는 넓고도 깊어서 정성이 들어간 음식이요.”, “건강한 음식이요.”, “맛있는 음식이요.”, “사랑하는 사람과 먹는 음식이요.” 같은 다양한 답들이 나온다. 그 다양한 해석들을 듣는 것은 꽤나 즐거운 일인데, 그 즐거운 시간 끝에 나도 한 마디를 덧붙인다. “‘좋은이라는 형용사에 많은 것을 담을 수 있으니 앞으로의 시간 동안 좋은 음식에 대한 생각을 더 풍성하게 만들어가 봐요.”

 

대학시절 음식 공부를 시작했을 때, 선후배들과 한식, 중식, 일식, 전통음식 등 가리지 않고 모든 요리수업을 수강했다. 하루에 여섯 시간씩 서서 실습을 하고 집에 돌아오면 발바닥이며 허리가 아파왔는데, 그래도 재밌어서 집에 돌아와 배운 것을 또 요리해 친구들과 나눠먹곤 했다. 그 시절의 나에게 좋은 음식이란 저렴한 가격에 질 좋은 식재료를 사서 맛있게 요리한 음식이었다. 그 이상의 다양한 해석과 고민을 해볼 기회는 없었다. 그 어떤 교수님, 선배, 동기들도 우리는 어떤 음식을 만드는 사람이 되면 좋을까? 좋은 음식이란 무엇일까?’와 같은 질문을 하는사람은 없었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우리는 그저 어떻게 하면 기막히게 멋지고, 누가 먹어도 맛있는 음식을 만들 수 있을까에 집중했다.

 

대학생활 삼 년째 되던 해. 이태리에서 음식 공부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얻어 피렌체에 머무를 수 있었다. 그곳에서 이태리 요리뿐만 아니라 아직 우리나라에선 생경했던 채식주의 음식, 마이크로 바이오틱과 같은 음식문화들을 접할 수 있었다. 특히 옆 동네에 마이크로 바이오틱을 실천하는 사람들이 이용할 수 있는 회원제 식당이 있었는데, 그곳에선 한 달에 한 번 정도 회원들을 위한 마이크로 바이오틱 요리 수업을 제공했다. 식당의 운영 방식부터 그곳에서 내놓은 음식 하나하나 모든 것이 새로웠다(나는 회원은 아니었지만, 타국에서 온 학생이라는 이유로 식당을 이용할 수 있게 배려받았다.). 아직 우리나라에 넘어오지 않은 것들을 먼저 보고 경험하는 일들은 나를 무척 들뜨고 설레게 했다. 이런 경험들 중에서도 단연 새롭고 충격적이었던 것이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Annalisa Nardi 교수님이 강의했던 지속 가능한 음식' 수업이었다.

 

Nardi 교수님은 음식의 생산과 소비 방식이 우리가 살아가는 환경과 사회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때문에 글로벌 푸드시스템 안에서 음식의 출처를 명확히 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를 강의했다. 우리에게 하루하루 소비하는 음식의 출처를 기록하는 푸드 다이어리를 쓰며 의식적으로 먹기를 강조했고, 좋아하는 음식 한 가지를 선택해 누가, 어디서, 어떻게 길러 내 식탁으로 왔는지 추적해보는 푸드 트래킹(Food Tracking)’을 과제로 내주었다. 때문에 그녀의 수업을 듣는 내내 식재료를 사러 갈 때면 원산지를 확인하고 라벨을 보며 장을 보았고, 처음으로 음식이란 어떠해야 하는가, 내가 지금까지 소비해왔던 음식은 이대로 괜찮은가, 농부는 어떤 씨앗으로 어떻게 작물을 길러내야 할까, 요리사는 어떤 요리를 해야 하며, 음식 소비자는 어떤 태도로 음식을 고르고 선택해야 하는가와 같은 질문들에 대해 고민해보게 됐다. 그리고 생각했다. 음식 하는 사람에게 중요한 건 요리하는 법을 배움과 동시에, 어떤 요리를 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일이라고.




농사지으며 요리하고, 읽고 쓰고 토론하는 음식교육


학교에서는 나물 같은 건 안 배우죠. 발효 음식 이런 거 안 배우고. 좋은 음식 이런 거 한 번도 생각 안 하죠. 요리사로서 어떤 길 갈지도 전혀 생각해보지 않고텃밭활동도 안 하잖아요. 화분 같은 거에 바질인가만 길러보고. 근데 여기선 밭부터 갈고 쌀도 기르고. 그러면서 재료의 소중함을 알게 되고 식재료가 어떻게 생긴 지도 알게 되고. 진짜 신선한 경험 많이 하는 것 같아요.”

<세상에서 가장 느린 식당> 참여자 심층 인터뷰, 2019.1.8.-

 

2017년부터 청소년삶디자인센터와 북구평생학습관에서 요리에 관심 있는 청소년과 성인들을 대상으로 다양한 음식교육을 기획하고 운영했다. 프로그램들의 공통점이 있다면 요리뿐 아니라 농사에 대해서도 배우며 읽고 쓰고 토론하는 음식 수업이라는 점이다. 대표적 프로그램들로는 로컬푸드로 요리하는 <400리 식탁>, 농사짓고 요리하는 농부요리사 프로그램 <세상에서 가장 느린 식당>, -고등학교 텃밭 동아리들과 토종씨앗을 심고, 길러 요리해먹는 팜투테이블 프로그램 <씨앗에서 밥상까지>, 얼굴 있는 식재료로 요리하고, 먹고, 나누는 경험 <철학이 있는 밀키트 선물> 등이 있다.

 

특히 1년 과정의 농부요리사 프로그램 <세상에서 가장 느린 식당>에서는 정말 진하게 음식 공부를 할 수 있도록 했다. 자신이 요리할 생명을 직접 농사짓고 그것들로 요리하는 일. 이른 봄 텃밭을 갈기 시작해 여름엔 모내기를 하고, 가을엔 배추 심어 겨울에 12일 김장까지. 틈틈이 텃밭 작물로 요리해 사람들과 나눠먹고 메주 빚고 장 담그는 법까지 장 마스터에게 배웠다. 이렇게 농사짓고 요리하며 일 년의 과정을 보낸 청소년들은 자신도 모르는 새에 좋은 음식에 대한 생각들이 넓고 깊어져 있는데, 이들이 만들어 낸 음식 철학을 볼 때면 텃밭과 부엌에 있는 멤버들의 모습들이 머릿속에 그려져 나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진다.

 

물론, 요리하고 싶어 프로그램에 참여한 이들은 처음에 좀 당황한다. 요리하러 왔는데 칼이 아닌 호미를 들 때가 많고, 레시피를 배우기보다 직접 맛을 보며 스스로 요리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뿐인가. 책 읽고 리뷰 노트를 써오는 과제를 내주기도 하고, 리뷰 한 걸 가지고 토론하자며 자꾸 말을 시킨다.

 

가장 최근에 시작한 <철학이 있는 밀키트> 수업에서는 마이클 폴란의 <푸드룰>, 웬델 베리의 <온 삶을 먹다>, 작은 농부들이 쓴 <살자 편지>, 반다나 시바의 <이 세계의 식탁을 차리는 이는 누구인가>를 읽어가며 음식 공부를 이끌었다. 물론 요리도 배우고 함께 만든 음식을 나눠먹는 일도 즐겁게 해 나갔지만 수업 중 절반은 책을 읽고 토론하는 일이 많았다. 가을의 끝자락엔 호미 한 자루로 농사짓는 공동체 텃밭에서 수업을 진행했는데 그날엔 농부님께 씨앗 받는 농사, 농약 없이 풀과 함께 짓는 농사 방법에 대해 배우고, 넝쿨째 굴러온 호박 하나를 따다가 숭덩숭덩 썰어서 호박전을 부쳐 먹었다.

이 수업의 첫날에도 역시 좋은 음식에 대한 질문을 던졌고, 11월의 마지막 수업 날엔 자신만의 음식 철학에 대해 물었다.

 

 

직접 농사를 지어 우리 집 밥상의 자급률을 높인다

식재료의 출처를 명확히 한다

식재료를 대할 때 감사함을 갖고 작은 파뿌리 하나도 다 사용하도록 한다

음식을 만들 때 그 음식을 먹을 사람들을 위해 기분 좋게 서두르지 않고 만든다

식사시간은 밥을 먹는 것뿐 아니라 마음을 채우는 시간임을 알고 나부터 여유를 갖고 아이들과 같은 식탁에 앉는다

식사를 준비하고 식사를 할 때에는 음식에 오롯이 집중한다

나의 몸에 양분이 되어주는 음식에 항상 감사한 마음을 갖는다

<철학이 있는 밀키트 멤버들의 음식 철학 중...>



음식 철학을 실천해나가기 위해, 우리는 내년에 옥상텃밭을 함께 가꿔나가기로 했다. 요리하고 싶은 작물들을 직접 심고 길러보기로, 동아리를 만들어 책도 읽고, 서로가 서로를 가르쳐주는 요리 수업을 만들어보기로 했다.

 

여기서 음식을 배우고 끝이 아니고, 앞으로 살 방식이 바뀐다는 게 좋아요.”

 

음식 공부를 하던 시절, 요리사가 아니고 음식 교육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은 이유. 바로 이런 것이었다. 좋은 음식에 대한 생각을 공유하는 친구를 늘려가는 일. 사람들의 먹을거리의 선택에 영향을 미치는 일. 그렇게 조금씩 나와 이웃, 우리가 사는 세상을 건강하고 튼튼하게 만들어 가는 일.

앞으로 살아갈 방식이 바뀌었다는 참여자의 말이 감동스러워 속으로 내내 되뇐다.

  

 

  

▲ 김진아(오른쪽)

 

 

김진아

노래하듯 즐겁게 산다는 의미로 라라라는 별칭을 쓴다. 요리와 문화학을 공부하고 청소년삶디자인센터 음식공방 벼리(직원)로서 진로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운영하다 현재는 프리랜서로 활동 중이다. 300평의 텃밭 라라의 정원을 손수 가꾸며 농사짓고 요리하는 삶을 살고 있다.


-아르떼 기고문 / 농사짓고 요리하며 삶을 배운다 : https://arte365.kr/?p=77373

-인스타그램 /@lara_jinakim

-페이스북 www.facebook.com/lara.kim.98

 

 

존재의 울림 게시글 상세 폼
top 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