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삶에서 널 꽉 껴안으마!! - 서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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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15-10-12 조회수 2,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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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마가 삶에서 널 꽉 껴안으마!!

서준호(초등학교 교사)




“선생님, 제 딸을 살려주세요!”

  교실 문을 열고 조심스럽게 한 학부모님이 들어오더니 눈물을 훔치며 도와달라고 요청을 했다. 여쭤보니 학교에 있는 위클래스에서 상담을 하다 심리극전문가인 내가 학교에 근무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반 학부모는 아니지만 도움을 받고 싶어서 내려왔다고 한다. EBS ‘달라졌어요’를 통해 심리극을 접한 적이 있다면서 딸의 마음을 돌려달라고 부탁했다.

  조금 더 이야기를 들어보니 몇 주 전 외할머니가 암으로 갑작스럽게 돌아가신 뒤부터 무기력해지기 시작했고, 슬퍼하면서 할머니를 살리지 못했다는 것에 대한 죄책감까지 자리하고 있었다. 외할머니와 딸 혜진(가명)이 밀착되어 있었던 것은 부모가 정신없이 일해야 했기에 초기 어린 시절부터 혜진은 외할머니 품에서 자랐었다. 혜진의 담임선생님을 통해서 혜진의 무기력이 조금씩 심해지고 있으며, 급식 먹기도 힘들어하고, 아이들이 혜진이를 답답해하는 등 불편한 역동이 생기고 있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그래서 혜진이를 다음날 오후 늦게 만나보기로 했다.

 

  약속된 시간, 엄마는 복도에 자리하고 혜진이가 축 늘어진 몸으로 교실에 들어왔다. 빈 의자 두 개를 미리 준비하고 한 의자에 혜진이를 앉게 한 뒤, 감정을 물어봤다. 엄마가 이야기했던 것처럼 외할머니가 돌아가셔서 슬프고,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답을 했다. 그리고 외할머니가 있는 곳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자꾸 든다고 했다. 그래서 혜진이에게 외할머니와 좋았던 일을 물어봤다. 외할머니가 만들어준 음식, 안아주며 노래했던 기억, 함께 산책했던 공원 등을 이야기하면서 혜진이의 얼굴에 생기가 돌기 시작했다. 혜진이가 슬퍼했던 것은 아마도 외할머니를 정말 사랑했기 때문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혜진이 옆, 비어있는 의자를 가리키며 ‘외할머니 자리’라고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잠깐 그곳에 앉아서 연기하는 게 아니고 외할머니처럼 생각하고 답을 해보자고 제안했다. 혜진이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의자에 앉아 나를 바라봤다. 나는 재빨리 이야기를 시작했다.

 

  “할머님, 손녀딸 이름이 뭔가요?”
  “혜진이입니다.”
  “네, 혜진이는 지금 몇 학년인가요?”
  “5학년이지요.”


  외할머니 역할로 들어갈 수 있도록 간단한 질문을 몇 개 한 뒤, 조금씩 중요한 질문을 더 해갔다.

 

  “할머님, 혜진이 어렸을 때 넘어져 울 때 마음이 어떠셨어요?”
  “마음이 안 좋았어요.”
  “할머님, 혜진이가 친구에게 맞고 왔을 땐 마음이 어떠셨어요?”
  “마음이 정말 안 좋았지요.”
  “할머님, 혜진이가 죽고 싶대요. 할머니 따라가고 싶대요. 지금 마음이 어떠세요?”


  그리고 난 재빨리 원래 혜진의 자리에 앉아 ‘나 할머니 따라갈래!’ 라는 말과 함께 할머니 역할을 하고 있던 혜진의 팔을 잡아끌었다. 그러자 할머니 역할을 하던 혜진이는 눈이 동그래지더니 손을 뿌리치며 소리쳤다.

 

  “안돼!!!”
  “할머니 나 할머니 따라갈래. 응?”
  “안됀다니까. 오지마!”

 

  난 잠시 숨을 고른 뒤, 미리 파악된 정보를 토대로 혜진의 자리에 앉아 말을 시작했다.

 

  “할머니가 돌아가신 뒤에 웃고 다니면 이상하잖아. 할머니 나 어떻게 살아야 해?”
  “밥 잘 먹고, 웃으면서 살아야지. 혜진이 네가 행복해야 나도 행복하단다.”


  이 말을 하더니 혜진이는 눈물을 흘리더니 고개를 끄덕거렸다. 난 혜진이를 할머니의 자리에서 옮겨 원래 자신의 자리에 앉도록 했다. 그리고 무엇을 알게 됐는지 물어봤다.

 

  “제가 더는 슬퍼하면 안 될 것 같아요. 그리고 저 웃고 다닐래요.”


  외할머니와 밀착을 줄여주기 위해서 복도에서 기다리던 엄마를 교실로 모시고 온 뒤 혜진과 손을 잡고 눈을 바라보게 했다. 그리고 문구를 따라 말하도록 했다.

 

  “혜진이는 엄마의 눈을 바라봅니다. 엄마는 삶 그 자체입니다. 이제 외할머니의 영역에서 삶인 엄마에게 크게 한 걸음을 떼야 합니다. 혜진이는 엄마를 바라보고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엄마, 저를 삶에서 꽉 안아주세요.”


  “엄마, 저를 삶에서 꽉 안아주세요.”


  그리고 혜진이는 눈물을 흘리며 조금씩 엄마 쪽으로 이동했고 엄마 품 안에 안겼다. 엄마도 눈물로 딸을 안았다.

 

  “엄마 여기 있어. 엄마가 너를 삶에서 꽉 껴안으마!”


  엄마와 딸이 가족이란 이름으로 사랑으로 꽉 껴안고 있는 모습이 참 좋았다. 세션을 마무리했고, 혜진이는 수줍은 미소와 함께 엄마 손을 잡고 돌아갔다. 며칠 뒤, 복도를 지나치다 혜진을 만났다. 밝게 웃으며 복도를 뛰는 모습으로 안녕하세요 하고 인사를 건넸다.

 


 

  이렇게 짧은 시간 동안에 역동을 만들어 낼 수 있었던 것은 심리극의 힘이 컸다. ‘심리극’은 사이코드라마(Psychodrama)로 불린다. 혜진을 외할머니 자리로 보내면서 생각하고 답을 하게 하는 것은 심리극의 3대 기법인 역할 바꾸기, 거울 보기, 이중 자아 중 ‘역할 바꾸기’를 이용한 것이었다. 사람들의 생각을 바꾸고, 행동을 수정하고, 때론 감정을 분출하도록 만드는 연극치료 기법의 하나다.

 

  여러분도 도전해 보자. 의자를 하나 놓은 뒤, 그 자리를 ‘엄마의 자리’라고 해보자. 이제 일어나 ‘엄마의 자리’에 앉은 뒤, 엄마처럼 생각하고 답을 하기로 하자. 그리고 이 대답에 답을 해보자.

 

  “어머님, 앞에 앉아 있는 자녀분, 태어났을 때 어땠어요?”

 

 

 

 
 

 

<서준호 선생님>

 초등학교 교사, 심리치료사, 놀이전문가.

대학원에서 무용연극치료를 전공해 석사학위를 받았으며, 심리극(‘사이코드라마’ 로 알려져 있는), 가족세우기(Family Constellation), LCSI(종합성격검사) 전문가로 활동하고 있다.
아이스크림(i-scream) 원격연수원에 ‘서준호 선생님의 마음 흔들기’ 강좌가, 티 처빌(teacherville) 원격연수원에 ‘교사를 위한 치유, 나를 위한 회복’ 강좌가 개 설되어 있다.

EBS 다큐 ‘선생님 선생님 우리 선생님’에 출연하였으며, 아이들과 교사, 학부모 를 대상으로 한 상담, 심리치료 워크숍, 힐링캠프를 운영 중이다.
지은 책으로는 《서준호 선생님의 마음 흔들기》 《서준호 선생님의 교실놀이백과 239》가 있으며, 보다 많은 정보는 ‘서준호 선생님의 마음 흔들기’ 블로그(2012 년 다음 우수 블로그)에서 확인할 수 있다.

http://blog.daum.net/teacher-junh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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