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칼럼_최영화 교수.jpg [size : 409.6 KB] [다운로드 : 49]
사람을 지키자, 사람을 키우자
최영화(호남대학교 미디어영상공연학과 교수)
문화란 삶의 축적으로서 인간적 여러 요소에 의해 삶이 존재하는 장소에서 더불어 형성되고, 삶의 방식으로부터 문화적 고유성과 다양성이 발견된다. 따라서 모든 문화의 생성 공간을 각기 하나의 지역으로 설정하고 바라보는 시각은 물리적 범주를 뛰어넘어 대단히 자연스럽다. 사람들은 누구든지 오랜 시간을 거쳐 온 자기네 삶을 타인의 그것에 귀·예속시키거나 저급평가 받기를 단호히 거부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고착된 중앙과 지방으로서의 양분 논리는 (적어도 문화에 있어서는) 매우 불편한 진실이 되어 있다. 금세기 들어 ‘문화’가 국가 주요 산업의 한 축으로 자리 매겨지면서, 서울권역의 수도권은 정치경제뿐만 아니라 문화의 중심으로도 규모와 권력을 키워왔고 결국 (이미 확인하였다시피) 문화는 ‘중앙문화’와 비수도권 변방 개념의‘지방문화’로 양분된 지 오래다.
갈수록 양극화되어가는 자본시장 구조 속의 지방 도시들은 기능 확장에 있어서도 상대적 열세를 면치 못했다. 따라서 침체 된 도시의 재생과 미래 비전을 위해 다각적인 해법을 모색하기 시작했는데 대부분의 도시들이 ‘문화 키워드’를 앞다퉈 제시한 것은 그들 나름의 삶에 대한 존엄과 가치를 문화 속에서 확인했기 때문이다.
사회는 이러한 폭증된 문화수요와 환경속에서 자기 삶을 지키고 선전하는 지역의 문화예술일꾼들을 주목하고, 그들에게 지역주민을 위한 일상의 문화예술향유에서부터 생활문화진흥의 선도적 지위, 지역문화 정체성의 확립 등 욕구충족과 문화산업 발전에 기여하고 소위 문화자치를 활성화하기 위한 전문적인 역할까지를 요구하였다.
문화시대를 맞은 일반적, 포괄적 관심은 여러 과제와 문제점을 낳았다. 그 중 첫째가 문화적 케파(capacity)가 커진 수도권으로의 인력집중 현상이다. 서울로, 서울로, 서울만이 문화산업이고 서울만이 가능성으로 인식되었다. 수도권 중앙문화집중에 따른 심각한 인재유출은 지역문화 미래의 암울한 현실이 되었다. 이제 지역은 스스로 키워내고 스스로 지키지 않으면 희망이 없게 되었다.
내가 태어난 곳, 내가 성장한 곳. 가족이 있고 친구가 있고 그들과 함께 한 삶이 녹아서 묻힐 이곳에 희망을 주기를 간절히 바라는 건 나만의 생각일까? 그것이 꼭 토박이라는 지역적 ego에 기인한 걸까?
단호히 아니다. 문화는 다채로움과 균형, 개성(리듬)과 조화, 하나가 아닌 모두에게서 나오기 때문이다. 민족의 부흥을 위해서라도 지역의 희망을 찾아야 하는 절실한 이유이다.
그렇다면 방법은 뭘까?
일단 청년인력을 대상으로 문화관심을 자극시키고 그 가치를 발견하게 해야 한다. 청소년 문화교육은 반드시 전문인력의 양성만을 목표로 하지는 않는다. 체험 그 자체만으로도 그들을 문화적 인간형으로 성장시킨다. 문화적 인간형은 궁극적으로 문화 수요를 양산한다. 청소년 문화예술동아리의 적극적인 지원이 필요한 이유이다. 장기적 관점에서 지역인재를 스스로 키워낸다는 전략이라면 ‘광주-청소년 문화도시’로서의 전향적 전환도 필요하다. 먼저 기회와 계기를 제공하고 난 후 청년 스스로 가치를 발견하고 성과의 유무와 상관없이 기다리는 자세 또한 필요하다. 청년의 과정은 그 자체만으로도 문화적 자산이기 때문이다.
청소년이 미래의 자산이라면 지금까지 지역을 지키면서 지역과 함께 지역을 이야기했던 기성 문화예술가들은 현재의 자산이다. 우리는 발전을 이야기하면서 과거를 지우려는 습관이 있다. 하지만 과거는 현재의 원인이고 현재는 과거의 결과인 만큼 기성 활동가에 대한 가치를 살펴 예우할 필요가 있다. 그들이 지금까지 이루어 놓은 수많은 문화적 업적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역사이다. 이들의 활동을 지원하고 그들이 이루어 놓은 치적들을 브랜드화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단 여기에는 보다 선진화된 기술지원이 필수적이다. 과거의 제작방식만으로는 현재의 트렌드에 부합할 수 없다. (물론 트렌드가 전부 문화가 되는 건 아니지만) 과거를 지키는 것은 과거가 지닌 ‘originality’이지 지난 방식이 아니다. 기성 예술가들의 작품에는 정신이 녹아 있다. 이 정신에 필요한 경우 새로운 디지털 포장을 가미해 동시대 예술로 격상해야 할 것이다. 이미 문화예술계에도 4차산업혁명은 시작되었다.
또 밖에서 활동하고 있는 예술가들을 유입해야 한다. 유입을 위해선 유입정책이 수반되어야 하는데 그건 지역 활동에 대한 매리트의 제공이다. 광주에서 활동하면 그만큼 혜택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제작지원이든 생활지원이든 좀 더 편안한 활동을 통해 광주를 ‘제2의 예술고향’으로 만들 수 있도록 동기부여 하는 것이다. 해외 레지던스 프로그램도 좋지만, 국내 타지역 훌륭한 예술가들을 데려오자. 또는 아직은 설익은 청년일지라도 광주에서 작업하고 광주에서 친구를 만들며 광주에서 발표하게 하는 계기를 마련해 줘야 한다.
이렇게 모이는 이들을 위한 프로그램도 필요하다. 우리 지역문화를 올바로 이해하기 위해 우리 지역문화의 원형을 소개하고 또 이것들에 대한 매력을 흠뻑 느낄 수 있도록 하는... 이는 단순 관광 홍보가 아니다. 문화원형에 대한 이후 콘텐츠 개발로 이어질 수 있는 구체적인 워크샵이 필요하다. 여기에는 외지 활동가뿐만 아니라 우리 지역 활동가도 같이 합류할 수 있다. 지역 내 활동가라지만 실제 우리 문화 원형에 대한 심도 있는 학습이나 연구가 수행되지 못한 채 겉도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우리는 청년 예술가를 양성하기 위한 교육프로그램을 만들고, 남아 있는 지킴이 예술가에 대한 지원을 강화하고, 외지로부터 예술가들을 유입하는 정책을 펼치며 그들과 함께 우리의 문화원형을 소개하여 어떻게 요리할 것인지를 같이 공부하고 고민해야, 그 일이 먼저 이루어져야, ‘수도권 문화’로 유출되는 지금의 현실을 반전시킬 수 있을 것이다. 어차피 문화는 사람이 힘이며 사람 손에서 시작되기 때문이다. 사람이 없으면 광주문화의 희망은 없다.
| 글쓴이 최영화는 호남대학교 미디어영상공연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스무살 때부터 39년간 100여편의 연극,뮤지컬을 연출했다. 1998년에는 '취선록'으로 전국연극제에서 대통령상, 연출상을 수상했다. 최근에는 사랑, 돈, 권력의 무상을 다룬 '없다' 창작 시리즈를 이어가고 있다. 소극장 '문예정터'를 건립해 운영해오면서 지역 문화발전에 일조해 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