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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 코로나, 새로운 시대의 문턱에서
송재영(작가 타라재이)
Look Both Ways
영어로 ‘Look Both Ways’는 주위를 둘러보라는 뜻이기도 하고, 양면을 모두 보라는 뜻이기도 하다. 일상에서는 길을 건너기 전에 차를 조심하라는 뜻으로 사용하고, 회의 중이라면 또 다른 측면에 대해 살펴보자는 뜻에서 건넸을 말이다. 그런데 요즘은 마스크를 쓰지 않은 사람이 있는지, 기침을 하는 사람이 있는지 둘러보라는 뜻으로 더 사용할 것 같은 말이다. 그만큼 우리 삶에서 코로나19는 일상적인 화제가 되었고, 모두의 관심사가 되었다.
‘Look Both Ways’라는 말처럼 모든 일에는 양면이 존재한다. 이는 다른 시점의 가능성을 시사한다. 다이너마이트가 굴착 공사에 혁신적인 기술이었다가 전쟁에 살인 도구로 이용되었던 것처럼, 수많은 생명과 재산을 앗아가는 태풍이 자연에게는 정화의 과정인 것처럼. 사람이 만든 기술에도, 거대한 자연의 흐름 속에서도 세상에 이로운 영향력을 끼치는 긍정적인 측면과 그렇지 않은 부분이 있다. 즉, 처음 의도와 상관없이 어떤 발견과 변화에는 순기능과 역기능이 동시에 존재하고, 그것에 어떤 가치를 부여하고 적응해 나가느냐에 따라 삶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역사상 초유의 바이러스 전쟁으로 전 세계인을 공포에 떨게 한 코로나19는 어떤가. 2019년 12월에 시작된 코로나 바이러스에 현재까지 약 170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감염되었고, 사망자는 68만 명에 이르렀다. 사람들이 바이러스 공포를 실감하기 시작한 것은 2012년 메르스(중동 호흡기 증후군)사태 이후였다. 2014년 에볼라 바이러스가 창궐하면서 감염병에 대한 위기와 두려움이 일상을 바꾸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 두 번의 사태 모두 백신 투여를 하지 않고도 계절이 바뀜에 따라 습도와 온도가 달라지며 서서히 기억 속에서 사라져 갔다. 그러나 코로나19는 다르다. 계절의 변화와 관계없이 비말을 통해 감염이 이루어지고 있으며, 환경에 따라 바이러스 변종이 생겨나면서 백신을 개발해도 쉽게 무력화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이전 바이러스는 시간이 흐르면 잦아드는 단기전이었다면, 코로나19는 장기전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세계는 지금 총구 없는 전쟁을 치르고 있는 것이다.
소통 방식의 변화
코로나19는 우리 삶을 바꿔놓았다. 마치 PC보급과 윈도우 개발로 업무와 기록방식이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모든 업무가 바뀐 것처럼 일상과 업무방식에 변화를 가져다주었다. 코로나19로 인한 변화에 대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비대면’이라는 단어일 것이다. 바이러스 감염 차단을 위한 사회적 거리두기를 실천하기가 중요해지며 소통의 방식이 달라졌다. ‘소통’자체는 유지하되 방식의 변화가 불가피해 진 것이다. ‘비대면’ 소통방식이 가능한 것은 인터넷의 발달 때문이다. 코로나19의 위력과 가장 흡사한 것으로 20세기 가장 크게 유행했던 스페인독감이 예시로 자주 등장한다. 스페인 독감은 1918년~1920년에 창궐했으며 전 세계 사망률은 3~5%, 사망자가 1700~5,000만 명에 달했다. 당시에도 지금과 비슷하게 바이러스 전염을 막기 위해 해외여행을 제한했고, 이로 인해 예방접종 문화가 전파되었다고 한다.
80년 전, 약 2년간 세계를 공포에 떨게 했던 스페인독감은 치사율을 담보로 예방접종의 필요성을 알려주었다면, 코로나19는 정보통신기술과 함께 새로운 소통방식의 필요성을 알려주고 있다. 인터넷 강국인 한국은 빠르게 이 상황에 적응하고 있는 듯 보인다. 1:1 비대면 소통은 ‘영상통화’로 이미 10년 전부터 우리 생활에 익숙한 상황이었다. 최근 화두로 떠오른 문제는 1대 소수와 1대 다수의 소통방법이었다. 코로나19로 학교에 가지 못하는 학생과 선생님, 출근 대신 재택근무를 하게 된 직장인들은 ‘Zoom’이라는 화상회의 프로그램에 익숙해져야 했고, 대중을 직접 만나 소통하던 강연자와 강사들 또한 실시간 스트리밍 방식의 플랫폼을 배워야 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이러한 변화들이 우리에게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 이러한 소통방식이 가진 양면은 무엇일까?
해방과 고립의 시대
코로나19로 인해 많은 사람이 우울감을 호소하고 있다. 사람들이 모이는 공공장소에 갈 수 없게 되고, 행사와 축제들이 잠정 연기되거나 취소되어 문화생활이 줄어들었고, 사회적 행동반경이 줄어들자 활동량 감소로 정신적 어려움을 겪는다. 미디어에서도 코로나 블루의 심각성에 대해 주목하고 있다. 우울증으로 발전하기 전에 집에서 할 수 있는 간단한 운동을 소개하거나 온라인을 통해 주변 사람들과 소통을 하고, 증상이 심해지면 지역정신건강센터를 방문하는 방법 등이 자주 소개되고 있다. 이는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이 단순히 호흡기 질환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정신적 건강도 위협하고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앞서 이야기했다시피 모든 변화에는 양면이 존재하는 법이다. 필자는 코로나19가 많은 사람에게 고립감만 준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고립으로 인해 겪게 된 부정적 측면이 있다면, 긍정적 측면도 분명히 존재한다. 필자는 그것이 ‘해방’이라고 생각한다. 이는 ‘고립’으로 겪고 있는 불편과 같은 이유로 얻게 되는 긍정적 측면이다.
먼저 특정 장소로부터 해방을 들 수 있다. 학교, 회사, 회의실 등 격식이 필요한 공간으로부터 일정한 시간으로부터 해방이다. 코로나19 이전에도 출퇴근 자유제나 재택근무제를 시행한 곳이 있지만, 학교나 대다수 기업에서는 9시~6시(Nine to Six) 형태를 더 선호했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바로 ‘관리’가 쉽기 때문이었다. 혹자는 이러한 시스템이 일제 강점기의 잔재라고도 하고 또는 자율적인 방식보다 효율이 훨씬 더 높기 때문이었다고도 한다. 집이라는 공간이 사무실보다 업무에 집중하기 어렵고, 동료들과 즉각적인 소통이 이루어지기 힘든 환경이라는 것이다. 그러다 코로나19로 인해 강제적인 재택근무가 시행된 이후, 많은 기업이 자율근무, 재택근무 형태의 장점을 발견하기 시작했다. 근로자는 출퇴근 시간을 아낄 수 있고, 기업 입장에서는 사무실 유지에 필요한 비용을 절감할 수 있는 가능성을 발견하게 되었다.
이는 사회적 관계의 해방을 의미하기도 한다. 사회에게서 받게 되는 스트레스의 대부분이 ‘관계’인데, 시간과 공간으로부터의 해방이 수직적 관계 또는 불편한 의사소통으로부터 출구를 열어준 것이다. 학교에 가는 대신 모니터를 통해 집에서 수업을 듣는 학생들은 더 이상 학교폭력이나 왕따를 걱정할 필요가 없다. 재택근무 덕분에 업무와 관련 없는 상사의 이야기에 대응하지 않아도 되고, 불편한 회식 자리에 참석하지 않아도 된다. 출퇴근 시간에 쫓기는 대신 아이와 여유로운 식사를 할 수 있게 되었고, 저녁이면 가족들과 한가한 산책을 즐길 수도 있게 되었다. 물론 여기에서 발생하는 또 다른 문제들도 존재한다. 어린이집에 가는 대신 아이를 직접 돌봐야 하는 어려움이나 삼시세끼를 집에서 해결해야 하는 등의 가사활동이 늘어나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남녀 모두 사회적 활동이 제한된 상황이라는 점에서 가사활동에 새로운 재분배가 가능하게 한다는 장점도 가지고 있다.
포스트 코로나, 경계의 예술
▲ 청년라이프디자인워크숍(II) 일상여행자를 위한 안내서
<여행의 기록> 부분 유튜브 스트리밍 강의 모습
소통의 방식이 변했다. 그렇다면 예술의 전달 방식도 바뀌어야 한다. 국내외 수많은 미술관과 공연장은 오프라인 관객을 일정 인원 이하로 제한하고 온라인 관람방식으로 바꾸고 있다. 다수 관객에게 직접 선보던 방식이 비대면 온라인 아카이브 또는 실시간 공연 방식으로 변화하고 있는 것이다. 현재 추세라면 짧게는 6개월, 길게는 2년 안에 공공문화예술기관들은 온라인으로 작품을 감상할 수 있도록 모든 시스템을 구축할 것이다. 관객은 현장을 찾아가 직접 보고 듣고 느끼던 감상 방식에서 인터넷 플랫폼을 경유하여 관람하는 방식에 익숙해져야 할 것이며, 예술가들 또한 디지털 전시 방식에 대해 익숙해져야 할 것이다.
많은 창작자는 비대면 관람이 대면 관람보다 경험의 질이 떨어질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다. 필자도 여기에 공감한다. 그러나 이러한 불편 또한 새로운 방식으로 사고하고, 표현할 수 있는 훌륭한 허들(Hurdle)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새로운 환경에 어떻게 반응하고, 표현하느냐에 따라 예술의 본질은 더욱 빛을 발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예술은 시대에 따라 바뀌었다. 신화 속 이야기를 웅장한 건축에 녹여내는 기술이었고, 사실보다 더 사실적으로 인물이나 사건을 기록하는 아카이브 도구였으며, 작가의 생각을 자유롭게 표현하는 상상노트였다. 소신을 표현하는 정치적 발언이기도 했고, 그 시대 사람들의 실상이기도 했으며, 시공간을 뛰어넘는 타임머신 역할을 해 왔다. 코로나19 팬데믹이 종식된 후에도 예술의 역할과 본질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다만, 예술을 접하는 방식과 경로, 예술에 다가가는 시간과 공간이 달라질 뿐이다.
사람은 큰 변화에 익숙하지만 작은 변화에 취약하다고 한다. 예술의 본질은 바뀌지 않지만, 그것을 드러내는 방식이 바뀐다는 것은 작은 변화이기도 하고 전체의 변화이기도 할 것이다. 작은 변화에도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이 예술가들이 가진 기질이며, 사회적인 역할이라면, 이러한 변화에 어떻게 대응하고, 변화해야 할 것인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먼저 앞서 언급한 대로 ‘본질’에 집중하는 동시에 그 본질을 새로운 환경에 노출할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많은 사람이 온라인 대면 방식에 대해 ‘플랫폼만 바뀌었다’고 착각한다. 이는 직접 만나서 대화를 하는 것이나 전화로 통화를 하는 것이나 똑같다고 생각하는 것과 비슷하다. 대면하여 대화하면 자료를 함께 보거나 손짓, 눈빛 등을 통해 비언어적 내용까지 같이 전달되지만, 전화통화로는 오로지 음성을 통해서만 내용이 전달된다. 온라인 전달 방식 또한 플랫폼의 변화와 함께 전달 형식도 바뀌어야 한다. 예술가 스스로 작품의 개념과 본질이 새로운 플랫폼 환경에 맞춰 효과적으로 전달될 수 있도록 새로운 방식의 표현법 또는 연구가 필요하다는 뜻이다. 필자는 여기에 자신만의 고립과 해방이 중요하다고 강조하고 싶다. 세계가 코로나19에 대응하는 상황에 대해 적극적으로 살펴보고, 이를 자신의 관점으로 해석하고 표현하려는 태도가 바로 여기에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Look Both Ways. 모든 변화는 양면을 지니고 있다. 단편의 절망도, 성공도 없다. 다만 희망만 있을 뿐이다. 우리는 이 양면을 통해 해답을 찾아 나갈 것이라고 확신한다. 주위를 둘러보고, 양면을 바라보며 새로운 허들(Hurdle)을 넘어가는 예술을 기대해 본다.
| 타라재이의 ‘타라’는 티벳 설화에 등장하는 고통의 강을 함께 건네주는 어머니라는 뜻을 지니고 있으며, 글을 쓰며 사람들의 다양한 삶과 군상을 탐구하고, 내면의 목소리로 삶이라는 긴 강을 함께 건너가고자 이 필명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스토리 작업, 인터뷰 아카이브, 영상기획, 오디오클립 운영 등 다양한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