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펜데믹 시대의 ‘집콕 생활과 문화예술교육’ - 천윤희
광주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
날짜 2020-10-06 조회수 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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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펜데믹 시대의 ‘집콕 생활과 문화예술교육’

 

천윤희

 

 2020년, 아이들은 학교에 거의 가지 못했다. 유례 없는 전염병 앞에서, 우리가 국가와 사회라는 시스템 안에서 상호 연결되고 의존해왔던 존재들이구나 새삼 절감하게 되었다. 특히 한 인간의 생애주기에서 30-40대는 직장과 결혼, 육아 등 중요한 발달 과제를 동시에 안고 있어 이것은 사회 경제 시스템과 연결 뿐 아니라 교육과 돌봄체계가 큰 영향관계에 있음을 보여주었다. 동시에 가정 외의 여러 사회제도적 체계 안에서 아이들을 키워왔다면, 이번 코로나로 인해 최초의 사회이자, 교육 공간인 ‘가정 혹은 가족’의 역할과 가치에 대한 새로운 인식의 전환을 가져왔다. 코로나 시대 불가피 집콕 생활로 회귀하면서, 가정 또는 최소한 공동체 활동에 기반한 일상을 토대로, 앞으로의 문화예술교육에 대해 생각해본다.

 

1. ‘기술과 기능성’ 뒤편 우리가 잊은 ‘촉감’


 아이들의 성장에 따라 유아시절 선호했던 킥보드와 세발 자전거가 너무 작아지자, 아이들은 형들이 타는 큼지막한 자전거를 사달라고 요구했다. 여러 날 동안 중고물품교환 D앱에 올라온 여러 중고 자전거들의 사이즈, 기능, 가격을 웹에서 최대한 비교 검색하고 협상의 채팅을 시도했다가 드디어 운좋게도 집에서 가까운 곳에서 판매하는 자전거를 살 수 있게 되었다. 우리가족은 여러 번의 채팅 협상 결렬이 있은 후의 성공인지라 제법 신이 났다. 약속 장소까지 걸어 도착하니, 자전거 주인도 온 가족이 함께 나왔다. ‘앱’을 통해 소통했지만 대면하여 현금을 드리고 고맙다고 잘 쓰라고 서로 인사나누며 자전거를 건네 받았다.
 우리가 당초 자전거를 살 때의 목표는 아이들의 성장을 감안하여 24-26인치 일 것과 기능상의 몇가지 요소들이었다. 막상 바구니 달린 큰 자전거를 직접 만나니 스마트폰 화면으로 볼 때와 느낌이 좀 달랐다. 아이에게 타 보라고 권하는데 겁을 먹자, 남편이 먼저 시범으로 타는 것을 보여주었다. 바구니 있는 자전거. 문득 내 어린 시절 아빠가 나를 자전거 뒷자리에 태우고 있던 사진이 떠올랐다. 나는 “아이에게 아빠 뒷자리에 타보렴!” 했더니, 큰 아이는 쑥쓰러워 하고 타질 않는다. 그 때서야 깨달았다. 늘 자동차에만 두 아이들을 태우고 다녔지, 아이는 단 한 번도 자전거 뒷자리에 타보지 않았다는 사실을 말이다. 아이를 뒷자리에 앉히고 아빠 허리를 잡아라 했더니, “아빠 등이 따뜻해!” 한다. 아이들이 엄마도 이렇게 타보았냐고 물었다. “그럼! 엄마의 아빠가 태워주었지. 그렇게. 참, 옛날에 자동차가 별로 없을 땐, 데이트를 자전거로 하던 사람들도 많았단다!” 집에 돌아오는 1시간 여동안, 장을 보면서 자전거 앞 바구니에 짐을 실고 뒷자리에는 두 아이 교대로 앉히고 한 명은 뛰어서 집으로 왔다. 두 아이들이 어찌나 자전거 뒷자리를 교대로 타면서 행복해하던지, 나는 이 예상치 못한 행복감을 아이들 양육에 꼭 기억해야할 날로 기록해두었다.
 우리는 그동안 자동차에 익숙해서 ‘자전거’를 잊고 지냈다. ‘자전거’의 기능성에 기반한 운동효과 등의 교육적 효과만 생각했지, ‘자전거’가 소통의 매체가 되어 ‘아빠 등의 따뜻함이라는 촉감’의 교감을 잊고 지냈다.
 기술은 계속 발전해갈 것이다. 더 편리해질 것이다. 자율주행차가 머지 않은 시대에 새삼 자전거를 재발견한다. 자전거를 탈 때, 자동차 운전만 하다가 자전거 페달을 밟으며 느끼는 몸의 근육을 느끼게 된다. 뺨을 스치는 바람, 밤의 나무 냄새, 풀벌레소리, 등 뒤 아이의 까르락 웃음소리와 뺨과 손의 따뜻함이 서로에게 스친다. 비틀대다가 간혹 넘어져도 ‘영광의 상처야!’ 한다. 자전거는 생태적이고 건강한 교통수단이다. 그리고 촉감의 온도를 주고 받는 소통의 매체다. 

 

 

2. ‘집’은 또 하나의 ‘플랫폼’이다.


  

  

 


 초등학교 저학년의 중요한 발달과제는 사회성 발달이다. 학교라는 체계 안에서의 학습 능력의 향상도 필요하지만, 친구, 선배, 후배 등 또래 집단과의 상호작용, 학교라는 새로운 시스템 속에서 만나는 다양한 역할의 어른들의 교류를 통해 더 많은 경험 속에서 배움이 일어난다. 코로나 19가 아이들에게 앗아간 가장 안타까운 것이 바로 이 지점이다. 큰 아이들은 자기만의 컴퓨터, 스마트폰으로 게임 등 여러 비대면 방식의 소통이 있다지만, 땀흘리며 뛰어놀면서 아이들끼리 주고 받고 소통하며 싸우고 화해하고 탐색하고 배울 기회를 잃은 것이다. 특히 요즘은 집집마다 아이가 하나 혹은 둘이니 더더욱 그러하다.
 처음엔 한 두 달이면 상황이 나아질 것이다 생각하다가 5-6월이 되어서야 상황에 대한 각성이 일어났다. 이러한 변화된 상황을 받아들이고 앞으로 살아갈 준비를 해야한다는 인식 말이다. 두 아이를 위해서라도, 친구와의 안전한 만남과 교제가 필요하다고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생각한 건, 결국 우리 집으로 친구들을 불러모으는 것이다. 이 시대 가장 안전한 곳은 가정, 바로 우리들의 집이니 말이다.
서로의 집을 오고가며 일주일 1-2번씩 놀게 했다. 1-5학년 이르는 아이들은 먼저 각 집의 다른 분위기에 재밌어했고, 엄마의 요리법 차이, 각 집의 환경에 따른 놀이의 차이를 즐기고 배웠다. 

   1층이면서 바깥 공간이 연결된 우리 집에선 아이들은 인형놀이를 하다가 패션쇼를 한다더니, 역할 나누어 런어웨이와 관련된 영상을 찍으면 놀았다. 하루는 비옷을 달라더니 밖에 풍선 들고 나가서 풍선에 물을 넣어 풍선던지기를 했다. 비가 오던 날에는 집에서 온갖 헌옷과 천을 찾더니, 바느질과 인형옷만들기를 했다. 헤어샵, 네일샵 놀이, 그림 그리기 대회와 숨바꼭질은 빠지지 않는 놀이다. 하루는 내내 전자레인지에 무엇을 데울 수 있는가 온갖 실험을 다했다. 

  다른 집에 가서는 옥상이 바로 위라, 옥상 수영장에서 하루 종일 물 놀이하며 지냈다. 또 다른 아파트 13층 집에서는 엄마가 온갖 재료들- 디폼 블록, 플레이콘, 풍선, 운동기구-과 다양한 게임들이 있어서, 아이들이 맘껏 재료와 게임을 옮겨가며 놀 수 있다. 그 집은 정말 아이들의 천국이다. 엄마의 컨셉이 아이들이 주인인 집이라고 했는데, 그 말이 딱 어울리는 집이다. 온통 어질러지지만 그래서 그 집은 모두에게 자유를 주는 집이다.

 

  

 

 또한 함께 사람이 찾지 않을만한 산과 들로 여행도 함께 갔다. 함께 있으면 의외로 TV나 테블릿피시, 스마트폰을 찾지 않는다. 함께 즐거울 땐, 매체를 찾을 시간이 필요치 않다. 그림 그리고 노래하고 연극하고 영상촬영하고 뛰어다니고 매번 새로운 놀이를 개발한다. 기획자가 따로 필요없다. 나의 역할은 경계를 정해주고 안전한 환경을 만들어주고 맛있는 간식을 주는 것이다.
 코로나 시국에선 서로의 ‘집’이야말로 삶과 밀접한 생활형 문화예술교육의 ‘플랫폼’이다. 네이버 지식백과에서는 플랫폼을 복수의 참여자가 네트워크하고 교환할 수 있도록 구축된 환경이라고 정의한다. 특히 플랫폼 참여자들의 연결과 상호작용을 통해 진화하며, 모두에게 새로운 가치와 혜택을 제공해 줄 수 있는 상생의 생태계라고 정의한다.(Simon, 2011; 최병삼, 2012; 조용호, 2011). 돌봄이 가장 필요한 때에, 함께 할 수 있는 최소한의 공동체들이 교류하며 서로 먹고 놀고 돌보고 그 속에서 배우는 상호의존과 상생의 생태계, 그 시작점은 ‘집’이다. 비대면의 시대에 ‘집’과 ‘집’의 교류를 중심으로 한 문화예술교육에 대한 상상이 필요하다. 
  


3. 우리는 모두 연결감을 원한다.

 

 

 요즘은 초등학생 1학년부터 스마트폰을 많이 갖고 있다. 부모가 일하는 동안 아이들은 아이들 나름의 시스템 속에서 계속 움직이고 있기 때문에 안전에 대한 우려와 부모와의 연결을 위해 필수 매체가 된 것이다. 그 뿐 아니라 SNS 속 관계망은 시간과 공간, 국경과 언어를 넘어서 친구가 되게 했다. 메신저 및 영상통화는 물론 최근에는 줌 등 여러 플랫폼으로 화상 수업과 워크숍 등을 한다. 광주에 거주하는 나도 서울에 있는 지인들과 미술관 교육에 대한 워크숍을 Zoom으로 하면서 지적으로 많은 자극과 재미를 느낀다. 이동이 자유롭지 못한 상황에서 이렇게 함께 하고 있음과 연결감에 소소한 행복을 느낀다.
 한편으로, 나는 워킹맘으로 살면서, 아이돌보미에게 아이들의 돌봄을 오랫동안 의지하면서 무엇을 놓치고 있었던 것에 대해 새삼 깨닫는다. 아이들을 아기 때부터 돌봐주신 돌봄 선생님은 나에게 종종 “낳았다고만 엄마가 아니다”라고 말씀하시곤 했다. 나도 할 말은 많다. 일 끝나고 오면 오롯이 연년생 두 아이 돌봄도 정신이 없었고, 주말도 전적으로 남편과 내가 둘이서 해온 잃어버린 십년에 대해 어찌 다 말할수 있겠는가. 그러나 나는 대부분 외식했고, 사와서 먹었고, 살림의 수고를 기피해왔다.
 ‘집콕 생활’은 집이라는 생활 공간에서 가족 구성원들이 행복할 수 있도록 공간과 분위기, 일상생활의 건강한 관리가 필요하다. 즉 가족의 생명의 ‘살림’을 위해 충실하고 창조적인 ‘살림’이 요청된다는 것이다.
 아이들이 대부분의 시간을 집에서 보내면서 집이 지속가능하고 행복한 공간이자, 터전이 되기 위해, 끊임없이 청소하고, 장봐서 준비하고 밥하고, 설거지하고 빨래하고, 서로를 위한 규칙과 예의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는 시간들이다. 이 전적으로 함께하는 시간을 통해 아이들은 집이라는 작은 사회가 어떤 시스템인지, 어떻게 이 활동이 저 활동으로 연결되는지, 부모가 무엇을 하며 자신들은 어떤 역할을 해야하는지, 그리고 자신들이 누구인지에 대해 끊임없이 크고 작은 연결의 활동 속에 놓이게 되었다.
 동시에 이 아이들에게 독립을 위해 생활에 필요한 것들을 하나씩 가르치면서도, 동시에 늘 엄마와 아빠가 함께하는 존재임을 알린다. 때로 엄마 아빠와 서로 떨어져 있어도 우리는 연결되어 있다는 믿음을 만들어가야 한다. 그래야 아이들은 두렵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가정에서 학교로 더 큰 사회로, 한걸음 씩 더 큰 세계로 나아가도록 아이들에게 자신의 능력에 대한 신뢰가 필요하다. 그리고 더 나아가 타인에 대한 신뢰, 근원적인 안식처인 부모나 가정, 혹은 신과의 연결감이 필요하다. 아이들은 곧 각자의 길을 가게 될 것이다. 자신의 삶의 기초에 대한 건강한 안정감과 심리적 연결감, 생활의 유능감, 관계맺음의 자신감은 자신으로 충실하게 살아가는 힘이 된다. 우리의 아이들이 자유롭고 창조적인 삶을 살아가길 바란다. 그 보편적 삶의 면면들을 지지해주고 사람과 사람, 사람과 예술, 사람과 다양한 세계의 연결망이 되어주는 것이 문화예술교육이었으면 좋겠다.
 


 * 이 원고는 최근 어느 모임에서 대화를 통해 확장된 언어와 생각이 일부 반영되어있습니다. 직접 이름을 언급하지 않지만 그 분들께 감사를 전합니다.

 

 

 

 

  


글쓴이 천윤희는 광주비엔날레가 좋아서 광주로 내려온 이래, 생각보다 오래 일하고 있다. ‘문화예술’을 통해 ‘사람’과 ‘삶’이 보다 풍요로워 질 수 있는 매개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갖고 있다. 그 연장선에서 ‘문화매개’, ‘매개자’, ‘예술경영’, ‘문화예술교육’, ‘지역’, ‘작가’를 연구하고, 글 쓰고, 일한다.  uni9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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