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으로 융합할건데, 디지털 좀 뿌려줘-심문섭(예술은 공유다 대표)
광주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
날짜 2021-06-23 조회수 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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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으로 융합할건데, 디지털 좀 뿌려줘

 

심문섭 (예술은 공유다 대표)

 

 

한때 착각을 한 적이 있다. ‘초등교육 수준의 산수 정도면 살아가는 데 아무 문제가 없는데 구태여 미적분까지 공부를 해야 하는 이유가 있을까라고. 화학과 물리는 오죽했을까. 수학과 화학, 물리의 신기한 원리와는 별개로 내가 수학을 해야 하는 이유는 아무도 설명해 주지 않았다. 나에게 숫자와 기호들은 재미도, 감동도 없는, 그저 암기해야 하는 일종의 문자에 불과했다. 인류 역사 20만 년 중 지금으로부터 1800년 전 인도에서 ‘0’이라는 숫자의 개념을 처음으로 발견했다는 대목이 수학 과목 중에 가장 재밌는 순간이었을 정도로 말이다.

 

하지만 어느 순간 ‘0’으로부터 출발한 머릿속의 세상이 달리 보이기 시작했다. 우리가 세상에 태어나지도 않았던, ‘0’이었을 때가 있었다는 기막히게 당연한 사실과 비로소 세상에 ‘1’로 태어나면서 가르침과 배움을 더하고’, 스스로 경험을 곱해가면서 성장하고 있다는 사실이 오히려 나를 수학적으로 대견하게 만드는 계기가 됐다.

 

그렇게 머릿속에 세상 모든 걸 집어넣기 위해 애쓰고 있(는 지도 몰랐)던 청소년기를 지나고, 이미 감퇴해가는 머리가 다시 유연하고 말랑했으면 좋겠다는 뒤늦은 후회를 할 때쯤, 문득 아이들의 뇌를 스펀지에 비유하던 말들이 떠올랐다. 단숨에 많은 물을 빨아들여 머금는 스펀지말이다. 인간 뇌의 저장용량을 스펀지와는 비교조차 할 수는 없지만 어쩌면 1,000억 개의 신경세포와 뉴런으로 이루어진 인간의 뇌는 스펀지와 외형적으로도 기능적으로도 닮은 면은 있다.

 

새로 꺼낸 스펀지는 더 빠르게 많은 양을 흡수하지만, 오래된 스펀지는 적은 양을 흡수하는데도 영 신통치 않다. 그래선지 어린 시절의 나는 온종일 흡수하러 다녀도 꽉 차지 않아 하루가 참 길었는데, 지금은 일어났다가 앉는 것만으로도 하루가 금세 지나버린다. 마치 스펀지가 꽉 찼거나, 혈관에 콜레스테롤처럼 물때나 오래된 이물질이 고착돼 기능이 떨어지거나, 또는 컴퓨터나 스마트폰이 느려서 한 가지만 겨우 해내기도 벅찬 것처럼 말이다.

반면에 세상은 하루하루가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오늘날의 인류가 단 하루 만에 쏟아내는 정보량은 지난 인류역사가 만들어 놓은 20만 년 분량의 정보를 넘어서고, 그 정보는 0.2초면 지구 반대편까지 누구나 접할 수 있다. 이러한 변화의 흐름은 코로나와 맞물려 마치 폭우에 수문을 열어젖히듯 기술혁신을 쏟아내고 있다. 일명 디지털 혁명으로 설명되는 초연결과 탈경계 가속화는 우리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그 중앙에 우리를 놓아버렸다.

작년 코로나 상황과 디지털혁명의 중간에서 문화예술과 디지털 문해력 향상을 목적으로 뉴턴의 물리학과 AI 기술을 활용한 공연예술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해 중등교육과정의 학생 60여 명을 대상으로 대면과 비대면을 병행한 적이 있다. 필자는 초등학교 때 뉴턴을 접하고, 현재 AI를 맞닥뜨리기까지 30여 년이 걸렸고, 개발과정에서는 예술가, 과학자, AI 전문가, 무대기술전문가, 교육자가 모두 모여 서로의 지식을 융합하는데 만도 많은 시간이 걸렸다. 그리고 학생들은 우리와 달리 뉴턴의 물리학과 디지털 AI를 동시에 마주하고 있지만, 예술과 기술의 융합에는 낯설어 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러한 우려가 설레는 기대로 바뀌는 데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상상이라는 예술적 유화제의 힘이 예술과 디지털 기술의 경계를 넘나드는 현장을 목격한 것이다. 개개인의 예술적 상상은 기술의 경계를 허물고, 예술과 융합하면서 현실과 가상의 세계를 넘나들며, 서로를 연결하는 최고의 경험을 이뤄냈다. 과정을 마치며 한 학생이 비대면 채팅창에 썼던 글이 생각난다. “선생님 이거 너무 재밌고 흥분돼요

 

그렇다. 수학에서 ‘0’은 숫자 너머의 수의 근간이듯 ‘0’에서 를 창조해내는 예술적 상상을 위한 공간이다. 상상을 위한 공간은 스펀지처럼 크기와 개수의 제한이란 없다. 우리의 상상은 이미 우주의 시간과 공간을 넘어가고 있고, 그에 비하면 우리가 맞닥뜨린 디지털혁명의 홍수는 그저 예술적 상상의 싹을 틔우는 봄비와 비료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왜 수학을 싫어했는지 이제야 알 것 같다. ‘의 세계를 이해하지 못한 채 문제 풀이와 숙제를 하느라 급급했던 것은 아닐까. 디지털 기술은 이제 겨우 우리가 상상했던 것을 일부 실현해줬을 뿐이다. 문화예술교육은 예술적 상상의 공간이 주는 즐거움의 공간이며, 가능성의 공간이며, 무한한 스펀지와 같은 공간을 저마다 가지고 있음을 발견하게 하는 것이 아닐까.

 

앞으로의 문화예술교육은 디지털 세계를 쫒아가는 교육이 아닌, 디지털 세계를 리드할 수 있는 예술적 상상의 확장에 더욱 초점이 맞춰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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