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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남희(뮤지엄교육연구소 대표)
문화예술교육의 효과성에 대해서는 여러 측면에서 검증된 바 있다. 특히 어린이의 정서, 자아존중감, 소통역량, 인간관계와 공동체, 자기표현, 창의성 등 다양한 분야에서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는 연구 결과가 지속적으로 발표되고 있다. 이러한 현장의 검증은 문화예술교육의 정책과 방향 설정에 영향을 미쳤으며, 그 실행에 힘을 실어 왔다.
필자는 ‘문화예술교육은 왜 필요한가? 어떤 효과가 있는가?’라는 물음에, ‘문화예술교육은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선경험이다’라고 답한다. 이런 답은 필자의 현장 경험에서 우러나온 것이다. 여기서 ‘풍요롭다’는 것은 일반적으로 ‘좋다’라는 개념과 다를 수 있다. 풍요로운 가치가 더 적절할 수 있다. 다양성을 인정하고, 세상을 이롭게 하는 가치를 형성하는데 도움이 되는 경험 정도로 정리하자.
필자의 관심 분야는 ‘어릴 적 문화예술교육 참여가 참여자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연구하는 것이다. 필자가 현장에서 만났던 첫 번째 문화예술교육 대상자는 ‘어린이’였고, 운이 좋게도 이들의 성장을 짧지 않게 지켜 볼 수 있는 장기프로젝트를 운영해 왔다. 따라서 초등학교 때 문화예술교육을 경험했던 참여자들을 지금까지 직간접적으로 만나왔기에 연구가 가능했다. 당시 참여자들은 초등학생이었고, 교육 장소는 ‘미술관’이었다. 필자와의 학습경험을 가진 연구 참여자들은 연구 당시 20대 초중반 청년기였다. 이 연구 과정은 필자의 20년 가까운 현장 활동을 정리하는 계기이자, 문화예술교육에 대한 확신을 갖게 하는 시간이 되었다. 연구 참여자들은 놀랍게도 그때 사용했던 학습자료를 보관하고 있었고, 학습과정과 교수자의 말을 기억하고 있었다.
이 연구 결과를 축약적으로 말하자면, 어릴적 문화예술경험은 현재 삶에 위로와 자신감을 주고 있었다. 대부분의 연구 참여자들은 지속적으로 문화예술을 즐기는 청년기의 삶을 살고 있었다. 하지만 이들은 진로에 대한 고민과 취업에 대한 스트레스를 가지고 정체성에 대한 끊임없는 고민을 하고 있는 청년기지만 문화예술을 즐기는 향유자이기도 했다. 전시 관람 후 구매한 엽서 한 장이 집으로 돌아와서도 위로가 되고, 엄마와 미술관을 오가면서 나누는 이야기가 가족과의 소통을 불러온다고 한다. 만약 어릴적 문화예술교육을 받았던 경험이 없었더라면 지금처럼 쉽게 즐기지 못했을 것이라 한다.
위 연구와 그 이후 현장 경험으로 어린이에게 문화예술교육이란 무엇이 되어야 할까를 정리해 본다. OECD(2015)는 ‘OECD 교육 2030’ 프로젝트에서는 2030년, 즉 미래를 염두에 두고 이 시기에 성인이 될 학생이 직면할 환경적, 경제적, 사회적 위기를 전망하면서, 개인적·사회적 웰빙을 위한 변혁적 역량과 이를 함양할 수 있는 교육의 모습을 탐색한 바 있다. 이 과정에서 ‘성공’이라는 개념 대신 ‘웰빙’이라는 개념을 사용하면서 건강, 시민으로서의 참여, 사회적 연계, 교육, 안전, 삶의 만족도, 환경 등 삶의 질과 관련된 측면을 강조하고 있음에 주목해 본다.
미래사회 자신의 삶의 질을 위해서 어린이들은 무엇이 필요할까? OECD(2015)에서는 ‘새로운 가치 창조하기(Creating New Value)’, ‘긴장과 딜레마에 대처하기(Reconciling Tensions & Dilemmas)’, ‘책임감 갖기(Taking Responsibility)’를 미래 사회를 살아갈 어린이들이 갖추어야할 핵심역량으로 제시하였다. 우리 교육부(2015)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게 ‘지식정보처리역량’, ‘창의적사고역량’, ‘의사소통역량’, ‘심미적감성역량’, ‘자기관리역량’, ‘공동체역량’을 교육과정을 통해 도달해야할 역량으로 제시하고 있다. 이러한 역량을 갖출 때 미래사회를 잘 만들어 갈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바로 문화예술교육이 이러한 역량을 갖추는데 도움이 된다고 말하고 싶다.
문화예술교육은 참여자의 현재에서 출발한다. 문화예술교육은 예술의 장르나 단일 학문에 국한하지 않는다. 통합적이고 융합적이며, 과정을 중시한다. 따라서 나의 현재 관점에서 작품을 이해하고 즐기며, 예술가처럼 사고하고 몰입하는 과정을 경험하면서 나의 생활, 우리 사회를 보게 한다. 바로 ‘일상과의 연결’이자 ‘관계’에 대한 질문이고,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이자 새로움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어린이들이 문화예술교육을 통해 경험할 수 있도록 설계되어야 할 것이다. 예술의 기능에만 빠지는 것이 아닌 우리 사회 이해하고,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 갈 수 있도록 준비해야 한다. 물질이 넘치는 세상에서 세상을 판단하는 기준이 금전의 가치 보다 자신의 줏대 있는 가치관이 우선되길, 모두가 부러워하는 값비싼 물건으로 다른 이의 부러움을 사는 사람이 아닌, 자신의 필요에 따라 새로운 가치를 부여할 줄 아는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는 과정을 문화예술교육 안에서 안전하고 치열한 경험으로 만들어야 한다. 물론 이러한 과정에는 문화예술교육 매개자들의 좋은 기획과 끊임없는 노력이 바탕이 되어야 할 것이다.
얼마 전, 한 권의 여행기 집필을 마치며 함께 여행했던 학생에게 이런 메시지를 받았다.
“이번 여행을 처음부터 끝까지 기획하고 준비해주신 선생님 너무 감사합니다.
물론 세계 거장들의 작품을 보고 배우는 것도 좋은 경험이었지만
저에게는 oo행 기차를 놓치고 oo에서 큰맘 먹고 들어간 고급 레스토랑에서 먹었던
파스타가 더 기억에 남습니다.
제 인생에 있어 잊지 못 할 추억을 만들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예술품을 보고 느끼기 위해 우리는 기차를 탔고, 음식을 먹었다. 아이들에게 예술품보다 예술품을 보기 위해 오갔던 일상의 에피소드가 더 큰 배움의 과정이었다. 이렇게 예술을 통한 교육임을 다시 실감하며, 물론 이 과정에 담긴 세세한 이야기는 많다. 하지만 기차를 놓치고 다음 일정을 날렸던 안타까움과 두려움, 우리 형편에 맞지 않는 지출을 하고 가슴 조렸던 마음까지, 이 모든 과정이 아이들을 성장하게 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