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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이 다가 오거나
가까이 다가 가는것
김가연(문화기획사라우 대표)
몇 달 전 언니가 부모님 두 분만의 여행을 시켜드리겠다며 호캉스를 제안했다. 두 분이서 함께 다녀 본 경험이 없는 그저 각자의 삶에 충실하기 바빴던 두 분에게 뭔가 불편함만 가득한 제안이었다. 이번에도 당연히 됐다고 하시겠지 생각했는데 무슨 일이 있었을까. 선뜻 여행을 가시겠다며 지난 시간 너희들이 해주겠다던 것들 거절했던 게 후회가 된다고 하셨다. 그래서 이제는 다 챙겨서 다니겠다며 선전포고를 하셨다. 두 분에게 무언가 생애 전환의 계기가 있었던 것이다.
그러고 보니 그럴만한 상황들이 두 분 앞에 펼쳐지고 있었다. 엄마의 엄마는 알츠하이머로 몇 번을 이야기해야 하나 뿐인 딸을 알아보신다. 아빠의 엄마는 음식을 거부하시며 병원의 침대와 집 한 켠의 침대를 오가는 것이 일상이 되어버렸다. 삶의 마지막을 가까이 두며 두 분이 그동안 번거롭다, 아깝다, 미안하다 여기며 포기했던 것들에 대한 애착이 생기기 시작한 것이다.
엄마와 아빠는 기억이 지워지고, 몸을 일으키지 못하는 당신들의 엄마 앞에서 어린 아이가 되어 끝없는 질문하며 말을 걸고, 노래를 불러주며, 춤을 추듯 살갗을 부빈다. 생애 전환의 순간인간은 본인이 가진 무한한 예술성을 유감없이 발휘하게 된다. 그동안 나이와 상황과 사회적 통념 속에서 억눌러왔던 감성이 발현되기 시작한 것이다. 그 예술성이 터지니 자신을 붙잡은 자신으로부터 벗어나 새로운 세계에 대한 동경이 생겨났다.
‘우리는 오로지 예술을 통해서만 우리 자신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
또 오로지 예술을 통해서만 우리가 보고 있는 세계와는 다른,
딴 사람의 눈에 비친 세계에 관해서 알 수 있다......
예술 덕분에 우리는 하나의 세계, 즉 자신의 세계만을 보는 것이 아니라
세계가 증식하는 것을 보게 된다.’
마르셀 프루스트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中-
그 세계가 펼쳐지니 같은 걸 늘 다르게 보며 성을 내던 순간이 고개를 끄덕이며 이해하는 순간으로 바뀌고 부엌 구석에서 혼자 하던 일이 거실 한 가운데로 옮겨져 왔다. 무엇을 계획하던 혼자가 아닌 둘이 하는 것을 고민하기 시작했고, 하고 싶은 아주 소소한 순간들을 만들어가기 시작했다. 내 역할은 스쳐지나가듯 두 분의 변화에 대해 반가움을 표하며 질문하듯 말을 걸고, 노래를 불러주며, 춤을 추듯 살갗을 부비면 되는 것이다.
그동안 문화기획자로 어르신들과 문화예술형 ‘청춘자서전학교’를(2014), 중년 여성들을 위한 ‘경자씨와 재봉틀’(2017~2018)을 운영하며 너무도 갑자기 다가온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이 감동과 부담으로 너울졌다. 그 너울을 자신 있게 넘지 못하고 문화예술을 전면에 내세운 일을 뒤로 미뤄왔다. 겁이 났다고 해야 할까. 몇 번의 만남으로 이해한 듯, 감싸 주는 듯 하며 일을 해나가는 시간이 죄송스러웠다. 그런데 어느 날 엄마가 내게 이런 말을 했다. (엄마는 2017년 경자씨 재봉틀에 참여했었다) “그때 네가 찾아 준 내 색깔 덕분에 옷 고르는 게 쉬워졌어. 내가 보라색이 잘 어울리는 줄 평생 모르고 살 뻔 했잖아.” 경자씨와 재봉틀 네 번째 시즌은 ‘내 삶은 마음대로 디자인하지 못해도 내가 입고 싶은 옷 한 벌은 마음대로 디자인 해보자.’ 라는 의도로 엄마를 꼭 참여 시키고 싶었던 사업이었다. 이때 퍼스널 컬러를 찾아 드렸던 게 아직도 좋은 기억으로 남으셨나보다. 늘 남의 뒤에서 손을 부지런히 움직이는 게 익숙했던 엄마가 패션쇼 현장에 서서 자신이 디자인한 드레스를 입고 투박한 걸음을 내 디딜 때 내 마음의 드라마가 생각났다. 그 드라마를 잊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화예술로 시작되는 생애 전환의 드라마가 있다.
생애 전환은 그 순간은 누구에게나 다가온다.
그 순간을 자연스럽게 마주하며 만들어가는 이들 가까이에서
작은 변화에 반가움을 표해 줄 문화예술의 눈길이, 만짐이 있기를 바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