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메인사진.jpg [size : 6.6 MB] [다운로드 : 56]
일상을 바꾸는 예술놀이터
설상숙 (서구청소년문화의집 시소센터 관장)
이미 더위가 한창이던 유월의 어느 날 오전, 필자가 일하고 있는 시소센터에 청천벽력 같은 소리가 들렸다. 오전 일찍 방문한 구청의 공원 담당자가 몹시 걱정스럽고 미안해하는 말투로 밧줄 놀이터를 철거해 달라고 요청했다. 광주광역시청에서 내려온 지시 인 데다, 당시에 발생됐었던 몇 건의 안전사고로 인해, 광주 전체가 안전 이슈로 들썩이고 있던 터라 본인으로서도 어쩔 도리가 없다는 것이다. ‘안전’의 문제가 전면에 내세워지자, 담당 공무원들과 이 지역의 의원들 그리고 나 자신마저도 ‘줄줄이 놀이터’의 존치를 우길 수 없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줄줄이 놀이터’는 문화재단의 지원을 받아 서구청소년문화의집 시소센터가 운영하는 창의예술학교 사업 중 하나로 핵심 결과물이 ‘밧줄 놀이터’이다. 아이들은 3년 동안 매주 토요일에 모여, 밧줄 전문가와 함께 시소센터 뒤편에 있는 장수어린이공원을 바꿔나가고 있다. 나무와 나무 사이에 밧줄을 걸거나 다빈치 브릿지에 밧줄을 걸어 두 줄타기, 세 줄타기, 밧줄사다리, 밧줄 그물, 밧줄 그네, 흔들다리 등을 만들었다. 밧줄 놀이터는 직접 만든 아이들은 물론이거니와 마을 아이들에게 있어서 중요한 놀이의 거점이 되었다. 어린이집 하교 시간이 되면, 하교 버스에서 내려 엄마 손을 잡고, 밧줄 놀이터를 찾는 아이들이 하나둘 늘어났다. 어느 순간부터 밧줄 놀이터에서 놀다가 귀가하는 것이 유치부 아이들의 하교 루틴으로 자리를 잡았었다.
아이들이 3년 동안 공들여 만들어가고 있는 밧줄 놀이터, 상당수 아이들이 습관처럼 찾고 있는 놀이터를 철거하라고 하니, 시소센터와 ‘줄줄이 놀이터’ 아이들은 말 그대로 멘붕에 빠졌다. 아이들은 화나고 슬픈 심정을 담아 글과 영상으로 남겼다. 그 과정을 통해 밧줄 놀이터와 이별하고 밧줄 놀이터 해체도 아이들 손으로 마무리하였다. 하지만, 나는 아직도 당시의 감정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아이들의 3년의 수고가 담긴 결과물이며, 마을 아이들이 습관처럼 찾고 있는 장소를 지켜주지 못했다는 자괴감에 괴롭다. 그 누구도 원망할 수 없는 상황이고 보니, 더더욱 밑도 끝도 없는 화가 치미는 것이다.
예술로 재미있게 놀면서 일상의 풍경을 바꿔나가는 일, 그 가치를 어찌 말로 다 표현할 수 있다는 말인가? 아이들은 ‘줄줄이 놀이터’에서 산악 밧줄 매듭 묶기를 하며 소근육과 대근육 발달의 기회를 얻었다. 밧줄로 만들 수 있는 놀이기구들을 디자인하고, 만들고, 놀아보는 과정을 통해 몸의 감각을 발달시킬 수 있었으며, 자기의 생각을 맘껏 표현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또래들과 협업하는 과정은 협동심과 사회성을 기를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가장 큰 성과 또는 가치는 자기 동네 친구들이 자기가 만든 놀이터에서 신나게 노는 것을 아이가 볼 때 갖게 되었을 자긍심과 공동체적 감정이다.
세계적인 놀이터 디자이너 귄터 벨치히는 그의 책 「놀이터 생각」에서 ‘아이들은 본능적으로 자기 주위의 환경을 스스로 디자인하고 바꾸고 싶어 하며, 그 속에서 재미를 느낀다.’고 말했다. 그렇다 판을 흔들어 환경과 문화를 바꿔보는 경험은, 대부분의 인간이 본능적으로 원하는 일이며, 그러한 경험은 개인이 자기 주도적 성장을 시작하는 근원적 순간이 된다. 예술놀이가 단순히 개인에게 예술적 경험과 성장을 주는 것을 넘어, 자기가 속한 공동체의 문화를 변화시키고 그 공동체에 즐거움을 더하기까지 한다면, 그 가치는 이루 말할 수 없이 소중해지는 것이다. 이것이 우리가 아이들의 다양한 삶의 장면 속에서, 더 많은 공간을 아이들의 예술놀이터로 확보해 주어야만 하는 이유이다.
현재 시소센터와 서구청은 밧줄 놀이터를 다시금 회복시키기 위해 함께 애를 쓰고 있다. 법률과 규정을 살피고, 다른 지역의 사례를 살피면서 안전과 모험의 균형을 잡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아이들도 다시 ‘줄줄이 놀이터’를 시작했다. 현재는 한시적 운영에 그치고 있지만, 앞으로도 안정적 활동을 지속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노력은 계속될 것이다. 예술놀이의 장, 예술놀이터의 가치를 이미 몸소 체험한 우리로서는 그 장을 쉽게 포기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