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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빛 머금은 한지 등 아래서 차 한 잔, 판소리 한 바탕 어떠세요?
전통문화관 야간개장 '세계 수영 선수권 대회에 전통미를 더하다'
통신원 김수환
“광주광역시 전통문화관 서석당을 접어들어,
만사가 대길하고 백사가 여일하시라고 제 흐드러지게 놀아보자!”
가실 때는 한 손에는 명을 들고! 또 한손에는 복을 들고!
만사가 대길하고 백사가 여일하시라고 제 흐드러지게 놀아보자!”
세계인의 수영축제인 세계수영선수권대회를 맞아 야간개장을 준비한 전통문화관은 만복을 기원하는 비나리를 시작으로 27일 첫 무대의 막을 열었다.
전통문화관은 야간개장과 함께 다양한 공연 프로그램과 특별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이런 정보들은 선수촌 내에서 입소문을 타며 외국선수단과 관람객들의 필수 방문 코스로 자리 잡고 있다고 한다. 실제로 전통문화관에 가보니 타 지역에 있는 한옥마을까지 가지 않더라도 우리나라의 아름다운 전통 가옥을 볼 수 있다는 점과 전통문화관 뒤에 한 폭의 수묵화처럼 그려진 무등산의 아름다움에 그 인기를 짐작할 수 있었다.
또한 전통문화관 실외에는 한국의 전통 풍경을 프렉탈(fractal, 일부 작은 조각이 전체와 비슷한 기하학적 형태)과 나무로 표현한 정일 작가의 설치 작품과 한지 등 공예를 설치미술로 승화시킨 표구철 작가의 작품이 전시돼 전통문화관의 밤을 한국의 미로 가득 채웠다.
▲ 일몰 후 한지 등으로 운치 있게 변한 전통문화관의 모습
전통문화관 입석당에는 여러 작가들의 작품들이 전시돼 있었다. 부채로 만든 병풍, 달 항아리, 청화백자, 화산석·거미줄·바위솔을 주제로 한 분경과 같은 작품들 덕분에 우리 고유의 미가 얼마나 담백하게 아름다운지 느낄 수 있었다. 체험 프로그램은 매주 금·토·일요일 오후 1시부터 9시30분까지 운영되고 있었다. 한복 천으로 부채 만들기, 한지 그림으로 등(燈) 만들기, 옹기그릇으로 다식과 전통 차 시식 등 많은 체험들을 진행하고 있다. 또 전통문화관 앞 인도에서는 매주 금·토·일요일 오후 4시부터 9시30분까지 천연염색·도자기·홈패션·은공예·목공예·가죽공예·규방공예·한지공예 등 공예작품 만들기를 진행하고 있어 지나가는 가족이나 행인들이 쉽게 한국의 미를 직접 체험하고 느낄 수 있는 좋은 기회다.
▲ 27일 7시 공연 모습
전통 공연은 야간개장에 맞춰 각각 7시와 8시에 마련되었다. 국악그룹 얼쑤의 ‘한여름 밤 얼쑤의 풍물난장'(13일)을 시작으로 소리꾼 남상일의 판소리(20일), 방수미·하랑가의 전통 판소리·민요·국악가요(27일), 진시영·조가영·아냐포의 미디어아트·춤·아프리카 타악 공연(8월10일)로 이어진다.
오늘 공연을 책임질 방수미와 하랑가에 대해 잠깐 설명하자면, 방수미 명창은 지난해 연말 KBS 국악대상 판소리 부문에서 대상을 수상하며 판소리 실력을 다시금 인정받았다. 또한 문재인 대통령 유럽 순방 기념 ‘한국 음악의 울림’ 공연에 방탄소년단과 함께 문화사절단으로 참여해 큰 화제가 되기도 했다. 방수미 명창과 함께 무대를 꾸밀 ‘하랑가’는 20·30대 젊은 소리꾼 5명이 의기투합해 지난해 10월 창단한 전통성악 그룹이다. 그룹명에는 ‘함께 높이 날다’라는 뜻을 지닌 순우리말 ‘하랑’과 노래 ‘가’(歌)가 더해져 ‘우리 음악으로 함께 높이 날아오르자’라는 의미가 담겼다. 현재는 각자 광주와 전주, 남원, 서울에 거주하면서 광주를 거점으로 활동하고, 무대가 있을 때마다 콘셉트에 맞춰 연습한 뒤 한 무대에 오르고 있다.
“여러분 다 같이 얼씨구(얼씨구), 좋다~(좋다~), 단전에다가 힘을 주고 어이!(어이!), 잘한다(잘한다), 그라제!(그라제!)” 첫 무대였던 비나리가 끝나자 서석당에 앉아있는 여러 외국인들을 위해 김산옥 사회자가 맛깔나는 추임새를 알려주었다. 어설프지만 자신감 있게 추임새를 따라하자 옆에 앉아계시던 할아버지 한 분이 “잘한다!”며 다시 추임새를 넣어주었다. “다들 추임새 잘하시네요.” 그때 마침 방수미 명창이 웃으면서 무대로 걸어 나왔다. “여러분 지금 들려드릴 곡은 춘향가의 사랑가입니다. 춘향가는 한국판 로미오와 줄리엣이라고 생각하면 더 쉽게 이해하실 거에요.” 라고 춘향가에 대략적인 설명을 끝낸 뒤 추임새를 많이 넣어주셔야 노래할 맛이 난다며 추임새를 넣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고 소리쳐달라고 말했다.
▲시작된 27일 8시 공연, 전통문화관 서석당에 많은 사람들이 옹기종기 앉아 공연을 관람하고 있다
“그때여! 춘향과 이도령이 사랑가로 세월을 보내온디 이리 오너라 업고 놀자,
사랑사랑사랑 내 사랑이야 사랑이로구나아 내 사랑이야 내사랑이로다 아 니가 무엇을 먹으랴느냐”
‘먹을거리 권하는 노래’인 이 부분은 이 도령이 사랑에 겨워 수박·참외·살구·능금·앵두·포도 등을 권하고, 춘향이 이를 거절하는 대화로 구성돼 밀고 당기는 두 사람의 심리를 표현한 노래이다. 실제로 들어보니 그 특유의 끄는 음과 간질거리는 대화를 방수미 명창께서 잘 연기해주신 덕분에 춘향가의 하이라이트가 왜 사랑가 인지 알 것 같았다.
다음 공연은 외국 관객을 위해 준비된 ‘첨밀밀’과 마이클 잭슨의 ‘Ben’, ‘Heal the world’이었다. 양혜원, 김진솔 소리꾼은 “Hello. We are korean traditional vocalist. 모두들 다 아시는 대중가요이지만, 판소리창법으로 불러 보겠습니다. 관객 여러분에게 색다른 경험이 될 거라고 생각하고, 잘 들어주셨으면 좋겠습니다.”라고 직접 소개하며 노래를 시작했다. 우리에게도 친숙한 ‘첨밀밀’ 전주가 나오자 관객들은 박수를 치면서 함께 노래를 흥얼거리기 시작했다. 이후 이어진 마이클 잭슨의 ‘Ben’은 잔잔한 노래에 판소리의 애절한 목소리를 만나면 얼마나 사무치게 들리는지 경험 할 수 있는 기회였다. 마지막으로 ‘Heal the world’를 부르기 시작할 때 나는 주위를 한 번 둘러보았다. 마을 사랑방인 듯 느껴지는 서석당에 부모님과 어린 아이들부터 할머니 할아버지들까지 모두가 둘러 앉아 공연을 보며 즐거움을 공유하는 따뜻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시원한 음색을 느낄 수 있는 판소리가 있다면 ‘흥보가’ 중에서도 ‘흥보 박타는 대목’이 아닐까? 흥부가 제비의 다리를 고쳐주고, 그 제비가 강남으로 들어가 물어다준 박씨를 심어서 열린 박을 타는 대목으로, 돈과 쌀이 나오는 첫째 박과 비단이 나오는 두 번째 박, 역군들이 나와 흥보 집을 짓는 세 번째 박까지 이어진다. 방수미 명창이 ‘흥부 박 타는 대목’을 얼마나 재미있게 노래하시던지, 첫 번째 박을 열었을 때 흥부가 하는 대사를 잠깐 적어본다.
“박이 활짝 벌어지니! 흥부 하는 말이 어허 이거 박통은 어느 도적놈이 싹 긁어가고, 염치없응께 놈의 조상 궤 놓아놨구나. 이거 관가에서 알면 큰일 난 게 어서 내다 버립시다. 아이 여보 영감~우리는 죄 없으면 괜찮응게 한번 열어봅시다. 아따! 요즘 여편네들 속이 너럭지만하게 컸단말이요? 그란디 흥부는 저그 마누라 말은 잘 들은 게 그럼 그래볼까? 하고 한 개를 가만히 열고 보니. 돈이 하나 가득하고! 또 하나를 가만히 열고 보니 쌀이 가득하니. 흥부내외간이 얼마나 나오는지 한번 들어보자! 부어내고 부어내고 부어내고 부어내고 데야내고 데야내고 데야내고 부어내고 부어내고 …”
이 부분을 하던 도중 방수미 명창이 외국인들에게 ‘코리안 트래디셔널 랩’이라고 잠깐 소개하니 빠른 한국말에 당황하던 외국인 관람객도 함께 웃으면서 추임새를 넣어가며 따라했다.
▲ 아름답고 구슬픈 선율로 공연하는 ‘산조병주’
한 바탕 놀고 이어진 무대는 아쟁과 대금이 어우러진 ‘산조병주’였다. 산조란 우리나라 고유의 ‘독주곡’의 형태로 가장 느린 장단에서 점점 빨라진다. 이번 무대에서는 대금을 선두로 해금, 아쟁, 장구 장단까지 곁들여져 재즈처럼 관객과 소통하며 무대를 이어나갔다. 신명나는 곡에는 당연히 추임새를 넣을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잔잔한 곡에도 추임새가 멋들어지게 어울린다는 것을 알게 해준 소중한 시간이었다. “점점 빨라지면서 가슴을 후벼 파는 아쟁의 소리와 하늘을 찌르는 대금의 구슬픈 소리가 잘 어우러져 시간가는 지 몰랐다.”는 김산옥 사회자의 말에 공감했다.
방수미 명창과 하랑가는 “한 공연에 세 바탕소리를 한 일은 처음인데요. 여러분들이 추임새도 잘 넣어주셔서 힘이 나서 시간 가는지 몰랐어요.(웃음) 심청가 중 심봉사 눈 뜨는 대목을 통해서 신체의 눈만이 아니라 행복의 눈, 마음의 눈, 다 뜨셔서 남은 반년을 행복하게 보내시라고 소리 한번 열심히 해보도록 하겠습니다.”라고 말하며 심청가와 남도민요인 ‘신뱃노래, 동해바다’를 관객과 함께 부르며 이날 공연을 마무리 했다.
김수환 (10기 통신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