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4호] 달빛 아래 빛나는 동구, 발걸음 따라 쌓이는 광주 이야기_이하영 통신원
광주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
날짜 2019-09-09 조회수 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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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빛 아래 빛나는 동구, 발걸음 따라 쌓이는 광주 이야기
2019 광주 문화재야행 동구 달빛 걸음

통신원 이하영

 

▲ 옛 전남도청, 서석초등학교, 아시아문화전당 일대에서 진행된 ‘달빛걸음’

 5.18 민주광장 앞에서는 광주의 오월을 주제로 한 마당극이 펼쳐지고 동명동으로 향하는 플라자 브릿지에는 동구 장인들의 물건을 살펴볼 수 있는 부스와 마켓이 마련됐다. 브릿지를 지나 광주읍성 유허 앞에 도착하니 오지호 화백의 작품 ‘남향집’을 주제로 한 시대 거리극 ‘빛의 화가 오지호’ 공연이 한창이다. 길을 건너 도착한 서석초등학교 앞에서는 오래된 학교 앞에서 전통놀이를 체험할 수 있는 ‘달빛 전통놀이마당’이 열리고 있었다. 초등학교 주위로는 독립 출판물을 만날 수 있는 ‘달빛 아래 작은 책방’, 문화재 컬러링 아트 체험 등이 준비되어 있어 늦은 시간까지 가족 단위 관람객들로 북적였다. 동구에 위치한 문화시설 은암미술관과 비움박물관 역시 늦게까지 문을 열고 관람객들을 맞이했다.


▲ 5.18 민주광장에서 열린 마당극

 ‘문화재 야행’답게 동구 곳곳의 문화재를 중심으로 행사가 진행되고 있었다. 무형문화재도 빠지지 않았다.

 “값이 비싸고 싸고를 떠나서 백 년이 가도 변하지 않는 최고의 악기를 후대에 남기고 가겠다, 이런 마음을 가지고 악기를 만들고 있어요. 잘 만든 악기로 연주한 산조에서는 보이지 않는 우리의 한이 드러나는 법이에요. ”

 서석초등학교 주변을 둘러보고 있는데 학교 담장 너머로 연세가 지긋한 할아버지 목소리가 들려온다. 악기장 이춘봉 명인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명인의 문화재 Talk’ 프로그램이 시작된 듯했다. 다시 학교 밖으로 나가 무대 앞에 자리를 잡았다. 이춘봉 악기장은 전통음악에 쓰이는 악기를 만드는 장인으로 1995년 광주광역시 무형문화재 제12호로 지정됐다. 좋은 악기를 만들기 위한 장인의 고민과 노력을 들을 수 있는 시간, 마이크를 꼭 쥐고 힘차게 말씀을 이어가는 장인의 모습에서 우리 문화와 전통의 소중함을 느낄 수 있었다.

▲ 명인의 생생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명인의 문화재 Talk’

 “생생한 소리를 전할 수 있는 악기, 길을 걸어가면서도 그것만 생각을 하고 가니까 누가 인사를 해도 몰라요. 그래서 사람들이 거만하다고 하는데 그게 아니라 제 머릿속에는 악기 생각으로 가득 차 있어서 그래요. 오해하지 말아줬으면 좋겠는데 참...”

 관객석에서 웃음이 터진다. 생생한 이야기에 웃음 짓게 되는 동시에 좋은 악기를 만들기 위한 명인의 열정에 감동을 느낄 수 있는 자리였다. 이처럼 ‘동구 달빛 걸음’은 늘 제자리를 지키고 있던 문화재들, 자기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조명한다. 무심코 지나치던 것들이 달빛에 빛나는 행사다.

 무엇보다 ‘달빛 걸음’이라는 행사이름을 빛낸 건 ‘이야기꾼’의 해설과 함께하는 역사투어였다. 관람객들은 손에 노란 등불을 들고 ‘이야기꾼’의 안내에 따라 옛 전남도청과 서석초등학교, 아시아문화 전당 일대를 누빈다. 광주 최초 근대식 공립학교인 서석초등학교 일원을 둘러보는 ‘동밖에 마실길 투어’‘근대 문화여행’ 옛 전남도청에서 5.18 민주화 기록관으로 이어지는 ‘오월시간여행’ 옛 전남도청일대와 재명석등을 돌아보는 ‘이야기마당, 오월’ 옛 전남도청에서 광주읍성 유허, 서석초등학교를 모두 돌아보는 ‘문화재 역사탐방’까지 다채로운 코스가 준비돼 있었다.

 “몇 층으로 보이세요?” 늘 지나다니던 전남도청 회의실 앞, 투어에 참여한 어린 학생들과 함께 ‘하나, 둘, 셋’ 창문을 세보며 “3층 아닌가요?”라고 대답하자 “창문 때문에 3층으로 보이지만 사실 2층입니다. 매번 보는 건물인데 모르고 계셨죠?”라는 말과 함께 건물에 담긴 이야기가 시작된다. 옛 전남도청 안에 샘물이 있었다는 사실도, 하얀색의 도청 건물이 원래는 붉은색이었다는 사실도 역사투어를 통해 처음 알게 된 관람객들이 감탄사와 함께 고개를 끄덕인다.

  

▲ ‘이야기꾼’과 함께하는 역사투어

 등록문화재 16호로 지정된 전라남도청 구 본관, 가족단위의 관람객들과 초등학생 친구들이 투어에 함께했다. ‘열흘간의 나비떼’라는 주제로 5·18 당시 평범한 시민들이 이뤄낸 ‘절대공동체’와 민주주의를 위해 희생한 시민들의 숭고한 정신을 담은 예술작품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할아버지 ‘이야기꾼 선생님’의 안내에 따라 확성기 앞에 선 초등학생 한 명이 ‘민주주의’를 외치자 ‘민주’ ‘인권’ ‘평화’라는 세 글자가 전시실 안을 채운다.

 “말을 하면 세상은 바뀌어요. 말을 하고 뭔가를 외치면 세상은 바뀔 수 있어요.”라는 말과 함께 안내를 이어가시는 한용섭 이야기꾼 할아버지, 어린 학생들이 진지한 눈빛으로 선생님의 말을 마음에 담는다.

 또 다른 투어에 참여하기 위해 서석초등학교로 향하는 길, “서석초등학교 옆에 중앙초등학교라고 있었어요. 거기는 일본인들이 다니는 곳이었어요. 일본 사람이 지은 중앙초교 학생들이랑 서석초 학생들이랑 괜한 라이벌 의식이 있기도 하고 그랬어요.” ‘이야기꾼’ 선생님께서 귀띔을 해주신다. 장소와 함께했던 사람들의 생생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달빛 걸음’ 기록되지 않은 역사 이야기를 듣는 것 같아 더욱 흥미롭다.

▲ ‘이야기꾼’과 함께하는 역사투어

 “30분이라는 짧은 시간이지만 직접 현장에서 설명을 하다 보니 다들 흥미로워 하시는 것 같아요. 외국인 방문객들도 생생한 문화재 이야기에 관심을 보이는 경우가 많더라고요. 어제는 몽골에서 어머님 한분이 투어를 들으셨는데, 구도청 건물을 함께 둘러보며 자식을 잃은 어머니들의 슬픔에 크게 공감하고 가시기도 했습니다.” 이야기꾼 신호숙 선생님께서는 투어의 장점을 이렇게 설명하신다. ‘달빛 걸음’이 삼년 째 이어질 수 있었던 이유다.

  11시가 다 되어가는 늦은 저녁까지 투어가 계속된다. “아직 아이들이 다니죠? 제가 학교 다닐 때는 학생 수가 천 명이 넘는 큰 학교였는데...” 남녀노소 문화재를 따라 함께 걸으며 ‘이야기꾼’의 해설에 자신의 경험과 이야기를 곁들인다. 함께 걷는 걸음걸음마다 한 사람의 역사가 더해지고 가는 길목마다 이야기가 쌓인다. 늘 제자리를 지켰던 문화재들이 달빛에 빛나는 밤, 오래된 건물과 문화재 위로 수많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더해진다. 더 많은 이야기를 간직하게 된 동구의 문화재들이 달빛 아래에서 다시 빛나게 될 순간을 그려본다.

 

이하영 (10기 통신원)
미술대학 큐레이터학과를 졸업했다. 큐레이터가 뭐 하는 사람이냐는 질문을 자주 받는데, 그때마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는 말 아세요?'라고 되묻는다. 예술작품을 전시라는 형태로 잘 꿰어서 사람들과 소통하는 일을 좋아한다. 모든 일의 끝에는 사람이 있다고 믿으며 예술작품 너머의 사람을 보려고 애쓰며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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