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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 광주, 녹색 이 중 하나라도 마음에 든다면 찾아와요 파종모종
독립 책방 <파종모종>
통신원 김수환
원래 보물은 숨겨져 있다. 그래서 그런 걸까. 광주광역시 북구 우치로 13-1 효동초등학교 사거리 조용하게 자리 잡은 작은 책방 하나가 있다. 독립 책방 파종모종이다. 초록색 문을 열고 들어가니 오밀조밀 자리 잡은 책들이 귀엽다. 사장님의 취향대로 정성스럽게 꾸며진 소품과 액자 그리고 기계식 시계들과 이제 찾아보기 힘든 화려한 자개 책장은 아늑하고 고풍스러운 느낌으로 손님들을 맞이한다.
파종모종은 1인 출판사, 독립 책방, 독립 출판 클래스가 있는 복합공간이다. 예전부터 책이라는 물성 자체를 좋아했다는 파종모종 양지애 운영자는 출판국 퇴사 후 한동안 자신이 관심 있는 일, 재미있는 일을 하며 지내다 자연스럽게 파종모종을 오픈하게 되었다.
“졸업을 앞두고 작품 전시 도록을 내려는데, 학생입장에서는 너무 큰 돈이 들어가는 거예요. 그러다 ‘직접 도록을 만들어보자’라고 결심했고 포토샵을 통해서 책을 만들었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용감했던 것 같아요. 그 이후로 종이에 뭔가를 만드는 것에 관심을 가지게 되면서 혼자 독학하기 시작했어요.”
현재 파종모종은 북구 중흥동에 위치해 있지만 처음 파종모종이 문을 연 곳은 동구 동명동이다. 작가 신양호 선생님이 후배들에게 본인의 작업실 외 사용하지 않는 공간을 대여해 주었다고 한다. 처음에는 출판사 ‘파종’만 생각했는데 공간이 남아 고민하다 책방 ‘모종’을 열기로 결심했다는데 마치 처음부터 생각하고 지은 것 마냥 이름이 잘 어울린다.
여행하면서 방문한 독립 책방 중 기억에 남는 책방이 있냐는 질문에 “선배 책방이나 멘토 같은 책방이라고 표현을 하곤 하는데, 해방촌에 ‘스토리지북앤필름’이라는 책방이 있어요. 그곳에서 잡지 만드는 수업을 듣기도 했고 후에 책방을 내려고 준비하는 과정에서 ‘스토리지북앤필름’ 대표님이 많이 도와주셨어요. 지금도 많이 존경하고요. 대구에 있는 독립 책방 ‘더폴락’도 좋아하고 영향을 많이 받았어요.”라고 답했다. 광주에는 지금은 문을 닫고 없지만 봉선동의 ‘공백’, 양림동의 ‘LITE LIFE’, 근처에 있는 ‘연지책방’, 동구에 있는 ‘책과 생활’의 책방들과 자주 왕래한다. 그 중에서도 ‘책과 생활’은 독립 책방의 색깔을 잘 표현한 것 같다고 했다. 파종모종을 포함한 광주의 다섯 책방은 ‘오늘산책’이라는 팀으로 활동하며 북 페스티벌을 비롯한 여러 교육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독립 책방의 매력은 책방 주인의 성향과 취향에 따라 큐레이팅 되어있는 독립 출판물이다. 현재 광주에도 20여 곳이 넘는 독립 책방들이 있지만 각각의 개성에 따라 출판물들이 진열되어 있어 겹치는 기획은 거의 없다. 파종모종의 키워드는 ‘식물’, ‘광주’, 그리고 ‘녹색’이다. 그런데 녹색? 내용이 아닌 색과 디자인으로 큐레이팅 될 수 있다는 발상이 놀라웠다.
아기자기하게 꽂혀 있는 다양한 크기의 독립 출판물들을 구경하다 문득 출판사 파종모종에서는 어떤 책들을 출판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제가 의도적으로 책을 내고 싶어서 출판사를 했어요. 포스터, 리플렛, 도록과 같은 작업들을 주로 하다 보니 파종모종을 시작한지 5년이 되었는데 아직 제 책을 출판하지는 못했어요. 하지만 다른 사람의 책을 내주는 것도 굉장히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또 독립 출판 수업을 하고 있으니까 여기 수강생분들 책을 출판하기도 하고요.”
수강생들이 만들었다고 보여준 책은 얇지만 완벽하게 그 자체로 책이었다. 독립 출판 기초 클래스 이후에 만들어진 책도 있었다. 첫 단계 만에 나만의 책을 가지게 되다니 멋진 일이 아닐 수 없다. 전공자가 아닌 일반인들이 책을 만드는 일에 어려움이 있지 않을까.
“책을 만든다는 건 어렵죠. 하지만 차분히 단계들을 밟아 나가고 계속해서 기본원리를 이해하고 관심을 가지다보면 응용해서 만들기 나름이거든요. 파종모종에서는 수업을 단계별로 진행하고 있어요. 기초 과정은 중철로 책을 만들어 보는데, 전공과 상관없이 ‘아 이렇게 하는 구나’하는 정도로 이해를 할 수 있는 수준에서 진행해요. 그 이후 기본과정에서 무선인 얇은 책을 만들고 심화과정에서는 단행본을 만들어요. 요새는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책을 내고 싶어 하는 것 같아요.”
“책 이라는 게, 사람들이 예술적인 감각이나 디자인적인 감각이 있어야지만 잘 만든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저는 오히려 편집 디자이너는 꼼꼼함이나 인내심, 수학적인 계산 이런 것들이 더 요구된다고 생각해요."
파종모종은 벗어나 외부에서도 책을 만드는 강의를 진행하고 있다. 10월 22일부터는 국립아시아문화센터에서 시민아카데미 ‘누구나 작가가 될 수 있다! –독립출판 첫걸음’이 시작된다. 이미 예약 마감이 끝난 이 강좌에는 대기자가 15명이나 될 정도로 인기가 좋다. 독립 출판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을 알 수 있다. 순천에 있는 책방 ‘심다’에서도 독립 출판 수업을 진행하고 있고, 광주광역시 청소년 삶 디자인센터에서는 조선대학교 부속 고등학교 학생들과 함께 독립 출판 단행본을 제작하기도 했다. 내용은 고등학교 1학년, 2학년 학생들의 산문으로 구성되어 있다. 아주 깔끔하고 귀엽다.
“이 글을 읽는 사람들에게…
(중략)
마지막으로 제가 꼭 말해주고 싶은 것은 “현실부정, 원망, 자책, 시간낭비, 후회”를 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 다섯 가지는 자신을 돌아보고 더 큰 사람이 되기 위한 하나의 과정일 수 있지만 대부분 스스로를 점점 작게만 느껴지도록 만들고 그 상황을 극복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 것입니다. … 그러니 우리 모두 그 상황에 체념하고 포기하는 것 보다는 포기하지 말고 꿈을 밀고 나갔으면 좋겠습니다.”
《책 쓰는 여름 中 고등학교 내신 시험을 망친이 에게》 (미르_이장후 지음)
이 책은 ‘오늘산책’팀과도 연관이 있다. 참고로 다섯 명의 멤버가 있는 이 팀은 각자가 맡은 분야가 있다. ‘책과 생활’은 편집자 출신으로 글을 쓰고 다듬는다. ‘파종모종’은 편집 디자인을 ‘LITE LIFE’는 일러스트, ‘연지책방’은 독립 출판물들의 유통을 맡았다. 6차시로 이루어진 수업을 오늘산책이 직접 진행하며 독립 출판에 대해 교육했다고 한다.
‘오늘산책’은 작년 9월 8일 ‘도시산책’이라는 타이틀로 국립아시아문화전당 하늘마당 뒤편의 캐노피에서 북 페스티벌을 열기도 했다. 광주·전남·전북의 독립 책방들이 한자리에 모인 이 페스티벌은 독립 출판물과 독립 책방의 굿즈를 판매하는 마켓, 책과 관련한 강연, 각 책방들의 큐레이션을 담은 책장을 전시하는 등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다양한 볼거리와 즐거움을 선사해 주었다. 올해는 오늘산책의 사무실이 있는 삶 디자인센터에서 ‘요로코롬’이라는 이름의 프로젝트를 기획하여 10월 26일 선보일 예정이다.
책방 내부에는 개성 있는 포스터들이 붙어있다. 그중 책방유람이라는 포스터가 눈에 들어왔다. “광주에 책을 만들거나, 디자인하거나, 책방을 하는 청년들이 있잖아요. 다들 친하게 지내는데, 다른 지역은 어떻게 사나 궁금하더라고요. 그래서 광주에서 책과 관련한 활동을 하는 친구들을 모아서 대구에서 책 활동을 하는 친구들과 1박 2일 시간을 보내면서 네트워크를 형성하기도 했어요. 제주도에서도 1박 2일이라는 시간 동안 서로 무슨 활동을 하는지 이야기를 많이 나눴어요.” 책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새로운 콘텐츠와 프로젝트로 꾸미고 기획하는 파종모종은 쉬는 법이 없다.
마지막으로 파종모종에서 판매하는 책 중 한 권을 소개한다. 독립 책방에 대한 진솔한 이야기가 담겨있는 ‘책방 엔딩’. 독립 책방 ‘공백’이 문을 닫으면서 3년 동안의 이야기들이 휘발되는 것이 아쉬워서 책으로 엮었다고 한다. 책 36페이지에 쓰인 글이 마음이 닿는다. ‘오래 버틸 수 없을 것 같아 겁이 난다.’, 그리고 책 37페이지 ‘우리의 흔적을 최대한 얕게 바른다.’ 독립 책방 파종모종의 흔적은 중흥동 그 자리에 아주 짙-게 남겨지기를 바라본다.
김수환 (10기 통신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