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5호] 삶을 바꾸는 질문이 시작되는 곳_이하영 통신원
광주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
날짜 2019-10-07 조회수 4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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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바꾸는 질문이 시작되는 곳

ACC 문화정보원 <길 위의 인문학 ‘지혜학교’>

통신원 이하영

 

 

  『삼총사』, 『레미제라블』, 『적과 흑』, 『벨아미』, 『전쟁과 평화』, 『악의 꽃』, 『위대한 유산』, 『목로주점』,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변신』... 익숙한 제목들이 강의 계획서를 빼곡하게 채우고 있다. ‘죽기 전에 꼭 읽어야 할 책’, ‘교육부 추천도서’, ‘○○대학교 권장도서’ 목록에서 한 번쯤 봤던 제목들이다. 동시에 읽기에 만만치 않은 책으로도 유명하다. 독서를 시도하는 사람도 많지만 그만큼 완독을 포기하는 사람들도 많은 책. 이런 책들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화요일 낮부터 도서관에 모이는 분들은 도대체 책을 얼마나 좋아하는 분들일까 궁금증을 안고 국립아시아문화전당 도서관으로 향했다.  

 


▲ 수업이 진행되는 국립아시아문화전당 도서관



  엘리베이터를 타고 지하로 내려가자 환하게 불이 켜진 도서관이 보인다. 다양한 연령의 수강생들이 하나둘 자리를 잡기 시작한다. 손에 들려 있는 책은 소설 『적과 흑』. 상권과 하권, 두 권으로 나눠져 있는 책은 한 손으로 들기에 버거워 보일 정도로 두툼하다. 수업 참여를 위해 추석 연휴 동안 급하게 책을 읽어 내려갔던 터라 혹시나 교수님께서 책에 대한 질문하시면 어떡하지? 토론 주제에 ‘야망은 인류에게 해를 끼치는가?’라고 적혀 있던데 무슨 말을 해야 하지? 수업 시작 전부터 걱정이 앞섰다. 긴장된 마음으로 광주 지역의 도서관 지혜학교 프로그램을 맡고 계시는 민진영 교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였다. 


  
 ▲ 12주 동안 함께 읽게 될 도서들

 

 “제가 초등학생 때였나? 어렸을 적 아버지께서 사주신 세계문학 전집의 세 번째 소설이 이 『적과 흑』이었어요. 그때 표지에 굉장한 미소년이 그려져 있었는데, 바로 책의 주인공 쥘리엥이였습니다.” 걱정과 달리 교수님께서는 어렸을 적 이야기로 강의를 시작하셨다. 곳곳에서 웃음소리가 터져 나오고 강의실 분위기가 한층 부드러워진다.

 

 ‘도서관 길 위의 인문학’ 사업의 심화과정으로 운영되는 ‘지혜학교’는 ‘주체적으로 성찰하는 삶의 인문학’, ‘삶을 바꾸는 실천의 인문학’, ‘더불어 사는 공생의 인문학’을 목표로 삶의 가치와 의미를 인문학적 성찰을 통해 심화·재구성하고, 이를 공동체적 삶의 지혜로 승화하는 ‘지혜로운 시민’ 양성을 목표로 하고 있다. 그래서일까 일방적인 지식 전달 중심의 강연이 아닌 참여자들이 함께 서로의 경험을 나누고 다양한 질문을 던지는 수업 방식이 눈에 띄었다.

 

 “성경을 라틴어로 줄줄 외울 수 있는 똑똑한 청년 쥘리엥이 드라넬 부인과 마틸드를 유혹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왜 거기에 집착해야만 했을까요? 왜 끊임없이 열등감에 휩싸였을까요? 쥘리엥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나폴레옹을 이해하셔야 됩니다.” 커다란 스크린 화면 위로 나폴레옹의 초상화와 연표가 등장하고, 프랑스 공화국의 역사와 스탕달의 생애에 대한 교수님의 설명이 이어진다. 설명을 듣고 나자 책을 읽으면서 이해가 되지 않았던 부분들이, 공감할 수 없었던 인물들의 대사가 다시 보이기 시작한다.

▲ 수업이 진행되는 모습

 

 줄거리와 시대적 배경을 확인하고 인물을 분석하고, 작품 이해를 마친 후엔 스스로 생각하는 시간이 이어진다. “쥘리엥이 드 레날 부인의 돈을 거절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사랑을 돈으로 환산하기 싫어서였을까요? 부자들에게 돈을 받기가 자존심이 상해서였을까요?” 교수님께서 책을 읽으면서 한 번쯤 해봤던 질문들을 던지신다. “쥘리엥이 죽은 후 얼마 안 있어 드 레날 부인 역시 죽음을 맞이합니다. 이 죽음의 원인은 뭐라고 생각하세요?” 대답하기 까다로운 질문들도 섞여 있다. 그러나 수강생들이 고민하는 시간은 그리 길지 않다. 질문이 떨어지자 여기저기에서 다채로운 대답이 흘러나온다.

 

 “자존심이 허락 안 한거죠. 제 생각엔 쥘리엥이 세상을 잘 몰랐던 것 같아요. 저였으면 돈을 받고 떠났을 텐데...” 


 “『적과 흑』을 연애소설이라고 설명하기도 하는데 저는 연애심리보다는 야망이 크게 다가왔어요. 스탕달이 계속 나폴레옹 곁에 있었다면, 나폴레옹이 몰락하지 않았다면 이런 소설은 안 나왔겠구나 생각을 했어요.”

 

 전문가의 설명을 통해 작품을 보다 심도 있게 이해하고 참여자들 간의 활발한 소통을 통해 다각화된 시각으로 작품을 바라볼 수 있다는 사실. 수강생들이 수업에서 가장 만족스럽게 여기는 부분이자 ‘지혜학교’가 다른 독서 프로그램과 차별화되는 지점이기도 하다.

 본인의 생각을 이야기하는데 거침이 없는 어른들을 보며 고전 작품을 통해 삶을 들여다봐야 하는 이유를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다. ‘지혜학교’는 왜 ‘삶을 바꾸는 앎’을 강조할까, 문학을 통해 삶을 들여다봐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라는 질문에 민진영 교수님은 ‘인생의 지혜를 찾을 수 있다’고 말씀하신다.
 
 “문학작품이라는 게 10대 때 읽을 때, 똑같은 작품을 20대 때 읽을 때, 30대, 40대가 되어서 읽을 때, 전부 다 다르게 다가오는 것 같아요. 그래서 그때그때 우리한테 주는 기쁨이 다르다고 할까? 영화를 통해서도 그런 감정을 가질 수 있고, 음악을 통해서도 가질 수 있는데 문학작품은 영화처럼 한두 시간 안에 보고 끝낼 수 있는 게 아니잖아요. 그래서 시간을 두고 자기를 돌아보게 하는데 문학작품이 참 매력적인 것 같아요.


 등장인물들의 삶을 내 삶과 비교해보게 되고. 그런 생각의 시간을 많이 가질 수 있는 게 문학작품의 장점인 것 같아요. 책을 읽어나가면서 생각을 변화시켜볼 수도 있고. 그러면서 내 인생의 지혜를 찾게 해주는 거 아닌가 싶어요.“

 

 

▲ 수업에 집중한 수강생들

 

 고전문학의 힘을 누구보다 잘 알고 계시는 교수님께서는 수업 중간중간 독서를 거의 하지 않는 요즘 학생들에 대한 우려를 표하기도 하셨다.
 
 “사실 젊은 사람들은 되게 짧은 시간에 많은 것들을 가지고 가길 바라죠. 이렇게 긴 시간을 두고 글을 읽는 것에 익숙하지 않아요. 제가 누구보다 잘 알아요. 저는 지금 이 책을 읽는다고 해서 여러분들에게 당장 돌아오는 피드백이 엄청 강렬한 거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책한 권을 읽고 나서 한 10년 뒤에 다시 읽었을 때, 정말 다른 감정으로 다가올 거라고 생각해요.


그때를 위해서 내가 지금 저축을 한다는 마음으로 조금씩 읽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저는 학교에서 억지로 독서를 시키기도 해요. 중요한 부분에 밑줄을 긋고, 아니면 스스로 읽을 수 있도록 베껴 쓰기라도 시켜요. 그게 지금의 여러분들한테는 당장 별 울림이 없더라도, 저금한다는 마음으로 한 번 읽어보자고 젊은이들에게 말하고 싶네요.”

 

 세 시간 동안 이어진 수업. 책을 읽는데 투자한 시간에 비하면 길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머릿속이 수많은 질문들로 채워졌다. 남겨진 질문은 앎으로, 앎은 삶의 변화로 이어질 것이다. 수업 도중 나이가 지긋한 수강생 한 분의 말씀이 기억에 남는다. “스탕달의 묘비명이 뭐였는지 아세요? ‘살았노라, 썼노라, 사랑했노라’였어요.” 수업이 끝나고 도서관을 나서며 제대로 살아가기 위해서, 더 많이 쓰고 배우며 더 많은 것들을 사랑하기 위해 책을 읽는 사람들로 가득한 세상을 그려본다.

이하영 (10기 통신원)
미술대학 큐레이터학과를 졸업했다. 큐레이터가 뭐 하는 사람이냐는 질문을 자주 받는데, 그때마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는 말 아세요?'라고 되묻는다. 예술작품을 전시라는 형태로 잘 꿰어서 사람들과 소통하는 일을 좋아한다. 모든 일의 끝에는 사람이 있다고 믿으며 예술작품 너머의 사람을 보려고 애쓰며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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