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6호] 삶의 공간을 예술로 물들이다_김태희 통신원
광주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
날짜 2019-11-07 조회수 417
첨부파일
  • 19.jpg [size : 2.4 MB] [다운로드 : 38]

삶의 공간을 예술로 물들이다

2019 ACC 프린지 인터내셔널

통신원 김태희

  

△ 2019ACC프린지인터내셔널


 익숙한 거리가 극장으로 변하는 시간이 찾아왔다. 광장부터 건물, 하늘까지 모든 곳이 극장이 되는 2019ACC프린지인터내셔널이 바로 그것이다. 지난 10월 19일과 20일 이틀에 거쳐 우리의 거리를 한 순간에 예술극장으로 변화시킨 2019ACC프린지인터내셔널 현장을 다녀왔다.

  

△ 페스티벌 준비에 한창인 모습


 유난히 날이 맑았던 19일 오후,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일대는 오후 3시를 향해 달려가자 5.18 민주광장과 국립아시아문화전당에는 무대를 설치하는 작업팀과 평소 볼 수 없던 새로움에 삼삼오오 모여든 관객들로 북적였다.

 
△ 거리극 <갑옷을 입었어도 아프다>


 올해 프린지인터네셔널은 5.18 민주광장 및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일대에서 펼쳐지며, 국내외 4개국 11개팀이 참여해 이동형 거리극, 서커스, 공중 퍼포먼스, 인형극 등 다양한 장르 공연을 선보였다. 항상 우리의 곁에 존재하는 삶의 공간에서 거리예술을 만날 수 있다는 점이 더욱 특별히 다가오는 듯했다.

 
  

△ 신체극 <마네킹>


 오후 3시부터 9시까지 진행되는 공연을 시간순서에 맞춰 관람했다. 시간이 겹치는 공연이 있다면 끝부분이라도 보고자 공연장 일대를 열심히 돌아다녔다. 공연을 관람하는 관람객들은 남녀불문, 연령불문으로 다양했다. 가족과의 관람, 연인과의 관람, 혼자만의 관람, 친구와의 관람. 공연을 보기 위해 찾았는지, 지나가다 우연히 발견하여 방문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공연을 보는 관람객들은 모두 어느새 두 눈을 반짝이며 공연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 캄보디아 서커스 <석화>1


 다양한 공연들 중에서 깊은 인상을 남겼던 것은 캄보디아의 공연 <석화>였다. 서커스 공연인 <석화>는 1970년대 중반 내전을 통해 정권을 잡은 캄보디아의 크메르 루주가 민간인 200만 명을 잔인하게 살해(‘킬링필드’)했던 시대를 배경으로 이 시기를 겪은 여자아이 “돌꽃(석화)”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평소 접해보지 못했던 캄보디아의 거리극은 어떠할까 라는 궁금증과 함께 관람하기 시작한 <석화>는 어두운 분위기를 담고 있을 거란 예상과는 달리 유쾌한 음악으로 시작되었다. 학교를 배경으로 시작된 공연은 현란한 줄넘기 퍼포먼스와 신체 서커스 등과 함께 자연스럽게 관객들의 호응을 유도했다. 실수인 듯 아닌 듯, 아슬아슬한 동작들은 관람객들의 몸과 마음을 들썩였고, 공연자들의 얼굴에는 진심으로 기쁘다는 듯한 미소가 함께했다.

 
△ 캄보디아 서커스 <석화>2


 분위기가 바뀌고, 킬링필드를 겪은 돌꽃(석화)가 힘들어하는 장면이 등장했다. 그녀는 환상과 악몽에 시달리면서 어두운 현실에 사로잡혀 지내다 예술을 통해 자신과 지연사회를 치유할 수 있는 도구를 발견하게 된다.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된 이 작품은 연극, 춤, 서커스, 라이브 페인팅 그리고 음악을 결합시켜 캄보디아의 역사를 관객들에게 보여주었다. 그들의 작품은 언어가 통하지 않아도, 말을 하지 않아도 그들의 몸짓은 언어가 되어 관객들에게 전해졌으며, 참혹한 현실을 극복하는 예술의 힘을 잘 보여주었다.

 
 

△ 프랑스 공연 <사.이(E.N.T.R.E (B.E.T.W.E.E.N))>


 이 외에도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 사이의 간극과 괴리를 담은 ‘사.이(E.N.T.R.E (B.E.T.W.E.E.N))’, 우리 사회의 성 차별 속에 이뤄지는 수 많은 폭력을 고발하는 ‘아담스 미스(Adam’s Miss)’, 휠체어를 타고 도시를 가로지르는 관객참여형 거리극 ‘임무명 루즈벨트’ 등 각 나라와 예술가들의 특징이 담긴 거리극이 광주의 밤을 수 놓았다.

  
 
△ 프랑스 서커스 <인간모빌>

 2019ACC프린지인터네셔널은 이번 페스티벌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는 ‘인간모빌’ 공연을 끝으로 막을 내렸다. 연주자들이 피리부는 사나이처럼 북을 치며 광장을 활보하며 사람들에게 웃음과 기쁨을 선사한 후 75톤 대형크레인에 40m의 높이에 매달려 타악기를 연주하고, 이보다 더 높은 곳에서 곡예사가 그네타기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마치 어린 아기 시절 침대에 누워 천장의 모빌을 바라보듯 모든 관람객들이 고개를 90도로 꺾어 연주자들을 바라보았다. 모두가 나이를 잊고 어린아이로 되돌아가는 시간이었다.

 

△ 거리극 <임무명 루즈벨트> 참가자들과 그들의 완주를 축하해주는 시민들


 프린지인터네셔널을 통해 거리극을 관람하며 거리극은 자연스럽게 사람들이 예술문화를 접할 수 있는 좋은 매개체라는 생각이 들었다. 따로 공연장을 찾지 않아도, 우리의 곁에 존재하는 삶의 공간을 지나가기만 해도 연극을 접할 수 있으니 말이다. 특히나 어린 아이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 것이란 생각이 들었는데, 어려서부터 다양한 장르와 국가의 거리극을 접함으로써 자연스럽게 예술문화의 편식이 자리잡지 않게 되지 않을까 싶기 때문이다. 어린 나이부터 예술문화를 접한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다양한 분야의 예술문화를 소비하게 될 것이고, 이는 오랜 시간 긍정적인 효과를 불러일으키지 않을까 생각한다.

 

 다양한 거리극을 관람하며 이번 2019ACC프린지인터네셔널을 연출한 예술감독님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 졌고, 이에 이번 거리극 연출을 맡은 임수택 예술감독님과의 인터뷰를 진행하게 되었다.
 
Q. 2019ACC광주프린지인터내셔널의 막이 내렸습니다. 이에 대한 소감은 어떠신가요?
 단순한 소비와 오락에 그치는 축제가 아니라 우리의 삶과 현실에 대해 함께 공감하는 생산적인 축제를 마련하였는데, 이를 많은 시민들이 환영해주신 것 같아 기쁩니다.


Q. 오랜 시간 과천축제, 수원연극축제와 같은 거리극축제를 담당하고 계시는데, 다양한 축제 중에서도 거리극을 하시는 이유가 있으신가요?
 저는 원래 연극을 했습니다. 그러다 2003년 과천축제(당시는 과천마당극제)를 맡았지요. 저는 처음에 과천축제를 연극 등 실내공연 중심으로 바꾸려고 했어요. 당시 마당극이 시대의 이슈를 적절하게 담아내지 못했고 또 예술적인 성취도도 미흡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우연히 벨기에 뢰벤에 가서 거리극축제를 보았는데 거리극이 엄청난 거예요. 형식도 색달랐고 내용도 다양했으며, 무엇보다 수많은 시민과 함께 즐긴다는 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래서 실내극을 중심으로 치르려던 과천축제를 거리극 중심으로 다시 바꾸면서 마당극도 수용하려고 했습니다. 오늘날 대개 축제는 야외문화활동 중심으로 치르는 경우가 많은데, 이 때 거리극 아주 적절한 콘텐츠가 될 수 있다고 확신했고, 곳곳에서 벌어지는 거리극축제에서 이것을 확인하였습니다. 과천축제 이후 우리나라에서 많은 거리극축제가 생겨난 것만 봐도 잘 알 수 있지요.


Q. 2017년에 이어 올해 ACC광주프린지인터내셔널 감독으로 함께 하셨는데, 어떠한 차별성을 두셨는지 궁금합니다. 이번 프로그램을 기획하며 가장 중점적으로 생각한 부분이 무엇인지와 함께 말씀해 주실 수 있으신가요?
 저는 축제에서 차별성을 두려고 노력하지 않습니다. 제가 염두에 두는 것은 오로지 시민들입니다. 이 시민들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시민들이 바라는 건 무엇일까? 저는 이것에만 관심을 갖습니다. 종종 축제에 차별성을 강조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는 항상 경쟁구도 속에 있는 우리의 의식 때문이라고 봅니다. 이제는 차별성이 아니라 협력이 필요한 시대입니다. 축제가 비슷하면 어떻습니까? 시민들이 좋아하면 그걸로 되는 거예요. 학교처럼 축제에 어떤 과제가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특히 ACC광주프린지인터내셔널과 같은 공연예술축제는 다른 공연예술축제와 비슷할 가능성이 많아요. 왜냐하면 좋은 작품은 한정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해외공연의 경우에는 다른 축제와 공동으로 초청하면서 비용을 절감하기도 하지요. 다만 축제가 벌어지는 공간이 다르기 때문에 프로그램이 조금씩 달라지긴 합니다. 그리고 예술감독의 예술관 역시 서로 다르기 때문에 프로그램이 달라지기도 하지요. 나아가 공간의 역사적, 사회적 배경이 프로그램을 짜는 데 영향을 미치기도 합니다. 굳이 차별성을 강조하지 않아도 위와 같은 요인 때문에 각 거리극축제들이 조금씩 다른 모습을 보이기는 하지요. 그렇지만 이것이 차별성을 달성하기 위해 인위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며 또 그래서도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Q. 이번 페스티벌에는 역사를 담은 캄보디아의 ‘석화’와 한국의 ‘구호의 역사 1945.2015’를 비롯해 ‘인간모빌’과 같은 해외의 인기 있는 작품들이 함께 했습니다. 이처럼 다양한 거리극들을 어떻게 선정하게 되었나요?
 제가 프로그램을 구성하는 원칙으로 늘 3 가지를 내세우고 있는데요, 하나는 기술적 완성도이고, 다른 하나는 사회적 이유의 반영, 세 번째는 전통의 현대화입니다. 가능한 한 이 기준에 맞는 작품을 선정하려고 하지요. 이를 위해 많은 축제와 공연현장을 찾아가 공연을 직접 관람하고 선정합니다. 외국에도 많이 나가야 합니다. 아울러 전혀 발표된 적이 없는 신작도 초청하곤 하는데, 이때는 공연계획서를 검토하고 예술가를 직접 만나 얘기를 듣고 난 후 이를 바탕으로 초청 여부를 결정하지요.


Q. 30여 년간 문화예술과 함께하는 삶을 살고 계신 감독님께서 생각하시는 문화예술은 무엇인지와 앞으로 도전하고 싶은 분야의 문화예술분야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이에 대해 이야기해 주실 수 있으신가요?
 먼저 ‘문화예술’이라는 말이 틀린 말이라는 것을 지적해두고 싶네요. 문화는 예술보다 큰 개념이에요. 따라서 올바르게 말하려면 ‘예술문화’라고 해야 합니다. 물론 문화예술을 “문화와 예술‘이라는 의미로 사용하고자 한다면 가운데 방점을 찍어 ’문화∙예술‘이라고 표기해야 하고요. 제가 이렇게 처음부터 말을 가지고 시비를 거는 이유는 사실 우리가 엄청나게 많은 오해에 둘러싸여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잘못 알고 있다는 거지요. 축제에 대해서도 그렇고 예술에 대해서도 그렇습니다. 저는 예술을 ”세계에 대한 진리를 담고 있는 아름다운 그릇’이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이 진리가 사실은 아주 다양해요. 아름다움도 마찬가지고요. 예술이 말하는 진리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것이 아니라 세상에 은폐되어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드러냄으로써 우리에게 새로움을 안기고, 나아가서는 놀라움을 일깨우는 것이어야 합니다. 그래서 혁명적이 아니면 예술이 아니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지요. 예술은 형식과 내용 모두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이 아닌, 따라서 새롭고 놀라운 것이어야 하며, 때로는 그것이 거의 혁명적인 것이어도 상관없는 거지요. 예술에서 종종 사회에 대한 비판이 많이 이루어지는 것도 이 같은 주장과 같은 선상에 있습니다. 예술은 세상의 어둠 속에 은폐되어 있는 것을 드러내줌으로써 세상이 보다 건강하게 굴러가도록 견제 역할을 하여야 하며, 여기에 예술의 사회적 생산성이 담겨있습니다. 종종 예술이 부도덕하고 퇴폐적으로 보이는 것 역시 예술의 이러한 속성 때문입니다. 앞으로 새롭게 도전해보고 싶은 예술분야를 여쭈셨는데, 아직 거리예술이 다양하게 시도되고 있기 때문에 다른 것에 눈을 돌리고 싶진 않습니다. 다만 요즈음 거리예술에서 종종 ‘비관습적 연극’(unconventional theater), 그러니까 우리에게 익숙하지 않은 연극형식이 시도되고 있는데 이 경향에 좀 더 주목하려고 합니다.

 단순한 소비와 오락에 그치는 축제가 아니라 우리의 삶과 현실에 대해 함께 공감하는 생산적인 축제였던 2019ACC프린지인터네셔널이 막을 내렸다. 과연 다음 프린지인터네셔널에서는 어떠한 거리극들이 익숙했던 우리의 삶을 바꿔 놓을지 벌써 기대가 된다.

 

 

 

 

김태희 (10기 통신원)
문화예술을 ‘기쁨’이라고 생각합니다. 문화예술을 통해 얻게 되는 기쁨이란 일반적인 상황에서 얻는 기쁨이나, 타인을 통해 얻는 기쁨, 목표를 이루었을 때 느껴지는 상대적인 기쁨과는 달리 인간의 내면에서부터 우러나는 감정과 정서를 풍성하게 함으로써 느끼게 되는 절대적 행복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기에 언제나 문화예술로 뒤덮인 삶을 향유하며 다양한 문화적 경험과 콘텐츠를 통해 감정적인 풍요를 누리고자 합니다.


 

잔잔한 울림 게시글 상세 폼
top 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