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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월엔 전통문화와 사랑에 빠져보자
무등산 아래 전통문화 축제 시월애(愛) 전통 <무등울림>
통신원 이하영
등산의 계절 가을이 돌아왔다. 가을의 정취를 느끼기 위해 단풍으로 물든 산을 찾는 사람들이 부쩍 늘어났다. 무등산 자락에 위치한 광주 전통문화관, 아침 일찍 산을 찾았던 등산객들과 가을맞이 나들이를 나온 가족들의 발걸음을 멈춰 세우는 축제가 열리고 있다. 광주시 무형문화재분들의 작품세계를 가까이에서 만날 수 있는 축제, 전통문화공연과 전통놀이를 즐길 수 있는 축제 ‘무등울림’이 10월 3일부터 27일까지 전통문화관 일원에서 개최됐다.
▲ ‘무등울림’ 축제가 열리는 광주 전통문화관
▲ ‘무등울림’ 개막식
전통문화관 입구에서부터 전통문화의 향기가 물씬 느껴진다. 솟을 대문 앞에 위치한 조각보를 입은 소나무들이 방문객들을 반긴다. 서석당 앞으로 넓게 펼쳐진 너덜 마당에서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고전소설 ‘심청전’을 사물놀이와 판소리, 국악과 한국무용을 통해 새롭게 즐길 수 있는 공연 ‘심청이 돌아왔다’가 열렸다. 전통문화에 팝핀과 힙합 등 스트릿댄스 퍼포먼스가 더해져 어린아이들부터 젊은 연인들, 어르신들까지 남녀노소 모두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이외에도 운림동 주민들이 참여한 ‘무등골 마을 윷놀이 대회’ 지역복지관 기부금 마련을 위한 ‘무등주막’ 청년 창업자들이 직접 자신들의 작품을 소개하고 판매하는 ‘청년보부상’등 다양한 주민참여 프로그램이 진행됐다.
무엇보다 광주 무형문화재로 지정된 예능장, 기능장, 음식장 분들의 작품세계를 소개하고 대중들과 만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하는 축제인 만큼 광주시에서 지정한 무형문화재 분들을 가까이에서 만날 수 있는 프로그램이 눈에 띄었다.
광주시 무형문화재 제1호로 지정된 남도 판소리 예능보유자 이순자 예능장을 만나는 날, 평일임에도 한옥으로 지어진 서석당 안이 관람객들로 가득 찼다.
“이렇게 좋은 곳 와서 좋은 소리 듣고 있으니까 우리가 꼭 신선 같고 좋네.”
“나이 들면 집에서 티비 보고 청소하고 하는 게 뭐 더 있나, 이렇게 좋은 자리가 있으면 나와서 바람도 쐬고 노래도 듣고 좋지.”
예능장이 무대에 오르기 전, 자리에 앉은 어르신들이 기대를 표하신다. 본격적인 공연이 시작되기 앞서 판소리에 대한 간단한 강의가 시작된다.
▲ 판소리 예능 보유자 화옥 이순자 예능장과 함께 부르는 ‘사랑가’
“판소리에는 서양음악에서 볼 수 없는 특징이 있어요. 그런 특성 때문에 시작하기 전에 ‘단가’로 목을 풀어야 합니다. 먼저, 판소리는 성량이 아주 큽니다. 서양음악이 아름다운 소리를 만들어내는 거라면 판소리는 우리 가슴 깊이 있는 감정을 끌어내야 하기 때문에 성량이 엄청나게 큽니다. 갑자기 큰 소리를 내기 힘드니까 단가로 목을 달래 주는 거예요.
두 번째는 음역이 큽니다. 음이 차지하는 폭이 크다, 이 말이에요. 서양음악은 여자가 내는 음폭이 있고 남자가 내는 음폭이 있죠. 여자는 알토와 소프라노, 남자는 테너, 베이스, 바리톤. 이렇게 나뉘어 있어요. 그러나 판소리는 한 사람이 이 모든 영역을 다 내야 해요. 여성이 하니까 여성명창, 남성이 소리를 내니까 남성 명창이라고 할 뿐이지 한 사람이 모든 소리를 다 내야 해요. 그러다 보니까 그냥 소리를 내면 목이 다쳐요. 단가는 준비운동이라고 볼 수 있죠”
판소리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앞서 ‘단가’를 부르는 이유를 설명하는 강의가 이어진다. 음악 교과서에서도 볼 수 없었던 내용, 평소 관심을 가지고 찾아보지 않으면 접할 수 없는 전통문화 지식을 무형문화재 분들의 생생한 이야기를 통해 배울 수 있는 뜻깊은 순간이다.
화옥 이순자 예능장과 함께 부를 판소리는 ‘사랑가’. 끝까지 들어본 적은 없어도 누구나 알고 있을 ‘이리 오너라, 업고 놀자’라는 가사로 유명한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판소리 작품이다.
“말로 하는 걸 ‘아니리’라고 하거든요. 이 아니리, 즉 말을 잘하셔야 판소리를 잘 이끌어나갈 수 있어요. 춘향이는 춘향이답게, 도련님은 도련님답게 해야 해요. 제가 먼저 해볼 테니 여러분들도 한 번씩 따라 해보세요.”
▲ 남도의례음식장 기능 보유자 이애섭 음식장과 함께하는 겉절이와 떡갈비 만들기
예능장의 시범이 앞서고, 저마다의 색이 더해진 ‘도련님’과 ‘춘향이’의 대사가 뒤를 잇는다. 무형문화재 분들을 가까이에서 만나고 판소리에 대해 배우며 함께 노래를 부를 수 있는 자리, ‘무등울림’에서만 찾아볼 수 있는 풍경이다. 서석당 밖으로 나오자 맞은편에 위치한 입석당에서 고소한 떡갈비 냄새가 풍겨온다. 시 무형문화재 제17호로 지정된 남도의례음식장 기능보유자 이애섭 선생님과 함께 겉절이와 떡갈비를 만들 수 있는 체험 프로그램이 진행되고 있다. ‘무형문화재’라고 하면 괜히 거리가 느껴지는데, “고기는 너무 불을 세게하지 말고 시간을 두고 익힌다고 생각하고 조절해보세요.” 참여자분들을 세심하게 살펴보시는 모습이 퍽 다정하고 친근하게 다가온다.
▲ 심포지움 ‘무등, 시대의 스승을 품다: 근대 3인 선각자의 삶과 사회 공헌 활동’
‘전통문화축제’하면 흔히 떠올리는 공연이나, 체험 프로그램이 이외에도 문화예술에 대해 숙고해볼 수 있는 학술적인 자리도 마련됐다. ‘무등, 시대의 스승을 품다: 근대 선각자의 삶과 사회 공헌 활동’ 심포지엄에서는 무등산에 머물며 소외된 자들을 돌보고 교육과 사회운동, 계몽활동에 앞장섰던 선각자들의 발자취를 살펴볼 수 있었다. 종교지도자 오방 최홍종, 독립운동가 석아 최원순, 예술가 의재 허백련, 세 선각자의 삶과 사회 공헌 활동을 돌아보며 배울 점을 발견하고 이들의 삶을 이어갈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지 생각해볼 수 있는 자리였다.
다채로운 공연과 프로그램을 접할 수 있었던 ‘무등울림’. 우리의 악기, 음악, 이야기 소리가 무등산 자락에 울려 펴진다. 집으로 돌아가는 관람객들의 마음 속에 우리의 전통문화가 울림을 남겼길 기대해본다. ‘시월애(愛)’라고 적힌 올해의 ‘무등울림’ 주제가 보인다. 이번 가을에는 전통문화와 사랑에 빠져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고 생각하며 전통문화관을 나선다.
이하영 (10기 통신원) 미술대학 큐레이터학과를 졸업했다. 큐레이터가 뭐 하는 사람이냐는 질문을 자주 받는데, 그때마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는 말 아세요?'라고 되묻는다. 예술작품을 전시라는 형태로 잘 꿰어서 사람들과 소통하는 일을 좋아한다. 모든 일의 끝에는 사람이 있다고 믿으며 예술작품 너머의 사람을 보려고 애쓰며 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