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6호] 있어야 할 것들이 없어 빛나는 인문학 축제_이하영 통신원
광주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
날짜 2019-11-07 조회수 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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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어야 할 것들이 없어 빛나는 인문학 축제

'제9회 굿모닝 양림'

통신원 이하영​ 

 

 ‘축제의 계절’이라 불리는 가을, 광주 역시 곳곳이 축제 소리로 들썩이고 있다. 다양한 축제가 있지만 그중에서도 있어야 할 것들이 없어 눈에 띄는 축제가 있다. 술과 먹거리, 행사의 시작을 알리는 내빈 축사, 떠들썩함이 없는 축제, 양림동과 사직공원 일원에서 열리는 ‘제9회 굿모닝 양림’이다. 양림동 일대 근대문화유산의 가치를 재조명하고 인문학적 접근을 통해 지역민과 함께 품격 높은 문화예술을 공유하는 인문학 축제 ‘굿모닝 양림’. 떠들썩함 대신 사색과 낭만이, 술과 음식 대신 시와 음악이 그 자리를 채운다.

▲ 다양한 공연이 펼쳐지는 펭귄마을 야외무대



 

  펭귄 마을과 우일선 선교사 사택, 이장우 가옥과 분위기 좋은 카페들까지. 원래부터 즐길 거리가 많았던 양림동이지만 축제 덕분에 아름다운 길목에 시와 음악소리가 더해졌다. 이른 아침부터 펭귄 마을 입구에 마련된 작은 무대에서는 ‘추억의 DJ BOX’에서 준비한 음악 소리가 흘러나온다. 음악소리를 배경음악 삼아 언덕길을 오르자 이번엔 시 낭송 소리가 들려온다.


▲ 사직공원 주무대에서 열린 전국 시낭송 대회

 

 “그렇다 광주는 한나절 태양이 팔 벌려 어깨동무하고 고통이나 시련도 사랑으로 곰삭아 전설처럼 익어가는 곳. 이야기가 살아있고 감동으로 물결치는 춤과 노래가 있고 시대와 풍속을 그리는 사람들이 있는 곳. 이름하야 광주. 광주를 보러 가는 사람들은 행복하다.”

 

 곱게 옷을 차려입은 전국 시 낭송 대회 참가자들이 감정을 담아 저마다의 색으로 시 낭송을 이어간다. 시구들이 날개를 달고 양림동 일대로 퍼져나간다. 시 낭송뿐만 아니라 사직 공원 주위는 어린아이들부터 젊은 연인들, 어르신들까지 남녀노소 모두 즐길 거리로 가득하다. 시 낭송이 끝나자 주 무대에서는 클래식공연과 통기타 라이브가 이어지고, 공원 입구에 마련된 공예와 캘리그래피, 크리스마스카드를 쓸 수 있는 체험 코너로 가족들이 몰린다. 무엇보다 700여명의 어린아이들이 참여한 ‘굿모닝!양림 어린이사생대회’가 눈에 띈다. 대회에 참여한 아이들과 함께 나온 가족들로 사직공원 일대가 북적인다.

 

▲ 공연 외에도 캘리그래피와 공예체험 등 다양한 즐길 거리가 있는 축제 ‘굿모닝 양림’

 

 아이들이 작품을 완성하길 기다리며 ‘가을 숲속 시인의 책방’과 ‘움직이는 감성 책방’에서 책을 꺼내 읽는 엄마, “천천히 그려. 너 그림 그릴 동안 아빠 음악 듣고 있으면 되니까. 심심하지도 않고 좋다.” 음악 감상에 푹 빠진 아빠, “여기 도토리 많다. 나는 여기서 도토리 찾아야지” 그림 그리기에 열중인 형을 뒤로하고 도토리를 찾아다니는 아이들까지. 무대 위에서 흘러나오는 클래식 연주가 배경음악이 되어 가을 햇살을 받아 반짝이는 가족들의 모습이 영화의 한 장면처럼 느껴진다.

  예술 작품을 통해 양림동을 더 깊이 알아볼 수 있는 전시들도 진행되고 있었다. 공원 바로 밑에 위치한 양림 미술관에서는 다형 김현승 시인의 삶과 시 정신을 살펴볼 수 있는 ‘다형 김현승 아카이브전’이, 학운 초등학교 옆에 위치한 515 갤러리에서는 양림동에 살며 활동하고 있는 작가들의 작품을 만날 수 있는 ‘양림의 화가들’ 전시가 열리고 있었다. 


▲ 다형 김현승 시인의 삶과 시 정신을 살펴볼 수 있는 아카이브 전시

 

 인문학 축제답게 인문학 강연도 빠지지 않았다. 양림교회 옆에 위치한 오웬기념각에서는 소설가 이외수 씨와 대한민국 1세대 코미디언 전유성 씨의 강연이 열렸다. 

 “세상을 다르게 보는 사람들에 의해 세상은 조금씩 바뀐다. 그렇게 보는 사람들 중 하나가 바로 시인이에요. 시인들은 구름에 가려진 달을 보고 계란 프라이라고 하죠. 또 초승달을 보면서는 이런 말을 해요. ‘사람들은 왜 이렇게 바쁘게 살까. 달은 윙크 한 번 하는 데 한 달이 걸린다’ 이처럼 시인들은 내가 다 아는 단어들로 세상을 다르게 바라보게 만드는 힘을 가진 사람들이에요.”


▲ 오웬기념각에서 열린 인문학 강연

 

 ‘거꾸로 바라보기’를 주제로 열린 전유성 씨의 강연은 강연시간 내내 박수소리와 웃음소리로 가득했다. 강연을 듣고 나오자 때마침 펭귄마을 입구에 마련된 무대에서 시 낭송 동아리 ‘담쟁이’ 회원들의 시 낭송이 한창이다. ‘세상을 다르게 바라보는 힘을 가진 사람’ 시인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줄 아는 사람들이 모인 축제 ‘굿모닝 양림’. 술과 음식, 귀빈축사로 떠들썩하지는 않지만 시와 음악, 예술과 인문학의 힘을 믿는 사람들이 모여 빛이 난다. ‘가을에는 사랑하게 하소서’라는 축제의 주제를 떠올려본다. 나뭇잎이 물들기 시작하는 가을, ‘굿모닝 양림’에서 찾을 수 있는 시와 음악, 예술이 우리가 사랑하는데 힘을 보태줄 수 있길 바란다.

이하영 (10기 통신원)
미술대학 큐레이터학과를 졸업했다. 큐레이터가 뭐 하는 사람이냐는 질문을 자주 받는데, 그때마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는 말 아세요?'라고 되묻는다. 예술작품을 전시라는 형태로 잘 꿰어서 사람들과 소통하는 일을 좋아한다. 모든 일의 끝에는 사람이 있다고 믿으며 예술작품 너머의 사람을 보려고 애쓰며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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