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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휴전하시오,
마지막 주 수요일엔.
문화가 있는 날 - 열린소극장
김수빈 통신원
매달 마지막 주의 수요일. 고요한 듯 긴박하게 돌아가는 회사라는 필드 위의 미생들은 어떤 모습일까? 아마 우리나라의 전통 탈인 하회탈을 쓰고서, 연신 감사합니다, 알겠습니다, 혹은 한국인들 특유의 ‘넵’ 병을 심히 앓고 있을 것만 같다. 만약 나라면 말이다. 그러다 더 내려가지도 올라가지도 않는 눈꼬리와 입꼬리 주변의 근육들에게 스스로가 미안해지면서 소위 말하는 ‘현타(현실 자각 타임)’가 오지 않을까. 이렇게 소강상태가 되어버린 몸과 마음을 이끌고 곧장 집으로 간 우리는 지쳐 잠이 들 것이고, 눈을 뜨면 언제 나의 저녁이 있었냐는 듯 다시금 조용한 전쟁터의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을 것이다.
여러모로 지쳐버린 수요일, 제대로 번-아웃이 와버린 우리의 마음을 채울 방법을 한 가지 알려주려고 한다. 바로 ‘문화가 있는 날’이다. 문화가 있는 날이란 국민이 일상에서 문화를 쉽게 접할 수 있도록 매달 마지막 주 수요일에 다양한 문화혜택을 제공하는 날을 의미한다. 이는 영화관을 비롯하여 공연장, 박물관, 미술관, 문화재 등 전국의 2천여 개 문화시설을 할인 또는 무료로 즐길 수 있는 문화적 혜택을 제공하며, 지역별로 지역의 문화가 특성화 된 콘텐츠와 더불어 직장 내로 문화를 배달해주는 문화적 서비스 콘텐츠 등 다양한 기획 사업을 통하여 국민의 문화 향유를 증진하려는 문화체육관광부 주최의 사업이라고 할 수 있다. 문화가 있는 날에 참여하는 영화관과 스포츠 시설, 그리고 공연장, 미술관 박물관 등을 다양한 할인과 함께 무료입장이 가능하며, 더욱이 좋은 것은 직장인도 퇴근 후에 다양한 문화적 콘텐츠를 향유할 수 있도록 일부 문화시설은 야간 개방을 진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당 혜택의 내용으로는 전국 주요 영화관의 할인을 시작으로, 연극 뮤지컬과 같은 공연 할인은 물론이며, 주요 전시시설을 관람할 수 있는 미술관 등이 할인과 더불어 연장 개관을 한다. 또한 점차 확대되고 있는 국민들의 문화예술 욕구에 따라 각 지자체의 도서관에서는 특별 프로그램을 운영하기도 하고 스포츠센터 또한 일부 스포츠 할인 등과 더불어 다양한 혜택을 받아볼 수 있다. 이에 우리는 세 가지의 준비물을 가지고 문화가 있는 날을 기다리면 된다. 바로 걱정을 덜어버린 마음과 문화와 예술을 즐길 수 있는 눈, 그리고 가볍게 흔들 수 있는 몸만 가지고 말이다.
이번 취재를 맡은 11월의 마지막 수요일은 나에게도 그런 날이었다. 왜인지 지칠 대로 지쳐버린 그 날, 광주문화재단 아트스페이스에서 진행하는 문화가 있는 날의 공연 취재를 하러 가게 되었다.
▲문화가 있는 날, 광주문화재단에서 진행하는 열린 소극장 공연 포스터
금일 진행된 열린 소극장의 무대는 ‘김성광 밴드’가 빛내주었다. 그들은 ‘Again 그 노래’라는 공연 명으로 wait, Maria Cervantes, 서른 즈음에, 애수, a pray for peace, 지난 기억, TV를 보면서, 사랑밖에 난 몰라, 사랑하고 싶소, 직녀에게, 딜라일라, 장미라는 총 12개의 곡을 준비하였는데, ‘Again 그 노래’라는 공연명과 어울리게 보는 이들로 하여금 옛 추억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포근한 무대를 준비하였다. 이 날의 세션 라인업으로는 피아노에 강윤숙, 오세주. 베이스에 김성광, 드럼에 김민호, 기타에 김수곤 그리고 보컬에 박원, 임채희 선생님이 힘써주셨다.
그들은 금일 진행될 공연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본 공연의 몇 시간 전부터 도착하여 리허설을 진행하기도 했다. 아직 완성되지 않는 무대라고 할 수 있는 리허설 무대에서조차 마음속의 큰 울림을 와 닿은 걸 보면, 나 또한 꽤 힘을 쓰며 살았구나 하는 생각이 조금씩 들기 시작했다. 그들은 리허설 과정 중 조금도 엇나가는 소리가 생기지 않도록 음계 하나하나를 세세히 조율해가며 연주와 보컬의 합을 맞추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사실 피아노와 기타는 꽤 흔한 악기라고 생각했는데, 평소 흔하다고 느꼈던 이 악기들조차 우리는 접할 기회가 없는 게 사실이었다.
▲보컬을 맡은 임채희 선생님과 합을 맞추어 보는 연주 세션
▲보컬을 맡은 박원 선생님과 합을 맞추어 보는 연주 세션
나는 잠시 취재를 접어둔 채 무대를 넋 놓고 바라봤다. 내 눈앞에서 진행되고 있는 멋진 연주와 보컬에 집중하지 않은 채 노트북의 모니터만 바라보기는 어려웠다. 특히 몇 번이고 합을 맞춰본 그들의 표정이 인상적이기도 했다. 그들은 연주를 시작하면 기타고 드럼이고 할 것 없이 모두가 빠짐없이 행복해 보였다. 마치 이 악기를 다룰 때 가장 행복하다는 말을 청중들에게 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 때문에 어떠한 연주든지 악기를 다루는 그들의 표정까지도 그 곡 중 하나의 큰 필요 요소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피아노를 연주하는 강윤숙 선생님
▲보컬을 맡은 임채희 선생님
신나는 분위기의 곡뿐만 아니라 쌀쌀해진 날씨에 어울리는 발라드까지 듣고 있노라면, ‘아, 내가 여유로움을 잊고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어느덧 아무런 생각 없이 무대를 보며 고개를 좌우로 흔들고 발로 박자를 맞추고 있는 나였다. 평소 일하느라 받는 스트레스와 이것저것 신경을 쓰게 되면서 굳어져 버린 내 몸이 자연스럽게 반응하고 있었고, 마음 또한 편안했다. 꼭 정화가 되는 기분이랄까. 맞다, 사람이 행복해질 방법은 멀리에 있는 것도 그다지 어려운 것도 아니었다. 그저 잠시 머리를 비워둘 시간을 주는 것, 그것 또한 어렵다면 이와 같은 음악 앞에 있어 볼 것. 그것만으로도 나에게 충분한 휴식과 힐링을 해주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 가지 아쉬웠던 점은 이러한 양질의 무대를 나 혼자가 아닌 내 사람들과 함께였다면 행복이 배가 되지 않았을까 라는 아쉬움이 들기도 했다.
▲ 문화가 있는 날, 직장 문화 배달 포스터
우리의 삶은 어쩔 수 없이 계속 진행되어야 한다. 이 땅에 태어난 순간, 결국 남들에게서 도태되지 않고 함께 발맞춰 나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함께 나아가던 중 발목을 삐끗하여 채 아픔을 느끼지도 못하고 쪽팔려서 고개를 들어 봤을 땐, 아마 함께 가던 이들의 뒤통수만 저 멀리 떨어져 보일 것이다. 그들의 뒤통수만 보고 걷기란 매우 씁쓸함 그 이상 이하의 것도 아닐 것이다. 하지만 지구에 태어난 모든 것들은 복제 쌍둥이들이 아니라는 것을 기억하자. 우리는 성격도 취향도 생김새도 다르다. 고로 각자의 다리 길이도 다르다는 것이다. 그들의 다리가 조금 더 나보다 길었을 뿐. 그리고 그들의 시력이 조금 더 좋았을 뿐. 그 때문에 길을 찾아가는 속도가 조금 다를 뿐이다. 그럴 때는 주변 풍경을 좀 둘러보며 걷자. 산과 나무 자연도 좋다. 주변의 상점도 좀 기웃거려보고, 잠깐 들려 물건도 사보는 것이다. 어떤 이를 위한 것도 아닌 자기 자신을 위한 소비 말이다. 그렇게 나 자신을 위해보고 나에게만 집중하는 시간을 가지며 걷는다면, 언젠가는 우리의 뒤통수가 따갑게 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삶의 전장에서 뛰고 있는 이들이여 마지막 주 수요일은 결단코 휴전하라 !
| 김수빈 (11기 통신원) 초시대. 1분 1초를 허투루 보내지 않는다는 데서 파생된 단어 위에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우리의 앞엔 무엇이 있길래 이리도 숨 가삐 뛰어만 가며 지금 이 순간을 놓치고 있는 걸까요. 아마도 현대 사회 속에서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은‘쉬어감의 부재’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쉬어감의 다른 말을 곧‘문화예술’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조금 쉬었다 가는 것도 좋은 방법이에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