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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를 무너뜨리는 엉망진창 오케스트라
취재 : 오솔비(제13기 통신원 모담지기)
인터뷰이 : 주진옥(문화예술교육연구소 일상 대표)
▲ 엉망진창 오케스트라 5기 수업
우리는 살아가다 보면 엉망 같아 보이는 순간들을 가끔 마주하게 된다.
* 엉망 (명사 : 일이나 사물이 헝클어져서 갈피를 잡을 수 없을 만큼 결딴이 나거나 어수선한 상태)
코로나가 시작된 이후 2년간의 삶을 되돌아봤을 때, 내 삶은 얼마나 엉망이었나 하는 질문을 해보니 슬쩍 웃음이 나온다. 헝클어진 내 모습을 많이 발견했고 갈피를 잡을 수 없을 만큼 꽤 깊이 방황도 했다. 지나고 나니 엉망 같아 보였던 그때의 순간들은 나에게는 꼭 필요한 무너짐이자 쉼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그리고 오늘 여기 스스로 〈엉망진창 오케스트라〉라는 이름을 가지고 예술을 노래하는 문화예술교육을 만났다.
▲ 문화예술교육연구소일상 - 주진옥 대표
“모든 것이 악기가 되고 연주자가 될 수 있으며 음악적 지식이 없어도 즐기고 연주할 수 있다.”
‘문화예술교육연구소 일상’은 2018년에 설립된 단체로 음악을 매개로 다양한 장르와 결합해 예술의 경계를 허물고 통합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문화예술 단체이다. 그리고 엉망진창 오케스트라는 오케스트라의 악기군인 현악·관악·타악기의 소리 나는 원리를 기반해 일상의 소품과 오브제를 이용하여 악기를 만들고 공연하는 통합문화예술교육프로그램이다.
(문화예술교육연구소 일상 - 주진옥 대표)
엉망진창 오케스트라를 처음 기획한 이유는요.
오케스트라 하면 무엇이 떠오르나요. 아마도 ‘비싸다’, ‘배우기 어렵다’, ‘다양한 악기와 많은 사람이 함께 연주한다’ 등입니다. 일반인들은 클래식 위주의 오케스트라 악기와 연주를 접할 기회가 많지 않아요. 배우기도 어렵고 악기도 비싼 탓에 보통의 가정에서는 쉽지 않죠. 그래서 생각했습니다. ‘꼭 배우기도 어렵고 비싼 악기로만 오케스트라를 해야만 하는 걸까. 싸고 쉽게 배울 수 있는 악기로 다 함께 연주할 수 없는 걸까.’ 이렇게 작은 질문에서 엉망진창 오케스트라는 시작했어요.
오케스트라의 관념을 깨는 경계 없는 문화예술교육으로 아이들이 무엇을 배웠으면 하는지.
요즘은 아이들에게 자존감, 자신감을 많이 강조하고 있는 세상이에요. 자신의 목소리를 높이는 데는 많이 신경 쓰고 있지만 주변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 데에는 신경을 덜 쓰는 것 같아 안타까워요.
오케스트라는 서로 다른 소리가 하모니를 이루기 위해 균형을 맞추는 과정이에요. 하나의 소리로 연주되었기 때문에 가치와 의미가 있듯 어린이들이 살아가고 있는 작은 공동체에서 서로의 소리에 귀 기울이고 배려하고 화합하며 함께 나아갈 때 공동체의 일원으로 바로 서리라 생각해요.
▲ 즐겁게 수업에 임하는 5기 단원들
“음악을 통해 아이들이 서로의 소리에 귀 기울이고 같은 템포로 나아가기를 바랍니다.”
가장 인상 깊었던 공연이나 참여자는요.
엉망진창 오케스트라는 유난히 비와 인연이 있었어요. 1, 2기 때는 비가 와서 야외 공연을 못하고 급히 실내에서 했고 3, 4기 때는 날이 너무 추워서 친구들과 꼭 껴안고 있었던 기억이 나요. 매년 공연을 세 번 했는데 10월 말에서 11월 초라 비 오고 춥고 그랬어요. 방식과 현장 분위기가 매번 달랐기 때문에 하나만 꼭 집어내기가 어렵네요(웃음). 올해는 11월 초에 양산 호수공원에서 공연해요.
처음부터 지금까지 쭉 함께했던 1기 유수민(영천중 3)과 삼 년째 함께 하고 있는 양예서(금구중 3) 학생이 마음에 남아요. 초등 5학년 때 단원이 된 유수민 학생은 남동생도 함께 참여하고 있고 보조강사로서 저희를 돕고 아이들을 이끌어주고 있어요.
양예서 학생은 늦게나마 악기에 대해 관심이 생겨 기타 동아리에서 들어갔어요. 엉망진창 오케스트라 이렇게 다섯 해가 넘게 아이들과 만나고 있다니 마음이 참 뜨거워지네요. 이들과의 인연이 어디까지 이어질지 기대돼요.
5기 단원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은.
위드 코로나 시대이기는 하나 이전만큼의 북적북적하지 않아요. 명색이 오케스트라인데 단원이 적어 조금 아쉬워요. 계속 모집 중입니다. 아이들에게 새로운 친구를 더 소개하고 싶은데 그러지 못해 미안하기도 하고요. 상황이 안 되면 즐길 수밖에 없죠. “우리끼리 오붓하고 끈끈하게 마지막까지 즐겁게 지내자. 엉망진창 오케스트라 5기 파이팅!”
▲ 엉망진창 오케스트라 5기 단원 (양예서, 16세)
삼 년을 함께 했죠. 엉망진창 오케스트라의 매력이 상당한가 봅니다. 무엇이 가장 즐겁나요.
흔한 물건으로 악기를 만들 수도 만들고 직접 연주하여 공연할 수 있어서 재미있어요. 모든 시간마다 다른 재미가 있어요.
서고 싶은 무대나 장소가 있다면.
음… 악기를 만들고 제대로 연습할 시간이 많다면 광주에서 가장 큰 무대에서 당당히 연주하고 싶어요. 그리고 봉사하러 다니고 싶기도 해요. 작년에 재능나눔 연주를 하기로 했는데 코로나로 취소됐어요. 정말 아쉽더라고요.
앞으로 또 들어보고 싶은 문화예술교육 수업이 있나요.
엉망진창 오케스트라 6기에 또 참여하고 싶지만, 내년에 고등학생이라 잘 모르겠네요(웃음). 베이킹 배워보고 싶어요. 하지 않을 이유가 없죠. 맛있잖아요!
“엉망진창 오케스트라”라는 이름은 모순이다. 그들이 내는 소리의 결은 아름다웠다. 우리는 가끔 불완전한 상태에서 더 완벽한 하모니를 마주할지도 모른다. 서로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 그들을 보며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삶의 태도를 떠올렸다. 경계를 무너뜨리는 문화예술교육처럼 세상에는 꽤 멋진 엉망진창이 많으니 앞으로 나의 엉망을 좀 더 사랑해보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