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 내가 가진 주름을 살펴보는 일.JPG [size : 1.9 MB] [다운로드 : 50]
우리가 앞으로 사랑할 인생의 한 곡절
-처음 보듯 두 번 다시 못 볼 노년기 생애전환 프로젝트-
취재: (13기 모담지기) 오솔비
인터뷰이: 정의림(아트프로젝트 27 대표)
‘나는 나로 늙어가고 싶다’
나이 앞자리 수의 변화를 10년 만에 앞두고 있는 11월의 겨울, 핸드폰을 꺼내어 메모를 남겼다. 매년 새로운 나이를 맞이한다고 생각하면 한해 한 해가 소중하다. 그래서 애써 누구를 닮아 늙기보다 더 좋은 나로 늙어가고 싶다고 생각했다. 오늘은 이 마음으로 인터뷰 첫머리를 써 내려간다. 11월의 인터뷰이는 노년기 생애전환 프로젝트를 기획한 정의림 씨다.


-간단히 자기소개
안녕하세요. 광주에서 기획자로 활동하고 있는 정의림입니다. ‘아트프로젝트 27’ 대표이기도 해요. 27살 때부터 사회생활을 시작했는데, 풋풋하고 열정 많을 때여서 ‘그때의 마음, 초심을 잊지 말자’는 의미로 이름을 지었어요.
-《처음 보듯 두 번 다시 못 볼 노년기 생애전환프로젝트》 시작점
어느 날 외할머니 집에 갔어요. 아파트 베란다 앞에 앉아서 종일 멍하니 바깥을 내다보는 외할머니의 뒷모습을 봤어요. ‘우리 할머니는 무슨 재미로 하루를 보낼까’ 하는 생각이 들었고, 그즈음 퇴직을 앞두고 불안해하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대화도 듣게 되었습니다. 일을 그만두고 두 분도 외할머니와 같은 모습이면 어떻게 하지, 퇴직하면 어떻게 살고 싶을까, 그들이 처한 상황을 내가 다 헤아릴 수 있을까. 여러 생각을 했어요. 가족을 위해서 일만 하며 살아온 그들에게 죄송한 마음이 들기도 했어요. 그래서 노년기 프로그램에 관심이 생겼어요. 처음엔 좋은 프로그램을 추천하려고 생각했는데 여가에 할 수 있는 단순 강습이 많더라고요. 노년기를 이해하는 문화예술교육이 아직 부족하다고 느꼈고, 내가 만들어보자고 마음먹었어요.


-가장 기억에 남는 때
두 번째 시간,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바라봐〉인데요. 얼굴 주름의 특징과 원인을 이야기하고 자기 얼굴을 세심하게 관찰한 후 주름을 기록했어요. 참여자들이 단순하게 답할 줄 알았는데 진지하게 인생의 희로애락을 들려주었어요. 아파서, 자식 걱정 때문에, 생계 시름에, 죽음이 두려워서, 즐겁게 살아서 생긴 주름 등 사연이 가지각색이었어요.
“내 얼굴을 오랫동안 들여다보기는 처음인데 인생을 담고 있는 주름이기에 밉지 않다”라는 이야기와 인생을 쓴 편지를 보니 찡했습니다.

▲ 의자에 그려보는 재밌는 표정들
-참여자의 변화
〈삶의 공간 비틀어 보기〉라는 주제로 바깥에 나갔어요. 산책하면서 구름, 나뭇잎, 돌 등을 찍고 나서 사진 위에 상상한 것들을 그렸죠. 그 다음 날부터 채팅방에 일상 속 다양한 상상을 공유 하더라구요. 우리 프로젝트가 이분들의 생활에 자연스레 스며든다고 느꼈어요.
“사람은 습관을 만들고, 습관이 사람을 만든다”라는 말이 있어요. 이 프로젝트는 두 번째 인생에 접어든 젊은 할아줌마, 할아저씨들이 두 번째 습관을 만드는, 첫 단추와 같은 시간이라고 생각해요.

-어떤 기억으로 남길 바라는지
일상에서 계속 기억되길 바라요. 좋았던 프로젝트로 끝나지 않고, 산책을 하다가 문득 우리가 같이 했던 일들이 생각나서 피식 웃을 수 있길 바라요. 가족과 싸우다가도 5분 동안 관찰하고 사진도 찍어보면서 또 다른 감정을 느껴보면 좋겠어요. 제2의 인생을 위한 좋은 습관처럼 몸에 배어있으면 좋겠네요.
-어떤 어른으로 늙어가고 싶나
깊게 생각해 본 적이 없어요. 경제적으로 힘들지 않으면 좋겠다는 정도였지요. 세상이 정한 기준과 비슷하지요. 하지만 프로젝트를 하면서 나의 노년에 대해 생각하게 됐어요. 남이 정한 기준이 아니라 나의 기준으로 온전히 나를 위해 채워가면서 타인의 삶과 내 것을 비교하지 않는 어른이 되고 싶어요.
-프로젝트가 어떤 의미로 남을지
이번에 나에 대해서 많이 고민했어요. ‘이 정도밖에 생각할 수 없나? 왜 벗어나지 못하지?’ 방향을 잡지 못하고 고정된 틀에 갇혀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을 때가 많아서 자책하곤 했어요. 우리가 프로젝트에서 강조한 시각의 전환은, 사실 제게 가장 필요해요. 나이 들수록 고정관념에 갇히고 세상의 기준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노년을 맞이할 수도 있어요. 그런 순간에 하나씩 들춰보며 해볼 수 있는 든든한 인생 프로젝트로 제 곁에 남을 듯해요.
-좋은 문화예술교육이란
계속 고민하고 있어요. 답을 찾는 여정에 있고요. 좋은 문화예술교육을 아직 정의할 수 없지만 기획할 때 무엇을 지양해야 하는지 알게 됐어요. 대상을 고민하지 않고, 만들어놓은 커리큘럼을 그대로 적용했다면, 그것은 좋은 문화예술교육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어요.

▲ 나와 함께 살고 있는 것들, 엄마
-다음에 기획하고 싶은 프로젝트가 있다면
다음에도 노인 문화예술교육을 하고 싶습니다. 계속 연구하고 기획하려고 해요. 일단 이번 프로젝트를 더 다듬어서 완성도를 높이고픈 사명감이 생겼습니다. 2탄이나 중급 과정을 한 번 만들어보고 싶어요. 저희와 비슷한 팀과 콜라보해도 좋겠고요.

▲ 황소의 왕, 정기심
-11월 끝자락, 올해의 바람
아직 노년을 위한 문화예술교육은 많지 않아요. “아이들은 우리의 미래입니다”라고들 하는데, “노인들은 우리의 미래가 될 수 있다”라고 말하고 싶어요. 이 일이 미래를 다루는 문제로 인식되면 좋겠습니다. 내년에도 노년기 문화예술교육 프로젝트들이 여기저기 늘어나길 바랍니다.
-의림 씨의 최종 꿈
문화예술분야 기관에 몸담아 12년 동안 일했지만 프로젝트를 기획해도 “기획자 정의림”라는 말은 거의 들을 수 없었어요. 올해 비로소 기획자로 첫 등단한 느낌이 듭니다. 첫 마음을 잃지 않는 기획자가 되고 싶어요. 생애전환 문화예술교육을 계획하면서 품은 의지와 열정으로 성실하게 더 나아지는 기획자가 되겠습니다.
익숙한 나를 새로운 눈으로 바라보았습니다. 살기 위해 애쓰는 나를 가만히 안고 토닥이며 늙어가는 일이 어찌 지루할 수 있을까요. 의림 씨와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앞자리의 변화가 오히려 두근거릴 지경이었습니다. 처음의 소중함을 잊지 않고 더 나은 나를 만나기 위해 꿈꿔보면 좋겠어요. 너도 나도 인생 한 곡절 한 곡절을 남김없이 사랑해 보자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