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2호] 삶터뷰#1 포도 농사를 지으며 삶도 짓는 사람 /오솔비 모담지기
광주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
날짜 2023-06-25 조회수 2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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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터뷰 #1

포도 농사를 지으며 삶도 짓는 사람

 

 

 

인터뷰이: 임아영(2023 뉴스레터 편집위원)

취재오솔비 모담지기

 

 

 

특별한 대상을 사랑하는 문화예술교육자들이 있다. 사랑하는 것은 자신을 닮아있어 곧 나를 말해주기도 한다

문화예술교육의 현장에서 그들이 사랑하는 대상과 이야기가 궁금해 올 한해는 잘 들여다보기로 했다어떤 대상을 사랑하며 어떻게 사랑하는지가 자신의 삶을 드러내니 삶터뷰로 이름을 달았다

 

삶터뷰의 첫 인터뷰이는 임아영, 아봉으로 불리는 여성이다. 작년에 편집위원과 모담지기 관계로 아봉을 알게 되었고 글을 봐주는 그녀를 감히 인터뷰해보기로 했다. 내 글 실력을 잘 알고있는 사람이면서 처음으로 안면이 있는 사람을 인터뷰하니 부끄러우면서도 너무 궁금했다. 그녀가 어떤 대상을 사랑하고 어떻게 자신의 삶을 사랑하는지.

 

 


 

 

그녀는 사람들에게 아봉으로 불린다.

 

아봉   : 아봉은 스물한 살에 제 친구들이 지어준 별명이에요. 제 이름 아영에 만만하다는 뜻의 봉을 붙인 것 같아요.(웃음) 저희 엄마도 이 호칭을 좋아하시고 직장생활하면서 호칭이 사람 관계에 좋은 작용을 한다는 것을 느꼈어요. 그렇게 20년 넘도록 쓰고 있어요. 바깥에서 만나는 분들에게 제가 먼저 부탁해요. 특히 우리 집 아이들의 친구들이 집에 놀러 오면 아영이 이모보다 아봉이라고 불러 달라고 해요.

 

솔비   : 저도 아봉이라는 별명이 편하고 좋아요. 사회생활에서 호칭을 부르는 게 익숙하지 않은데 아봉이라는 호칭 때문인지 더 아봉이 궁금하고 내적 친밀감이 생겼어요. 인천에서 오래 살다가 먼 광주까지 오셨네요.

 

아봉   : 부모님 두 분이 김제의 사립 고등학교 교사셨는데 그 당시에는 여교사가 결혼을 하고 임신하면 인정해주지 않는 사회였어요. 많은 일들을 겪으신 엄마는 저를 품은 다음 두 분다 교사직을 그만 두셨어요. 이후에 돈을 벌러 인천으로 이사를 왔고 그곳에서 초중고를 다녔어요. 대학이 정해지는 시기에 시골살이를 준비하시는 부모님을 따라 당연하게 광주로 내려왔어요. 제가 살던 곳과는 너무나 다른곳이었는데 그게 좋았어요. 그동안은 느끼지 못했던 것을 경험하게 됐거든요.

 

솔비   : 그 이후로 쭉 이쪽에서 살고 계시네요. 하나뿐인 착한 딸이라 부모님을 떠나 독립하는 것도 쉽지 않았을 것 같아요.

 

아봉   : 제 독립은 결혼이었어요. 저는 대학, 취업, 결혼 등 중요한 결정을 할 때 항상 부모님의 영향이 컸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저를 잘 아시는 두 분이 최적의 선택을 해주셨어요

저의 20대를 돌아보면 한심하면서도 짠하고 그래요.” 부모님은 제게 너무 좋은 존재지만 어려웠어요. 그렇다고 제가 고집을 피우거나 도망을 쳐서 혼자 뿌리를 내리지도 않고 서로 피곤하게 살았어요. 그게 아쉽지만 다행히 결혼이 독립이었고 서로 도우면서 살 수 있는 좋은 사람을 만나서 이제부터 크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결혼 후에 나라는 사람을 더욱 알게 되고 서로의 시행착오를 인정하게 되면서 이제 좀 인생이 재밌어요.


솔비   : 결혼은 아봉에게 뿌리가 되었고 삼 남매의 엄마가 되게 해줬어요. 많은 일을 하고 계시는데 아직 미혼인 저는 일과 동시에 육아하시는 게 너무 힘들지않나요? 저는 지금도 일하기 싫은 날들이 많거든요.

 

아봉   : 제가 인스타에 가끔 일기를 쓰는데 회사에 있으면 아이가 안 보여서 힘들고, 집에 있으면 내가 안 보여서 힘들다고 썼었어요. 질질 울 수밖에 없는데 저는 옛날에는 일이 좋았고 동료들이 좋아서 회사에서 많이 울었죠. 지금은 회사를 나와 일을 하지만 할머니 돼서도 계속 일을 하고 싶어요

 

 

할머니가 돼서도 즐겁게 일하고 있을 아봉을 상상했다. 주름진 콧잔등에 안경을 올리고 쓰고 말하며 열심히 일하고 있을 아봉의 모습이 자연스럽게 그려졌다. 즐기지 않으면 오래 할 수 없음을 알기에 그녀가 사랑하는 일들을 더 들어보았다.

 

 

 

솔비   : 아봉은 육아의 선배잖아요, 삼 남매를 어떻게 사랑하며 육아하시는 지 궁금해요.

 

아봉   아이들이 잘 크려면 저도 그만큼 커야 한다고 간절하게 생각해요. 제가 크는 모습을 보면 아이들이 느끼거든요. 제가 즐거워하며 글 쓰고, 말하고, 책 읽는 모습을 자연스럽게 보여줘서 아이들도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세상에 도움을 주면 좋겠어요. 아빠는 국어 선생님, 엄마는 영어 선생님인 학원 집 딸이라서 더 그런가 봐요. 몇 년 동안 쭉 학원을 다닐 때 저는 즐겁지 않았어요. 저도 즐겁지 않고 부모님도 즐거워 보이지 않았죠. 제 첫 직장이 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인데 그때 이게 진짜 운명인가 생각했어요부모님은 사교육이었는데 저는 다른 세계의 교육을 그때 만났죠.”

 

솔비   : 2009년의 아봉과 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의 만남이 생애 전환기 같은 순간이었나 봐요.

 

아봉   맞아요. 그 시기를 두고 갈리는 게 있어요. 그 시기에 저는 참 좋은 사람들을 만났어요. 지금 삶디 센터장님이 당시 제 사수였는데 그런 분들을 일하면서 많이 만났죠. 돈벌이가 안되는데도 옳은 것을, 하고 싶은 일을, 남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미련하게 쭉 하는 사람들이었어요. 운 좋게도 그분들을 지원하는 일을 하면서 그분들의 삶을 깊숙이 볼 수 있었어요. 광주에 왔을 때 한번 변곡점을 겪은 것처럼 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에서 일을 시작한 게 참 커요.

 

 

 

 

 

솔비   : 문화예술교육의 만남이 삶에 새로운 변화를 주었을까요?

 

아봉   : 사람을 점수, 등수로 줄 세우는 학교, 학원, 집에 살면서 그게 당연한지 알았는데 저렇게 살아도 되는구나, 그게 나와 맞네를 배웠어요. 제가 좋아하고 잘하는 일로 사람을 돕고 살아야겠다고 방향이 생겼어요. 사람을 만나면 그 사람에게 필요한 무언가를 제가 계속 생각하고 있는 저를 발견하죠.

 

솔비   : 아봉은 일찍 뿌리내리지 못한 시기를 아쉽다고 하셨지만, 조금 늦어도 단단한 뿌리를 내리고 사람에게 따듯한 위로를 건내고 싶어 하는 아봉에게 제가 배워야겠어요

 

 

 

모담지기의 첫 인터뷰가 시작하기 전 아봉은 첫 단추가 중요하지만 첫술에 배부를 수는 없겠지요. 첫 인터뷰 잘 망치고 우리 6월에 얼굴 봐요!”라고 응원을 전했다. 어려움에 공감하고 아쉬움이 남을 수 밖에 없을 우리의 도전을 잘 망하자는 말로 오히려 용기를 주었다. 서툴어도 괜찮아, 실패도 꽤 괜찮아 라는 말처럼 느껴졌다.

 

 

 


 

 

솔비   : 올해는 어떻게 두드리고 계시나요?

 

아봉   :​ 담양에서 시장분들과 살아온 이야기를 나누고 있어요. 어른들 어떻게 살아왔는지 궁금해요. 그리고 제 인터뷰 시작은 우리 엄마라고 생각하죠. 앞으로도 쓰면서 말하면서 살 거예요. 그럼 재밌는 일도 생기고 돈도 벌 수 있다는 걸 알았거든요. 40대가 되니까 흩어져있던 여러 가지 모양의 구슬들이 모이고 있어요. 여성에 관해 계속 공부하고 응원하고 싶은 마음이 커요. 또래 여성분들을 만나서 글쓰기도 해보고 싶고..(눈을 반짝인다.) 세상을 바꾸지는 못하더라도 소리를 내고 싶어요.

 

솔비   : 아봉이 앞으로 만날 이들이 궁금해지네요. 어떤 글을 남길 지도요

 

아봉   : 문화예술 하는 분들에게 도움이 되는 글도 쓰고 싶고, 엄마의 이야기를 인터뷰 형식으로 풀어보고 싶고, 여성들의 이야기도 쓰고 싶어요. 특히 이주 여성들의 이야기를 쓰고 싶어요. 우리 동네에도 포도 농사를 하는 제 또래의 이주 여성들이 많아요.

 

솔비   :  이주 여성들에 관한 관심은 동네에서 생겨난 건가요?

 

아봉   : 생각해보니 제가 대학원을 다닐 때 쓰려고 했던 논문 주제가 다문화, 이주 여성이었어요. 누가 시킨 것도 아니고 권한 것도 아닌데 7~8년 전부터 관심이 있었어요.


솔비   :  저도 이주 여성들의 이야기가 궁금해지네요. 점점 말할 수 있는 여성들의 이야기가 다양하고 많아지고 있어요.

 

아봉   : 제가 여성이다 보니 그리고 딸들을 키우니까 지금도 여성에 관한 생각을 깊게 해요. 이주여성들을 보면 반갑고 그분들의 친구가 되고싶어요. 이미 아이들은 친구니까요. 서로 다른 문화와 성을 이해하면서 아이들이 자라고 세상이 달라지면 좋겠어요.

 

솔비   :  아봉은 정말 하고 싶은 게 많아요. 제가 올해 만난 사람 중 가장 넓은 영역의 일을 하시는 분이세요. 농사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잖아요. 농사는 어떻게 시작하셨어요?

 

아봉   : 부모님이 먼저 귀촌을 하시고 포도 농사를 하셨는데 탄저병 피해로 농사가 힘들었을 때 포토밭을 팔아버려야겠다고 하셨어요. 그리고 농담처럼 남편과 제가 농사를 이어받겠다고 했어요. 농사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지만, 그 말을 뱉고 나니까 자꾸 관심이 가더라고요. 그 시기가 회사와 동료들은 좋으나 제가 많이 지쳐가던 때였어요. 낭떠러지에 매달려 가랑이가 찢어지는 기분이어서 농사에 마음이 확 열렸어요. 아빠라는 스승과 기반이 있었고 농한기가 있으니 일을 하면서 하고 싶은 것도 할 수 있는 리듬이 좋아 농사를 시작하기로 했어요.

*농한기 : 농사일이 바쁜 철인 농번기(農繁期)가 끝난 후부터 다음 농번기까지의 한가한 시기

 

솔비   : 전혀 모르는 세계에 들어섰네요. 농사의 첫사랑이 시작됐는데 잘 돼 가고 있나요?

 

아봉   : 매일 2~3시간 아버지께 일을 배우고 장성에서 포도 대학을 다니면서 이론 실습을 배우고 있어요. 작년에는 멋모르고 수확까지 해봤지만, 올해는 이론과 함께 진행하고 있어요농사와 글을 짓는다는 건 너무 멋지지만 내가 할 수 있을까에 대해 계속 의심하면서 도망치지만 말자고 다짐하고 있어요. 2년 차 짜잔한 농부지만 농사가 좋아요. 은퇴의 시기도 내가 정할 수 있잖아요.

 

솔비   : 살아온 시간보다 이 일을 더하게 될지도 모르겠네요.

 

아봉   : 맞아요. 꼬부랑 할머니들도 아직 밭에서 일하세요, 그 모습이 멋져요. 저는 팔에 근육도 생겼으면 좋겠어요. 농사 오래 하신 여성분들의 단단한 잔 근육과 반짝이는 얼굴을 꿈꿔봐요.

 

 

 

 

 

 

솔비   : 아봉이 그리는 꿈이 아봉이랑 닮았어요. 자신과 어울리는 꿈이 있다는 게 묘하게 저를 안심시켜줘요. 나도 나와 어울리는 꿈을 꾸고 그 꿈을 닮아갈 수 있다는 안심이요.

 

아봉   : 막 시작하는 단계에서 만나니까 더 좋아 보일 수 있어요.(웃음)

 

솔비   :​ 그게 좋지요. 아봉의 서툰 첫 시작을 제 서툰 글로 담을 수 있으니 좋아요.

 

 

 

친구들의 장난 어린 별명을 진심으로 좋아하는 사람, 여성으로 사는 삶을 살아내며 엄마를 인터뷰하고 싶다는 사람, 자신을 짜잔한 농부로 소개하며 눈을 반짝이는 사람, 사람이 가진 단단함을 귀하게 바라보는 사람.

 

제가 살아보니까 글을 쓰면서 나를 정리했을 때 내가 덜 밉고 살아갈 힘이 되더라고요. 내가 막 예뻐지는 게 아니라 덜 미워지는 거죠.”


그녀가 삶을 사랑하는 방법은 농사와 글을 짓는 것이다. 처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작은 성장도 기대하며 나아가는 그녀를 보며 문화예술의 만남은 한 사람의 삶을 변화시키는 것을 또 느낀다. 앞으로 그녀가 맺을 열매와 수많은 글들이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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