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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터뷰 #2
음악에서 삶을 배우는 사람
인터뷰이 : 주진옥(문화예술교육연구소 일상 대표)
취 재: 오솔비 모담지기
특별한 대상을 사랑하는 문화예술교육자들이 있다. 사랑하는 것은 자신을 닮아 곧 나를 말해주기도 한다.
문화예술교육 현장에서 그들이 사랑하는 대상과 이야기가 궁금해 올 한해는 잘 들여다보기로 했다.
누구를 사랑하며 어떻게 사랑하는지가 자신의 삶을 드러내니 ‘삶터뷰’로 이름을 달았다.


솔비 : 음악과 언제 사랑에 빠졌나요?
진옥 : 어릴 적 피아노를 배우면서 음악에 반해 전공하고 싶다는 꿈이 생겼어요. 경제적인 이유와 예술에 대한 편견을 가진 부모님의 반대로 그만 뒀지만요.
솔비 : 저도 어릴 때 피아노 학원을 다녔어요. 피아노에 대한 재미보다 친구들과 놀기위해 다녔었는데 저와는 다르게 음악을 꿈으로 만나셨네요.
진옥 : 다른 친구들에 비해 조금 늦게 시작했는데, 상도 받고 음악에 소질이 있다는 말도 들어서인지 음악가를 꿈꾸게 됐어요. 하지만 아버지는 고지식했던 초등학교 선생님이라 무조건 인문계를 고집하셨죠. 그때는 부모님 말씀에 순종했지만, 사회생활을 하다가 다시 대학교에 들어가서 피아노를 전공했어요.
솔비 : 어른이 되어도 포기할 수 없는 꿈이었군요.
진옥 : 삶에 회의감이 들었어요. 지금이라도 어릴 적 꿈을 이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서 직장을 그만두고 입시 준비를 시작했어요. 부모님의 반대를 무릅쓰고 시작한 음악이었기 때문에 경제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아주 힘들었지요. 대학에서 피아노를 전공했고 넓게 음악을 이해하고 싶어서 대학원에서는 작곡을 전공했어요.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음악을 통해 문화예술교육을 하고 있어요.
솔비 : 음악가를 꿈꾸다 다른 길을 갔지만, 다시 돌아갈 수밖에 없을 만큼 음악의 존재가 컸나 봐요. 부모님의 반대로 포기했지만 결국 다시 선택해서 지금까지 하고 있잖아요.
진옥 : 음악에서 삶을 살아가는 방식을 배우고 이해하고 있어요. 오케스트라는 함께 연주하면서 하모니를 이루고 균형을 맞춰나가는 일이에요. 같은 박자로 같은 방향을 향해 나아가야 하죠. 그것이 제 삶과 연관돼요. 함께 살아가기 위해서는 내 소리를 알아야 하고, 또 남의 소리를 잘 들어야 하죠. 내가 필요할 때는 나서야 하고, 섞일 때는 섞여야 하고, 따라가야 할 때는 따라가는 게 올바른 사회죠.
솔비 : 내 소리를 알아야 한다는 거…. 와닿아요. 내 소리를 알아야지 내 삶을 연주할 수 있겠네요.
진옥 : 의외로 자기가 어떤 행동을 하는지, 어떤 목소리를 내는지 인지하지 못하는 이들이 많아요. 그래서 내가 진짜 어떤 목소리로 어떤 걸 하고 있는지를 먼저 알아야 한다고 많이 말해요. 제가 생각하는 그런 철학들을 음악에서 많이 찾아가고 있어요.
솔비 : 살아가는 방식을 음악에서 배웠다고 했는데 삶이 음악과 얼마나 겹쳐있을까요?
진옥 : 음악은 저에게 두 번째 인생이에요. 치열했던 30대의 삶 자체기도하고요. 12년 동안 음악을 하며 서울 생활을 했는데 몸도 안 좋아지고, 그즈음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광주에 다시 내려왔어요. 그리고 여기서 음악을 통한 문화예술교육을 만났어요. 그렇게 문화예술교육은 세 번째 인생이 되었죠.
솔비 : 세 번째 인생인 문화예술교육과 어떻게 처음 만났는지 궁금해요.
진옥 : 음악학원을 운영했을 때 문화예술교육으로 젬베 수업을 받게 되었어요. 그때 강사님이 저에게 문화예술강사를 추천하셨어요. 문화예술교육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몰랐지만, 그 해 덜컥 합격이 되면서 첫발을 내디뎠어요. 정말 행운이었고 생애 전환점이 찾아왔죠.
솔비 : 아무것도 모르고 문화예술교육을 만났지만, 이해하기 위해 많은 노력이 필요했겠어요.
진옥 : 문화예술교육은 하나만 잘해서 되는 게 아니더라고요. 계속 공부를 하게 돼요. 지금도 전남대학교 문화학과를 다니며 특수아동을 대상으로 4년째 수업을 나가면서 특수아동 심리 치료와 음악 치료도 공부하고 있어요.
“풀어나갈 수 있는 통로”
진옥 : 그동안은 뭔가를 계속 배워왔는데 연결이 안 되니까 시간 낭비를 했나 생각했어요. 그러다 문화예술교육을 하면서 여태까지 제가 배웠던 것들이 쌓여서 풀어나갈 수 있는 통로를 만들어줬어요. 특히 엉망진창오케스트라가 그래요. 제가 작곡을 공부했기 때문에 많은 악기를 이해하고 있고, 많은 악기를 다루고 편곡을 할 줄 아니까 모든 게 다 녹아있어요. 그래서 애정이 깊어요.
솔비 : 엉망진창 오케스트라를 6년동안 그런 애정과 노력으로 이어오셨군요.
진옥 : 엉망진창 오케스트라는 처음으로 기획했던 프로그램인 동시에 저의 정체성을 찾을 수 있었던 프로그램이에요. 그 안에 녹아있는 모든 것들이 고민의 흔적이자 영광의 상처라고 생각해요. 매년 프로그램을 똑같이 진행해본 적이 없어요. 큰 틀은 비슷하지만, 세부적인 내용은 다르게 해요.
솔비 : 올해는 어떤 점이 달라졌을까요?
진옥 : 올해의 경우 참여자들의 연령이 낮아서 흥미와 재능을 가지고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도록 관계 맺는 데 시간을 할애했어요. 소소한 게임을 진행하기도 했죠. 강연을 계획했지만 토론이나 미션 수행으로 바꾸기도 했어요. 지난 참여자들이 다시 찾아오는 이유라고 생각해요. 같은 프로그램이지만 매번 풀어가는 방식이 다르니까요.

“6년 동안의 엉망진창 오케스트라가 나에게 남긴 것”
진옥 : 엄청난 보물을 남겼어요. 지금까지도 인연이 되어 함께 하는 친구들이지요. 초등학생으로 만나 중학교, 고등학교에 가서도 관계가 이어져요. 시간이 이렇게 흘렀는데도 지금까지 제 주변에 남아 있는 아이들을 보면 엉망진창 오케스트라 덕분 같아요.
솔비 : 중년 대상 ‘인생 N모작’ 이야기도 듣고 싶어요.
진옥 : 작년 8월에 문화예술교육연구소 일상 센터가 생겼어요. 엉망진창 오케스트라 특성상 재료와 고물 악기가 많은데 매번 수업 시간에 이동하는 것도 일이고 보관할 장소가 없어서 힘들었거든요. 그래서 새로운 공간을 만들게 됐고 주민들의 소통 공간으로 활성화되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엉망진창 오케스트라는 초등학생 친구들, 청소년 기타 합주반은 청소년들을 위한 자리니 어른들도 놀러 올 수 있는 인생 N모작을 시작하게 됐죠. 타이밍이 좋았어요. 50~60대 분들이 매주 목요일 저녁 7시에 기타 하나 메고 문을 두드려요.
솔비 : 혹시 사람들을 만나면 직업을 뭐라고 말씀하나요?
진옥 : 자리마다 달라요. 누구를 만나는지, 어떤 사람으로 가는지 달라서요. 학교로 가면 방과 후 강사이고 문화예술로 가면 단체 대표이자 기획자이고 참여자분들을 만나면 예술 강사라고 말해요.
솔비 : 고정적이지 않고 사업마다 일정이 바뀌는데 이 일이 잘 맞는지도 궁금해요.
진옥 : 힘들죠. 힘든데 이 과정을 거쳐서 결과물이 나오면 성취감이 정말 커요. 함께하면서 공감대가 생기고 첫날의 모습과 마지막의 모습이 다르다는 걸 느끼니 계속할 수밖에 없어요.

“문화예술교육이 나에게 주는 영향”
진옥 : 문화예술교육을 시작 한지 올해로 7년째인데 매년 저를 성장하게 만들어요. 항상 만나는 사람도 다르고 프로그램 내용도 다르니 이해하기 위해 끊임없이 연구하고 분석해요. 문화예술교육을 통해 참여자들에게 긍정적인 변화가 생기길 바라니 항상 고민하고 노력해요. 이 과정에서 성장하는 것이 가장 큰 영향이에요.
솔비 : 여러 사람을 만나는데 특별히 애정이 가는 대상이 있다면
진옥 : 특수아동이나, 청소년 미혼모를 대상으로 프로그램을 진행해보고 싶어요. 힘들겠지만 프로그램을 통해 제가 더 많이 배우고 깨닫고 크는 계기가 될 것 같아요.
솔비 : 특수아동, 청소년 미혼모들은 문화 사각지대의 대상일 수 있죠…. 그들에게 관심하는 이유가 있나요?
진옥 : 프로그램을 할 때 대상을 많이 이해하고 공부해야 해요. 여러 대상을 알고 싶기도 하고요. 지금은 특수아동을 만나고 있으니까 학교 밖에서 문화예술프로그램을 하고 싶어요.
솔비 : 대상을 이해하기 위한 노력이 연주법을 공부하는 것과 비슷해 보여요. 악기마다 연주법이 다르듯이 대상마다 그 사람을 이해하기 위해 공부하면서 다가가니까요. 많은 악기 중에 나와 닮은 악기를 한 가지만 고른다면?
진옥 : 기타가 생각나네요. 기타는 코드를 잡아야 해서 처음에는 어려워요. 저도 나름의 규칙과 철학이 있어서 깐깐하다, 어렵다는 말을 듣거든요. (웃음) 좀 어렵지만, 막상 할 줄 알면 코드는 안 바뀌잖아요. 저라는 사람도 규칙 안에서 다양한 매력을 보여줄 수 있답니다.
그녀가 삶을 사랑하는 방법은 각자의 연주법을 이해하며 인연을 맺어가는 것이었다. 음악으로 삶을 배우며 살아가는 힘을 얻는 사람, 문화 사각지대에 시선을 두고 스며드는 일에 겁을 내지 않는 사람. 내면에 단단함이 있기에 다양한 배움을 흡수해도 변하지 않는 듯해 보였다. 규칙 안에서 여러 매력을 보여주는 그녀의 음악을, 아니 그녀의 삶을 응원하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