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4호] 인생의 선물 같은 시간이 되길 / 정혜원 모담지기
광주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
날짜 2023-08-29 조회수 1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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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선물 같은 시간이 되길

 

 

인터뷰이: 임보현(협동조합 어감 대표)

취 재: 정혜원 모담지기

 

 

광주 시민이면 모르는 사람이 없는 길, ‘푸른길이 있다

인터뷰이는 푸른길 공원을 2년간 들여다보며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만났다. 푸른길에서 매일 뻥튀기를 튀기던 할아버지의 갑작스레 떠난 후 공허해하던 분들이 있었다. 그들에게 선물을 주고 싶었던 임대표는 문화예술교육에 그들을 초대했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협동조합 어감대표 임보현입니다. 영화를 전공해서 자연스럽게 영상을 시작했고, 10년 간 광주에서 영상 콘텐츠 제작도 하고 문화 기획도 하고 있습니다.

협동조합 어감이요?

공공기관에서 잠깐 인턴을 했는데 그곳에서 만난 청년들과 만들었어요. 디자이너, 영상 제작자, 첼리스트, 영어 전공자 등 다양한 분야의 청년들이 모여 하루하루 즐겁게 보내고자 겁 없이 시작했죠.(웃음) 

케미가 좋았겠어요현재도 함께 하나요?

낭만으로만 살 수는 없더라고요.(웃음) 1년 정도 그렇게 지내고 나서 각자 준비해서 새롭게 출발하기도 하고, 결혼도 하고⋯⋯ 그때의 인원과는 많이 바뀌었어요. 

 


작년 <디지털 부캐의 로컬 무비>에서 참가자들이 열성으로 수업에 임하는 모습 (사진제공_임보현)

 

 

그렇군요. 작년에도 프로그램을 진행했나요?

지역특성화 문화예술교육으로 <디지털 부캐의 로컬 무비>를 했어요. 요새 본 모습이 아닌 새로운 모습으로 활동하는 연예인들 많죠? 그런 것처럼 디지털 부캐의 필요성, 나의 능력 찾기 등 수업을 통해 나의 새로운 캐릭터를 만들고 영상으로 소개했어요.

 

대상이 궁금해요.

20대부터 40대까지 다양한 연령의 일반 시민들과 함께했어요. 한 번에 20회 씩, 240회 진행으로 작년의 거의 절반을 함께 했죠. 스무 번 넘게 만났고 추가로 영상 편집을 위해 찾아오는 등 다들 열심이었어요. 마지막 상영회 때 모두 감동했죠. 프로그램은 끝났지만 지금도 관계를 이어가고 있어요. 한 달에 한 번 영상을 만들어서 공유하면 제가 피드백도 해주고, 같이 만나서 맛있는 것 먹으면서 이야기도 나누고요.

 

무척 의미있는 시간이었네요. 올해도 특별한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던데요?

생애전환문화예술교육 <푸른길 할아버지의 인생유산 답사기>를 하고 있어요. 생애전환문화예술교육은 변화가 목적이라고 생각해요. 이 시간을 통해 눈에 보이는 변화가 아니더라도 일상을 다르게 볼 수 있는 작은 시각이라도 변화하면 좋겠어요. 대상자는 노인이에요.

 

 

<푸른길 할아버지의 인생유산 답사기>에서 그때 그 시절 사진을 보며 추억에 잠겨있는 참가자들(사진제공_임보현)

 

 

 

소개 부탁해요.

영상 자서전을 한편씩 만들어요. 본인 삶을 돌아보며 기억하고 싶었던 부분을 영상으로 담으면 자서전이 될 것 같더라고요. 인생 이야기를 어떻게 꺼낼까 고민하다가 음악을 통해 해봐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과거를 돌아볼 수 있는 음악, 현재 즐겨듣는 음악 등 선곡을 통해 그때 그 시절 이야기를 꺼냅니다.

어떻게 기획하게 됐나요?

광주의 푸른길공원다큐를 촬영한 적이 있어요. 작업 차 계속 다녔는데, 산수동 푸른길 옆에 뻥튀기 장사하시는 할아버지가 있었어요. 동네 할아버지들도 매일 그 주변에 나와 앉아있고요. 뻥튀기 할아버지 촬영하려고 앉아있다가 그 무리와 친해졌어요. 한두 시간 앉아서 수다 떨고 촬영도 했어요.  

어느 날 갑자기 뻥튀기 할아버지가 병이 생겨 장사를 다 접었어요. 그러니까 동네 할아버지들의 하루 일과도 사라진 거죠. 그분들의 상실감을 확인했어요. “이러다 우리도 그냥 가는 거지 뭐..” 하는데 뭔가 도움을 주고 싶었어요. 그때 문화예술교육사과정 수업을 듣고 있었는데 문화예술교육은 뭔가 교육하기 보다 선물 같은 시간을 주는 것이라고 했어요. 할아버지들에게 선물하고 싶더라고요.

푸른길 할아버지들이 프로그램에 참석하고 있나요?

초대장을 만들어서 푸른길에 앉아있는 할아버지들에게 나눠드렸죠. 그게 인원 모집이었어요.(웃음) 바로 참석할 수 있는지 여부를 묻고 받아 적었죠. 길거리 캐스팅이라고나 할까요? 그런데 사실 지금 참석하는 푸른길 할아버지는 몇 명 안돼요. 그분들에겐 새로운 장소에서 새로운 활동을 한다는 것이 좀 어려운 것 같아요.

 

 

 

 
쑥스럽지만 본인의 추억을 하나씩 꺼내어 보는 중 (사진제공_임보현)

 

 

 

아쉽네요. 프로그램은 순항 중인가요?

정말 어려움이 많았어요. 참가자 모집부터 애를 먹은 거죠. 일과가 사라졌으니 푸른길에서 초대장만 전달하면 다 오실 줄 알았는데 두 분 오셨고, 원래는 할아버지 대상이었는데 어쩌다 할머니들도 참여하고 있고요.

저희가 프로그램 장소로 푸른길에서 가까운 예쁜 한옥을 빌렸어요. 제 눈에는 좋은 장소에, 삶에 활력을 불어넣는 재미있는 활동들도 하고 안 올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는데, 어르신들 눈에는 아닌가 봐요.  기획부터 어떻게 보면 제 기준에서 생각한거죠. 노래도 부르고 옛날이야기도 하고 좋다고 계획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이분들이 원하는 프로그램이었을까 싶어요.

그리고 일주일에 한 번 만나니까 이분들에게는 너무 텀이 긴가봐요. 친해졌다가도 한 주 지나면 다시 서먹서먹한 사이가 되니까 프로그램 진행이 어려웠어요게다가 세 번 만난 뒤에 장마에 폭염에,,, 어르신들이 오기 너무 어렵겠어서 재단 측과 협의 하에 중단한 상태에요. 3주 정도 중단했다가 9월 초에 다시 시작하려고요.

수고하셨고, 큰 깨달음을 얻었어요.

지금까지 하면서 느낀 문제점들을 보완해서 다시 시작하려고요. 3주 동안 프로그램을 점검하고 보완하려고 하고요. 일주일에 한 번 만나던 것을 두 번으로 늘려서 서로 빨리 친숙해지도록 하고, 또 날이 좀 풀리면 어르신들께 익숙한 장소인 푸른길 공원에서도 수업하려고요.

문제점을 인식하고 고치려는 점이 멋져요.

어떤 프로그램을 하든지 항상 문제점, 어려운 점은 있더라고요. 그걸 해결하면서 성장하는 것 같아요.

음악 수업에 대한 반응은 어떤가요?

나의 최애 가수 찾기부터 해서 예전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고향의 봄등 옛날 노래를 이용해 수업했어요. 노래방에 온 것처럼 신나게 불러요. 그러다 내가 옛날에 이 노래를 부르면서..”하며 과거 자기 이야기가 나와요. 듣다 보면 저희도 배꼽 빠지게 웃고, 그분들도 과거 자신의 모습을 회상하는 시간을 갖죠. 너무 즐거워요.

가장 기억에 남는 일화가 있나요?

별명 쓰기 시간이 있었어요. 점잖아 보이는 할아버지가 있었는데 그분이 말도 많고 노래도 많이 불러요. 옛날 노래를 부르다 내가 예전에 여자애들 고무줄놀이하면 다 끊어먹고 댕겼제~”하는데 정말 개구쟁이였겠다 싶더라고요. 별명으로 뭐라고 썼는지 봤는데 까불이였어요.(웃음)

 

 
​올해도 프로그램을 통해 소중한 추억을 쌓는 중 (사진제공_임보현)


하하하. 즐겁게 놀다 예전 모습이 나오나 봐요. 토이카메라를 이용해 사진 찍는 시간도 있네요?

. 영상 자서전 편집은 아무래도 어르신들은 어려울 것 같아서 강사들이 해요.

어디서 들었는데, ‘호기심이 있어야 청춘이다.’ 정말 그렇다는 생각이 들어요. 어르신들도 호기심만 있으면 청춘이겠다 싶고요. 음악으로 기본 수업을 하는데 매번 궁금증을 가질 수 있는 미디어 기기 요소들을 넣었어요. 특히 토이카메라는 작동법이 단순해서 어르신들이 익히기 쉽고, 찍은 사진을 바로바로 화면에서 볼 수 있어서 좋아요. 

궁극적으로 전달하고 싶은 게 뭘까요?

그분들 세대에는 정말 어려웠잖아요. 고생도 많이 하고 자기가 원하는 것보다 포기하는 것이 더 많았죠. 그럼에도 인생에는 기억될 수 있는 조각들이 많아요. 과거를 떠올리며 내가 이런 걸 좋아했었지기억도 되살리고, 미디어 기기를 만져보며 호기심도 갖고요. ‘오래 살고 보니 이런 것들도 경험하네. 인생 더 오래 살아야겠다고 느꼈으면 좋겠어요.

​토이카메라를 보여주고 있는 임보현 대표(오른쪽)


처음 시작했을 때는 노인들을 대상으로 젊은 새댁이 진행하기 괜찮겠냐라고 우려도 많았다. 인터뷰를 진행하며 기획, 준비, 진행까지 그분들에게 선물 같은 시간을 주고 싶은 마음이 많이 보였다. 장마, 폭염 등 어려움도 많았지만 쓰러지지 않고 도약을 준비하는 임보현 대표의 앞날이 빛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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